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발터(Johann Walter 또는 Hans Walter, 1496 Thüringen 지방의 Kahla -1570. 3. 25.Torgau)
종교개혁 초기에 활동한 독일의 작곡가이자 시인. 그는 1517년 알텐부르크(Altenburg)에서 작센 지방 선제후(選帝侯) 프리드리히의 궁정교회 베이스 가수가 되었다. 선제후가 죽자 발터는 1526년 토르가우에 있는 라틴어 학교의 칸토르로 취임했다. 당시 독일의 신교에서 만든 라틴어 학교는 일반적 교육기관이었을 뿐 아니라 교회음악도 교육되었는데, 칸토르는 교회와 교회 부속학교에서 음악을 담당하였다. 발터가 토르가우에서 1529년 설립한 최초의 칸토라이(=성가대)는 독일 루터교 칸토라이의 모범이 되었고, 이것은 하나의 모델로서 바흐의 시대와 그 이후 시대까지 존속했다.
1548년부터 발터는 토르가우 칸토라이를 본보기로 삼아 드레스덴에서 새로운 작센 선제후 모리츠의 궁정악단을 조직하고 이끌었다. 이 일은 1554년까지, 그가 눈병 때문에 토르가우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발터의 첫 악보모음집은『교회 찬송 소책자』(das Geystliche gesangk Buchleyn)였다. 루터가 감수하고 발터가 편집·발행(비텐베르크,1524)한 이 찬송가책에는 코랄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교회음악과 독일 다성부 교회노래가 들어있다. 다성부 교회노래들은 선율만의 찬송가를 다성적 음악으로 만든 것으로서 오늘날 표현을 빌리자면 '찬송가 편곡' 정도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은 개신교 최초의 찬송가책으로서 교회음악사적으로 중요하다. 이 찬송가책의 제목은 1544년부터『비텐베르크 독일 말 교회찬송 소책자』(Wittembergisch deudsch Geistlich Gesangbüchlein)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루터파의 신교도로서 또한 루터의 음악협력자로서 발터는 루터와 함께 코랄을 이용한 작품을 썼을 뿐만 아니라 독일어 다성부 교회노래와 2편의 수난곡을 포함한 많은 교회음악을 남겼다. 발터의 음악관은 엄격한 신학적 틀 안에서 만들어졌다. 발터의 이러한 음악관은 그의 음악에 흔적을 남겼다. 그의 음악은 마이스터징거적인 시와 루터 찬송가들을 고정선율로서 사용하는 다성부 교회노래로 대표된다.
그밖에 인쇄된 작품들:
『독일 미사』(Deutsche Messe)
『마태 수난곡』(St. Mattew Passion)
『마그니피카트 제8선법』(Magnificat octo tonorum), Jena, 1557
『독일어 시편』(German psalms)(포부르동)
『새 교회 노래』(Einnewes Christlichs Lied), Wittenberg, 1561
『칭찬할 만한 예술 음악의 찬미』(Lob vnd preis der löblichen Kunst Musica),Wittenberg, 1538
『멋진 예술 음악의 찬미』(Lob vnd preis der himmlischen Kunst Musica), Wittenberg, 1564.
참고문헌:
M. Bender: Allein auf Gottes Wort. Johann Walter, Kantor der Reformation, Berlin, 1971.
Fr. Brusniak: Johann Walter Leben und Werk, Tutzing, 1991.
장동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