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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살리에리 [Salieri, Anton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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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리(Antonio Salieri, 1750.8.18 Legnago-1825.5.7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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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와 궁정악장 그리고 교사로서 당대 큰 명성을 얻은 살리에리는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초년기 쳄발로와 바이올린 수업을 받았던 살리에리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1765년 베네치아에서 성악과 작곡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스승이었던 비엔나의 발레 작곡가 가스만(F. Gassmann)의 추천으로 1766년 비엔나로 옮기게 된다. 그곳서 요셉 2세(Josephs II.)와 비엔나의 음악문화를 접하고 글룩(C. W. Gluck)과 극작가 메타스타지오(P. Metastasio)와도 친분을 갖게 된다. 1770년부터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그는 1774년 가스만의 죽음 이후 궁정 실내악 작곡가이자 이태리 오페라 감독이 되었고, 1784년과 1787년 사이에는 빠리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며 글룩의 후계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1788년부터 1800년까지 비엔나의 궁정악장으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살리에리는 1790년 요셉 2세의 죽음 이후 점점 공개적인 음악활동을 접으며 1804년 이후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살리에리는 다양한 장르의 기악과 성악작품을 남겼는데, 이 중에는 특히 오페라가 당대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의 오페라는 오페라 세리아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는 글룩의 서정비극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또한 요셉 2세의 요청으로 독일의 징슈필을 작곡하기도 한다. 프랑스 오페라의 영향은 그의 첫 대규모 오페라 세리아 『아르미다』(Armida, 1771)에서 나타나지만, 프랑스의 서정비극 양식으로 작곡한 작품은 『다나오스의 딸들』(Les Danaïdes, 1784)이다. 합창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레치타티보는 지속적으로 오케스트라에 의해 반주된다. 무엇보다 대 성공을 거둔 작품은 보마르쉐(Beaumarchais) 각본에 의한 오페라 『타타르』(Tarare, 1787)인데, 정치적 성격을 담고 있고 엄격한 낭송에 반주 레치타티보가 곡의 중심을 이룬다. 이 곡은 요셉 2세의 요청에 의해 다시 이태리 양식으로 개작되는데, 각본은 극작가 다 폰테(Da Ponte)에 의해 변형되고, 음악적으로도 많은 부분 새롭게 작곡되어 1788년 『오르무스의 왕 아수르』(Axur, Re d'Ormus)라는 제목으로 초연 되었다. 수세기 동안 공연된 이 곡은 다양한 양식의 아리아와 이중창 및 앙상블 장면들을 지니고 있다. 다 폰테가 살리에리를 위해 쓴 첫 대본은 오페라 부파 『하루동안의 부자』(Il rico d’un giorno, 1784)였다. 그는 살리에리의 주선으로 비엔나의 궁정 극작가가 되며, 잘 알려진 대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죠반니』의 각본을 쓰기도 했다.
1790년 요셉 2세의 죽음 이후 비엔나에서 이태리 오페라는 인기를 잃게 되며, 살리에리는 이후 십여 개의 오페라를 작곡하는데, 이 중 성공을 거둔 작품은 『페르시아의 여왕 팔미라』(Palmira, Regina di Persia, 1795)와 『팔스타프 또는 세 개의 희극』(Falstaff, ossia Le tre burle, 1799)이다. 『페르시아의 여왕 팔미라』는 낭송적인 양식, 모차르트의 부파 장면, 오페라 세리아의 요소가 혼합된 오페라이다. 
그의 교회음악과 오라토리오 및 기악음악도 이태리 양식과 당대의 흐름이 결합되어있다. 그는 당대 교사로서도 명성을 얻어 수많은 제자를 남기는데, 이 중에는 베토벤, 체르니, 훔멜, 모쉘레스, 슈베르트, 리스트 등이 있다.
18세기 말 활동했던 작곡가 중 살리에리처럼 많은 일화를 남긴 작곡가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단순한 소문에 의한 일화들은 결국 영화 『아마데우스』(밀로스 포만 감독, 1985)와 푸쉬킨의 촌극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에 의해 더욱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주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살리에리의 작품을 올바로 평가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사실 모차르트와 경쟁관계에 있었다는 것도 두 작곡가의 예술적이며 사회적인 신분 차이를 고려할 때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욱이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비난하고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소문은 당대 살리에리도 이에 대해 그의 제자였던 모쉘레스(Moscheles)에게 항의했지만, 지금까지도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는 44개의 오페라와 징슈필, 5개의 오라토리오, 6개의 미사, 6개의 모테트, 13개의 칸타타 등 다수의 교회작품, 164개의 2-6성부 성악곡, 150개의 카바티나와 단선율 성악곡, 실내악, 교향곡, 기악곡, 157개의 카논, 바이올린, 오보에, 첼로를 위한 협주곡, 오르간협주곡, 2개의 피아노협주곡, 플롯과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플루트 협주곡 등이 있다.

등록일자: 2005-04-11
오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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