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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럼 [Crumb, George Henry]
4,029회
조지 헨리 크럼(George Henry Crumb, 1929. 10. 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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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작곡가인 조지 헨리 크럼은 1929년 10월 24일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찰스톤(Charleston)에서 태어났다. 클라리넷 주자인 동시에 밴드리더로 활동했던 아버지와 시립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주자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크럼은 7살 때부터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 때는 1939/40경이며, 처음에는 쇼팽이나 슈만, 브람스 등의 유럽의 낭만주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크럼은 처음부터 클래식음악을 배웠지만 그의 관심은 오락음악에도 있었다. 이러한 관심은 그가 고등학교때와 대학교에 다닐 때 캄보밴드에서 재즈를 연주할 정도로 발전되었는데, 이때의 큰 이유는 당시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이런 것은 나중에 그가 즉흥적인 무용음악을 연주하는 배경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크럼이 클래식음악에 진지하게 접근하게된 시기는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공부할 때와 베를린에 유학해서 보리스 블라허에게 사사 받으면서부터이다. 1955/56년 블라허에게 사사 받은 기간에 크럼은 당시 유럽의 새로운 경향에 눈 돌리기보다는 전통적인 작곡기법을 배웠다. 그리고 크럼의 초기 작품에서는 무엇보다도 벨라 바르톡과 안톤 베베른의 영향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 간 크럼은 1959년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Variazioni für Orchester)라는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의 학업을 끝냈다. 그리고 곧 그는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여러 해 동안 피아노와 작곡을 가르쳤다.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Five pieces for piano, 1962)을 시작으로 크럼은 현재까지도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련의 작품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위한 5개의 소품』은 무엇보다도 모티브들이 작은 조직으로 짜여져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음렬에 의해 짜여진 것은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12음기법적 구조를 가진 부분도 있지만, 이 조직들은 자유롭게 엮어져 있는 것이다.

크럼 스스로는 유럽의 음렬음악에 한번도 깊은 관심을 나타내 보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음악에서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양식에 대한 치밀한 부분일 것이다. 크럼은 의도적으로 소리의 다양한 울림에 관심을 모은 채 자신의 음악을 펼쳐 나갔다. 특정한 악기소리를 통한 울림이나 소리의 중복을 이용한 잔향효과나 메아리효과를 1966년에 발표한 『가을의 11개의 메아리』(Eleven Echoes of Autumn) 등과 같은 많은 작품들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크럼은 소규모의 기악앙상블(옛플륫, 클라리넷, 피아노, 바이올린)을 통해 메아리효과를 이끌어 내려 하였으며, 그것으로서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재연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1965년부터 크럼은 펜실바니아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는 작품활동에 있어 처음으로 커다란 성공을 접하게 되었다. 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소프라노, 비브라폰 그리고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Madrigal Book I』(1965)과 소프라노, 플륫, 옛플륫, 피콜로 그리고 타악기를 위한 『Madrigal Book II』(1965) 그리고 베이스와 앙상블을 위한 『Songs, Drones and Refrains of Death』(1968)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Songs, Drones and Refrains of Death』로 크럼은 1968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함과 동시에 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크럼은 처음으로 전기를 이용한 악기를 사용하였으며, 이같은 시도는 나중에 많은 작품들에서 다시 찾을 수 있다.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 작품으로는 1970년 작곡한 현악4중주 『검은 천사들』(Black Angels)인데, 이 작품은 크로노스 현악사중주단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알려졌다. 그의 다른 많은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비음악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전쟁에 대한 인상을 토대로 작곡한 현악4중주 『Black Angels』의 마지막 페이지에 크럼은 "in tempore belli"(전쟁기간 중에)라는 어귀를 써넣었다. 크럼은 이 작품을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을 "출발", "부재" 그리고 "귀환"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각 부제를 통해 그는 이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 어두운 세계의 13개 장면 속을 상상으로 돌아다니는 영혼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으로 사용된 'Black Angels'이라는 낱말은 중세시대의 이야기인 '죽은 천사'를 뜻하고 있다. 크럼은 이 같은 작품 속에서의 의미 외에도 죽음이나 악마를 상징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는 쥬셉페 타르티니의 『악마의 트릴 소나타』나 프란츠 슈베르트의 현악사중주 『죽음과 소녀』 또는 중세시대 진혼미사에서의 '디에스 이레 시퀀스'를 인용하고 있다. 그밖에 크럼은 7이나 13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숫자를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

현악4중주 『Black Angels』에서와 같이 크럼은 자신의 성악작품들에서도 비음악적인 요소를 종종 사용하였다. 1965년부터 69년까지에 걸쳐 작곡한 『Madrigal Books I - IV』에서 그가 시도한 것은 시에서의 기본적인 강세를 그때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음악적 요소를 이용해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크럼의 이런 시도는 결국 이 작품에서 아주 작은 소리나 미세한 색채 등 전혀 새로운 소리의 조화를 얻어내게 되었다. 비슷한 경우는 그의 또 다른 역작인 『어린이의 원초적 목소리』(Ancient Voices of Children, 1970)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이 5개의 노래와 두 개의 기악음악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다른 문화권의 음악요소를 사용하고 있다. 크럼은 소프라노, 테너, 오보에, 만돌린, 하프, 전기장치를 한 피아노, 자동피아노 그리고 3인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이 작품에서 다른 문화권의 다듬지 않은 음악과 과거의 음악 그리고 현재의 음악을 뒤섞어 놓았다. 플라멩고 리듬 등의 동양적 요소와 더불어 자동피아노로 연주되는 J. S. 바흐의 음악 그리고 G. 말러의 음악 등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양식적 요소들은 서로 무관한 음악적 매체들을 서로서로 연결시키거나 혼합해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면은 찰스 아이브즈의 음악에서도 찾을 수 있는 특징이다.

『마크로코스모스』(Makrokosmos)은 크럼이 1972/73년에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연곡으로, 그는 이 작품의 제목을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를 염두에 두고 택하였다.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각 부분은 12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하지만 크럼은 바르톡의 『미크로코스모스』와 같은 형태를 취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쇼팽이나 드뷔시의 전주곡에서 영향을 받아 매 곡에서 음향적인 면이나 성격적인 면을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각 곡은 프로그램적인 소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크럼은 아주 꼼꼼한 구조를 보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주의 기교적인 면에서도 타악기적 연주나 다양한 페달테크닉, 전기장치의 이용 그리고 피아노 줄을 조작하여 새로운 음향을 선 보였다.

1970년에 작곡한 『어린이의 원초적 목소리』(Ancient Voices of Children)에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양한 양식을 겹쳐서 사용했지만, 크럼이 1977년에 작곡한 소프라노, 어린이 합창 그리고 오케스트라를 위한 『Star-Child』에서는 시간적인 차이를 중요한 기법으로 사용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모두 4명의 지휘자를 필요로 하지만, 각 지휘자는 자신의 생각에 따라 독자적으로 움직이며 다른 지휘자의 음악을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크럼은 위와 같은 음악적 방향을 계속 따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그의 음악은 관습적이고 조성적인 요소를 보여주다가 결국은 다시 조성음악으로 굳어졌다. 크럼 스스로는 아직 조성음악이 끝났다고는 절대로 믿지 않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조성은 아주 고귀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것은 음악에 있어 그 의미를 찾으면 찾을수록 믿을 수 없이 큰 가치를 가진 것이다. 내 생각에 조성음악은 다시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

 [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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