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타타(이. cantata, 일본어: 교성곡'交聲曲')
1. 간단한 설명: 칸타타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되던 17세기에는 기악곡이라는 뜻의 소나타의 반대어를 뜻했다. 17세의 오페라에서 나온 여러가지 요소, 즉 모노디, 콘체르토 음악 등이 교회음악에 들어오면서 칸타타가 발생된다. 칸타타는 기악반주가 있는 여러 곡으로 구성된 성악곡의 형태를 갖는다. 이러한 곡들은 아리아, 아리오조, 레치타티보로 되어 있다. 가사의 길이가 오라토리오보다 더 짧고, 이야기 줄거리를 갖는 오라토리오의 내용에 비해 서정적인 내용을 갖는 것이 칸타타이다. 오라토리오 독창자를 위한 독창 칸타타, 몇 사람의 독창자를 위한 앙상블 칸타타, 합창 위주로 된 합창 칸타타 등이 있다. 칸타타가 가장 발달한 것은 18세기의 독일이며, 그 대표자는 바하이다.
2. 자세한 설명: 칸타타는 1600년경 이태리에서 오페라와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다. 초기의 칸타타는 기악반주를 동반한 장절형식의 단순한 곡으로서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무반주의 폴리포니적인 장르들, 즉 독립적인 성부들을 갖는 다성부 성악곡들과 대조적인 것을 의미했다. 독창자와 이중창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러한 세속 칸타타는 계속저음이 붙은 마드리갈과 칸쪼넷타로부터 발전되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1620년 이후 4권으로 된 칸타타 모음집을 발간한 그란디(Grandi)가 있다. 이태리의 독창 칸타타는 아리아 부분을 발전시킨 카리씨미와 레치타티보 부분을 발전시킨 롯시(Rossi)에 의해 절정에 달한다. 이들은 변치 않고 반복되는 베이스 성부를 바탕으로 한 변주적 아리아를 많이 사용했다. 나폴리 악파는 다카포 아리아와 레치타티보를 묶는 표본적 형식을 만든다.
18세기에는 독일에서도 칸타타가 중요한 음악적 장르로 발전한다. 독일의 칸타타는 주로 교회 칸타타인데 다음과 같은 역사를 보여준다. 초기의 칸타타들은 콘체르토적 모테트와 찬송가 편곡으로부터 시작하였다. 1600년경에 이미 프레토리우스에게서 여러 단락으로 이루어진 모테트들이 보인다. 20-30년 후 쉿츠는 그의 교회 콘체르토에 규칙적 운문을 발생케 한다. 100여곡이 남아있는 북스테후데의 칸타타는 대부분 콘체르토적 모테트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독일의 교회 칸타타는 1700년 경에 발생한다. 로젠뮬러, 툰더는 독일 교회 칸타타의 전형이 되는 코랄 칸타타를 시작시킨다.
교회 칸타타 정립에 공이 큰 사람은 작사자 노이마이스터 목사이다. 그는 교회력에 맞춘 4년 분량의 칸타타 가사를 썼는데, 그곳에서 새로 쓰여진, 즉 성경을 인용하지 않은 시를 바탕으로 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연결시켜 오페라적 요소를 도입한다. 바하로부터는 약 200여곡의 칸타타가 전해지는데 대부분은 각각 1년치 예배를 위해 연곡식으로 작곡된 것이다. 그는 주로 노이마이스터 류의 가사를 취했으나, 그 밖의 가사형식도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특히 그의 코랄 칸타타는 유명한데 이것은 기존해 있던 코랄 가사를 아리아, 레치타티보, 합창 형식에 맞게 변형시킨 것이다. 그의 칸타타는 한 부분으로 되어 있거나 또는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것은 설교 전이나 또는 설교를 전후로 불린다. 텔레만은 약 1400개의 교회칸타타와 70개의 세속칸타타를 남겼다.
19세기에는 칸타타가 연주회장 칸타타로서 다시 세속적 성격을 띠게 되고 다른 형식들과도 섞이게 된다. 20세기에는 교회칸타타들 뿐만 아니라 (예: 후고 디스틀러) 민속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세속칸타타나 장면적 칸타타라는 새로운 형식도 나타난다 (예: 쎄자 브레스겐). 정치적인 내용들도 칸타타에서 다루어지는데 한스 아이슬러와 파울 데싸우와 같은 작곡가들을 예로 들 수 있다. [나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