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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그레고리오 성가 [Gregorian chant, Gregorianishcer Choral, cantus gregori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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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오 성가(라. cantus gregorianus, 이. canto gregoriano, 영. Gregorian chant, 도.Gregorianishcer Choral, 독일어에서는 단순히 Choral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설명1>

-그레고리오 성가는 중세 이후 지금까지 카톨릭 교회에서 불리는, 단선율로 불리는 노래이다. 이 노래는 독창이나 제창으로만 불린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명칭은 이 성가들을 수집하고 정리한 공이 있는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604)의 이름을 붙여 만든 것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대개 한 옥타브 이내의 음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리듬 기록을 하지 못하는 네우마(Neuma)악보의 영향으로 각각의 음들이 거의 동일한 음가를 가지지만, 음가가 상대적으로 길고 짧아지는 것은 가사와 그 억양에 따른다. 예를 들어 프레이즈의 끝음은 다른 음들보다 길게 노래되고, 강조하는 말의 시간은 더 늘여진다. 마디박절이 전혀 없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불리는 방식에 따라 세가지로 나뉜다. ①독창적: 사제나 선창자가 독창으로 부름, ②응답송적(應答頌的 responsoriale): 독창과 합창의 교대, ③대창송적(對唱頌的 antiphonale): 두 합창의 교대.
-그레고리오 성가는 노래의 형태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①낭송식(Accentus): 낭송적인 부분이 많은 음악으로서, 낭송을 위해 주로 많이 사용되는 한 음(낭송음, tenor)과 거기에 결부된 장식적 선율로 구성된다. ②노래식(Concentus): 낭송식에서와 같은 낭송음의 주도적 역할이 없고, 여러 음이 비교적 고르게 사용된다. 이 양식을 다시 셋으로 나누어, 음절적 노래( Sillabic ,한 음에 한 음절씩 붙는다.), 성긴 음절 노래(Pneumatic, 한 음절에 몇 음들이 붙는다), 드문 음절 노래(Melismatic, 한 음을 많은 음으로 장식한다)로 구분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이론적 바탕은 교회선법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카톨릭의 예배의식에 따른 두 가지의 책에 수록되어 있다. ① 그라두알레 로마눔(Graduale Romanum, 미사의 성가들을 수록), ②안티포날레 로마눔(Antiphonale Romanum, 성무일도(=성무일과)의 성가들을 수록).
-합창이나 독창자들에 의해 연주되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전례용 단성부 노래로서 라틴어로 쓰여졌으며 미사나 성무일도(성무일과, 기도회)에서 사용된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그 사용처나 연주형식에 따라 기도송(Oration), 봉독송(Lektion), 대창송(Antiphon), 응답송(Responsorium), 찬미가(Hymnus), 부속가(Sequencia) 등으로 구분된다. 그레고리오 성가란 이름은 교황 그레고리오에 의해 약 600년 경에 이루어졌던 전례의 개정이 명칭사용의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직 확실치 않은 것은 이 개정된 전례가 현재에 통용되는 고레고리오 성가를 또는 그 이전의 구로마 성가를 의미하는 지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9세기 중엽에 교회에 수용되어 일반화되어 당시까지 존재하던 갈리아 성가나 모짜라비아 성가의 전통을 통합시킨다. 단지 암브로시오 성가의 전통은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다. 
-현존하는 그레고리오 성가의 레파토리는 통일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며 근래까지  이르는 새로운 작곡들에 의해 보충된 것이다. 새로운 작품들에서는 멜로디들이 원래의 모델형식을 거부하고 그때그때의 시대별 음악양식의 영향을 받는다. 단지 기본 틀에 묶여 있는 시편창법의 낭송형식과 교회선법적 기본은 예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들의 멜로디 기록은 9세기에서야 시작된다. 성가의 가사들은 초기에 (선이 없는) '네우마'라 칭해지는 기보로 표기되어 있어 가사 음절당 하나나 여러 음들이 묶여 대략적으로 멜로디 방향만을 나타낼 수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음높이는 3도 간격을 유지하는 선 시스템의 도입에 의해 정확히 지정된다. 성가의 연주에서 음들은 리듬적으로 거의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그레고리오 성가는 '칸투스 멘수라빌리스'(cantus mensuralibis, 음 길이를 '잴 수 있는 다성부 음악')에 대조되는 '칸투스 플라누스'(cantus planus, '평탄한 노래')란 명칭을 얻게 된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레파토리는 로마식 사각기보나 고딕식 말굽쇠 기보로 쓰여진 수천개의 필사본과 이후의 출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첫번째 개혁작업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인본주의자들의 영향으로 언어와 음의 새로운 관계가 요구되어, 기존의 성가가 심하게 변형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러한 개정작업은 1614/1615년에 출판된 『Editio Medecaea』에서 나타난다. 여기에는 이태리 작곡가인 아네리오(F. Anerio)와 소리아노(F. Soriano)가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출판본은 이후 19세기 프랑스 솔 렘수도원의 베네딕트 수도사들이 이전의 중세의 전통을 다시 찾아 편집한 성가집인 『그라두알레』(Graduale 1883)와 『안티포나』(Antiphonar 1891)를 내놓을 때까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다. 솔렘에서 시작된 옛 성가전통의 재건은 1903년 교황 비오 10세(*1835, +1914)의 교서 'Motu proprio'(뜻: "자발적으로", 교서의 첫 글자에서 딴 것임)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는다. 이들의 성가집은 현재까지 전 로마 카톨릭 교회에서 기준이 되는 성가집인 『Editio vaticana』(특히 Kyriale, 1905, Graduale, 1908, Antiphonar, 1912)로 이어진다. 하지만 시토 교단이나 도미니크, 프레몽트레, 그리고 암브로시오 전통을 따르는 수도원에는 아직도 전승된 독자적인 성가들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1965년에는 제2바티칸공의회가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전례로 재확인하는 동시에 다른 교회음악과 전례에서의 자국어 사용을 허용함에 따라 그레고리오 성가는 사용자체에서 커다란 제한을 받게 된다.

등록일자: 2005-03-03
나진규


<설명2>
  
(1). 그레고리오 성가는 가톨릭 전례의식(미사와 성무일도)에서 사용되는 무반주 라틴어 단성성가를 일컫는 용어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칸투스 플라누스’(라.cantus planus: 단순한 노래)라 불린 경우도 있다. 이 용어는 가사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따르는 단성부 형태의 성가로서 -13세기경 리듬이 표기되는 다성음악 ‘칸투스 피구라투스’(라.cantus figuratus: 화려한 노래)와 비교되어- 사용되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레퍼토리는 3천 개 이상이며, 시편창과 찬가창 그리고 이것들에서 발전된 성가들, 시편 가사 외의 성서 가사로 된 성가들, 그리고 몇몇 지방에서 불렸던 독특한 가사의 성가로서 가톨릭 의식에 흡수된 성가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성가들은 대체로 선율이 부드럽게 순차적으로 움직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라는 명칭은 ‘그레고리오 교황 1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즉, 7세기 초의 교황 그레고리오(제위 기간 590-604)가 성가의 통일 정책으로 가창 학교(라.Scola cantorum)를 세우고 여기서 훈련된 성가대를 여러 지역에 파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로마를 중심으로 한 라틴어 성가가 확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전통적 견해와는 다르게 그레고리오 교황이 거의 확실하게 그레고리오 2세라는 것 주장이 있다. 이 주장은 이 성가가 로마가 아닌 프랑크 왕국의 주도 아래 8-11세기경에 걸쳐 확립되었다는 되었다고 말한다. 크게 보아 그레고리오 성가의 발전 과정은 사실 거의 10세기에 걸쳐 있는 것으로서, 다양한 영향과 그에 따른 변화를 수용한 것이기도 하다. 

(2). 영향을 준 성가들

프랑크 왕국이 8세기 후반 - 9세기 초에 성가의 통일을 주도하기 이전에 이미 로마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성가들이 성장하고, 이후 그레고리오 성가의 정립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즉, 그레고리오 성가는 로마와 프랑크 왕국(갈리코 성가: Gallican Chant)뿐만이 아니고, 밀라노(암브로지오 성가: Ambrosian Chant), 스페인(모짜라비아 성가: Mozarabic Chant), 비잔틴제국(Byzantine Chant) 등지의 성가들도 일부 통합된 것이다. 특히 비잔틴 성가는 위에 언급한 성가들 모두에 대소간 영향을 미쳤는데, 그 영향은 직접적이거나 밀라노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수된 것이었다.   

-비잔틴 성가
비잔틴 성가는 그리스 정교의 음악을 말한다. 여기에서는 찬가창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그 종류도 많다. 그 가운데 ‘트로파리온’(troparion, 4-5세기), ‘콘타키온’(kontakion, 5-6세기), 그리고 특히 ‘카논’(kanon, 7세기 이후)이 중요하다. 트로파리온과 콘타키온은 시만 남아 있을 뿐 음악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형식적인 특징도 명확하지 않다. 다만 콘타키온은 시의 형식과 운율을 중시한 장절노래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카논은 -시편을 제외한- 성서에 실린 노래들(라.canticum) 9개의 노래로서 각각 다른 운율과 선율을 가졌으며, 음악적 요소가 중시된 것이다(7세기 후반부터 나타난다). 처음에는 단순했으나, 차차 선율이 길고 복잡해진다. 카논 작곡가 중의 하나인 다마스커스의 요한(John of Damascus, 700경-760경)는 비잔틴 8선법체계인 옥토에코스를 처음 도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 체계는 8주를 한 단위로 하여 한 주마다 돌아가며 선법을 바꾸어 노래한다. 그런데 이 선법은 음계가 아니라 선율 패턴(또는 모티브)을 말하며, 따라서 옥토에코스는 선율 패턴 모음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비잔틴 성가는 이 선율 패턴을 반복・변형시키며 진행되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서방의 거의 모든 성가들도, 특히 초기에는, 이런 특징을 포함한다.

-암브로지오 성가
암브로시오 성가는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지오에게서 유래한 상징적인 명칭이다(그가 성가들을 만들었다는 설에는 의문이 많다). 이 명칭은 8세기 이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비잔틴 성가의 경우처럼, 시편창보다는 자유로운 산문시의 찬가창이 많다. 밀라노는 4세기에는 서로마제국의 수도였고 6-8세기(568-744)에는 롬바르디아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서방과 동방의 문화가 혼합・경유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통일 정책 아래서도 오늘날까지 계승되어 밀라노와 스위스 남부 등지에서 불리고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암브로지오 성가의 기록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레고리오 성가와 동일한 가사와 유사한 선율을 가진 암브로지오 성가를 살펴보면, 선율이 훨씬 길고 유려하다. 다음은 그런 특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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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멜리스마적 선율을 보면, 짧은 선율적 패턴들이 반복・변주되며 진행되는 형태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짜라비아 성가
모짜라비아란 말은 아랍의 정복(711) 하에 있었던 스페인의 기독교인(Mozarbs)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아랍이 지배하기 이전의 성가들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비잔틴 성가 등의 영향을 받았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11세기(1071)에 가서야 모짜라비아 성가를 대체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톨레도(Toledo) 성당 등에는 전통적인 모짜라비아 전례가 행해지고 있다(노래는 드물다). 9-11세기의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으나, 해독은 현재 불가능한 상태다. 그 이후의 필사본들에 포함된 20여곡을 통해 음악양식을 유추할 수는 있으나, 시기적으로 넓게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 체계적인 연구를 하기는 어렵다. 

-로마 성가
로마 성가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구별하기 위해 ‘옛로마 성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 이유는 로마 성가들이 프랑크 왕국으로 전해져 통일 정책의 기조가 되기는 했으나, 성가의 기록이 프랑스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지역의 지엽적인 성가들도 일부 자연스럽게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 성가는 계속 구전으로 불리다가 기보법이 발명된 2세기쯤 후에야 기보가 시작되었는데, 이것도 그레고리오 성가와 차이점을 갖게 한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로마에서 불리던 성가(즉, 옛로마 성가)는 11세기경부터야 그레고리오 성가로 대체된다. 

-갈리코 성가
갈리코 지방(프랑스)의 옛 전례 성가로서, 로마의 성가가 도입되어 그레고리오 성가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이다. 즉, 일부 수도원의 의전서에 예외적으로 소량 포함되어 있는 정도이다. 부분적으로는 그레고리오 성가로도 통합되었다. 그 한 예로서 12세기경에 그레고리오 성가로 통합된 <꾸짖음>(Improperia[임프로페리아])을 들 수 있는데(수난절 성가), 다른 성가들에서는 보기 어려운 거창함과 화려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동방 특히 비잔틴 성가의 영향을 강하게 암시하기도 한다. 즉, 성가들이 그리스정교의 찬가들과 일련으로 묶인 형태이며, 선율 패턴의 반복과 변형 기법도 나타난다. 다음의 예는 그 성가의 제1부(전체 2부) 가운데 첫 부분인데, 두 명의 독창자와 이들이 포함된 두 그룹의 합창대가 참여한다(악보에서의 ‘V'는 성서의 시행을 의미). 

<꾸짖음>(수난절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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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악보에서, 다섯째 단 후반부터 제1합창단(갈색)과 제2합창단(보라색)이 교대로 3번에 걸쳐 (변형)반복하는 부분이 그리스 정교의 찬가이다(서간문을 읽기 전에 부르는 노래: Trisagion). 이 부분은 물론이고, 그 앞의 독창 부분(성서 가사)에서도 선율적 패턴의 반복이 눈이 띈다. 둘째 단의 선율이 넷째 단에서 두 번 (변형) 반복되어 있으며, 그 외에 돈꾸밈음의 앞 형태와 유사한 모티브(예를 들면, e-f-e-d)도 전체적으로 9번에 걸쳐 등장한다(변형과 전위형까지 합하면 더 많다). 

(3). 구조적 특징

-선율 양식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은 가사와의 관계에 의해 세 가지의 양식으로 나눠진다. 음절적(영.Syllabic) 유형은 가사의 한 음절이 한 음씩에 붙여져 있는 것이고, 성긴 음절적(영.Neumatic) 유형은 가사의 한 음절에 3~4음 정도씩 붙여져 있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멜리스마적(영.Melismatic) 유형은 가사의 한 음절에 5음 이상의 음이 붙여져 있는 것을 말한다. 이런 유형들은 한 성가의 독자적인 특징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혼합적으로 사용되어 있기도 하다. 

-선율 구성 방식
그레고리오 성가(특히 초기의 성가)의 가장 오래된 선율 구성 방식은, ‘센토니제이션'(Centonization: 짜집기)이라 불리기도 하는 것으로서, 미리 정해져 있는 짧은 모티브를 토대로 하여 이와 같거나 비슷한 선율적 형태들로 음악을 진행해가는 것이다. 특히 각 악구의 시작이나 끝 부분이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또한 동일한 선법의 곡들에 같은 모티브들이 지배적인 경우도 많다(이 기법과 비잔틴 선법과의 관계는 아래의 교회선법 부분 참조). 이 기법은 구전 선율 시대에 적합했던 기법으로서, 11-14세기에 걸쳐 기보법이 향상되면서 쇠퇴해간다(그러나 그레고리오 성가 확립 이후의 시기).  
그레고리오 성가와 옛로마 성가 가운데 가사가 같고 선율적 진행도 유사한 것을 서로 비교해 보면, 옛로마 성가에서 센토니제이션 기법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즉, 아래의 예에서, 옛로마 성가의 첫 단에 있는 모티브 ‘g'의 첫 다섯 음의 하행 진행(무지개 모양)은 둘째 단에서는 ’d'에, 셋째 단에서는 ‘b’에, 넷째 단에서는 ‘d'와 ’j'에 나타난다. 반면 그레고리오 성가에서는 그런 특징이 상대적으로 매우 미미하다.

옛로마 성가와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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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예를 보면, 옛로마 성가가 그레고리오 성가보다 훨씬 더 멜리스마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특징은 기보가 상대적으로 훨씬 늦게 이루어진 옛로마 성가가 그 기간 동안 선율적으로 더 발전될 수 있었던 때문으로 추정된다.

-교회선법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통일화 정책은 많은 성가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론을 필요로 했다. 기존의 시편조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9세기의 음악이론서들은 교회선법을 발전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당시 이론가들은 6세기 초의 음악이론가였던 보에티우스(Boethius, 480경-524경) 등에 의해 전수된 권위 있는 그리스의 음악이론을 바탕으로 출발하지만, 당시의 성가에 맞는 새로운 선법을 위해서는 과감한 수정이 불가피함을 인식한다. 이에 따라, 9세기 말의 훅크발드(Hucbald de St. Amand, 플랑드르, 850경-930)는 고대의 하행음계를 모델로 한 새로운 상행음계를 탄생시키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옥타브 음계의 구성요소인 4음음계들(테트라코드: tetrachord)의 음정패턴도 고대의 것과는 다르게 된다. 이 테트라코드들은, 고대 그리스선법처럼, 차차 둘 씩 결합되어 옥타브 유형을 갖추게 되는데, 부분적으로는 비잔틴의 계명창법에서 빌려온 음절들도 붙여져 있다.  
이렇게 새로운 음계 체계가 만들어진 이후에도, 성가들을 포괄할 수 있는 교회선법이론이 완전하게 확립되는 데는 약 2세기가 더 경과된다. 왜냐하면 이론은 고대 그리스에, 성가는  유대와 동방(특히 비잔틴 제국)에 기초를 둔 것이라서 다양한 측면들이 고려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교회선법이론의 초기 발전 단계부터 그리스보다는 오히려 비잔틴 제국의 선법을 더 고려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들도 있다. 초기 이론서들에 나타나는 그 증거들을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고대 선법의 개수는 7개로 전수된 반면, 교회 선법의 개수는 옥토에코스와 마찬가지로 8개이다.
  ②그리스선법에서 물려받게 되는 교회선법의 이름들이 아직 나타나 있지 않는 반면, 비잔틴의 옥토에코스의 경우처럼 서수로만 표기되어 있다. 
  ③선율의 시작음형이 선법적 분류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비잔틴 8선법은 음계 대신 각각 특정한 모티브 같은 형태로 되어 있다.
  ④정격과 변격이 짝을 이루며 같은 종지음을 갖고 있는데, 모두 비잔틴 선법의 특징이기도 하다(옥토에코스에서는 그 배열이 약간 달라, 1-4번이 정격, 5-8번이 변격이다). 

교회선법 발전의 마지막 단계는 시작유형 대신 종지음이 강조되고, 시편조의 낭송음이 교회선법 체계에 결합되면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렇게 확립된 선법 체계에 들어맞지 않는 성가들은 부분적으로 수정되기도 한다. 그레고리오 성가와 옛로마 성가가 일치하는 않는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에 이런 수정도 포함된다(옛로마 성가들은 선법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11세기에 확립된 교회선법 체계들의 특징들을 악보 예와 함께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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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고유한 번호와 그에 따른 라틴어 명칭을 갖고 있다.
②정격 4개와 변격 4개로 구성되어 있다. 
③같은 종지음(라.finalis)을 갖는 2개씩 정격과 변격의 쌍을 이룬다(짝수들이 변격: 옥토에코스의 경우에는 정격이 1-4, 변격이 5-8번이다).
④정격과 변격은 음역(라.ambitus)의 차이에 따라 구별된다(변격은 정격보다 선율의 음역이 종지음 아래로 4도까지 내려간다: ‘히포’란 아래라는 뜻). 따라서 변격에서는 종지음이 음계의 중간에 온다. 
⑤선율의 전체 음역은 정격선법의 경우에는 한 옥타브 정도, 변격은 5-6도 정도이다. 
⑥낭송음도 정격과 변격에 따라 다르다. 정격은 종지음의 5도음에 오고, 변격은 정격 낭송음의 3도 아래의 음에 온다(정격/변격에서 낭송음이 B음인 경우에는 C음으로 대체된다). 

-리듬
악보를 통해 리듬을 알아볼 수 있는 기보법은 12세기부터 서서히 발전된다. 따라서 그 이전에 이미 불렸던 단성 성가들이 어떤 리듬 형태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어 왔다. 그 견해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견해는 그 리듬이 똑같은 음가로 되어 있고 다만 가사의 악센트에 따라 강약이 변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박자가 없다).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한 가장 오래된 리듬 이론으로서 솔렘(Solesmes, 프랑스) 수도원의 뽀띠에 신부(Dom Pothier, 1835-1923)와 윌리 아펠(Willi Apel, 1893-1988) 등의 학자들이 주장한 것이다. 라틴어의 전형적인 언어적 특징을 선율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견해는 단성 성가의 리듬을 엄격한 2:1 비율의 장단(“길고 짧은”) 리듬으로 보는 것으로서, 앙트완느 드쉐브렝(Antoine Dechevrens, 1840-1912), 구스타브 리스(Gutave Reese, 1899-1977) 등이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세 견해 중에서 이것과 관련된 내용이 중세에 가장 많이 나타나 있는 편이다. 장단 리듬은 4세기에 이미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논의된 바 있으며, 9세기 무명씨의 이론서(『스콜리카 엔키리아디스』(라.Scolica enchiriadis, 9세기 말/900경: ? 참조)에도 성가 연주의 리듬적 측면을 다루는 부분에서 2:1의 비율에 대해 짧게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이 이론서의 경우는 설명이 애매하며 실제적 예도 없어 별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는 못하다. 11세기 후반의 이론가인 아리보(Aribo Scholasticus, 1068-78년 경 활동)도 장단 리듬의 존재를 암시는 하나 역시 체계적으로 음악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내용이다. 즉, 그의 『음악론』(De musica)에는 리듬이 음정의 폭에 비례한다고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온음-온음-반음이 길게-길게-짧게 연주되는 것을 말한다.
세번째 견해는 프랑스의 솔렘(Solesmes) 수도원에서 모끄로 신부(Dom Mocquereau, 1849-1930)를 비롯한 베네딕트파 수도승 등이 19세기 말에 새롭게 제시한 것으로 현재 가톨릭교회에 의해 공식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단성 성가의 리듬은 기본적으로 똑같은 음가를 갖지만 가사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2개 또는 3개의 음표로 그룹을 이룬다(단, 시행의 마지막 음절은 상대적으로 긴 음가를 갖는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리듬을 그 당시 흔히 춤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세속 음악에까지 적용할 수 있느냐는 의문은 아직도 그대로 남겨져 있는 상태이다. 

(4). 기보와 연주 관련 이론들

기도와 설교에 관한 중세시대의 기록은 4-5세기경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그레고리오 성가는 8세기 말의 프랑크 왕국에서 처음으로 기보되기 시작된다. 그것도 가사 위에 대략 선율의 방향만을 기호로 나타낸 것이므로 그 선율들을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만 보고 연주할 수 있는 제약이 있다. 네우마 기보법(Neumatic Notation)으로 불리는 이 기보법은 원래 언어의 억양을 나타내는 네우마(라.neuma: ‘기호’)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선율의 흐름을 손의 움직임으로 지시하는 전통적인 방법(케이로노미: 라.cheironomie)에 접목되어 8세기경부터 도식화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0세기경부터는 한 단계 더 발전된 네우마 기보법, 즉 고저 네우마(Heighted neuma) 또는 ‘다이어스테마틱’(영.Diastematic)이라고도 불리는 기보법을 보여준다. 이것은 음을 표시하는 기호들이 가사 위의 공간에 상대적인 높낮이도 다르게 기보된 것이다. 11세기경부터는 그 공간에 선이 하나 둘 그어짐으로써 정확한 음높이를 알 수 있는 보표도 차차 발전하게 되고, 12세기 후반-13세기에는 네우마들이 4각음표로 정착된다. 또한 기보 선 앞부분의 문자 f와 c는 낮은음자리표와 가온음자리표의 기원이 되는데, F선은 빨갛고 C선은 노랗게 채색되기도 한다. 이후의 중세의 보표로는 귀도(Guido d'Arezzo, Pomposa, 이태리, 991/992경-1033 이후)가 창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4선보가 선호되나 5선과 6선보도 다수 나타나고, 드물기는 하지만, 12선보가 쓰인 예도 있다.
네우마 기보법은 중세 초중기의 기보법을 대표하는 것이지만, 다른 체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문자기보법’이 그것인데, 주로 교육용 이론서나 이와 관련된 성가의 기보에서 나타나는 정도이기는 하나, 네우마 기보법과 결합하여 효과적으로 쓰인 예도 있다. 네무마 기보법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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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자: 2007-05-30
김미옥</h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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