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스크리아빈(Alexander Nikolayevich Scriabin, 1872년 1월 7일, 모스크바 - 1915년 4월 26일 모스크바)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였던 스크리아빈은 생전에는 그 어떤 러시아 출신의 음악가보다 유명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급격하게 명성을 잃었던 음악가이다. 하지만 그의 음악적인 업적은 러시아 음악의 흐름에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는 1972년 있었던 그의 탄생 100주년 행사 이후부터 시작된 그의 음악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스크리아빈은 자신이 평소에 추구했던 독특한 사고방식을 그의 음악에 그대로 반영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사고는 어린 시절의 불우했던 기억이 커다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1살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곧 외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하던 그의 아버지에 의해 숙모와 할머니집으로 보내져 양육되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가 받았던 기억들이 훗날 자신의 음악이나 생활 속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 그의 숙모에게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당시 그는 자신이 작곡했던 작품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들의 작품까지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의 피아노 음악은 초기에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쇼팽 스타일을 비롯한 리스트, 바그너 등의 경향을 띈 작품을 작곡하였으나, 차츰 신비 화음을 비롯한 독특한 화성 어법으로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작품을 썼다.
스크리아빈이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비롯한 음악교육을 받기 시작한 때는 그가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면서부터이며, 여기서 그는 피아노를 니콜라이 스베레프(Nikolai Swerew), 바실리 사포노프(Wassili Safonow) 등을 사사했으며, 타네예프(Tanejew)와 아렌스키(Arenski)에게 작곡을 사사하였다. 음악원을 졸업한 후 스크리아빈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를 여행하며 피아노 연주를 하는 한 편 수 많은 작품을 작곡하였다. 그는 이때 Poem(시)이라는 형식을 만들고 철학적 신비주의를 반영하였으며, 음악적으로는 풍부한 화성과 복잡한 리듬을 사용하는 등 자신만의 어법으로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음악 자체보다는 시, 빛, 향기, 무용 등이 결합된 예술형태를 가지고 종교적인 무아의 경지를 느끼려고 하였다. 이렇게 ‘신비주의’로 종합된 가운데 다양한 음악어법을 통해 그는 당시 많은 작곡가들이 추구하던 조성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하였는데, 이때 그가 사용한 신비화음은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의 4도음정을 차례로 쌓아 올리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스크리아빈은 모두 5 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으며, 그 가운데 제3번 『신성의 시』(1903), 제4번 『황홀의 시』(1907), 그리고 『불의 시』 또는 『프로메테우스』(1909)라는 제목을 가진 제5번 등이 있다. 그가 남긴 10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현재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즐겨 연주하는 곡들이며, 특히 제5번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고 그 뒤를 이어 제7번(『하얀 미사』), 제9번(『검은 미사』)이 유명하다.
스크리아빈은 피아노 소나타 외에 『피아노협주곡 op. 20』, 『12개의 연습곡 op. 8』, 『8개의 연습곡 op. 42』 등의 연습곡, 『24 개의 전주곡 op. 11』, 『5개의 전주곡 op. 74』 등의 전주곡 및 왈츠, 마주르카, 즉흥곡, 시곡 등 200 여 곡에 이르는 피아노 작품을 남기고 있다.
등록일자: 2005-01-20
차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