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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음악
앤덤 [An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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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덤(영.Anthem)



앤덤은 국가(國歌)를 의미하는 ‘National Anthem’이란 말로 인해 우리에게 별로 생소하지 않은 용어이다. 그러나 앤덤은 원래 16세기 중반에 등장한 후 계속 존속된 영국 성공회(Anglican Church) 예배의식에서의 합창음악을 뜻한다. 가톨릭교회나 루터교회의 모테트처럼, 예배의식에 부르는 순서가 지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실제 예배에서 불려왔던 것이다(루터교에서는 모테트가 예배순서에 들어가 있다). 가사는, 종교개혁 이후 자국어를 사용하는 경향에 따라, ‘영어’로 되어 있다. 영국교회의 예배의식서인 <통상기도문>(The Book of Common Prayer, 1662)에 따르면, 앤덤은 초기부터 주로 아침예배와 저녁예배의 끝에 불렸으며 합창과 회중찬송가 뒤에 나왔던 것을 알 수 있다. 
  16세기 후반 - 17세기 초에 윌리엄 버드(William Byrd, 1539에서 1543 사이–1623), 토마스 몰리(Thomas Morley, 1557-1603), 오를란도 기본스(Orlando Gibbons, 1583-1625) 등에 의해 절정을 이루는 앤덤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풀 앤덤(Full Anthem)과 버스 앤덤(Verse Anthem)이 그것인데, 이 둘 가운데 풀 앤덤이 원조로서 먼저 나타난 후 곧 버스 앤덤이 등장하며 더 선호된다.
  풀 앤덤은 아 카펠라 양식의 모테트 전통을 계승한 합창곡으로서, 4성부의 단순한 진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중에는 간혹 오르간이나 오케스트라 반주를 갖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에드워드 6세(Edward VI, 1547-1553 통치) 때에 등장한 후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58-1608 통치) 시기의 초기에 해당하는 1560년경부터 청교도혁명이 일어나는 1644년 사이에 400여곡이 작곡되었다. 특히 궁정에서 크게 장려되면서 음악적 수준을 갖추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당대의 다른 합창형식들(프랑스의 샹송, 이태리의 마드리갈 등)처럼 점점 표현적이 되어갔다. 이런 음악의 초기 예로는 버드의 <즐겁게 노래하라>(Sing Joyfully)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9곡의 풀 앤덤을 남겼다. 그 밖의 작곡가로는 몰리와 기본스 외에 토마스 윌크스(Thomas Weelkes, 1576–1623)와 토마스 톰킨스(Thomas Tomkins, 1572-1656) 등도 있다.
  풀 앤덤과 구별되는 버스 앤덤도 일찍이 1560년대부터 등장하는데, 엘리자베스 1세의 궁정교회에서 시작된 이 앤덤은 성공회의 음악에 변화가 온 것을 의미한다. 표현력이 중시되기 시작하면서, 풀 앤덤보다 상대적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버스 앤덤이 주목을 받게 된 것 같다. 즉, 독창(들) 부분과 합창 부분이 교대되는 새로운 콘체르토식의 합창음악이다. 이와 같은 대조 개념은 세부적인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아카펠라 대신 흔히 오르간 반주가 붙는데, 오르간이 독창을 반주할 때는 독립적인 음악을 연주하지만, 합창을 반주할 때는 합창과 같은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다(독창 부분을 바이올린이 반주하는 경우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버스 앤덤은 리처드 파란트(Richard Farrant, 1520/1530-1580)의 &lt;우리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있을 때&gt;(When as we sat in Babylon, 1569)로 추정되고, 이후 1644년까지 450곡에 달하는 버스 앤덤이 작곡되었다. 그러나 버스 앤덤의 창안자는 윌리엄 버드일 수 있다는 학설도 있다. 버드가 남긴 17곡의 버스 앤덤 가운데 <예수가 부활 하셨네>(Christ Is Risen Again, 1589)는 어린이를 위한 2개의 독창 성부와 6성부의 합창, 4개의 비올라(3 tenor, 1 bass) 반주의 독특한 구성으로 되어 있으며, 줄거리의 내용에 따른 음악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외의 버스 앤덤 작곡가로는 풀 앤덤도 남긴 기본스, 몰리, 톰킨스, 윌크스 외에 나다니엘 질스(Nathaniel Giles, 1558경-1634)와 에드먼드 후퍼(Edmund Hooper, 1553-1621) 등이 있다. 이들 역시 모두 궁정교회에서 일한 음악가들이었다. 
  이후 앤덤은 청교도혁명과 이에 따른 공화정 시대의 공백기(1644-1660)를 거쳐 왕정복고(1660-1710) 시기에 부활하는데, 당시의 대표적인 작곡가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은 70곡에 달하는 앤덤을 남겼다. 이 가운데 버스 앤덤이 50여곡 있는데, 유럽 대륙의 교회칸타타처럼 오케스트라반주가 있는 경우도 있다. 
  앤덤의 나머지 역사는 퍼셀의 다음 세대에 속하는 헨델(Handel, 1685-1759)과 그 이후 시기의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헨델 시기(1710-1760년경)의 앤덤은 대체로 풀 앤덤으로 되돌아가는데, 그 음악 중에는 팔레스티나(Giovanni Pierluigi Palestrina, 1625-1594) 등 옛 작곡가의 곡에 가사를 영어로 붙이는 경우도 있었다. 헨델 자신은 성공회 전례를 위한 음악을 많이 작곡하지 않았다. 그가 챤도스(Chandos)의 공작인 제임스 브릿지스(James Brydges)를 위해 1717-1719년에 걸쳐 일할 때 그 곳 교회를 위해 11개의 오케스트라 앤덤을 작곡했고, 이 음악은 이후 그의 성공회 음악을 대표하는 <대관식 앤덤>(Coronation Anthem, 1727)과 <궁정교회 앤덤>(Chapel Royal Anthem, 'Anthem on the Peace‘, 1749)의 모델이 되었다. 
  헨델과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은 많은 수의 앤덤을 남기기도 했지만, 별로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모리스 그린(Maurice Greene, 1696-1735)의 버스 앤덤은 주로 독창 성부를 위한 칸타타 형식인데, 거기에는 오페라적인 경향이 반영되어 있다. 그의 버스 앤덤 44곡 중 행사용으로 작곡된 23곡에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어 있으며, 22곡이 독창을 위한 것이다. <주여 저의 끝을 알게 하소서>(Lord, let me know mine end)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제자 윌리엄 보이스(William Boyce, 1711-1779)는 지도적인 교회음악 작곡가로서 60개의 앤덤을 남겼고, 그 중 대다수인 49곡이 버스 앤덤인데, 이 가운데 &lt;오, 어디서 지혜를 찾을 수 있을까?(O where shall wisdom be found) 정도가 알려져 있을 뿐이다. 
  헨델 시기 이후의 영국 교회음악은 헨델의 거대한 영향권 안에서 풀 앤덤과 버스 앤덤이 계속 작곡된다. 특히 1760년경에서 1830년 사이가 그랬는데, 대표적 작곡가로는 세 사람 정도를 들 수 있다. 조나단 바티쉴(Jonathan Battishill, 1738-1801)은 10여개의 앤덤을 작곡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오 주여, 하늘에서 내려다보소서>(O Lord look down from Heaven&gt)는 7성부와 오르간 반주로 이루어진 풀 앤덤이다. 모차르트의 제자이기도 했던 토머스 아트우드(Thomas Attwood, 1765–1838)는 18개의 단순한 앤덤을, 사무엘 웨슬리(Samuel Wesley, 1766-1837)는 25개 정도의 앤덤을 남겼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앤덤의 역사가 쇠퇴하나, 1920년대에 들어가면서는 ‘영국 음악 르네상스’와 관련하여 일시적으로 앤덤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부상하게 되는 작곡가가 특히 찰스 스탠포드 경(Sir Charles Villiers Stanford, 1852-1924)이었다. 그는 순수하게 영국적인 교회음악을 새롭게 수립하기 위해 웨슬리의 음악을 모델로 하고 여기에 당대의 음악양식을 결합한 앤덤을 써 왔는데, 그의 대표적인 앤덤 <주는 나의 목자이시니>(The Lord is my Shepherd, 1886)에는 동기적인 발전에 의해 형성되는 큰 규모의 형식과 함께 색체적인 화성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시도는 큰 흐름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김미옥
등록일자: 2009.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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