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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발리에리 [Cavalieri, Emilio de’,]
4,243회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카발리에리, 에밀리오 데(Cavalieri, Emilio de’, 1550경-1602)


- 1550년경 이탈리아 로마에서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출생. 아버지에게서 첫 음악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임.

- 1578-1584년까지 로마의 성 마르첼로(St. Marcello) 성당의 기도모임(Oratorio del Crocifisso)에서 사순절 음악연주의 책임자로 활동함.

- 1588년에는 메디치 가(家)의 페르디난도(Ferdinando de’ Medici) 궁정에서 각종 예술행사의 총감독으로 임명됨. - 1597년에는 로마에 체류함.

- 1599/1600년경에는 잠시 플로렌스로 돌아가 그곳에서 과리니(B. Guarini)의 대본에 기초해 ≪주노네와 미네르바의 대화≫(Dialogo di Giunone e Minerva)를 작곡함.

- 1600년 이후 곧바로 로마로 돌아가 그곳에서 나머지 생애를 보냄

. - 1602년 로마에서 사망.


카발리에리는 오페라 발생의 모체가 된 플로렌스의 ‘카메라타 그룹’(camerata)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그 모임의 공연행사들을 지휘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수들과 배우들을 감독하는 역할까지 담당하였다. 그는 이미 그때 공연양식 또는 모노디 양식을 확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의 ≪영혼과 육체의 극≫(Rappresentazione di anima e di corpo)이다. 이 외에도 그는 계속저음을 처음 발명하였는데, 이러한 사실은 페리(J. Peri)의 ≪에우리디체≫(Euridice)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카발리에리의 작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위에서 언급된 ≪영혼과 육체의 극≫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원래 만니(A. Manni)에 의해 작사되었으며, 1577년에 출판된 그의 라우다(Lauda) 가사인 「육체와 영혼의 대화」를 확충한 것이다. 이 「육체와 영혼의 대화」는 위 작품 중 제4-13곡에 해당한다. ≪영혼과 육체의 극≫은 총 3부 91곡으로 이루어졌으며 대략 1시간 20분 정도의 연주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작품은 비록 원시적인 형태라 할지라도 소위 ‘모노디양식’(초판보에 인쇄된 표현에 따르면 ‘가창적 이야기’)에 기초하는 ‘레치타티보 양식’(Stile recitativo)을 오라토리오에 처음으로 사용한다. 이 외에도 음악적 효과를 위해 에코식의 노래나 중창, 대화식의 레치타티보 등 다양한 음악기법을 동원했다. 또한 합창도 사용하는데, 합창곡들 사이에는 기악으로 연주되는 리토르넬로가 삽입되어 있다. 이 곡에는 당시에는 새로운 기법인 숫자가 붙은 계속저음이 나타나는데, 출판자인 귀도티(Guidotti)는 이 숫자의 중요성을 그곳에서 언급한다. 극의 내용을 살펴보면, 첫머리에는 의인화된 ‘현명’과 ‘신중함’이 서로 대화하는 것이 나오고, 그 후 음악극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전체는 교훈적인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 극은 1600년 2월에 발리첼라(Vallicella)에 있는 네리(F. Neri) 신부의 성 마리아(S. Maria) 기도집회에서 연주되었다. 이 곡은 당시 개념으로는 ‘오라토리오’라기보다는 음악을 많이 사용하는 일종의 ‘종교극’(Rappresentazione spirituale)이었다.

1591년에 인쇄된 말베치(Cho. Malvezzi)의 ≪인터메디오≫(Intermedi, 1588)에는 카발리에리의 현존하는 3개의 다성부적인 세속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더 높은 하늘에서≫(Dalle più alte sfere, G. de’ Bardi 작사), ≪즐기라 d한한 인간들이여≫(Godi turba mortal), ≪오 새로운 기적이여≫(O che nuovo miracolo, L. Guidiccioni 작사). 이 곡들은 메디치 가의 페르디난도와 로트링엔(Lothringen)의 크리스티네(Christine)의 결혼식을 위해 쓰여진 것이다.

이 외에도 안치나(Ancina)의 필사본에는 카발리에리의 ≪예레미아 애가≫(Lamentationes Hieremiae Prophetae)와 응답송들(Responsi)이 전해져 온다. 이 필사본들은 1599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1-5성부의 곡들로 이루어졌으며, 다성부 악곡들은 특이하게도 ‘표현적 양식’(stile espressivo)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카발리에리의 창작물들 가운데는 소실된 극적 장면이 몇 개 있는데, 예로서 ≪필레노의 절망≫(Disperazione di Fileno, 1590)과 ≪사티로스≫(Satiro, 1590), 그리고 ≪장님의 놀이≫(Il Giuoco della cieca, 1595)를 들 수 있다. 처음의 두 작품은 모두 귀디치오니(L. Guidiccioni)에 의해 작사된 것이고, 마지막 작품은 과리니(Guarini)의 ≪충실한 목동≫(Pastore fido)를 귀디치오니가 각색한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오페라 장르의 초창기 작품들에 속한다.


참고문헌


Gandolfi, R. “Appunti de storia musicale.” Rassengan Nazionale, 1893.

Solerti, A. Laura Guidiccioni Lucchesini. ed E. del Melodramma, 3 Bde. Mailand, 1904.

Alaleona, D. “Su E. Cavalieri.” Nuova musica, Florenz, 1905.

Prunières, H. “Une lettre inédite d’E. de C.” RMI LIII, 1951.

Pirrotta, N. “Temperaments and Tendencies in the Florientine Camerata.” MQ XL, 1954.


등록일자: 2010.8.3

[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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