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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프랭, 프랑스와 [François, Coupe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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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프랭(Couperin François, 이름 뒤에 \"위대하다 불리는\"(dit Le Grand)이라는 말이 붙기도 한다. 1668. 10. 11 빠리 - 1733. 11. 9 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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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1>
쿠프랭은 17-19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음악가 집안의 출신이다. 그는 1685년 파리의 교회 생 제르베(St. Gervais)의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했고 1693년에는 25살의 나이로 루이 14세 궁정 예배당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1723년 건강상의 이유로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그만둔다. 
쿠프랭의 대표적 작품은 네 권으로 이루어진 쳄발로(클라브생)를 위한 곡 『글라브상 곡집』“Pièces de clavecin”(1713, 1716/17, 1722, 1730)이다. 특히 초기 표제음악을 대표하는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들 작품은 240여 곡을 ‘오르드르(ordres)’라고 불리는 모음곡 형태로 묶었다. 각 오르드르는 최고 20개까지 이르는 여러 개의 춤곡과 성격소곡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기존의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미뉴에트/가보트, 지그 뿐 아니라 다수의 제목이 부쳐진 성격소곡들을 담고 있다. 제목은 특정한 주제 혹은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고, 표제보다는 보편적 성격의 순수한 음악적 표현에 중점을 두는 등 다양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개별적인 악장들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고 주로 롱도 혹은 샤콘느이며, 폴리포니적인 것이 자제된 갈랑양식으로 가는 과도기적 형태를 보여준다. 특징적인 것은 다양한 화성과 선율적 변주를 통한 섬세한 선율적 구성과 더불어 다양한 장식음들의 기록과 음의 반복 및 양손의 교차 등을 통한 쳄발로적 음향 효과이다. 
실내악으로는 소수의 다양한 악기를 위한 모음곡들이 있고 프렐류드로 시작하며 프랑스의 춤곡 혹은 자유로운 악장으로 이루어진 5-7 성부 모음곡 『궁정 콘체르토』(concerts royaux)이 다수이다. 이 중 네 곡은 『클라브상 곡집』(Pièces de clavecin, 3권, 1722)의 부록에 실려 있다. 악기는 1-2개의 쳄발로 혹은 독주악기(바이올린, 플롯, 오보에, 비올라 다 감바, 콘트라베이스)와 쳄발로로 편성되어 있다. 이 외에도 실내악 『여러 나라들』(Le nations, 1726)에서는 프랑스 모음곡과 이태리 교회소나타를 융합한다거나, 당시 코렐리와 륄리를 대표하는 프랑스와 이태리음악 애호가들 간의 논쟁을 상징하는 이태리 양식의 소나타 『코렐리 찬가』(L’apothéose de Corelli, 1724)와 프랑스 양식의 『륄리 찬가』(L’apothéose de Lully, 1725)의 표제 모음곡도 있다.
프랑스와 이태리 양식을 융합하고자 한 시도는 그의 협주곡에도 나타난다. 쿠프랭은 10개의 협주곡으로 된 곡집 『통합취향 또는 새로운 콘체르토』(Les goùts-réunis ou nouveaux concerts)를 1724년 출판했다. 각 협주곡은 4-11개의 춤곡 혹은 제목이 붙은 성격소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협주곡 『큰 트리오 소나타 파르낫소 산정 또는 코렐리 찬가』(Grande Sonade en Trio, Le Parnasse ou l’Apothéose de Corelli)에는 이태리와 프랑스 양식적 요인의 융합을 다시 표제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종교음악으로는 오르간 미사와 모테트 등이 있는데, 이 중 두 개의 오르간미사(1690)에서는 푸가와 고정선율에 기초한 악장에서 대위법적 양식과 함께 그의 선율적 독창성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 작품은 각각 21개의 짧은 행을 의미하는 베르셋(Versett)이 알테르나팀(Alternatim) 방식으로 교대하며 연주된다. 모테트의 경우는 대규모 합창보다는 이태리 음악의 영향하에 계속저음에 의한 1-3 성부 곡을 선호하고 있고 부분적으로 악기도 연주된다.     
그는 작곡이외에도 『클라브상 연주 기술』(L’art de toucher le clavecin, 1716)과 『반주규칙』“Regle pour l’accompagnement(ca. 1698)”이라는 두 권의 이론서를 남겼다. 이들은 체계적 방법에 의한 건반악기 이론서라기보다 연주해석을 위한 손가락번호, 장식연주 등 당시의 연주실제를 보여주는 교본이다.

쿠프랭은 기악작품으로 쳄발로(클라브생) 작품과 실내음악 및 다양한 독주악기(바이올린, 플룻, 비올라, 오보에, 바순)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 외에 오르간과 모테트 등 교회음악과 더불어 에르(Air)와 같은 소수의 세속성악곡도 남겼다.   

등록일자: 2005-04-18
오윤록

<설명2>

쿠프랭의 가문에는 음악가들이 많아서 프랑수아 쿠프랭은 “위대한 쿠프랭”(Couperin le grand)이라고 구분되어 불린다. 아버지는 음악가 샤를르(Charles, sieur de Crouilly) 쿠프랭이었다. 11세 때부터 아버지와 명성이 높았던 큰아버지 프랑스와(François) 쿠프랭에게서 음악을 배웠다. 아버지가 죽은 후 그는 아버지의 친구였던 오르가니스트 토므랭(Jacques Thomelin)에게서 자란 것으로 보인다. 1685년 쿠프랭은 17세의 어린 나이로 생 제르베(St. Gervais) 교회의 오르간 주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1690년 그는 『두 개의 미사로 된 오르간곡집』(Pièces d’orgues consistantes en deux messes)을 발표했다. 1690년 이후 코렐리의 실내소나타 방식으로 작곡한 트리오소나타를 출판했다.  1693년 그는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브루고뉴 왕자와 공주의 음악선생이었다. 이 때 그는 베르사이유 궁전의 악대를 위해 작은 곡들을 작곡했다. 1714-15년 그는 『저녁기도회』( Leçons de ténèbres)를 작곡했다. 이 곡들은 수녀원과 왕을 위한 음악회에서 연주되기 위해 작곡된 것으로 추정된다. 117년 그는 당글베르(J.H. d’Anglebert)의 후계자로서 쳄발로를 가르치는 \"음악 주임선생”(Ordinaire de la musique)이 되어 귀족들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그는 두권의 교육서를 편찬했다. 하나는 짧게 쓴『반주법』( Règles de l’accompagnement)이고, 다른 것은 『크라브상 연주법』(L’art de toucher le clavecin, 빠리 1716)이다. 그는 연주가로서 그리고 음악선생으로 이름이 높았다. 
1723년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생 제르베 교회를 사직해야 했다. 후계자는 조카 니콜라(Nicolas)였다. 1730년에는 궁정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마르샹(G. Marchand)에게 물려주어야 했다. 그는 말년에 음악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다. 그는 평생을 빠리에서 살았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작품들은 거의 잊혀졌다. 19세기 말 이후 음악학자 퀴뤼잔더(Chrysander), 작곡가 드뷔시, 쳄발로 연주가 란도브스카(Wanda Landowska) 등에 의해 그의 작품들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쿠프랭은 프랑스 작곡가 샹보니에르, 드라랑드, 륄리, 샤르팡티에의 음악과 친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리고 이태리 작곡가들, 즉 코렐리(A. Corelli), 파솔로(Fasolo), 로렌짜니(P. Lorenzani), 알비노니(T. Albinoni)의 음악과도 친숙했다. 그는 프랑스와 이태리 음악을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히 륄리와 코렐리의 음악을 높이 평가했다. 
쿠프랭이 작곡한 장르들은 다음과 같다: 세속적 성악곡, 교회 성악곡, 오르간 음악, 실내악, 쳄발로 음악.
교회 콘체르토는 계속저음이 달리거나 반주 없는 1-2성부의 노래로 되어 있다. 이 노래들은 이태리 작곡가 카리씨미의 칸타타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다. 반면에 그의 오르간 음악은 프랑스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그의 두 개의 오르간 미사는 이른바 알테르나팀(altermnatim) 미사에 속하는 것으로, 긴 음표로 제시되거나 모방적 모티브로 나타나는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 곡들에서 당대에 가능했던 오르간 음향의 음색이 화려하게 구사된다. 그의 소나타와 콘체르토는 모음곡들을 보여주는데, 이태리 음악과 프랑스 음악의 통합이 시도된 것들이다. 그는 스스로 이런 방향의 지향점을 “취향의 통합”(Réunion des goût)이라 이름했다.
쿠프랭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240개의 쳄발로 곡들이다. 이것들은 네권의 책으로 출판되었고 27개의 모음곡(ordre)으로 묶여 있다(『클라브상곡집』Pièces de clavecin, 1713, 1717, 1722, 1730). 한 개의 모음곡에는 23곡까지 묶인 경우도 있다. 당대의 다른 작곡가들은 모음곡을 같은 조성끼리 묶고, 그것이 장조와 단조로 교대하는 식으로 만들었으나 쿠프랭은 전혀 다른 조성들도 함께 묶었다. 
쿠프랭의 쳄발로 곡들은 샹보니에르와 루이(Louis) 쿠프랭의 전통을 잇는 것들이다. 하지만 쿠프랭의 곡에서는 선배들의 곡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모방양식적 구조가 줄어들고 그 대신 춤곡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모방적인 곡에서는 모방이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것을 피한다. 특히 꾸밈음을 통해 엄격한 대위법적 진행을 벗어난다. 여타의 곡들에서도 수많은 꾸밈음들이 나타난다. 류트곡 같은 성부들이 있다가 없어지는 느슨한 구조에 분산화음이 자주 사용된다. 많은 꾸밈음과 일정한 제목, 이 두 가지가 쿠프랭의 쳄발로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의 『클라브상곡집』 1권은 85곡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 30곡이 궁정 춤곡으로 되어 있다. 춤곡들 중 어떤 것들은 단순히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라는 춤곡 이름이 적힌 반면, 어떤 것들은 거기에 다른 말들이 덧붙여진 것들도 있다(예: “얌전한 사라방드” Sarabande la prude). 그런가 하면 같은 책 4권에는 50곡 중 다섯 곡만이 춤곡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곡들에 제목이 달려 있는데, 시적인 제목이 있는가 하면 실제 사람이름이나 가상의 사람이름 또는 동네이름 또는 풍자적인 것도 있다. 모든 곡들은 2-3성부의 두부분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약 60여곡은 론도(롱도) 형식이다. 

참고문헌:
“Couperin, François” 항목, Honegger/Massenkeil: Das grosse Lexikon der Musik, Herder-Verlag, 1992. 
“Couperin, François” 항목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Personenteil 4, 2000.

등록일자: 2005-10-14
홍정수

작곡(가)사전한독음악학회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쿠프랭, 프랑수아(Couperin, François, 1668-1733)

- 1668년 11월 10일 5대에 걸친 대음악가 집안의 샤를(Charles)과 마리(Marie)의 외아들로 파리에서 출생. 생애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냄. 
- 백부 루이 쿠프랭(L. Couperin)의 뒤를 이어 생 제르베 성당(St. Gervais)의 오르가니스트로 있던 아버지에게서 음악을 배우며 일찍부터 재능을 발휘함. 
- 1679년 11세에 아버지가 사망하자 브쉬리의 생 자크 대성당(St. Jacques de la Boucherie)의 오르가니스트인 토믈랭 (J. D. Thomelin)에게 사사받음. 아버지가 봉직했던 오르가니스트의 자리는 그가 18세가 되어 맡을 수 있을 때까지 유보되었고, 드 라 랑드 (M. R. de La Lande)가 대신 연주를 대행하였음.
- 1685년 생 제르베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됨.
- 1689년 4월 26일 마리 안느 앙솔(M. A. Ansault)과 결혼, 5명의 자녀를 둠. 그 중 두 딸이 뛰어난 음악가가 되었음. 
- 1690년 쿠프랭 드 크뤼유 (Couperin de Crouilly)라는 이름으로 오르간 미사곡 ≪교구를 위한 미사곡≫(Messe pour les paroisses)과 ≪수도원을 위한 미사곡≫(Messe pour les couvents) 출판. 최초의 트리오 소나타 ≪스텐케르케≫(La Steinquerque)-루이 14세 때 활약했던 장군 뤽상부르 공작(F. H. de Montmorency-Bouteville, duc de Luxembourg)이 승리했던 스텐케르케 대전투를 묘사함-작곡. 어머니 사망. 
- 1693년 12월 26일 토믈랭 사후 그의 후임을 결정하기 위해 루이 14세가 개최한 콩쿠르에서 베르사이유 궁전 왕실 부속 예배당의 4명의 오르간 연주자 중 한 사람으로 선출됨.
- 1694년 부르고뉴의 툴루즈(Toulouse) 백작에 임관되어 왕실 자제들의 클라브생 교사가 됨.
- 1697년 모테트 ≪찬양하라 주의 종들이여≫(Laudate pueri Dominum), ≪엄숙한 노래≫(Air sérieux) 작곡함.  
- 1701-1703년 궁정 연주회 공연. 1702년 라테랑(Latran) 훈장 수여받음. 
- 1710년경 이미 ‘대 쿠프랭’으로서 명성을 떨침.
- 1713년 최초의 클라브생 곡집 ≪클라브생곡집 제1권≫(Premier Livre de clavecin)을 출판함.
- 1714-1715년 매주 일요일 왕실에서 연주회를 가짐.
- 1716년 쿠프랭의 유명한 저서 『클라브생 연주법』(L’Art de toucher le clavecin)을 출판함. 이 책은 당시 가장 중요한 클라브생 교본이 되었음. 
- 1716년-1717년  ≪클라브생곡집 제2권≫(Deuxième Livre de clavecin)을 출판함.
- 1717년 3월 5일 루이 15세의 제안으로 당글베르(J. H. d’Angleberts)의 후임 궁정 클라브생 연주자가 됨.
- 1722년 ≪왕실의 합주곡집≫(Concerts Royaux)이 포함된 ≪클라브생곡집 제3권≫(Troisième Livre de clavecin) 출판함.
- 1723년 12월 2일 생 제르베의 오르가니스트 자리를 사촌 니콜라((Nicolas C.)에게 물려줌. 
- 1724년 왕비의 클라브생 교사가 됨.
- 1730년 2월 16일 건강상의 이유로 궁정 클라브생 연주자의 자리를 딸 마르게리트 앙투아네트(Marguerite-Antoinette C.)에게, 한 달 후에는 궁정 오르가니스트의 자리를 마르샹(G. Marchand)에게 넘겨줌. ≪클라브생곡집 제4권≫(Quatrième Livre de clavecin)을 출판함.
- 1733년 9월 11일 파리에서 사망.

  16세기말-19세기 중반에 걸쳐 루이 쿠프랭 등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한 쿠프랭 가(家)의 음악가들은 1653년부터 1826년까지 생 제르베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봉직하였는데, 그들 중 프랑스와 쿠프랭은 ‘대(大) 쿠프랭’(Couperin le grand)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만큼 가장 명성이 높았던 작곡가이자 오르가니스트, 클라브생 연주자였다. 륄리(J.-B. Lully), 라모(J.-P. Rameau)와 함께 프랑스의 바로크 음악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음악가로도 꼽힌다. 그는 생 제르베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를 거쳐 왕실의 오르가니스트, 클라브생 연주자, 음악교사로 재직하며 프랑스 음악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하였으며, 생전에 클라브생 음악으로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쳤다. 클라브생 곡 외에 실내악, 교회음악 등 그의 작품들은 프랑스의 전통적인 음악을 추구하는 동시에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두 나라의 음악적 취향을 통합하려는 일종의 “종합양식”(Réunion des goûts, 취향의 통합)의 경향을 보이고 있어, 예술작품에 있어서 보다 “좋은 취향”(le bon gout)이라는 예술의 특징을 추구하기 위해 두 나라의 양식을 절충하던 당시의 음악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 그는 오페라나 대규모 관현악곡은 쓰지 않았으며, 교회음악이나 무대음악이 아닌 시적인 클라브생 소품들을 통하여 자신의 가장 예술적인 이상을 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륄리나 라모 등 당대의 대가들과 다르다. 
  1690년대부터 1728년까지 작곡된 쿠프랭의 실내악 작품은 “종합양식”의 경향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분야이다. 그는 동시대의 프랑스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당시 실내악 분야에서 단연 우위를 점하고 있던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받아 코렐리 양식의 트리오소나타를 많이 작곡하였다.
  1724년에 작곡된 ≪코렐리 찬가≫(L’Apothéose de Corelli)와 1715년의 ≪륄리 찬가≫(L’Apothéose de Lully)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음악가를 상징하는 표제와 상세한 프로그램 뿐 아니라 그들의 음악을 모방하고 응용하는 양식을 통하여 두 나라의 음악적인 특성을 종합하려는 쿠프랭의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코렐리 찬가≫는 7악장으로 구성된 교회소나타의 형태로 작곡되었으며, ≪륄리 찬가≫는 모음곡과 소나타의 요소를 함께 지닌 표제음악적 성격이 강하다. ≪륄리 찬가≫의 서문에는 두 작품 모두 여러 악기들로 편성된 앙상블로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두 대의 클라브생으로 연주하는 것 또한 효과적이라는 쿠프랭의 설명이 들어있다. 쿠프랭은 자신의 실내악 작품에 악기를 지정해 놓은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두 대의 클라브생으로도 연주될 수 있다. 이러한 악기 편성은 그의 클라브생 곡에서도 볼 수 있는데, 제14오르드르(Ordre)의 첫 번째 곡<사랑의 꾀꼬리>(Le Rossignol en Amour)에 지시된 플룻 연주의 가능성이 그 예이다. 
≪왕실의 합주곡집≫(Concerts Royaux, 1722)과 ≪취향의 통합 또는 새로운 합주곡집≫(Les Coûts-Réunis ou Nouveaux Concerts, 1724) 역시 종합취향이라는 맥락으로 작곡된 것으로서, 3-11악장으로 이루어진 모음곡이다. 클라브생을 위해 기보되었으나 모든 종류의 악기들로 편성될 수 있다고 지시되어 있다. 실제로 쿠프랭은 ≪왕실의 합주곡집≫에 수록된 곡들 중 일부를 루이14세를 위해 매주 일요일 왕실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실내악으로 연주하게 하였다. 
  계속저음과 현악합주를 위한 ≪나라들≫(Les Nations, 1726)은 <프랑스인>(La Françoise), <스페인인>(L’Espagnole), <피에몬트인>(La Piémontoise),<제국인>(L’Impériale)이라는 부제가 붙은 모음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모음곡들은 여러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회소나타에 무곡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작품의 표제는 각 나라들을 상징하는 프로그램의 묘사보다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받은 소나타와 프랑스 양식의 모음곡을 결합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1728년에 출판된 ≪비올 작품집≫(Pièces de Violes)은 베이스 비올과 계속저음을 위한 두 개의 모음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모음곡은 전주곡, 사라방드, 파사칼리아 등 프랑스의 전통적인 무곡들로, 두 번째 모음곡은 프랑스적인 색채가 덜한 악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쿠프랭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클라브생 곡은 그의 작품 중 가장 중요하고 독창적이자 중심적 분야이다.
  당시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의 전통은 궁정에 봉직했던 오르가니스트나 클라브생 주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샹보니에르(J. C. d. Chambonnières)와 루이 쿠프랭에 의해 확립된 후, 쿠프랭의 작품을 통하여 스타일과 기법이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쿠프랭의 클라비어 작품은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으며 정교하고 섬세한 선율선과 투명한 짜임새, 간결하면서도 해학적인 성격으로 우아하고 세련된 프랑스 음악의 전형을 보여준다. 
  쿠프랭은 모음곡을 기반으로 한 당시의 클라브생 음악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구성하였는데, 1713-1730년까지 220개의 클라브생 곡을 ‘오르드르’(ordre 또는 order)라는 명칭을 지닌 27개의 모음곡으로 묶어 전 4권의 클라브생 곡집으로 출판하였다. 1713년에 출판된 ≪클라브생곡집 제1권≫에 5개의 오르드르가 수록되어 있으며, 1716말 또는 1717년 초에 발간된 ≪클라브생 곡집 제2권≫에 7곡, ≪클라브생곡집 제3권≫(1722)에 7곡, ≪클라브생곡집 제4권≫(1730)에 8곡이 각각 실려 있다. 
  오르드르란 쿠프랭이 자신의 건반악기 모음곡을 그의 개성과 스타일에 맞게 번안한 것으로서, 전통적인 모음곡이 정형화된 형식 내에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는 것과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작곡된 무곡들을 일정한 원칙 없이 배열한 것이다. 각 오르드르는 4-23곡의 무곡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성은 전통적인 모음곡에 비해 자유롭고, 대부분의 무곡들에는 회화적 또는 문학적인 제목이 붙어있다. 각 무곡들은 각 부분이 반복되는 2부형식이 대부분이며,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리고동, 파스피에, 가보트, 롱도, 파사칼리아 등으로 나타난다. 프렐류드는 들어있지 않으나, 『클라브생 연주법』(1716)에 ≪클라브생곡집 제1권≫에 수록된 오르드르들과 일치하는 조성으로 씌어진 8개의 프렐류드가 있는 것으로 보아, 쿠프랭이 프렐류드 역시 모음곡을 구성하는 악곡으로 간주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 오르드르에는 전통적인 스타일의 흔적이 있으나, 후기로 갈수록 성격적인 제목들이 무곡의 이름을 대신하게 된다. ≪클라브생곡집 제1권≫에 수록된 오르드르들은 대부분 알르망드, 쿠랑트, 미뉴에트/가보트, 사라방드, 지그 등 “정상적”인 순서로 된 기본 무곡들을 유지하면서 때로 하나 이상의 쿠랑트를 사용하고 지그 뒤에 묘사적인 성격을 지닌 다양한 무곡들-성격 소곡(Pièces de caractère)-을 첨가하여 배열을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제2권≫ 이후의 모음곡집에 수록되어 있는 오르드르들에는 전통적인 무곡들이 점점 사라지고 표제를 가진 성격소곡들이 대신하고 있다.
  표제들은 &lt;나비&gt;(Le Papillons), &lt;사랑의 꾀꼬리&gt;, &lt;전원풍경&gt;(Les Bergeries), &lt;나부끼는 보닛모자&gt;(Le Bavolet flottant) 등 특정한 대상을 묘사하고 있거나, &lt;쿠프랭 부인&gt;(La Couperin), &lt;가르니에&gt;(La Garnier)[G. Garnier는 왕실 성당(Chapelle Royale)의 오르가니스트임], &lt;마리 공주&gt;(La Princess Marie) 등 쿠프랭의 주변 인물의 묘사에 근거하기도 하고, &lt;은밀함&gt;(La ténébreuse), &lt;신비의 방벽&gt;(Les baricades mistérieuses), &lt;마음의 여왕&gt;(La reine des coeurs) 등 추상적이고 모호한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쿠프랭의 인상적인 표제들은 대상을 구체화하는 것에 목적을 두기보다는 작품의 전체적인 성격과 분위기를 묘사하고, 정교한 선율의 윤곽과 화려한 장식음, 다채로운 화성, 자유로운 리듬 등 작품의 순음악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쿠프랭의 표제는 음악적 내용의 표현을 넘어서 작품에 형태를 부여해주고 작곡가의 섬세한 표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바, 그런 의미에서 일반적인 표제음악이 가지는 성격과 구별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맥락에서 예를 들어 &lt;사랑의 꾀꼬리&gt;에 들어있는 연주지시 “Lentmente et très tendrement quoique mesure”(천천히, 상냥하게, 그러나 절도 있게) 중 “quoique mesure”라는 표현은 표제음악에서 생겨나기 쉬운 주관적인 해석을 배제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겠다.
  쿠프랭의 유명한 저술 『클라브생 연주법』은 당시 클라브생 연주에 관한 대표적인 교과서였으며, 그의 클라브생 작품을 어떻게 가르치고 연주해야 하는지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운지법, 장식음, 악기의 특성, 그리고 18세기의 전반적인 연주실제에 관한 것으로, 당시의 연주관례에 관한 중요한 문헌을 제공해준다.
  쿠프랭의 교회음악은 그의 건반악기 음악에 가려져 주목을 덜 받은 장르이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그는 륄리, 샤르팡티에(M.-A. Charpentier), 앙리 뒤몽(H. Dumont)의 뒤를 이어 드 라 랑드(M. R. de La Lande)와 함께 프랑스의 중요한 교회음악 작곡가였으며, 특히 성악곡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쿠프랭의 첫 작품은 1690년에 출판된 두 편의 오르간 미사 ≪교구를 위한 미사곡≫과 ≪수도원을 위한 미사곡≫이었으며, ≪오르간 작품집≫(Pieces d’orgue)에 수록되어 있다. 이 두 작품에는 대위법적인 기교와 풍부한 선율 등 젊은 작곡가의 역량이 드러난다. 
  쿠프랭의 종교적 성악곡들은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던 1693년부터 루이 14세가 서거한 1715년까지 작곡되었는데, 생전에 출판된 3개의 ≪테네브레의 일과/예언자 예레미야의 애가≫(Leçons de ténèbres, 1713-1717)와 모테트 ≪와서 주님을 찬양하세≫(Venite exultemus Domine)를 제외하고는 모두 필사본으로만 남아있다. 
  ≪테네브레의 일과≫는 쿠프랭의 교회성악곡 중 가장 훌륭한 것으로서, 첫 두 일과는 독창 소프라노와 계속저음의 편성으로, 세 번째 일과는 두 명의 소프라노를 위하여 작곡되었다. “테네브레(tenebrae, 뜻: 어둠)”란 부활절 전 마지막 성삼일(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에 행해지는 아침기도(성무일도의 제1시경)와 찬미가를 말하며, ≪테네브레의 일과≫는 루이14세의 통치기 동안 부활절 전 성주간에 연주되었던 음악이다. 이 곡들의 가사는 성서의 예레미야 애가에서 발췌한 것으로서, 랑베르 (M. Lambert) 이래 샤르팡티에, 드 라 랑드 등이 이 독특한 프랑스의 교회음악을 작곡하였다. 쿠프랭은 곡의 첫 프레이즈에 등장하는 히브리어 철자를 장식적인 멜리스마로 처리하고 낭송조의 레치타티보와 아리오조를 강조하여 애가의 감동적인 표현에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곡의 서문에는 성금요일을 위해 작곡된 3곡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9개의 일과들 전체를 작곡할 예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남아있는 곡은 수요일을 위한 것뿐이다. 
  성경의 내용을 가사로 한 모테트 또한 루이 14세의 왕실 예배당을 위해 궁정 작곡가들이 즐겨 썼던 장르이다. 륄리나 드 라 랑드 등 작곡가들은 합창과 대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大) 모테트(grand motet)를 작곡하였으나, 쿠프랭은 보다 소규모의 소(小) 모테트(petit motet)를 선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모테트들은 대부분 1-3개의 독창성부와 계속저음을 위한 것으로서, 부분적으로 콘체르타토 양식의 독주 악기군이 편성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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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nd, Alexandra. François Couperin. (tr. Philippe Beaussant) Portland, Amadeus Press, Oregon, 1990. 
Schmierer, Elisabeth. “Couperin, François.” Komponisten Lexikon. hrsg. von Horst Weber. Sttutgart / Weimar: Metzler, 2003.

등록일자: 2010.4.9
[정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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