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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페터 프란츠 [Schubert, Peter F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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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국음악연구소

등록일자 : 초기자료


슈베르트 페터 프란츠 [Schubert, Peter Franz]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 1. 31. 리히텐슈탈-1828, 11. 19. 1828. 비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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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의 리히텐슈탈(Lichtenthal)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의 12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에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 교육을 받았다. 일찍 두각을 나타낸 그의 음악적 재능은 그의 음악교사였던 홀쳐(Michael Holzer)가 11세 된 슈베르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노라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1808년 그는 궁정 교회의 소년 성가대원으로 입단한다. 입단 후 그는 작곡에 깊이 빠진다. 그는 작곡에 치우친 나머지 지도신부들과도 충돌을 일으켰고, 급기야는 아버지로부터 작곡 금지령을 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는 학교 오케스트라를 위한 심포니를 작곡하여 학우들과 궁정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는 루치츠카(Ruzicka)와 살리에리(Salieri)로부터 음악교육을 받기도 했다. 살리에리는 슈베르트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를 이태리 오페라에 능한 작곡가로 만들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이태리 성악과는 담을 쌓고 독일어 노래에 전념했다. 그는 이미 17세였던 1814년에 『물레 잦는 그레첸』을, 그리고 그 다음해엔 1815년에 『마왕』과 같은 걸작 가곡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이 노래들은 음악사에서 낭만주의의 시발점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이 시기에 그는 무려 250여곡의 가곡을 두 해에 걸쳐 작곡했다(1815-16).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 무대를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는 교사였던 아버지의 보조교사로서 1813년부터 1817년까지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 일을 포기하고 자유스런 예술가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여름에 헝가리에 있는 에스테르하지(Esterhazy) 백작의 집에서 음악교사의 일을 하기도 했다. 31세로 죽은 그의 짧은 생애는 매우 많은 작품들을 후세에 남겼다. 그는 600여곡에 이르는 수많은 가곡들과 『미완성 교향곡』으로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가곡들은 괴테, 하이네, 뮬러 등의 시에 곡을 붙인 것들이었다. 슈베르트 음악의 중심 장르는 가곡이었다. 그는 이 가곡의 도움으로 비엔나 고전의 모델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작곡기법을 극복한다. 그의 가곡은 가사의 감정성을 이용하여 고전주의적 형식성을 극복하고 모호한 낭만적 음악을 개발한다. 가곡은 슈베르트 당시만 해도 비교적 예술적인 가공이 별로 되지 않는 단순한 종류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슈베르트는 이 가곡의 위치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기악곡에서까지도 가곡이 울리게 했다. 『송어 5중주』나 피아노를 위한 『방랑자 판타지』 현악 사중주를 위한 『죽음과 소녀』 등이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또한 그의 성격소곡들(음악의 순간, 앙프롱튀 등) 역시 피아노를 위한 가곡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성악적이다. 그의 교향곡에서도 테마 선율들이 가곡적 성격을 갖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가곡이 "예술"가곡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피아노 반주의 역할이 극히 중요해진 바에 따를 것이다. 그의 가곡은 노래와 피아노의 2중주라 불릴 수 있을 정도로 피아노의 역할이 증대한다. 그의 가곡에서 피아노는 곡의 내용을 묘사한다. 예를 들어 『마왕』에서 말발굽 소리를 연상시키는 왼손 반주라든지, 『보리수』에서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묘사하는 것, 『물레 잣는 그레첸』의 물레 돌아가는 소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밤과 꿈』처럼 가사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렇게 그는 가곡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곡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곡에는 민요식의 단순한 장절음악으로부터 가사의 뜻을 적절하게 반영시키는 방식의 음악까지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 단순 장절 가곡 : 1,2,3절식으로 된 노래(예: 들장미)

- 변형 장절 가곡 : 선율과 반주가 일정한 절에서 변한다.(예: 송어)

- 일관 작곡 가곡 : 절의 형식성이 가사의 내용 때문에 불가능하게 된다.(예: 또 다른 나Doppelgaenger)

그는 여러 개의 가곡을 하나의 통일체로 만드는 연가곡을 만들기도 했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öne Müllerin, 1823), 『겨울 나그네』(Winterreise, 1827), 『백조의 노래』(Schwanengesang, 1828)가 그것이다.

슈베르트는 당시에 알려진 모든 장르의 피아노 음악을 작곡했다. 성격소곡들은 그의 가곡작품들과 유사하다: 알붐브라트, 디베르티스망, 판타지, 푸가, 음악의 순간, 앙프롱튀, 스케르쪼 등등. 그러나 비중있는 작품들은 그의 16개의 소나타이다. 슈베르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대하면서 늘 열등감을 느끼곤 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피아노 소나타에 도전하였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선율이 전면에 드러나고 분위기를 살리는 음향을 중심으로 작곡된다. 그리고 변주적인 요소가 곡을 만들어 가는 중심역할을 하게 하였다.

슈베르트의 독일어 미사곡들은 그의 가곡처럼 민요적인 단순한 곡들이었다. 그는 6개의 라틴어 통상미사를 작곡했는데, 그중 마지막 두 개의 작품(As장조, Es장조)은 그의 예술적인 능력을 잘 보여준다.

슈베르트는 7개의 완벽한 심포니와 6개의 쓰다 만 심포니들을 남겼다.

쓰다 만 심포니 (단지 30 마디, 1811)

심포니 Nr. 1 D-Dur (D 82, 1813)

심포니 Nr. 2 B-Dur (D 125, 1814/15)

심포니 Nr. 3 D-Dur (D 200, 1815)

심포니 Nr. 4 c-Moll, ("비극", D 417, 1816)

심포니 Nr. 5 B-Dur (D 485, 1816)

심포니 Nr. 6 C-Dur (D 589, 1817/18)

쓰다 만 심포니 D-Dur (D 615, 1818)

쓰다 만 심포니 D-Dur (D 708A, 1821)

쓰다 만 심포니 E-Dur (D 729, 1821)

심포니 h-Moll, ("미완성", D 759, 1822)

심포니 C-Dur, ("큰 심포니", D 944, 1825)

심포니 스케치 D-Dur (1828)

초기 6개의 심포니들은 슈베르트가 가장 왕성한 작곡활동을 벌였을 때의 것이다. 처음 6곡은 하이든 모차르트의 모델을 따랐다. 1820년경은 슈베르트가 여러 가지로 위기에 빠진 시기이다. 하지만 이 때에 나온 미완성과 큰 심포니는 새롭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미완성교향곡은 단지 2개 악장만이 남아 있다. 이 곡에서 성악적 테마는 출구가 없는 선율로서 그칠 줄 모르고 회전하다가 갑작스럽게 멈추어버리고 긴 침묵 후에 어두운 단조의 ff총주 소리가 불길하게 울린다. 이는 고전적 심포니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슈베르트의 심포니에 붙은 번호는 그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브람스에 의한 것이다. 브람스는 완결된 모든 심포니를 순서대로 적어놓고 번호를 붙였기 때문에 C장조 심포니가 7번이 되었고, 미완성 교향곡은 부록으로 처리하여 8번의 번호를 받든다. 하지만 이는 순서가 뒤집힌 것이다.)

슈베르트의 모든 심포니들은 그의 생전에 공개적인 연주회에서 연주된 적이 없었다. 초기의 곡들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되었고, 사적인 모임에서 연주된 후 잊혀지고 말았다. "큰 심포니"는 그의 사후에 슈만에 의해 발견되어 1839년 멘델스존에 의해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연주되었다. 미완성교향곡은 작품이 작곡된지 40년 후인 1865년 비엔나에서 공식적으로 연주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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