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음악
(도. mittlere Musik)
유럽의 1920년대 음악 경향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으로, 독일의 음악 학자 다누저(H. Danuser)에 의하여 주장되었다(H. Danuser, Die mittlere Musik der Zwanziger Jahre, 1982). 이 음악 경향의 대표적 작곡가로는 힌데미트, 크세넥, 아이슬러, 바일, 프랑스 6인조 등이 속하는데, 이들은 20세기 "신음악의 제 2세대"라고도 불려진다.
20세기 음악의 선두 주자 역할을 했던 쇤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는 1920년을 전후로 음악양식적 측면에서, 즉 화성과 리듬에서 혁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의 새로운 음악은 매우 낯설게 받아들여졌고, 청중과의 거리감을 증가시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1920년대에는 음악가들 사이에 세대 교체가 일어난다. 즉 1890년대에 태어난 젊은 작곡가들이 대거 출현하여 음악계의 흐름을 주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 음악의 문을 연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바르톡과 구분하여 신음악의 제2세대라고 불리는 힌데미트, 크세넥, 아이슬러 등의 작곡가는 제1세대들보다는 더욱 포괄적으로 전통을 비판•거부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청중과의 유대감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무조성이나 다양한 리듬 기법들의 새로운 음악 양식을 사용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통적 조성감과 박자 체계를 떠나지 않았다.
신음악의 제2세대들의 음악은 서로 매우 다른 개성 있는 양식을 보여주었으나, 예술 철학적 시각에서 모두 <전통적 미학>과의 단호한 결별을 선언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들의 선배에게는 조건없이 고수된 <음악의 자율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이들을 묶어 주는 요인이 된 것이다. 전통적 음악관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작품의 출발을 삼았던 이들에게는 <음악의 자율성>을 지지하는 기존의 시민적 음악회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음악과 인간의 삶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기 시작했다. 바일은 통속적 유행 음악과 결합된 예술 작품을 발표했고, 아이슬러는 프롤레타리아를 위
한 단순하면서도 예술적인 음악을 추구했고, 힌데미트는 재즈와 예술 음악의 결합을 시도했으며, 또한 라디오 음악과 교육용 음악에 관심을 보이면서 <실용 음악>을 주장했다. 이제 <순수 예술>대신에 음악의 목적성과 기능성이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예술 음악의 전면적인 부정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 작품에서 추구된 것은 예술 음악과 실용성 또는 기능성의 통일이었다. 이것은 바일의 주장에서 잘 나타난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물에서 다시 자연스러운 기반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과, 음악은 가장 단순한 인간적인 필요에 의하여 예술적이고 정신적인 표현 수단을 통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통찰했다. 예술 음악과 실용 음악의 사이는 점점 좁혀져야 하고 마침내는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술적인 주체를 잃지 않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청중의 폭 넓은 음악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그러한 음악을 창조하려고 한다."
즉 젊은 작곡가들의 사고는 이중의 부정을 통해서 나타났다. 그들은 한편 절대 예술 음악의 사상을 부정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주장되는 예술의 부정 또한 부정했다. 이러한 신음악의 제2세대들의 음악 경향은 <중간 음악>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이들의 음악은 두 가지 관점에서 중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예술관의 관점에서 이들은 낭만적 예술관이 보여주었던 높은 관념적 예술관이 보여주었던 예술관과 민속 음악이나 저급 음악, 유행 음악이 대변하는 낮은 예술관의 중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 음악 양식적 차원에서 무조성과 12음기법 또는 자유로운 리듬 등을 사용했지만, 쇤베르크악파와는 다르게 조성의 틀도 의식적으로 사용했다. 즉 음악 양식적 측면에서도 이들의 음악은 진보와 복고의 중간에 위치하였다.
오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