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와 푸가 g단조(오르간), 바흐, BWV 542
판타지와 푸가 g단조, BWV 542
1715년과 1720년 사이에 작곡된 것으로 보이는 이 곡은 화성적으로나 기법적으로 매우 대담하게 쓰여진 판타지와 명확한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푸가로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바흐가 함부르크의 성 야곱교회의 오르가니스트 자리에 응모하였을 때 시험연주에서 연주한 작품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이곳의 푸가테마가 네델란드의 노래(Ick ben gegroet)에서 따온 것일 뿐만 아니라 당시 시험연주에 참석하였던 네델란드인 라인켄(J. A. Reinken)의 제5번 소나타(Hortus musicus)의 테마와도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규모적으로는 푸가(115마디)가 판타지(49마디)에 비해 훨씬 크다.
판타지
판타지는 총 6단락으로 나누어진다(마디 1-8, 9-13, 14-24, 25-30, 31-41, 41-49). 이 중에서 3개의 단락(마디 1-8, 14-24, 41-49)은 즉흥적인 성격을, 반면에 다른 3개의 단락(마디 9-13, 25-30, 31-41)은 대위법적인 성격을 띤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주로 번갈아가며 등장해(중간에서는 제외) 하나의 형식적 균형을 이룬다는 데에 있다. 우선 첫 번째 단락은 분명하게 즉흥적이며 토카타적인 성격을 띠는데, 이는 건반성부들의 빠른 패씨지들과 페달의 오르간지속음에서 잘 알 수 있다. 두 번째 단락은 푸가토적 단락으로, 두 성부씩 짝을 이루어 감3화성적이며 도약적인 모티브(f''-d''-b'-c''-d'')를 주고받는 식으로 연주한다. 즉, 마디 9에서의 소프라노와 테너 사이의 모방연주는 이후에 마디 10(테너/알토)과 11(소프라노/알토)에서 반복되는 것이다. 마디 9/3-4의 페달도 위의 모티브를 리듬적으로 확대하고 선율적으로 단순화시켜 연주한다. 세 번째 단락에서는 솔로적인 단선율 패시지와 호모포니적인 다성부구조가 번갈아 연주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모포니적인 다성부구조가 규모 면에서도 커지고(예, 마디 17) 성격 면에서도 대위법적으로 변해간다(예, 마디 21-23). 네 번째 단락은 다시 푸가토 단락으로서, 두 번째 단락이 음악적으로 변주된 것이다. 다섯 번째 단락에서는 페달의 프리지안선법이나 반음계적인 선율진행에 기초해 건반성부들이 7성부에까지 이르도록 화현적으로 연주된다. 마디 39이하의 페달에서는 마디 26이하의 페달음형이 다시 나타난다. 여섯 번째 단락은 즉흥적인 단락으로서, 다시금 솔로적 패시지들로 이루어졌다. 또한 첫 번째나 세 번째 단락처럼 일관적인 토카타적인 성격을 띠어 판타지에 통일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대부분의 필사본들에서는 특이하게도 종결화성이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장3화성 대신 단3화성으로 되어 있다.
푸가
이 푸가는 4성부 푸가로서 3마디의 테마에 기초한다. 테마는 제5음(d'')으로 시작해 기본음(g')까지 하행한 후, 옥타브 도약을 하여 다시 기본음(g'')에서 기본음(g')까지 한 옥타브동안 순차적으로 하행하는 형태를 띤다. 테마가 제5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응답은 조성적으로 이루어진다. 테마와 더불어 이 곡에는 두개의 대선율(마디 4, 10이하)이 등장해 테마와 함께 지속적으로 가공되는데, 이로 인해 테마의 밀착진행(Stretto)이나, 전위, 역행, 확대, 축소와 같은 적극적인 테마가공작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푸가는 명확하게 3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마디 1-57, 57-93, 94-115. 우선 초반부의 제시부에서는 테마가 소프라노, 알토, 테너, 페달의 성부순서로 도입된다. 이어지는 초반부의 전개부들(마디 22이하)에서도 테마는 각 성부에 골고루 도입된다(테너에 한번, 다른 성부들에는 두번). 테너(마디 37-39, 토닉병행 조성인 Bb장조)와 페달(마디 55-57, 토닉병행 조성의 도미난트인 F장조)에서의 도입을 제외하고는 테마가 토닉과 도미난트 조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푸가의 중반부(마디 57-93)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모티브가 나타나(c'-f'-e'-f') 마치 제2테마처럼 모방되고 가공된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마디 1이하의 테마는 원래의 조성(예, 마디 65/3이하)과 변화된 조성(예, 마디 72-75: 섭도미난트 조성인 c단조, 마디 80-82: c단조의 병행조성인 Eb장조) 안에서 계속 도입된다. 이 외에도 중반부에서는 집중적인 4성부구조와 고음들의 빈번한 사용과 유지, 적극적인 페달사용을 통해 음악적 긴장이 매우 고조된다. 종반부에서는 마디 1이하의 테마가 다시 집중적으로 가공된다(중반부의 제2테마적 모티브는 등장하지 않음). 즉, 이 테마는 4개의 성부에서 한번씩 골고루 나타나는데, 인상적인 것은 모두 토닉 조성으로만 연주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종반부에서는 성부들이 다시 하행하는 성향을 띠고, 테마도입도 윗성부에서 아래성부로 내려오는 식으로 이루어지며, 페달성부도 다시 드물게 사용되어 앞서간 중반부와는 크게 구별된다. 이러한 점들에서 종반부는 오히려 초반부와 유사한 형태를 띤다.
등록일자: 2005-03-05, 수정일자: 2005-10-20
나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