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쇤베르크의
쇤베르크의 음악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작곡가 자신이 직접 밝혔듯이-1) 음악적 ‘아이디어’이다. 여기서 아이디어(Idea)는 쇤베르크에 의한 독일어 ‘Gedanke’의 번역어로서, 흔히 ‘생각 · 사상’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2) 쇤베르크가 말하는 ‘Gedanke\\'는 그러한 철학적인 의미가 아니라, 초기 무조음악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즉 곡의 형식에 관계된 개념이다. 이제 그 의미에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아이디어란 용어는 쇤베르크의 다양한 텍스트 가운데 1910년경부터 시작된다.3) 하지만 아이디어의 의미가 보다 중요하고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것은 1930년에 발표된 “신음악과 낡은 음악, 양식과 아이디어”라는 글에서 처음인데, 여기서 쇤베르크는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의 음악관에 이어 아이디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가장 폭 넓은 의미에서 아이디어라는 용어는 주제, 선율, 프레이즈나 모티브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나 자신은 한 작품의 총체성을 아이디어라고 본다. 즉 창작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 적절한 용어가 부족하기에 나는 아이디어라는 용어를 부득이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할 수밖에 없다.
첫 음 다음에 첨가되는 모든 음의 의미는 불명확하다. 예를 들어 C음 다음에 G음이 온다면, 이것이 C장조 또는 G장조를 표현하는지, 아니면 더욱이 F장조 또는 e단조를 표현하는지 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리고 다른 음들이 첨가되면서 이 문제는 풀리거나 그렇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불안정하고 불균형적인 상태가 만들어질 것이며, 이는 거의 작품 전체로 성장하고 리듬의 점진적인 기능을 통해서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균형감을 다시 창출하는 방식이 나에게는 바로 작품의 아이디어로 보인다. 물론 이는 주제, 그룹 그리고 긴 부분의 빈번한 반복이 내재한 긴장감의 균형화를 향한 시도로 보일 수 있다.”4)
위의 인용문에서 보는 아이디어의 개념은 ①“주제 · 선율 · 프레이즈나 모티브와 동의어”로 사용할 뿐만 아니라, ②창작자가 표현하고자 했던 “한 작품의 총체성”이라는 매우 광범하고도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이디어는 또한 작품의 “불안정하고 불균형적인 상태”에서 “균형감을 다시 창출하는 방식”으로, “주제 · 그룹 그리고 더 긴 부분의 빈번한 반복이 내재한 긴장감의 균형화를 향한 시도”라고 덧붙여 설명된다.
즉 쇤베르크의 음악에서 아이디어는 -음악학자 달하우스(C. Dahlhaus)의 말처럼- “단순히 주제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아닌 한 작품 전체형식에 관계된 그 주제를 통한 발전 가능성의 차원에서 말하는 것이다.”5) 따라서 음악적 아이디어 자체는 물론이고 그 아이디어의 표현방식 역시 쇤베르크에게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바로 그가 1917년에 처음 구상한 이후 -미완성으로 남은- 1934년과 1936년에 쓴 마지막 글의 제목 “음악적 아이디어와 그 표현의 논리 · 기술 및 예술”(Der musikalische Gedanke und die Logik, Technik und Kunst seiner Darstellung)에서도 읽을 수 있다.6)
쇤베르크가 사용한 ‘기본음형’(Grundgestalt)과 ‘음형’(Gestalt)이라는 용어는 위에서 거론한 아이디어의 개념과 밀접한 관계이다. 그는 이 용어들을 1923년경부터 사용했는데, 그의 초기 무조성과 12음기법으로 향하는 과도기적인 작품 및 이론 이해에 중요하다. 오늘날 음악용어로서의 ‘기본음형’은 -처음에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악곡의 기초가 되는 주제 혹은 모티브 정도의 개념이었지만- 1930년 중반부터 쇤베르크에 국한된 특유의 작곡개념으로서 모티브와 프레이즈 사이에 준하는 하나의 음악적 단위로 지칭된다.7) 즉 한 작품의 기초가 되는 아이디어가 작곡에서 구체적인 음악적 형태를 취한 것이 ‘기본음형’이다. 이 기본음형에서 이후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음형’이 만들어짐으로써 아이디어가 ①‘주제 · 선율 · 프레이즈나 모티브 같은 기본음형’이며, ②‘한 작품 전체’라는 이중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기본음형에서 이후의 모든 음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쇤베르크는 -쿠르트(E. Kurth 1886-1946)의 책 제목에서8) 따온- “선적 대위법”(Der lineare Kontrapunkt, 1931.12.2)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 악곡에 있는 모든 음형들은 한 기본음형의 영구한 변형과 다름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한 악곡에서 주제에 기인하지 않고, 거기서 유래되지 않고, 그에 관련될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더욱 단호하게 말하자면, 주제 자체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등장하지 않는다.
또는 이를테면: 한 악곡은 일련의 음형들로 구성된 하나의 그림책으로, 그 음형들은 서로 아주 다르지만, a) 지속적으로 상호 연계성을 보이고 b) 아이디어의 의미에서 기본음형의 변형들로 표현된다 -이 때 변주는 풀어가거나 발전시키는 표현과 똑같은 방식을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성격과 형태가 발생한다. 한 악곡에 등장하는 모든 음형은 ‘주제’ 속에 예정(예견), 예측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선적인 대위법은 무의미하거나, 적어도 오해된 말임을 쉽게 알 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대위법적인 악곡의 아이디어는 하나의 주제 형태로 압축되어 있는데, 그 주제에서 아이디어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들이 동시에 울리면서 소위 ‘출발자세’를 취한다.
2. 이 출발자세에, 이 주제에 기본요소들의 미래 설정의 모든 가능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3. 곡의 진행에서 설정의 변화를 통해 셍긴 새로운 음형들은(주제의 변형들, 주제의 기본요소들의 새로운 울림들) 말려있는 필름이 펼쳐지는 것처럼 풀린다. 그리고 (필름의 ‘편집’처럼) 그림의 순번은 ‘형식’이 된다.9)
즉 한 악곡에 있는 모든 음형들은 기본음형에서 유출되는 것으로 “풀어가거나 발전시키는 표현방식”(eine abwickelnde oder eine entwickelnde Methode der Darstellung)을 통해 변형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쇤베르크가 말하는 “풀어가기”와 “발전”은 각기 “대위법적인 폴리포니”와 “호모포니 양식에 따르는 방식”을 의미한다.10) 이를 통해 호모포니 양식의 기법과 혼용된 쇤베르크의 독자적인 폴리포니 작법이 아이디어의 표현방식임이 드러난다.
이러한 폴리포니 · 호모포니 기법의 혼용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 J. S. 바흐 이후로 베토벤 · 브람스 · 레거 등 쇤베르크 이전 및 현대 작곡가들의 작품에서도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작곡방식이 쇤베르크 음악에서 근본적인데, 이는 그가 이 방식으로 작곡할 때 특히 ‘음악적 공간의 통일성’(Einheit des musikalischen Raumes)이라는 자기만의 독자적인 새로운 형식논리를 전면에 부각시키기 때문이다.11)
“음악적 아이디어가 표현되는 2차원의, 또는 다차원의 공간은 하나의 통일체이다. 비록 아이디어의 기본요소들이 눈과 귀에는 각기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나타난다 하더라도, 다른 단어들과 무관하게 개별적인 단어만으로는 어떤 생각도 표현할 수 없듯이, 그 기본요소들의 진정한 의미는 모두가 함께 작용함으로써만 드러난다. 이런 음악적 공간의 어느 곳에서든 일어난 그 모든 것은 국부적인 의미 이상으로 나타나, 즉 각 해당 범위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방향과 범위에 걸쳐 기능하면서 멀리 떨어진 지점까지 영향을 미친다.”12)
이로 보아 쇤베르크의 아이디어 개념은 그의 음악에서 전적으로 모티브의 상호 관련성에 의해 표현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음악적 아이디어라는 개념의 도입과 사용은, 주제와 모티브의 통일성을 통해 규모가 큰 경우라도 완벽한 유기적인 구조의 작품을 구현하고자 하는, 쇤베르크의 의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쇤베르크의 의도는 결국 12음기법으로 구체화되었고, 이에 따라 12음으로 구성된 기본음렬이 한 작품 전체에 걸쳐 변형되면서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구축하는 음악이 가능하게 된다.
각주
1) A. Schönberg, “Komposition mit zwölf Tönen”, Stil und Gedanke, p. 72.
2) 서울대독일학연구소(허영근 원저), “Gedanke”, 『에센스 독한사전』, p. 83.
3) A. Schönberg, “Frühe Aphorismen”, Schöpferische Konfessionen, p. 13.
4) A. Schönberg, “Neue Musik, veraltete Musik, Stil und Gedanke”, Stil und Gedanke, p. 33(번역: 오희숙, 『20세기 음악2』, p. 38).
5) C. Dahlhaus, “A. Schönbergs Drittes Streichquartett op. 30”, Melos 50, p. 35/ 오희숙, 『20세기 음악 2』, p. 40.
6) J. Rufer, Das Werk Arnold Schönbergs, pp. 125-26.
7) 이에 대해 다음의 글을 참고하시오: M. Beiche,\"Grundgestalt\", Handwörterbuch der musikalischen Terminologie, p. 4/ R. Stephan, “Zum Terminus Grundgestalt”, Vom musikalischen Denken, pp. 138-45. 필자는 쇤베르크의 개념인 ‘Grundgestalt’와 ‘Gestalt’를 이전 발표된 글에서 각기 ‘기본형상’과 ‘형상’으로 번역한 바 있는데, 여기서는 한글표기에서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기본음형’과 ‘음형’으로 번역하였다.
8) J. Rufer, Das Werk Arnold Schönbergs, p. 160.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쿠르트의 책은 1917년에 베를린에서 출판된 『선적 대위법의 기본』(Grundlagen des linearen Kontrapunkts)이다.
9) J. Rufer, “Von der Musik zur Theorie. Der Weg Arnold Schönbergs”, ZfMt 2, p. 3(번역: 고은미, “쇤베르크의 주요 작곡개념 및 원칙에 대한 연구”, 『음악과 민족』, 제30호, p. 380).
10) 이에 대해 다음의 글을 참고하시오: M. Beiche, “Grundgestalt”, Handwörterbuch der musikalischen Terminologie, p. 4.
11) 1947년에 쓴 논문 “진보주의자, 브람스”에 근거하면, ‘음악적 공간의 통일성’이라는 형식논리는 대략 1906~1907년경부터 쇤베르크의 이론적 자료와 음악에 작용된 것으로 드러난다. 이에 대해 다음의 글을 참고하시오: A. Schönberg, “Brahms, der Fortschrittliche”, Stil und Gedanke, p. 43.
12) A. Schönberg, “Komposition mit zwölf Tönen”, Stil und Gedanke, pp. 76-77.
참고문헌
M. Beiche, “Grundgestalt”, Handwörterbuch der musikalischen Terminologie (Wiesbaden: F. Steiner, 1984)
C. Dahlhaus, “A. Schönbergs Drittes Streichquartett op. 30”, Melos 50(1988),
J. Rufer, Das Werk Arnold Schönbergs(Kassel: Bärenreiter, 1959)
____ , “Von der Musik zur Theorie. Der Weg Arnold Schönbergs”, ZfMt 2(1971)
A. Schönberg, “Frühe Aphorismen”, Schöpferische Konfessionen(Zürich:
Peter Schifferlei, 1964)
____ , Stil und Gedanke(Frankfurt a. M.: S. Fischer, 1976)
R. Stephan, Vom musikalischen Denken(Mainz: Schott, 1985)
고은미, “아놀드 쇤베르크의 피아노작품-초기의 무조성에서 12음음악으로”.
『서양음악학』, 제4호(서울: 예솔, 2001)
_____ , “진보주의자 브람스.” 『음악학 원전 강독』(서울: 심설당, 2005)
_____ , “쇤베르크의 주요 작곡개념 및 원칙에 대한 연구”, 『음악과 민족』, 제30호(부산: 민족음악학회, 2005)
서울대독일학연구소(허영근 원저), “Gedanke”, 『에센스 독한사전』(서울: 민중서림, 2003)
오희숙, 『20세기 음악 2』(서울: 심설당, 2004)
등록일자: 2008.02.23
고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