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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보니에르, 자크 [Chambonnières, Jacq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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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샹보니에르, 자크(Chambonnières, Jacques, 1602경-1672) - 1602년경 프랑스의 파리(Paris) 또는 샹보니에르(Chambonnières)에서 태어나, 청소년기의 일부는 파리에서, 일부는 샹보니에르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됨. - 아버지에게서 첫 음악교육을 받음. 그 외에도 파리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들과 카펠마이스터들에게서 배웠을 가능성이 큼. - 1640년경 아버지 자크 샹피옹(Jacques Champion)의 후임으로 왕의 궁정에서 클라브생 주자가 됨. - 1652년 법원직원의 딸인 페레(M. Ferret)와 결혼함. - 1654년 스웨덴의 여왕 크리스티나(Christina)에게서 일하고자 시도하였으나 실패함. - 1664년 당글베르(d’Anglebert)가 그의 클라브생 주자 직책을 넘겨받은 것으로 보임. -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음. 샹보니에르는 궁정의 귀족들에게서 부러움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매우 뛰어난 클라브생 주자였으며, 흔히 프랑스 클라비새니스트 그룹의 창시자로 간주된다. 카베존(A. d. Cabézon)과 영국의 버지날리스트(Virginalist)들의 작품들로부터 영향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이미 1640년 전에 필사본으로 널리 유포되었으며, 1670년에는 샹보니에르 자신에 의해 두 권으로 출판되었다(≪Pieces de clavessin≫). 그는 17C말의 위대한 프랑스 클라브생 연주자들의 선생이기도 하였는데, 예를 들어 당글베르(D’Anglebert)와 쿠프랭(L. Couperin), 베그(Bègue), 샹베르(Chambert), 아르델(Hardel), 니베르(Nivers) 등이 이에 속한다. 그는 네덜란드와 영국, 스웨덴, 독일과 같은 외국에서도 대단히 유명했다. 그리고 그의 독특한 개인적인 양식은 몇몇 독일의 클라브생 주자들(예, 프로베르거)에게 부인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샹보니에르의 전체 작품들 가운데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예외 없이 클라브생 모음곡들이다. 모음곡 순서는 독일의 모음곡 순서와는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모음곡들이 출판된 방식의 순서가 그자신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살아있을 당시에는 개별 곡으로 통용되었기 때문이다. 개개의 춤곡유형들은 서로 간에 뚜렷이 구별되지 않아, 지그(Gigue)와 쿠랑트(Curante), 카나리(Canarie)는 빈번히 혼동될 정도이다. 작품들에는 표제가 거의 붙어 있지 않으며, 붙어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쓰여진 시기나 헌정 또는 단순한 인식표와 같은 것에 불과하다. 작곡기법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류트적 용법의 강한 영향과 조직적으로 사용된 대위법적인 가공(예, 지그의 두 번째 부분에 나타나는 전위형), 그리고 이후에 표준으로 작용하는 반음계적 이끔음들이다. 인쇄물들에서는 악곡의 유연함과 여유로운 명랑함이 기본 색채를 이루는데, 이러한 점은 진지한 악곡유형들인 사라방드나 알라망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샹보니에르와 초기 프랑스 클라비새니스트의 이러한 클라브생 예술은 그동안 프랑스 고유적인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영국의 버지날리스트나 스페인의 비우엘라(Vihuela) 음악, 또는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미지1> 샹보니에르의 크라브생 음악은 주로 3성부로 되어 있지만, 매우 탄력적으로 변한다. 위에서 보는 악보는 4성부에 가깝게 시작한다. 하지만 그 성부들 중에서도 선율을 이끄는 중심은 모방적인 두 성부이다. 즉 최상성부와 최하성부이다. 하지만 간혹 앨토 성부에 주선율의 일부가 사용된다. 이는 엄격한 성부구조가 아니라, 음악의 상황에 즉흥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긴 음들은 화성적 보완장치처럼 존재한다. 선율에는 많은 장식들이 달린다. 이런 성격은 프랑스 크라브새니스트들에게서 전형적인 것으로 남는다. 샹보니에르는 류트악곡들로부터 받은 영향은 류트악곡의 유사폴리포니적 선율진행을 쳄발로의 성부와 음향, 그리고 장식가능성과 결합하여 독특한 프랑스적인 클라브생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그러면서도 샹보니에르는 음악적인 도구들을 매우 절제해서 사용해, 종지부분들에서만 주로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대위법은 아직 음정적 대위법이었으며, 그에게서 매우 드물게 나타나는 전조들도 전적으로 가까운 조성에 한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조들이라도 대부분 갑작스럽게 행해져 당혹스런 효과를 일으키는 적이 많다. 대위법적으로 쓰여진 이러한 악곡들 외에도 민속적인 노래스타일과 시골적인 여유로움을 내포한 사라방드, 샤콘느, 그리고 볼타(Volta)와 같은 단순하면서도 선율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있다. 특히 그의 쿠랑트는 춤곡리듬과 그만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끝없이 이어지는 선율의 세련된 이중성으로 인해 이 장르의 걸작으로 간주된다. 전체적으로 그의 작품은 대단히 발랄한 청년적 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예술은 루이 쿠프랭(L. Couperin)을 통해 좀 더 진지한 음악으로 대체된다. 참고문헌 MGG(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I. II. Ausgabe.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1980, 2001. Reimann, A. Untersuchungen zur Formgeschichte der frz. Klaviersuite. Regensburg, 1940. Quittard, H. “Un claveciniste du 17e siècle. Jacques Champion de Chambonnières.” Tribune de St. Gervais Jg. VII, Nr. 1-5, Paris, 1901. Tessier, A. “La vie et l’oeuvre de Chambonnières.” Vorwort zur GA, Paris, 1925. 등록일자: 2010.1.18 [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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