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음악(한국의)
한국에서 궁중음악이라 함은 조선조 시대에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음악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조선조 시대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 조선조가 끝난 이후의 민속음악과 구분시키면서 나타났다. 가끔 <아악>이라는 조선왕조 때에 궁중에서 사용되었던 음악을 총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악>이라는 용어가 역사적으로 다양하게 사용된 관계로 혼란이 있을 수 있어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조선조 궁중에서 사용되던 음악들은 제례악(제사음악)·연례악(잔치음악)·회례악(회의음악) 군례악(군대음악) 등으로 구분되었는데, 이는 음악들이 모두 기능별로 구분된 것을 알 게 한다. 왕조가 없어진 이후로 남아있는 궁중음악은 민속음악과 아주 쉽게 구분되었다. 그 이유는 이 음악들이 궁중에서만 있었던 악대를 계승한 이왕직아악부(계승자:국립국악원)에 의해서만 연주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여러 곳에서 비슷한 악대가 생겨나면서(KBS 국악관현악단, 도립 또는 시립 국악관현악단) 궁중음악들이 다른 악대에 의해서도 연주된다.
조선조 궁중에서 가장 중요시한 음악은 제사음악인 제례악이었다. 지금은 공자와 성현들의 제사에 사용되는 문묘제례악과 왕조의 조상들에게 제사하는 일에 쓰이는 종묘제례악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조선조 때에는 하늘에 제사하기 위한 원구(圓丘)에서, 땅과 곡식신에 제사하기 위한 사직(社稷)에서 행한 제사가 있었다. 그리고 농사신인 신농(神農) 또는 선농(先農)씨에게 , 양잠신인 서릉 또는 선잠(先蠶)에게 제사지내는 일이 있어 이 때에도 제사음악이 사용되었으나 이 목적에 맞게 독립적으로 형성된 음악은 전해 내려오지 않는다. 잔치를 위한 연례악과 회의 때에 연주되는 회례악은 종묘제례악이나 문묘제례악처럼 일정하게 곡이 짜여진 것이 아니라, 전해오는 음악을 필요에 따라 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군례악은 행렬음악이었는데 고취(또는 "취타")라 이름하기도 했다.
종묘제례악은 주로 고려시대의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하여 세종조에 새롭게 만들어져 처음에는 회례악으로 사용되었는데, 새로운 왕조의 성격에 맞는 -즉 왕실 가문을 칭송하는- 가사가 새로이 붙여졌다. 이 음악은 세조 때에 더 간단하게 만들어져 오늘날까지 전한다. 문묘제례악은 중국의 아악을 들여와 연주하였으나 지금 연주하는 방식이 조선조 초기의 것과 일치하는 지는 알 수 없다.
궁중음악은 원래 노래, 춤, 악대가 함께 연주되는 특징을 지녔다. 이는 왕조 때에 개인 차원에서 하기 어려운 연주방식이었다. 또한 조선조의 궁중음악은 악보로 기록되는 일이 많아 조선조 당시의 궁중음악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다. 반면에 조선조 시대의 민간음악은 악보로 전해져 내려오지 않고, 거의 가사만 전해 내려온다. 조선조 시대의 민간 음악의 악보는 대개 고려 시대의(또는 그 이전의) 음악으로 추정되는 것들이다.
[홍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