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겜(Johannes Ockeghem, 1425년경.Termonde-1496.2.6.Tours)
프랑코 플랑드르 작곡가. 뱅쇼아의 제자로 추정된다. 오케겜은 뱅쇼아가 죽었을 때 장례 모테트를 작곡했다. 1443년 이후 앤트워프의 교회에서 성악가로 일했다는 기록이 있다. 1448년 그는 샤를르 1세 공작의 교회성악가로 일했다. 이어서 프랑스 궁정의 루이9세, 샤를르 7세, 샤를르 8세 밑에서도 일했다. 프랑스 궁정에서 그는 “수석 교회음악가”(premier chappellain)로 일하다가 1465년 “왕의 음악과 교회의 마스터”(maistre de la chappelle de chant du roy)는 칭호를 받았다. 그는 왕족은 물론 동료음악가로부터도 좋은 평판을 받았다. 오케겜이 죽었을 때 당대의 시인들은 많은 애도의 시를 쓴 것으로 보아 그의 사회적 위치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귀욤 크레탱이 쓴 시는 오케겜의 작품과 그의 제자들에 관한 언급을 많이 하고 있다. 또한 그의 가장 훌륭한 제자 조스깽 데프레는 그를 위해 장례 모테트를 작곡했다(작시:Jehan Molinet).
그가 작곡한 장르는 미사, 샹송, 모테트 등이었다.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에는 36성부 카논미사이다. 미사 중에는 {쿠이우스비스 토니}(Cuiusvis toni), 카푸트{Caput}, {주의 여종을 보라}(Ecce ancilla Domini), {미미}(Mi mi), {무장인간}(武裝人間, L’homme armé) {비율미사}(Prolationum)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쿠이우스비스 토니}는 한 선율을 여러 가지 음높이로 부를 수 있게 만들었고, {비율미사}는 하나의 성부를 기록하고, 그것을 여러 가지 음정으로 여러 가지 박자로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오케겜의 레퀴엠은 다성으로 작곡된 첫 번째의 작품이다. 그의 모테트는 많지 않고, 그 소수도 어느 정도 의심스러운 것들이 있다. 그 중 잘 알려진 것으로는 {홀로 은둔자}(Ut heremita solus)가 있다. 그의 샹송은 모두 22곡이 전해오는데, 그 중 많은 수가 롱도이고, 나머지가 비를레이며, 하나가 카논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의 음악은 프랑코 플랑드르 악파의 모방적 특징을 보여주고, 특히 교묘한 방식의 카논으로 유명하다. 그의 선배 음악가인 뒤파이에 비해 그는 음악의 전체적 구조에 관심을 덜 기울이고 선율의 흐름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 선율은 종지나 쉬는 곳이 없이 흘러가게 하는 것이다. 그의 폴리포니는 여러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어 그의 후에 오는 작곡가들에게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의 폴리포니는 약 100년간을 지속하는 음악적 전통의 바탕이 되었다.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오케겜, 요하네스(Ockeghem, Johannes, 1420경-1495)
- 1420경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장소 미상).
- 1443-1444년 안트워프(Antwerp) 성당의 성가대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함.
- 이후 프랑스 궁정에서 3대 왕에 걸쳐 40년 동안 활동하면서 명성을 날림.
- 1459년부터 플랑드르)의 생 마르탱(Saint Martin) 수도원에서 재정 책임자로 35년간 봉직함. 이 시기에 뱅슈아(G. Binchois)에게 배운 적 있음.
- 1495년에 마지막까지 프랑스 궁정악장으로 봉직하다가 투르(Tour)에서 사망.
오케겜은 제1세대 플랑드르 악파의 대표자로서, 그의 음악 양식은 중세적인 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보수적인 프랑스 궁정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경향은 특히 독립적이면서 단절 없이 어우러지는 선율흐름과 수적 비율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지적 구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흔히 ‘폴리포니의 대가’란 말로 표현되는데, 그의 폴리포니는 모방이 없는 대위법적 진행이 특징적이다(카논적 구조에서는 예외). 그의 작품으로는 미사 17곡, 레퀴엠 1곡, 모테트 7곡, 샹송 22곡이 남아 있다.
미사는 그의 명성에 비해 적게 남아 있는데, 화성적으로는 보수적이나 고정선율의 취급에서는 매우 다양하다. ‘연곡 미사’는 10곡이며, 그곳에 나타나는 고정선율의 취급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최상성부에 고정선율을 차용한 것으로서, 이 선율은 원형 그대로 나타나거나 또는 장식되어 있다. 세속 선율이 차용된 경우는 대부분 노래 양식으로 되어 있지만, ≪미사 무장 인간≫처럼 고정선율이 다른 성부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둘째 최저성부에 고정선율을 차용한 것으로서, 베이스 개념의 부재를 보여준다.
셋째 기존 음악에서 한 성부 이상 차용한 것으로서, 16세기에 크게 유행한 ‘패러디 기법’의 초기적 예를 보여준다(예: Missa fors seulement).
넷째 고정선율이 성부들에 분산되어 나타나는 것으로서, ≪미사 카풋≫(Missa caput)을 예로 들 수 있다.
다섯째 고정선율 대신 주제선율이 새롭게 창작된 것도 있다. 그 예로는 ≪미사 미-미≫(Missa Mi-Mi), ≪어떤 선법 미사≫(Missa Quiusvis toni), ≪비율 미사≫(Missa Prolationum)를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비율 미사≫는 이중카논(4성부의 박자가 모두 다름)의 연속으로 되어 있고, 뒷 악장으로 갈수록 그 모방의 음정관계가 1도에서 8도까지 순서적으로 벌어진다. ≪어떤 선법 미사≫는 보표를 자유롭게 바꾸어 4개의 정격-변격 선법 그룹 중 어떤 것으로도 부를 수 있게 되어 있다.
오케겜의 모테트에서는, 한 세대 전의 뒤파이의 후기 모테트와 마찬가지로, 고정선율이 독립적인 선율 정도로만 취급되어 있다. 대표적인 ≪흠이 없으신 하늘의 어머니≫(Intemerata dei Mater, 5성부)는 고정선율의 식별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자유로운데, 이 곡에서도 역시 뒤파이의 모테트와 마찬가지로, 2-3성부가 성부 전체의 진행과 교대된다. 단, 베이스 성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케겜의 샹송 또한 매우 보수적이다. 이는 부르고뉴 양식을 답습하고(≪내 입술이 웃네≫[Ma bouche rit] 등) 유행에 뒤떨어져 가던 롱도 형식을 선호한 것에서 알 수 있다. 간혹 그의 종교음악에서 사용된 복잡한 카논이나 수적 비율도 그곳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그의 종교음악에서는 카논기법으로 된 것 외에는 모방이 별로 쓰이지 않은 반면, 샹송에서는 성부간의 모방도 찾아볼 수 있다(≪나의 애인≫[Ma maitresse] 등).
오케겜의 필사본으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키지(Chigi) 사본』: 15C말, 바티칸 카톨릭 도서관, Chigi C.VIII.234, 40곡(오케겜 등 플랑드르, 프랑스 작곡가들의 종교음악). 『믈롱 샹송집』(Mellon Chansonnier, US-NHU 91).
참고문헌
Fallows, Daivd. “Johannes Ockeghem: The Changing Image, the Songs and a New Source.” EM 12(1984), pp. 218-230.
Houghton, Edward F. “Rhythmic Structure in the Masses and Motets of Johannes Ockeghem.” Ph. D. diss.,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1971.
증록일자: 2010.8.3
[김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