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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헬벨, 요한 [Pachelbel, Joh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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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파헬벨, 요한(Pachelbel, Johann, 1653-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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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3년 9월 1일 뉘른베르크(Nürnberg)에서 출생.

- 뉘른베르크 성 로렌츠(St. Lorenz) 고등학교에서 작곡, 연주 등 음악수업을 받음.

- 1669년 알트도르프(Altdorf) 대학에서 3학기 동안 수학 후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기독교 재단 문인 학교(Gymnasium Poeticum)에서 수학함.

- 1673년 비엔나의 슈테판 대성당(St. Stephan Kathedral) 제2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함.

- 1677년 아이제나흐(Eisenach) 궁정 오르가니스트로 취임함.

- 1678년 에르푸르트(Erfurt) 프레디거(Prediger)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받음.

- 1681년 바바라 가블러(B. Gabler)와 결혼, 부인은 2년 후 아들과 함께 사망함.

- 1684년 유디트 드롬머(J. Drommer)와 재혼, 5남 2녀의 자녀를 둠.

- 1690년 슈트트가르트(Stuttgart) 영지 내의 뷔템베르크(Württemberg) 궁정 오르가니스트를 역임.

- 1692년 고타(Gotha) 오르가니스트를 역임. - 1695년 뉘른베르크 제발트(St. Sebald)교회 오르가니스트로 초청받음.

- 1706년 3월 9일 사망.


파헬벨은 바로크 시대에 살았던 독일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였다. 그는 활발한 오르간 연주가로서의 활동 가운데서도 모든 분야에 걸친 다작 작곡가로 유명하다. 파헬벨의 오르간, 하프시코드 등을 위한 건반악기 작품은 꾸준히 연주되고 인정받아 왔다. 교회 오르가니스트로서 오르간 코랄과 같은 예배를 위한 작품을 작곡하면서 다양한 비전례적 음악의 개발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17세기 후반의 연주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는 실내악곡들은 매우 생기가 넘치고 서정적이다. 최근 크룸마커(Krummacher)의 연구에 따르면 성악작품도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파헬벨의 작품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파헬벨 작품연구에 대한 비판적인 방법론이 2004년에야 제시되었고 아직 전 작품목록도 부분적으로만 정리된 상태이므로, 그의 음악에 대한 연구는 계속적으로 보충될 것이다.

파헬벨은 뉘른베르크에서 청년기를 보내면서 전통에 따라 루터교식의 코랄이 중심이 되는, 남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음악을 배웠다.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파헬벨은 과외로 뮌헨의 궁정악장 케를(J. K. Kerll)의 제자 프렌츠(K. Prentz)에게 음악수업을 받도록 허락받았는데, 아마도 그가 파헬벨을 이탈리아 음악에 관심 갖도록 이끌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빈에서 활동하는 동안 남부독일과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중부독일의 오르간 음악에 영향을 끼친 북스테후데(D. Buxtehude)와는 에르푸르트 시절 음악적 친분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예배를 위한 작품 중 오르간 코랄은 파헬벨의 대표적 장르 중 하나이다. 그는 전통적인 지식과 자신의 기법을 융합해서 많은 코랄을 작곡하였다. ≪8개의 코랄 전주곡≫(Acht Choräle zum Pareambulieren, 1693/1670)은 다양한 양식을 보여준다. 세 곡은 16세기 스타일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Jesus Christus, unser Heiland, der von uns)는 고정선율이 두 성부에서 진행하는 비치니움(bicinium)으로, <우리는 한분 하나님을 믿습니다>(Wir glauben all’an einen Gott)는 선율 장식으로,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네>(Nun lob, mein’ Seel’, den Herren)는 고정선율이 테노르에 놓여있게 작곡하였다. 다른 곡들은 옛 양식과 17세기 당대의 스타일을 함께 사용하였다. 고정선율이 모든 성부에 오는 3성부의 곡들과 고정선율이 소프라노에 놓이는 4성부 곡으로 파헬벨이 코랄을 어떻게 편곡했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 스타일을 모범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헬벨의 또 다른 예배음악으로는 98곡의 ≪마그니피카트-푸가≫(Magnificat-Fugen)를 들 수 있다. 뉘른베르크 제발트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저녁기도 베스퍼(Vesper)를 위해 지은 후기작품이다. 그는 선임자 킨더만(Kindermann)의 ≪오르간 화성≫(Harmonia organica, 1648)의 화성적이고 대위법적인 인토나치오(Intonatio) 스타일을 따랐지만, 주제는 훨씬 자유스럽게 다루었으며 푸가들의 규모, 형식, 대위적 기법, 동기와 화성적 요소들은 파헬벨의 뛰어난 작곡기법으로 엮어져서 바흐에 이르기까지 가장 크고 가장 다양한 모음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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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헬벨은 예배용 음악 외에도 토카타, 프렐류드, 리체르카레, 판타지, 푸가, 샤콘느 등 비전례적 오르간 음악도 다양하게 작곡하였다. 초기에는 프로베르거(Froberger)의 엄격한 토카타 스타일에 따라 작곡한 짧은 프렐류드 모음집은 오르간 즉흥연주 교육을 위해 작곡되었는데, 여기에 짧은 푸가가 따르기도 한다. 교육적 목적을 벗어나면서 큰 규모의 토카타와 푸가가 작곡된다. 토카타는 페달 독주에서 북독일의 모델을 연상케 하지만 대부분 이탈리아 오르간토카타의 영향이 보이며, 푸가는 생동감 있고 반복되는 음의 건반악기적 주제로 되어있거나 주제의 역행이나 다른 대위법적 기법으로 된 느린 진행의 리체르카레 풍이다.

4박을 기본으로 하는 오스티나토 곡 중 ≪d단조 샤콘느≫(Ciaccona in d)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페달 사용을 요구한다. 이 곡은 북스테후데의 오스티나토 오르간 작품, 바흐의 ≪파사칼리아≫(Passacaglia and fuga in c minor, BWV 582)와 더불어 오스티나토 기법을 오르간에 매우 적합하게 만든 초기작품에 속한다.

오르간 외의 건반악기를 위한 비전례적 음악의 예로 ≪죽음에 관한 음악적 생각들≫(Musicalische Sterbens-Gedancken, 1683)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첫 부인이 결혼 2년 만에 아들을 출산하며 죽은 후 개인적 위기를 넘기며 출판된 코랄변주곡으로 4성부 코랄과 쳄발로를 위한 모음집이다. 변주곡들은 처음에 호모포니로 시작하다 변주되거나 축소되는 단순한 양식으로 되어있다. 이보다 훨씬 변화무쌍한 작곡기법을 보이는 코랄변주곡의 다른 예로 ≪아폴론 헥사코드≫(Hexachordum Apollinis, 1699)를 들 수 있다. 6개의 아리아와 변주곡으로 된 이 모음집은 파헬벨이 리히터(F. T. Richter)와 북스테후데에게 헌정한 곡이다. 파헬벨은 표지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오르간과 쳄발로 스타일을 비슷하게 다루고 있다(아래는 그 첫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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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 모음곡, 변주곡 등의 건반악기를 위한 음악 중 21개의 ≪쳄발로 모음곡≫(Cembalosuiten)은 17개의 다른 조성으로 되어 있어서 바흐의 ≪평균율≫곡집과 같은 건반음악의 초기 형태로 보인다.

기악적 실내악곡은 겨우 몇 곡만이 남아있다. 그 중 6개의 트리오소나타 모음곡집인 ≪음악을 즐기다≫(Musicalische Ergötzungen, 1695)에서 두 대의 솔로 바이올린은 모두 스코르다투라(scordatura)로 특별하게 조율되어야 한다. 테크닉과 대위법의 조화를 이루는 대표작품으로는 세 대의 바이올린과 계속저음을 위한 ≪카논≫(Canon)이 있다. 이 곡은 바로 이어지는 ≪지그≫(Gigue)와 함께 높은 거의 대중음악과 같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기악곡에 나타난 파헬벨의 화성은 3화음에 국한되며 불협화음은 자유롭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화성진행은 소박하지만 명료하면서도 부드럽다. 따뜻하고 친근한 화성은 서정적 선율선과 어울려 파헬벨 음악의 핵심을 이룬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가볍지 않은데, 이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프렐류드와 푸가, 그리고 코랄 변주가 갖는 음악적 깊이 때문이다. 파헬벨은 분명한 박자와 음형이 드러나는 작풍을 오르간에 매우 적합한 방식으로 작곡하였다.

그가 선호했던 단순하고 명료한 작곡스타일은 심혈을 기울인 성악곡에도 잘 드러난다. 약 70여곡의 성악곡들은 파헬벨의 작품세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수의 아리아들, 바흐 가문에서 선호되었던 전통 형식의 이중합창 모테트, 다양한 편성의 교회 콘체르토와 마그니피카트에서는 파헬벨이 전통적인 교회 스타일 뿐 아니라 감성적인 이탈리아 교회음악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바흐처럼 텍스트를 강조하는 음형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아리아들은 대부분 결혼이나, 생일, 세례, 장례를 위해 작곡되었다. 변화무쌍하게 멜리스마적으로 진행되어 대위법적인 면모가 풍부하게 보이지만, 명료하고 단순한 화성위에서 진행된다. 파헬벨의 ‘기능화성적 대위법’은 바흐의 선구자였음을 보여준다. 11곡의 모테트들은 모두 파헬벨의 성숙한 작곡기법이 드러나는 작품들로, 형식은 전통적이지만, 당시로서는 진보적이고 현대적인 음향을 사용하였으며, 멜리스마가 나올 때마다 3화음으로 분명한 화성과 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정선율이 베이스에 나오는 교회 콘체르토 ≪그리스도는 무덤에 계셨으나≫(Christ lag in Todesbanden)는 7절 가사를 모두 사용하고 있다. 1, 3, 5악장은 코랄 선율을 사용하고, 2악장과 6악장은 작은 규모의 콘체르토 부분이다. 테너 솔로로 시작하는 4번 곡은 격앙양식(stile concitato)으로 두 개의 악기를 위한 리토르넬로이다. 마지막 절은 호모포니의 화성 위에 대위법적 모방이 함께하는 화려한 곡이다. 이 곡은 같은 제목의 바흐의 칸타타(BWV4)와 매우 유사하다.

파헬벨은 전통적인 양식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동시대의 경향을 따르는 가운데 그 자신의 작곡기법으로 오르간과 성악곡에서 다음 세대의 작곡가, 특히 바흐에게 영향을 끼쳤다. 전반적으로 보아 그의 작품은 선율적이면서 화려한 이탈리아 풍과 고정선율에 기초한 대위법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독일 풍의 결합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참고문헌


Belotti, Michael. “Pachelbel.”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2. Ed.), Vol. 12, Sp. 1506-1515.

Eggebrecht, Hans Heinrich. “Johann Pachelbel als Vokalkomponist.” AfMw 11 (1954), pp. 120-145.

Krummacher, Friedshelm. Die Überlieferung der Choralbearbeitungen in der frühen evangelischen Kantaten. Berlin, 1966.

_________. “Kantate und Konzert im Werk Johann Pachelbels.” Mf 20 (1967), pp. 365-392.

Nolte, Edwald von. The Instrumental Works of Johann Pachelbel. Diss. Northwestern University, 1954.

Perreault, Jean M. The Thematic Catalogue of the Musical Works of Johann Pachelbel. Scarecrow, 2004.

Seedorf, Thomas. “Pachelbel, Johann.” Metzler Komponisten Lexikon, Stuttgart, 1992, pp. 439-440.

Welter, Kathryn Jane. Johann Pachelbel: Organist, Teacher, Composer. A Critical Reexamination of His Life, Works and Historial Significance. Diss. Harvard University, 1988.


등록일자: 201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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