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
『라 트라비아타』는 여러 나라에서 -번역 없이- 이태리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태리어 La traviata를 직역하자면 "길을 잘못 든 여인" 정도로 번역해야 할 것이다. 이 여인의 직업은 조선식 번역을 사용하자면 "기생"이었다. 이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잘못 된 길"에 빠진다. 하지만 라 트라비아타라는 말은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인이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게 만드는 무언의 힘을 암시하는 느낌을 갖고 있다. 이 오페라가 베니스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에 검열관이 제목을 『사랑과 죽음』(Amore e morte)이라고 고칠 것을 권했다. 일본 사람들은 대본의 원작 소설 제목으로 돌아가 『춘희』(椿姬)라고 이름지었다. 그 원작은 있었던 사실에 기초하여 뒤마 피스가 쓴 소설 La Dame aux Camélias 즉 "동백(椿) 아가씨(姬)"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동백꽃잎이 빨갛게 멍이 들 듯 그 마음이 멍이 든 『동백아가씨』의 제목으로 한국 가요가 있는 것은 어떤 인연인지 알 수 없다). 여주인공은 마치 세속적인 성인(聖人)처럼 다루어졌다. 대본: 피아베(Fr. M. Piave).
이 오페라의 초연(1853년) 실패가 뚱뚱한 소프라노, 이름을 대자면 살비니 도나텔리(Fanny Salvini-Donatelli)가 비올렛타 역을 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이유는 줄곧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오직 그것만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단순하게 말한 것이다. 오페라에서는 뚱뚱한 여자가 폐병 든 주인공 역을 해도 성공 못할 이유가 없다. 오페라의 관객들은 그렇게 사실적이지 않다. 초연 당시 이 오페라는 아주 재빨리 만들어진 부실한 것이었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쓰면서 동시에 2달 먼저 공연되는 『리골렛토』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베르디는 2차 공연을 위해 1차 때의 음악을 많이 고쳐서 이 오페라를 성공시키고야 만다. 『라 트라비아타』는 대단히 파격적인 주인공을 다루는, 당시에는 과감한 소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매춘부가 오페라의 주역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런 소재는 오페라에서 지금도 대단히 이질적인 것이다. 당시의 부정적 사회 현상이 리얼하게 오페라 무대에 올려지는 것이 낯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베니스의 검열관들은 이를 당대의 이야기로 하지 말고 18세기로 배경을 옮기라고 했다. 당시의 검열관들은 이 오페라의 내용에 관해 정말 많은 신경을 썼다. 영웅적인 주인공 대신에 폐병에 걸린 기생이 남자를 위해 헌신적으로 사랑하다가 그냥 죽어 가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오페라는 당대의 사회가 감추고 싶어하던 일면이었다. 베르디는 자신이 아니었다면 당시에 그런 오페라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라고 후에 말했다. 그리고 "당시와 당시의 수천 가지 미련한 사회적 장애물 때문에 그런 오페라가 불가능했는데, 이 작품을 기쁨으로 작곡했노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은 후에 이 오페라가 프리마 돈나 또는 프리모 우오모들을 위한 이른바 "성악 오페라"로만 이해되면서 그 내용의 민감함이 잊혀지고 오늘날은 매우 진부한 신파극처럼 이해될 수 있는 소재이다. 특히 한국인에게는 이런 식의 "열녀" 이야기를 비교적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미워도 다시 한번』 식의 진부한 이야기의 일종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를 19세기 유럽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지금의 사람들이 이해하기는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만 보는 것은 이 오페라의 본뜻과 상당히 먼 거리에 있다.
베르디는 이 오페라를 "단순하고 열정적인" 성격을 갖는 음악이기를 원했다. 그의 음악은 그의 말 그대로 단순하고 열정적이다. 오케스트라는 -전주곡과 간주곡을 제외하고는- 반주 역할에만 머무른다. 많은 아리아들이 열정적으로 애창되는 곡들이며, 오페라 역시 세계적으로 자주 공연되는데,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초연: 1948년. 알프레도/이인선, 비올렛타/김자경.
제1막 빠리, 비올렛타의 살롱.
여주인공 비올렛타는 자신의 집에서 파티를 열고 있다. 손님들이 도착한다. 비올렛타의 친구 플로라 베르보아가 오비니의 후작과 함께 들어온다. 비올렛타의 숭배자 듀폴 남작도 나타난다. 남주인공 알프레도가 친구 가스통과 함께 들어온다. 알프레도가 비올렛타에게 소개된다. 알프레도는 비올렛타를 혼자 사랑해 왔고, 비올렛타는 그런 알프레도를 이해할 수 없어 하는 관계이다. 장내에 사람들이 다 들어서면 가스통이 알프레도에게 권주가를 청한다. 알프레도는 "축배의 노래 (Libiamo libiamo ne'lieti Calici)"를 부르고, 이를 비올렛타가 받아 부른 후, 모두 같이 노래한다. 그 후 사람들은 춤추기 위해 옆방으로 몰려간다. 비올렛타가 발작 증세를 보이며 주저앉는다.
발작에서 깨어난 비올렛타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다가 뒤에서 알프레도가 자신을 보살피고 있었던 것을 발견한다. 알프레도는 그녀가 이런 생활을 계속하면 죽을 거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를 보호해 주리라고 말하며 사랑을 고백한다. 둘은 곧 2중창 "빛나고 행복했던 어느 날"(Un dì, felice, eterea)"으로 넘어간. '사랑의 테마'("이 사랑은 온 우주의 가슴이 뛰는 것이니" Di quell'amor ch'è paltito dell'universo intero)가 헌신적인 알프레도의 사랑을 노래한다. 하지만 거절하는 비올렛타는 이 사랑의 테마를 장식적으로 오르내리면서 흔들리는 마음을 드러낸다. 알프레도가 떠날 때에 비올렛타는 가슴에 꽂고 있던 꽃 한 송이를 그에게 주며 그것이 시들면 다시 오라 말한다. 그는 다시 한번 비올렛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혼자 남은 비올렛타는 생각에 잠긴다. 그녀는 "아, 그이였던가"(Ah, fors'è lui)를 노래하며 자신의 인생이 공허한 향락을 쫓았을 뿐 참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고 되뇐다. 그녀는 잠깐 알프레도가 사랑을 고백할 때에 느낀 기쁨을 생각해 본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을 쫓아내듯이 화려한 노래로 자신의 삶의 모토를 강조한다: "언제나 자유롭게"(Sempre libera). 이 화려한 콜로라투라의 노래가 진행되면서 멀리서 들리는 알프레도의 '사랑의 테마'가 들려 온다. 비올렛타의 목소리는 알프레도의 목소리를 화려하게 압도한다.
제2막 빠리 근교의 집.
비올렛타와 알프레도가 행복하게 함께 사는 집. 알프레도는 "그녀를 멀리 떠나서는 내 마음에 행복 없네"(Lunge da lei per me non v'ha diletto!)를 노래한다. 하지만 이 분위기는 하녀 안니나가 들어오면서 깨진다. 하녀는 생활비 때문에 비올렛타가 재산을 처분했다는 말을 한다. 알프레도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한다: "난 비겁해" (O mio rimorso!)를 부른다(이 노래는 요즈음의 공연에서는 잘리는 일이 흔하다). 그는 돈을 마련하려고 빠리로 떠난다.
비올렛타는 알프레도가 갑작스런 빠리 행을 이상하게 여긴다. 이 때 하인 지우셉페가 들어와 어떤 신사가 곧 방문하리라는 쪽지를 전한다.
조르지오 제르몽이 들어와 비올렛타에게 자신이 알프레도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그는 비올렛타가 아들의 돈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귀중품을 팔아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제르몽은 비올렛타에게 사정한다. 결혼을 앞둔 딸이 있는데 당신과 알프레도가 동거한다는 소문에 딸의 약혼이 파기 당할 지경에 처해 있으니 딸을 위해 희생을 감수해 달라고 말한다: "천사같이 순수한 아이"(Pura siccome un angelo)".
비올렛타는 처음에는 거절하다가 제르몽의 간곡한 부탁에 마지못해 승낙한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의 품성에 감동한다. 둘은 포옹을 나눈 후 눈물을 흘리며 헤어진다.
제르몽이 떠난 후 비올렛타는 알프레도에게 이별의 편지를 쓴다. 바로 그 때 알프레도가 돌아온다. 그녀는 사랑해 달라고 격렬히 애원한다. 그리고 그녀는 떠난다. 알프레도는 비올렛타가 떠난 후 하인이 전해 주는 그녀의 편지를 보고서야 사태를 파악한다. 절망에 빠져 있는 그에게 아버지가 다가와 그를 달랜다: "프로벤차 고향의 하늘과 땅을 너는 기억하니?"(Di Provenza il mar, il suol)". 하지만 알프레도는 그녀가 자기를 배신하고 듀폴 남작에게로 갔으리라고 오해한다. 그는 아버지의 만류를 뿌리치고 복수를 외친다.
플로라의 집. 화려한 파티가 열린다. 집시들이 점을 치며 춤추며 노래한다.
알프레도가 갑자기 사람들 사이로 뛰쳐나온다. 듀폴의 팔에 의지해 방에 들어온 비올렛타는 알프레도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하지만 듀폴은 도발적이다. 그는 알프레도에게 카드 승부를 신청한다. 듀폴은 알프레도에게 번번이 패하여 큰돈을 잃는다. 두 사람이 카드놀이를 하는 사이 사람들은 식사를 위해 방을 떠난다.
비올렛타는 그들이 부딪칠까 봐 알프레도에게 떠나 줄 것을 간청한다. 간신히 참고 있던 알프레도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단 그녀는 자기와 같이 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건다. 비올렛타는 이를 거절한다. 알프레도는 그녀에게 듀폴을 사랑하느냐고 다그친다. 그녀는 듀폴을 사랑한다고 마음에 없는 대답을 한다. 비올렛타의 말에 격분한 알프레도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네게 진 빚을 모두 갚는다면서 도박으로 딴 돈을 그녀에게 집어던진다.
충격 속에 있는 사람들 사이로 제르몽이 들어선다. 듀폴은 장갑을 벗어 던져서 알프레도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제르몽은 아들을 엄히 꾸짖는다. 비올렛타는 거의 실신상태에 빠져 있다. 알프레도는 후회하며 괴로워한다. 제르몽은 아들을 데리고 나간다. 비올렛타가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그 곳을 빠져나간다.
제3막 비올렛타의 침실.
초라한 비올렛타의 거처. 그녀가 병들어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의사가 그녀의 병세를 살핀 후 하녀에게 그녀가 머지 않아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떠난다.
축제의 날. 비올렛타가 잠에서 깬 후 안니나에게 창문을 열어 달라고 한다. 그녀는 전 재산의 반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안니나에게 부탁한다. 안니나가 나간 후 비올렛타는 제르몽의 편지를 꺼내어 읽는다. 그 편지에는 제르몽이 모든 사실들을 알프레도에게 알렸다는 것과 알프레도가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러 갈 것이란 얘기가 써 있다. 그녀는 거울에 얼굴을 비춰 본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음을 노래한다: "지난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
안니나가 급히 뛰어 들어오면서 알프레도가 왔음을 알린다. 비올렛타는 기운을 차리고 그의 품에 안긴다. 둘은 빠리를 떠나 함께 행복하게 살자고 노래한다: "사랑하는 이여 빠리를 떠나서"(Parigi, o cara). 간신히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알프레도와 함께 밖으로 나가려다가 힘없이 쓰러진다. 제르몽과 의사가 도착한다. 그녀는 힘이 거의 소진된 상태다. 비올렛타는 죽어 가면서 자기의 초상화를 알프레도에게 주며 앞으로 결혼할 아내에게 이 초상화를 보여주며 하늘에 있는 천사가 행복을 빈다는 말을 전해 달라고 말한다. '사랑의 테마'가 점점 더 가늘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환희의 외침과 함께 그녀는 세상을 떠난다.
등록일자: 2003-08-30
홍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