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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노니 [Albinoni, Toma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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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노니(Tomaso Albinoni, 1671 베니스-1750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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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시대의 베니스 작곡가.  놀음카드를 생산자였던 부유한 아버지를 두었던 알비노니는 젊은 시절 경제적 걱정없이 음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죽은 해인 1708까지 알비노니는 자신을 정식 음악가로 칭하지 않고 “아마추어”(dilettante)라 했다. 1711년 이후에는 자신을 “바이올린 음악가”(Musico di violino)라 했다.
알비노니가 누구에게서 바이올린, 성악, 작곡을 배웠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레그렌치(G. Legrenzi)에게서 배웠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는 증명된 바 없다.  알비노니는 1694년 『팔미레니의 여왕 제노비아』(Zenobia, Regina de’ Palmireni)와 『삼성부 소나타』(sonata a tre, op.1)의 출판을 통해 본격적 작곡가로 이름을 드러낸다. 후자는 -코렐리와 스카를랏티 부자(아르칸젤로와 도메니코)의 후원자였던- 추기경 옷토보니(Pietro Ottoboni)에게 헌정되었다. 그는 두번째 출판물(Sinfonie e concerti op. 1700)을 만토바의 공작 페르디난도 카를로(Ferdinando Carlo)에게 헌정하면서 자신을 “하인”(Serbo)라 했으나, 이는 그의 밑에서 일한 것을 뜻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첫 오페라 공연 이후에는 베니스 이외의 지역에서도 오페라 공연이 있었다. 그는 플로렌스에서『그리셀다』(Griselda, 1702-03 시즌)를 공연한 후 두번 더 그곳에서 다른 오페라를 공연하였다.    
1705년 그는 베로나 출신의 가수 리몬디(Margherita Rimondi)와 결혼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다. 부인은 그의 오페라에서 노래를 하기도 했다: 『관대한 라이벌』(I rivali generosi, 1715). 1720년 그녀는 뮌헨에서 공연된 토리(P. Torri)의 오페라 『루치오 베로』(Lucio Vero)에서 한 역을 맡기도 했다. 1722년 알비노니의 두개의 오페라『진정한 친구』(I veri amici)와 『사랑의 승리』(Il trionfo dell’amore)가 뮌헨에서 공연되었는데, 이는 선제후 칼 알버트(Karl Albert)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다. 뮌헨 궁정과의 관계는 그의 작품(Concerti op. 9, 1722)이 선제후 막스 에마누엘(Max Emanuel)에게 헌정된 것에서도 드러난다.  1743-44년 알비노니는 베니스 음악학교(ospedale)의 합창 선생(Il maestro del coro)에 지원했으나, 그 직책은 포르포라(N. Porpora)돌아간다.  

20세기 말에 거의 대중음악이 되었다고 할 만큼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비노니의 작품은 『현악과 오르간을 위한 아다지오』이다. 이 곡은 지아촛토(Remo Giazotto)가 1970년에 편곡한 것으로, 그 원곡은 부분적인 것으로만 되어 있는 것이고, 그것조차 오늘날은 볼 수 없다. 
알비노니의 대표적 장르는 60여개를 작곡한 오페라인데, 그 중 5개만이 남겨져 있어서 그 전모에 관한 것은 잘 알 수 없는 형편이다. 그는 발렛토(이. balletto, 복수형: balletti), 신포니아, 콘체르토 등을 작곡했다. 교회음악으로는 한 개의 미사와 -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한 개의 마니피카트와 한개의 오라토리오가 있다. 

알비노니의 오페라는 선율적인 것을 위해 극적인 면을 양보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것을 실험한다든지 하는 면은 보이지 않는다. 절정부분은 오블리가토 악기에 의해 반주되는 잘 정리된 아리아가 놓이거나, 여러 가지 대위법적으로 잘 만들어진 기악곡이 온다.
그의 솔로 칸타타(op. 4, 1702)는 잘 다듬어진 것으로서 당대의 A. 스카를랏티의 칸타타에 견주어도 별 손색이 없다. 

그의 트리오소나타(op. 1)와 그 후에 오는 바이올린 솔로를 위한 소나타들은 코렐리 풍의 보수적 성향의 것이었다.  그의 트리오소나타는 4개 악장의 첫머리를 비슷한 음악으로 연곡적인 경향을 보이는 일이 많다. 반면 멜로디 성부를 계속저음 성부에 삽입한다든지 화성적 실험이 없는 것은 그의 보수적 측면이다. 그의 발렛토(balletti, op. 3)는 리듬적으로 섬세하게 구성된 음악을 들려준다. 그의 6개의 교회소나타(op. 4)들은 20세기 초반 음악학자들에 의해 그의 대표적 작품들로 평가받았으나, 현재는 그것이 알비노니의 작품인지 알 수 없다는 회의론이 더 큰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의 실내악 작품(Trattenimenti armonici per camera, op. 6, 1712)은 양식적으로 앞의 교회소나타들보다 더 앞선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계속저음은 선율 성부와 겨루는 독자적 성격을 가지며, 화성적 활용범위가 더욱 넓어진 모습을 보여준다. 느린 악장들은 아리아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런 음악은 그의 『삼성부 발렛토와 와 소나타』(balletti e sonate a tre, 1722)에서 2부분 형식을 사용하면서 포기된다.
예기에서 알비노니는 빠른 악곡을 1도 카논으로 일관하여 대위법적인 성격이 더 부각된다. 
콘체르토와 신포니아에서 알비노니는 -소나타에서와 마찬가지로- 옛 전통을 충실히 따른다. 악곡의 변화는 나중에야 이루어진다. 그래서 알비노니의 초기 콘체르토에서 독주 성부들은 장식적인 성격의 것이었고, 형식을 구성하는 요소가 아니었다. 푸가적이거나 두 부분으로 된 알레그로 종악장에는 독주자를 위한 부분이 매우 제한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독주들을 위한 부분이 확장된다. 초기의 것에는 첫 악절이 흔히 리토르넬로 형성을 위한 1도 화성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머리 모티브는 음악을 주도하는 힘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초기 작품에는 다카포 형식이 아주 드물게 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 대신에 1도와 5도 화성이 급하게 교대하며 음악의 종결을 예감케 하는 코다가 온다. 그의 콘체르토의 절정에 해당하는 작품은 『5성부 콘체르토』(Concerti a cinque, op.5, 1707)인데, 여기에서는 모티브의 성격이 더욱 살아있어서 가공을 위한 여지가 더욱 넓어진다. 비발디의 영향이 뚜렷해지는 것은 1710-20년 사이에 작곡된 수서본(手書本) 콘체르토에서이다. 이 음악들은 바리오라쥬, 두줄누름, 넓은 음역(a’’’까지)을 사용하고 있다. 독주 부분들은 더 확장되었고, 리토르넬로는 코다에 연결되었다. 그의 마지막 코체르토들(op.10. 1735년경)은 풍요한 선율적 착상과 화성적 결핍이 다시 드러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Metzler Komponistenlexikon, H. Weber(편찬), Stuttgart/Weimar, 1992. “Albinoni: 항목.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Personenteil 1. Kassel, Ludwig Finscher(편찬), 1999. \"Albinini\" 항목.

등록일자: 2005-01-25
홍정수


<font color="#fefe00" size="4"><b>작곡(가)사전</b></font><font color="#fefe00" size="2"><b> 한독음악학회</b></font>

알비노니, 토마소 조반니(Albinoni, Tomaso Giovanni, 1671-1750/1751경)
                                                                                      
- 1671년 이탈리아 베네치아(Venezia)의 서적상을 운영하던 안토니오 알비노니(Antonio A.)의 아들로 태어남.
- 1694년 에스에스 조반니 에 파올로 극장(Teatro di SS Giovanni e Paolo)에서 오페라 ≪팔미나 여왕, 제노비아≫(Zenobia, regina de’ Palmireni)를 연주하고, 같은 해 12개의 ≪트리오소나타≫(12 Suonate a tre, Op.1)를 출판하여 당시 코렐리의 후원인인 오토보니(Ottoboni) 추기경에게 헌정함.
- 1700년경 만투아 공작인 페르디난도 카를로 디 곤차가(Ferdinando Carlo di Gonzaga)    의 궁정음악가로 일했을 가능성이 있음. 또한 ≪6 신포니아와 6 콘체르토≫(6 Sinfonie e 6 concerti, Op.2)를 출판하여 만토바 공작에게 헌정함.
- 1701년 ≪12개의 3성부 무용곡≫(12 Balletti a tre, Op.3)을 출판하여 토스카나의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Ferdinando I de’ Medici) 공작에게 헌정함.
- 1702년 나폴리(Napoli)에서 ≪알제리의 로드리고≫(Rodrigo in Algeri)를 공연.
- 1703년 플로렌스(Firenze)에서 오페라 ≪그리셀다≫(Griselda)를 공연.
- 1704년 플로렌스에서 오페라 ≪아민타≫(Aminta)를 공연.
- 1705년 밀라노(Milano)에서 소프라노, 마르게리타 라이몬디(M. Raimondi)와 결혼함.
- 1707년 ≪3개의 바이올린과 2개의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5)를 출판함.
- 1709년 아버지 A. 알비노니 사망 이후 가업을 부분적으로 계승함.
- 1709년 오페라 ≪엔젤베르타≫(Engelberta)를 가스파리니(Gasparini)와 함께 작곡함.
- 1715년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7)를 출판함. 
- 1716년 피젠델(Pisendel)에게 바이올린소나타를 헌정함.
- 1721년 부인 사망.
- 1722년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콘체르토≫(12 Concerti, Op.9)를 완성하여 바이에른의 선제후인 막시밀리안 엠마누엘(Maximiliam II Emmanuel)에게 헌정하였고, 같은 해 뮌헨에서 선제후의 아들인 알브레히트(K. Albrecht)와 요제프 1세(Joseph I)의 딸 아말리아(M. Amalia)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오페라 ≪진정한 친구들≫(I veri amici)과 ≪사랑의 승리≫(Il trionfo d’amore)를 공연함.
- 1724년 카를 6세(Karl VI)와 그의 왕후 크리스틴(E. Christine)을 위해 세레나타 ≪땅에서는 영광스런 이름, 하늘에서는 거룩한 이름≫(Il nome glorioso in terra, santificato in cielo)을 작곡함.
- 1734년 오페라 ≪칸달리데≫(Candalide)를 작곡함.
- 1735-1736년 ≪3개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10) 출판.
- 1740년 파리에서 6개의 바이올린소나타가 유작으로 출판됨.
- 1741년 오페라 ≪아르타메네≫(Artamene) 작곡 이후 활동을 중단함.
- 1750/1751년경 1월 17일 베네치아에서 사망.
 
  알비노니는 비발디(A. Vivaldi), 코렐리(A. Corelli)와 더불어 후기 이탈리아 바로크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바로크콘체르토의 형식과 양식 형성에 기여하였다.
  후기 바로크의 음악가들은 교회나 궁정음악가로 고용되어 이들의 필요와 요구에 부합하는 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알비노니는 이러한 관례를 따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생을 통해 음악을 창작하고 교육하며 연주하는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순간도 작곡활동에서 멀어진 적이 없는 그는 80여곡으로 기록되어 있는 오페라, 독주칸타타, 59 콘체르토, 100여곡에 이르는 소나타들을 남겼다. 물론 이는 동시대 작곡가인 텔레만(G. P. Telemann)의 1600여곡에 이르는 칸타타나 비발디의 600여곡에 달하는 콘체르토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숫자이지만 이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알비노니 역시 후기 바로크 음악 관습 속에서 제한된 형식의 틀에 맞춘 음악을 쉬지 않고 창작했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오페라와 콘체르토는 그를 대표하는 장르로 인식되고 있는데, 80여곡에 이르는 오페라는 그의 생전에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50여곡의 오페라 대본과 악보의 일부분만 현존한다. 반면, 그의 기악작품인 12개의 ≪트리오소나타≫(12 Suonate a tre, Op.1)는 생전에 이탈리아, 암스테르담, 런던 등지에서 출판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오페라에 비해 더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알비노니는 그의 기악곡, 특히 콘체르토를 통해 그의 음악을 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비발디와 유사하게 ‘빠름-느림-빠름’의 3개 악장 구조를 일관성 있게 사용한 작곡가인 알비노니의 콘체르토는 종종 비발디와 비교된다. 실제로 동시대를 살았던 이 두 사람이 서로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어느 작곡가가 후기 바로크 콘체르토의 틀인 리토르넬로(ritornello) 형식 및 양식을 확립하였는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분명 알비노니 역시 비발디와 비교될 만한 콘체르토 양식을 사용하였음은 틀림이 없다. 더불어 그의 콘체르토들은 비발디의 그것들처럼 음악의 내용이 무척이나 다양하다. 나아가 알비노니는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긴밀한 음악적 관계를 형성하는 콘체르토를 제시한다. 예를 들면, 1707년 발표한 그의 ≪3개의 바이올린과 2개의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5)의 제1번, B♭장조의 경우 독주악기의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음악, 즉 리토르넬로에서 유래한다. 종종 독주악기가 보다 더 화려한 음형들을 선보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음형들 역시 처음에 제시된 리토르넬로의 변형들이다. 총 14마디로 구성된 시작 리토르넬로는 제14마디에서 B♭장조의 으뜸음으로 진행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독주악기의 음악은 이 시작 리토르넬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제26마디에서부터 독주악기는 시작 리토르넬로의 음형을 화려하게 수식하며 작은 음가의 음들로 이동한다. 이러한 음형은 이 독주악기 에피소드(episode)를 F장조로 전조시킨다. 뒤따라 등장하는 독주악기 에피소드와 리토르넬로는 앞에서 제시된 음형들을 반복하거나 수식하며 다른 조성으로 전조되면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이 악장의 시작에 제시된 리토르넬로가 으뜸조에서 다시 제시되며 악장을 마무리 짓는다. 물론 이 악장은 시작 리토르넬로의 음악이 반복되고 변형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알비노니가 제시하는 음악은 아름다운 선율선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가 제시하는 리듬도 무척이나 생동감 있다. 알비노니의 리토르넬로 역시 잘 구성되고 다듬어진 악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콘체르토 제1악장의 음악구조 형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는 비발디, 나아가 J. S. 바흐의 기악콘체르토에서 찾아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알비노니가 1722년 발표한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9) 역시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무척이나 유기적으로 얽혀있다. 이 작품의 제1번 콘체르토, 제1악장의 경우 총 19마디의 리토르넬로로 시작한다. 그리고 제20마디에서 독주악기가 소개되는데 독주악기는 앞서 제시되었던 리토르넬로의 음악을 연주한다. 그런데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이 독주악기의 음악은 처음 제시되었던 리토르넬로의 음악에서 점점 멀어지며 화성적으로, 선율적으로, 그리고 리듬적으로 더욱 더 화려해진다. 다시 말하면 이 콘체르토에서는 ≪3개의 바이올린과 2개의 비올라를 위한 콘체르토≫(12 Concerti, Op.5)의 제1번, 제1악장보다 더 다양한 음악적 요소가 도입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리토르넬로와 독주악기의 대비를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비는 작품을 통하여 반복해서 출현하는 이 악장의 리토르넬로라는 보다 더 큰 음악적인 틀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이 악장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일감 있는 구조 안에서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은 후기 바로크 콘체르토라는 장르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으로 이해된다.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9)에 관해 또 한 가지 지적되어야 할 것은 이것이 오보에 콘체르토라는 것이다. 당시 오보에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악기로 인식되었는데 알비노니는 이 악기를 위한 콘체르토들을 많이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15년 출판된,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7)는 최초의 오보에콘체르토로 기록되며 이 중 제3번, 제6번, 제9번, 제12번은 하나의 오보에를 위한 작품으로, 그리고 제2번, 제5번, 제8번, 제11번은 두 개의 오보에를 위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알비노니는 이러한 구성을 그의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를 위한 12개의 콘체르토≫(12 Concerti, Op.9)에서 반복하여 사용한다. 
  비록 알비노니 생전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오페라는 1700년 이후 베네치아 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나폴리, 플로렌스, 제노바, 볼로냐 등지에서 공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1720년 이후 그의 오페라는 이탈리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연주되기 시작한다. 알비노니는 특정 궁정이나 교회에 고용되지는 않았으나 많은 귀족들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많은 작품들을 이들에게 헌정하였다. 이러한 관계를 통해 그는 자신의 작품을 여러 도시와 국가에서 연주한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18세기초 30여년 동안 알비노니의 기악곡만큼 자주 출판된 음악은 없었다는 기록은 그의 음악이 당대에 많이 연주되고 논의 되었으리라고 여겨진다. 또한 이렇게 유통되고 연주된 그의 음악은 교육목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알비노니가 어떤 음악가와 공부하였으며 어떤 음악가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그의 음악이 바흐에 의해 수용된 몇 가지가 기록으로 남아있다. 알비노니의 음악은 1709년 바이올리니스트 피젠델(J. G. Pisendel)이 바흐에게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흐는 알비노니의 기악곡, 특히 그의 콘체르토와 소나타를 알고 있었으리라 추정되고, 그 음악들이 바흐의 초기 건반악기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알비노니의 ≪12개의 트리오소나타≫(12 Suonate a tre, Op.1)에서 주제를 택하여 4곡(BWV 946, BWV 950, BWV 951, BWV 951a)의 건반악기 푸가를 작곡하였다. 또한 청년 알비노니의 Op.2, 제2번의 계속저음 성부는 바흐의 친필악보로 남아있다. 바흐가 비발디의 콘체르토를 접하는 시기가 1714년경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 두 가지 예는 바흐가 알비노니의 콘체르토를 비발디의 그것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접했을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또한 바흐는 알비노니의 음악을 교육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알비노니의 ≪바이올린과 계속저음을 위한 12개의 소나타≫(12 Trattenimenti armonici per camera, Op.6, 1711)의 계속저음 성부는 1724년경 당시 바흐의 제자였던 게르버(H. N. Gerber)에 의해 사보되었는데 이 악보에는 바흐가 제자의 오류를 수정해준 흔적이 남아있다. 다시 말하면 바흐는 그의 학생들에게 건반화성을 가르치기 위해 알비노니의 바이올린소나타를 교재로 사용한 것이다. 
알비노니가 바흐에게 끼친 직접적 영향 중 콘체르토 양식과 관련된 부분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그리 쉬운 작업이 아닌 것 같다. 다만, 알비노니의 콘체르토, 특히 그의 콘체르토 제1악장에 등장하는 양식이 바흐의 작품에 나타나는 독주악기와 리토르넬로의 유기적인 연관성임을 상기해 볼 때 바흐 콘체르토의 전형을 비발디의 그것만으로 보는 시각에 수정을 요구하는 듯하다. 나아가 알비노니의 음악이 전하는 매력적인 선율, 뚜렷한 주제의 구성, 명료한 리듬, 그리고 그의 콘체르토에서 드러나는 음악의 대조와 통일감은 바흐에게 깊게 각인되었음이 틀림이 없다.
 
참고문헌
 
Breig, Werner. “Composition as arrangement and adaptation.” Ed. John Butt, The Cambridge Companion to Bach, Cambridge University Press, London, 1997, pp. 154-170.
Bukofzer, Manfred. Music in the Baroque Era : from Monteverdi to Bach. W. W. Norton, New York, 1947.
Butler, Gregory. “J. S. Bach’s Reception of Tomaso Albinoni’s Mature Concertos.” Ed. Daniel Melamed, Bach Studies 2. Cambridge, London, 1995, pp. 20-46.
Daw, Stephen. “Bach as teacher and model.” Ed. John Butt, Cambridge Companion to Bach. Cambridge University Press, London, 1997, pp. 195-202.
Jones. Richard D. P. “The Keyboard works: Bach as teacher and virtuoso.” Ed. John Butt, Cambridge Companion to Bach, Cambridge University Press, London, 1997, pp. 136-153.
Talbot, Michael. “Albinoni, Tomaso Giovanni.” Oxford Composer Companions : J. S. Bach. Ed. Malcolm Boyd,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9, p. 7.
_________. “Albinoni, Tomaso Giovanni.”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and Musicians, Macmillan Publishers, London, 2001, Vol. 2, pp. 311-315.

등록일자: 2010.4.9
[이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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