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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프로코피에프 [Prokofjew, Sergej Sergejewit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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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코피에프
(Sergej Sergejewitsch Prokofjew, 1891.4.23-19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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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의 한사람인 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코피에프(Sergej Sergejewitsch Prokofjew)는 1891년 4월 23일 러시아의 손조프카 (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으며, 1953년 3월 5일에 모스크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 지방의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아버지와 평범한 가정주부로 취미가 피아노연주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프로코피에프는 두 누이를 어릴 때 병으로 잃고 외아들로 성장하였다. 그는 그의 나이 5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그 이듬해인 1896년 "인디안 갈롭"이라는 제목으로 소곡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1897년에 프로코피에프는 피아노를 위한 소곡들("왈츠, 행진곡, 론도")을 작곡하였지만, 그가 정식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02년에 이르러서 였다. 그 후 그는 1904년 글라주노프의 추천으로 상트 페테스부르크 콘서바토리움에 입학하였으며, 그 곳에서 1909년까지 림스키-코르사코프에게 작곡을, 알렉산더 빈클러(A. Winkler)에게 피아노를 사사하였다. 1908년 12월 31일에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이 작곡한 7곡으로 구성된 모음곡을 가지고 성 페테스부르크에서 피아니스트로서 공식적인 데뷔를 하였다. 1914년에 그는 이 콘서바토리움을 졸업하였는데, 재학 중에 이미 두 곡의 피아노 협주곡(제1, 2번)과 오페라 "막달레나"를 작곡하였다. 이때부터 1917년경까지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그리고 작곡가로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러시아에서 2월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에 프로코피에프는 고전 교향곡을 작곡하였으며, 10월혁명이 일어나자 1918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까지를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제1기로 볼 수 있으며, 망명기간인 제2기에 그는 미국과 파리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주와 작품활동을 하다가 1923년에 파리에 정착하였다. 프로코피에프는 파리에 거주하면서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교향곡 제2번을 비롯하여 실내악곡, 오페라("병든 천사") 등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으며, 1927년에는 러시아를 방문하고 다시 고국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1932년부터 1937년까지 그는 모스크바 콘서바토리움의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는데, 그 사이인 1936년에 그의 가족과 더불어 완전히 러시아로 귀국하였으며, 이때부터 그가 세상을 떠날 때인 1953년까지의 창작시기를 제3기로 본다. 프로코피에프는 자신이 영구 귀국한 1936년에 발레 곡 "로미오와 줄리엣", 어린이를 위한 관현악적 동화인 "피터와 늑대" 그리고 영화음악인 "스페이드의 여왕" 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 후 프로코피에프는 현악4중주 제2번(1941)에서나 피아노 소나타들 또는 발레 곡인 "신데렐라"(1941), 교향곡 등에서 자신의 특유한 현대성과 조화된 높은 예술성을 지닌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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