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김새
시김새에 관한 논의는 조선조 시대의 문헌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여기에 관한 최초의 논문은 1950년대를 전후한 것으로 보인다.1) 하지만 옛 악보들을 보면 시김새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 없지 않다. 시김새의 말뜻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2)
한국의 전통음악에서 일정한 가락이 변주적, 장식적, 즉흥적 방식으로 연주될 때에 원 가락의 대강을 유지하면서도 다르게 변형되는 부분을 시김새라 일컫는다. 그러니까 시김새는 한국 전통음악의 연주(또는 가창)실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그 성격을 세 가지 측면으로 풀어 보면 다음과 같다:
①변주적 성격: 이미 있는 선율에 변화를 준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장식적 성격은 변주적 성격이라는 큰 틀 안에서 나타난다.
②장식적 성격: 중심적인 음들에 꾸며 주는 음들이 덧붙여진다는 면에서 이렇게 파악할 수 있다.
③즉흥적 성격: 시김새는 즉흥연주에 의한 자유스런 변화가 가능한 것이다.
시김새는 흔히 원래의 음가보다 더 작은 음가로 나누어지기에 선율의 핵심부분이 아니라 '주변적인 것', '장식적인 것'으로 파악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기에 시김새는 원래적 선율을 꾸며 준다는 의미에서 "장식음"이라고 자주 설명된다. 그러나 시김새는 음가를 짧게 쪼개는 것뿐만 아니라, 본래의 음높이를 흐리게 만드는 요소들도 갖고 있다. 즉 다음과 같은 요소들, <끌어올리는 소리>, <끌어내리는 소리>, <미끄러져 내리는 소리>, <떠는 소리>와 같은 연주방식(또는 가창방식)도 포함한다. 이 때에 음정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그 높이가 불분명한 음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이 음들이 어느 높이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위로나 아래로 향하는 과정의 음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시김새는 음에서 음으로 이동할 때에 음계적으로 정해진 일정한 음높이에서 다음의 일정한 음높이로 가는 방식을 피하고, 오히려 그 일정한 음높이의 주변에서 맴돌며 가락에 멋을 더하려고 한다.
연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시김새는 악기와 가창적 특징에 의해 생각되기도 한다. 즉 관악기에서는 '막는 구멍과 관계가 없는 소리', 현악기에서는 '조율된 줄의 음과 무관한 소리', 성악에서는 '음절이 붙지 않은 소리' 등이다. 이런 사고는 중요한 음과 덜 중요한 주변음을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의 모든 것들은 시김새를 현상적으로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보다 근본적인 생각이 시김새라는 개념 뒤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달라지는 음높이들을 하나로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다. 장식하고, 끌어올리고, 미끄러지고, 떠는 음들은 여러 음들의 결합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결합된 음무더기들을 각각 떼어서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김새 현상에서는 음들이 일정한 음높이로 고정된 음계를 벗어나는 일이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같은 '끌어올리기'라 할지라도 연주할 때마다 달라져서 그 정확한 높이를 재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 보이기도 하다. 이러한 음악현상을 위한 설명으로 가장 적합한 예는 아마 가야금 연주에서 퉁긴 줄을 왼손으로 누를 때에 생기는 휘어지듯 높여지는 '소리'일 것이다. 이렇게 불명확한 음높이를 가진 시김새들은 기보에서도 기록될 때에도 정확한 기록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일정한 음높이와 무관한 기호들로 기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과적으로 시김새의 성격은 악보를 거부하는 일면을 가지고 있다. 같은 종류의 시김새라 할지라도 일정한 방식으로 연주할 것을 기록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이는 시김새가 원래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라서 기록적으로 접근할 때에 발생하는 어려움인 것이다.
시김새는 무엇보다도 음계에 관한 이론적 논의에 상당한 어려움을 안겨 준다. 왜냐하면 시김새는 음계음들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비음계음들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시김새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이 비음계음들에 관한 것이고 이 음들은 흔히 미세한 음정관계를 보이면서 미끄러지거나 떨거나 하는 과정과 결합되는 경우들이고, 음악 또는 음계의 성격을 형성시키거나 변화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의 전통음악의 이론에서 보여주는 경향은 시김새의 음을 음계에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도음악에서 흔히 듣는 시김새인 <꺾는목>은 대체적으로 단2도 정도가 미끄러지듯 하강하는 것으로 보면 무리가 없는 데도 이를 음계이론에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판소리나 가야금 산조에는 상당히 안정적인 음높이의 비음계음이 시김새적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 음계적으로 고려하는 이론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아주 단순한 음계이론이 복잡한 시김새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한 정도에 머무르게 된다. 이로 인해 음악과 이론의 간격을 좁히려고 하면 시김새에 관한 이론적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그 이론은 시김새의 성격을 해치지 않는 탄력적인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시김새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용어로는 "잔가락"이 있고, "농성"(弄聲)과 "농현"(弄絃)은 각각 성악과 현악에서의 떠는 소리를 의미한다. "퇴성"(退聲)은 "꺾는목"을 한문으로 고쳐 만든 것이다. 그러나 문묘제례악에서 보는, 위로 끌어올리는 소리를 위한 용어는 없다.
시김새는 전통음악의 채보에서 음표나 특수한 기호로 기록된다. 때문에 그러한 악보를 통한 음악의 전수는 원래의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시김새의 성격을 고착적인 것으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시김새는 국악 작곡에서 크게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작곡적으로 고려된 시김새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전통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하는 양악작곡에서도 시김새가 대단히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홍정수]
1) 예를 들어 이혜구: 舊韓樂의 創作活動 →서울대학신문 1950. 5. 20. 이 글에서 "『시금새』, 『잔가락』, 『間音』 즉 裝飾音"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2) "飾音새"와 같은 한문화된 말투는 나중에 나온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