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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작품
요한 수난곡 [Johannes-Passion]
5,611회
요한 수난곡(Johannes-Passion)
Arnold Schering  오윤록 역: Edition Eulenburg 총보교본 서문


  오늘날 공개되어 연주되곤 하는 요한 수난곡은 바하 자신이 두 번 변경시킨 결과이다. 이 곡은 라이프찌히에서 연주할 의도로 쾨텐(Köthen)에서 작곡되었고, 실제로 1723년 바하의 지휘로 이루어졌다. 우리는 바하가 상당히 급하게 이 곡을 완성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된다. 얼마나 급했는지 바하는 텍스트 작가와 한 번도 접촉 못하고 함부르크의 시의원인 브로크(Brock)의 칭송 받는 수난 텍스트인 "세상의 죄로 인해 고통 당하고 죽게된 예수"를 기초로 자신의 힘으로 작품의 서정적 부분을 요약해 곡을 완성했다. 이로 인해 아리아와 아리오스적인 삽입부분을 포함하는 바로 이 부분이 가장 많이 손질되었고 오늘날까지 이 부분에서 마태수난곡과 반대로 확실히 당혹스러운 점들을 알 수 있게된 것이다. 우리는 바하 곡집의 12 번째 권에 쓰여진 루스트(Rust)의 서문의 도움으로 쉽게 라이프찌히의 초연에서 연주된 것과 같은 수난곡의 원래의 형태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바하의 마지막 변경이 실제로 구조의 내적 통일성에 유익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요한 수난곡은 마태수난곡 보다 6년 전에 작곡되었다. 그러나 만일 이 관계가 반대로 된다면, 두 복음서의 비교에서 그들의 수난보도의 깊은 차이점을 조사하기 시작해야할 것이다. 바하는 요한 복음서에 의존해 스스로 확실한 정신적인 근본적 구상을 가졌으나 그가 후에 마태수난곡을 구상하게 됐을 때 그것을 변경해야했다. 왜냐하면 마태수난곡이 완전한 길이로 감람산에서의 저녁만찬과 제자들의 장면을 담고있는 반면, 요한 수난곡은 본래의 수난 날의 묘사에 국한하고 마태수난곡의 첫 부분이 끝나는데서 시작한다. 이로 인해 이 곡은 처음부터 아주 다른 장면의 내적 전개일 뿐 아니라 다른 성격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외적인 구성의 차이점을 떠나 바하는 두 복음인들의 분리된 정신세계를 부각시켰다. 즉, 마태는 부드러운 느낌을 갖는 조심스럽게 보도하는 자로서, 그리고 요한은 극적인 개별적 정황에 관심을 갖고 상대의 작은 악의를 전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정렬적인 자로서. 이런 연유로 바하의 요한 수난곡에는 현실적인 군중합창이 큰공간을 차지하나, 반대로 관조하는 합창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대화하는 부분은 특히 때때로 강한 감정적인 말이 나오는 심문하는 장면에는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다. 마태수난곡에서 필라투스(Pilatus)와 그의 부인과 같은 개별적 인물이 말하는 부드러운 어조는 자주 빠져있다. 역시 아름다운 장면을 야기하는 여러 가지 자연스런 분위기의 암시도 빠져있다. 특히 그리스도 자신은 마태수난곡과는 아주 다르다. 우리가 마태수난곡의 첫 장면에서 성찬식 식탁에서 후광에 휩싸인 그를 알게된 것은 그의 성격의 본질적인 면을 결정짓는다. 그리고 바하는 우리에게 진정한 신적인 인내자의 개념을 근접하게 전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바이올린 코드 !). 

  반대로 바하의 요한 수난곡의 그리스도는 우선 인간이고 이러한 인간적인 것에서 외적으로는 다른 이들과 차이가 없다. 그 외에 복음자는 그를 대부분 흥분된 반박하는 말로서 아주 과묵하게 소개한다. 바하는 그것을 완화시킬 수 없었고 표현의 비유성 때문에 (레치타티브 26 비교) 오히려 더 강화해야했다. 우리가 처음에 다른 준비 없이, 이전에 그리스도 입으로부터 사랑과 지혜의 한 마디의 말도 없이 모략적인 배반 장면의 한 가운데 놓여있듯이, 우리는 비극의 종지에 아무런 열정적인 "엘리아, 엘리아"도 듣지 못하고, 단순하게 죽으면서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라는 말만 듣게된다. 

  모든 것을 요약해 요한 수난곡에서는 하나의 냉엄하고 가혹한 성격을 부여하는데 바하는 이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만일 그에게 어떤 극작가가 주어졌었다면 이러한 성격은 아마 여러 아리오소를 첨가함으로서 부드러워지거나 적어도 완화되었을 것이다. 마태수난곡은 10개의 아리오소를 담고있으나, 요한 수난곡은 마지막 편집에서 오직 두 개를 지니게 됨으로서 이미 서정적인 일련의 휴지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관조적인 아리아의 수도 두 작품이 15대 8의 비율로 되어있다. 그러나 합창의 수는 두 작품이 상당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

  수난곡의 외적인 구성을 부각시키고 더 흥미롭게 하기 위해 내용을 주요 곡에 따라 그룹화 하는 것은 지나쳐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물론 수난곡이 바하 시대에 관습적으로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연주되었으나(설교와 중간의 조용한 기도), 소재 자체는 세 단락으로 구성돼 있다. 이로 인해 특히 비교가 안될 정도로 긴 두 번째 부분[Nr. 21-68]이 더 낳은 명료함을 얻는다.                     

  바하는 요한 수난곡에서 이들의 생성과 연관될 수 있는 이유로 이중합창을 포기했고 마태수난곡과 같이 악장들의 규모를 그렇게 거대하게 넓히지 않았다. 강력한 감정을 몹시 흥분시키는 합창도입부와 위로하는 마지막 합창을 제외하고 합창곡들은 상당히 극적인 열정으로 가득 차고. 다른 텍스트에 같은 음악이 등장하는 곳에도 날카롭게 성격 지어졌다 (3,5; 23, 23; 29,46; 34, 50; 36, 44; 38, 42). 수난의 복음자는 그 자체로 한 인물이다. 그는 정열적이고 불같으며 사물을 격정적인 면에서 보고 결정의 순간에 거의 감격으로 도취된 격정을 갑자기 드러내는 급한 인물이다. 가끔 그는 마치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직책을 잊어버리길 원한 듯이 스스로 압도되어 사건의 진행에 개입한다. 바하는 이미 첫 악장들에서 복음자의 말을 통해 그의 극적인 것을 목표로한 투쟁적 성격을 드러낸다. 잘 알려진 문장인 "그리고 고통스럽게 울고 있다" (Nr.18)는 그의 감동의 절정을 의미한다.

  수난곡의 아름다운 아리아 중에서 대부분은 뛰어난 시적인 장면이나 비유에 의해 영감 받고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알토 아리아 Nr.11과 테너 아리아 Nr.32와 같이 오늘날의 취향에 말과 그림이 추상적으로 되어버린 곳에는 음악으로 감정이 넘쳐흐른다. 이 마지막 부분과 같이 예가 없는 성악성부와 기악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 혼잡한 총보 그림은 바로크의 음악 모두에 찾아 볼 수 없다.

  요한 수난곡의 마지막은 단순한 합창이, 즉 옛 명상적인 죽음의 노래의 첫 절로 "아, 아버지, 당신의 사랑하는 작은 천사를 남겨두시오"를 화려한 화음으로 매듭짓는다. 이것은 모두 11개의 합창 중 바하가 당대의 관습에 따라 동일한 장소에 첨가한 모든 영관(榮冠) 중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훌륭한 곡들로 대담한 4성부의 진정한 아름다운 작품이다. 내적인 삶과 열정은 합창의 근원이 모든 것 중 바하의 정서생활의 가장 깊은 곳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의심케 하지 않는다. 

  도전적인 현실성과 열기로 가득한 음조와 더불어, 인물을 다룸에 있어 극도의 논리정연성을 갖춘 요한 수난곡은 작곡가의 명예뿐 아니라 신성불가침한 소재의 영광을 위해 나무랄 데 없는 기념비적 작품이다. 마태수난곡이 우리에게 그리스도형을 가장 신적이고 성스럽게 보여주고, 속죄를 가장 장엄하게 상징화한 작품이라면, 요한 수난곡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형태의 이해를 규명하고 화신이 된 정신이 투쟁하게되는 충만한 정열을 부각시키는데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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