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마르티니(Giovanni Battista Sammartini, 1700 또는 1701 밀라노-1775.1.15밀라노)
<설명1>
삼마르티니는 밀라노에서 1700년 혹은 1701년 탄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고 1779년 1월 15일 밀라노에서 사망했다. 그는 주로 밀라노와 근교에서 여러 개의 수도원 연합회의 작곡가와 오르간 주자 및 교사로서 활동하면서 교회음악 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이태리보다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주로 출판되며 더 많이 알려지고 연주되었다. 비엔나에서 그의 작품들은 쉔보른(Schönborn), 모르친(Morzin), 롭코비츠(Lobkowitz), 에스터하처(Esterhazer), 발트슈타인(Waldstein) 같은 많은 귀족들에 의해 널리 알려졌는데, 특히 발트슈타인은 삼마르티니의 심포니와 실내음악 작품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마르티니의 작품들은 바로크와 비엔나의 고전주의 시대 사이(1720/30-1780년)에 놓인다. 그가 작곡한 많은 양의 교회음악은 상당수가 분실되었다. 그가 남긴 중요한 업적은 무엇보다 교향곡 장르인데, 버니(Charles Burney)에 의하면 교향곡과 같은 기악곡은 이태리에서 주로 예배의식에서 연주된 종교음악이었다고 한다.
삼마르티니는 처음으로 오페라 심포니로부터 독립한 연주회용 심포니를 작곡했다. 그의 단순하고 명백한 음악적 언어는 독일 만하임악파와 더불어 그에게 사사했던 글룩과 J. Ch. 바흐와 함께 보케리니와 모차르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1720-30년대 사이의 새로운 양식적 변화는 만하임과 비엔나, 그리고 이태리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부분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의 80곡이 넘는 심포니는 양식적으로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1740년대까지의 첫 시기는 바로크적 요소를 담고 있다. 이 시기에 쓰여진 19개의 심포니는 같은 시대 작곡된 그의 대부분의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악장이 미뉴에트로 이루어진 3악장이며, 1악장은 많은 부분 각 단락들이 분명히 드러나는 소나타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성부는 주로 3-4 성부로 현악기에 의해 연주되고 호모포니적이다. 1760년대까지 이르는 중반기 작품들은 2악장도 있지만 바로크적 요소가 사라지고 소나타형식은 각 악장에 적용되며, 대부분 대조적인 여러 개의 주제가 나타나지만 단일 주제에 의한 진행도 발견된다. 성부들은 현악기 편성에 대부분 2개의 호른이 첨가되고, 나중에는 2개의 오보에도 들어가며 가운데 성부는 독립된 비올라성부를 지니고 있다. 특히 느린 2악장은 표현이 풍부한 서정성을 담고 있으며, 자주 단조 조성을 갖고 있다. 그의 갈랑 양식과 대위법을 절충한 작곡기법은 고전주의 작곡가들에게 모델이 되기도 했다. 1775년까지 이르는 마지막 시기의 작품들은 화성진행도 풍부해지고 중기시대에 나타난 기법들이 더욱 발전되고 공고해진다.
그의 작품에는 80여 개가 넘는 교향곡, 대략 15개의 협주곡, 6개의 현악 6중주, 20여 개의 현악 4중주, 대략 187개의 트리오, 20여 개의 바이올린, 플롯 혹은 첼로를 위한 독주소나타, 다수의 실내악, 오페라, 세속적이고 종교적인 성악곡 등이 있다.
등록일자: 2005-04-11
오윤록
<설명2>
역시 음악가였던 지우셉페 삼마르티니(Giuseppe Sammartini)의 동생. 첫 음악 교육은 오보이스트였던 아버지로부터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726년 밀라노의 산 암브롤리오(San Ambrogio) 교회의 보조 악대장으로 그리고 1728년에는 악대장이 된다. 그 이후 다른 밀라노 교회의 음악책임을 맡았다. 그는 밀라노의 음악계에서 영향력 있는 음악가였다. 교회음악이나 세속음악에서 그가 참여하지 않은 음악적 모임은 거의 없었다. 1730년대에 그의 명성은 이태리 밖으로까지 퍼졌다. 그는 1737-1741년 글룩에게 작곡을 가르쳤다. 1758년 음악동호회(Accademia filarmonica)를 설립했다. 1750 이후에 수많은 젊은 작곡가들이 그를 만나거나 같이 일하기를 원했다. 요한 크리스찬 바흐(J. Chr. Bach)가 1754-62년 밀라노에 머물면서 그와 교류했다. 보케리니(L. Boccherini)는 삼마르티니가 지휘하는 음악회에서 연주했다. 어린 모차르트가 그를 찾아왔다. 삼마르티니는 오페라, 교회음악 등을 썼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심포니였다.
그는 이태리 작곡가로서는 특이하게 오페라를 3편 밖에 작곡하지 않았고, 그 대신 70여곡에 달하는 심포니를 남긴 기악 작곡가였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그의 기악 작품은 이태리 바깥에서, 즉 런던, 빠리, 독일 등지에서 그의 작품들이 연주되고 악보들이 베껴졌다. 밀라노에서는 그가 중요한 작곡가로 주목받았으나, 이는 주로 교회음악에 관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가 브리오스키(Antonio Brioschi), 갈림베르티(Ferdinando Galimberti), 람푼냐니(Giovanni Battista Lampugnani) 키에자(Melchiorre Chiesa)와 같은 밀라노 작곡가들을 거느리는 심포니 악파를 형성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 대립된다. 악파가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좀 과장된 것으로 보이는데, 당대에 오페라와 상관없는 심포니를 다량으로 작곡한 삼마르티니는 일종의 예외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삼마르티니의 기악작품들은 흔히 세 시기로 구분된다.
①초기-1740년경까지
바로크와 초기고전주의적 음악이 혼합된 양식으로 북이태리 양식, 특히 비발디의 영향이 보인다. 대체적으로 호모포니이다. 일종의 소나타 형식이 알레그로 악장에 자주 사용되었다. 느린 악장과 미뉴엣에는 두부분 형식이 사용되었다.
②중기 1760년경까지
바로크적 특징들이 사라진다. 모든 악장들이, 특히 미뉴엣까지 소나타형식을 사용한다. 악장들은 더욱 커지고 테마활용이 많아진다.
③말기-1775년까지
완숙한 고전적 음악을 보여준다. 긴 주기를 사용하고, 변화많은 화성과 호소력있는 서정성을 보여준다. 이런 특징은 심포니 악장들에서도 나타난다. 변화많은 약간 대위법적 악곡에서는 모티브들이 모방되고, 결합되고 상호 교차한다.
심포니의 역사에서 삼마르티니의 작품은 큰 의미를 갖는다. 큰 의미를 갖는 것은 초기의 심포니에도 있다. 1732년 오페라 『메메트』(Memet) l-2막과 3막 앞에 사용된 두 개의 기악곡이 그것이다. 가장 오래된 4악장의 심포니는 3개의 악장에 미뉴엣(종악장)이 달린 것이다. 19개의 초기 심포니는 3-4성부의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것이다. 3악장으로 되어 있고 미뉴엣(종악장)을 가지고 있다. 1악장들은 거의 소나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여러 테마, 긴 전개부, 명확하게 구분되는 재현부를 보여준다. 삼마르티니는 심포니에 콘체르토의 아다지오 악장을 사용했고, 빠른 3/8박자가 아닌, 3/4박자 미뉴엣을 사용했다. 2/4 박자의 안단테, 2/4박자 또는 3/8박자의 종악장을 자주 볼 수 있다. 특이하게도 느린 악장을 길게 만들어 많은 표현을 부과한 것은 당시의 다른 오페라 서곡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중기에 작곡된 심포니들은 대체적으로 현악기와 두 개의 호른으로 편성되었다. 후기의 것은 3개의 오보에, 2개의 바이올린, 비올라를 갖는 경우도 있다. 삼마르티니는 성부교차도 사용하고 제1과 제2바이올린 사이에 모방적이지 않은 대위법을 사용한다. 대조적인 모티브는 흔히 제2바이올린에 나타나지만 제1바이올린의 구성에 묶여 있다. 대체로 3악장+미뉴엣(종악장)의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2악장(알레그로- 미뉴엣)으로 된 것도 있다. 여러개의 테마들은 유연한 소나타 형식으로 묶인다. 테마들은 바뀐 순서로 변주되며 반복된다. 재현부는 보통 새로운 구성으로 나타난다. 제1악장은 짧은 음형으로 선적 흐름에 계속성을 부여하고 서로 분리되는 주기들을 아우른다. 규칙적이고 불규칙적인 주기들은 구조적 관련성을 강화한다. 삼마르티니는 느린 악장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서정성이 짙은 음악이 되도록 노력한다. 많은 곡들이 단조이고 한숨의 모티브를 사용하고 감정적 경향의 반음계 변화도 사용한다.
삼마르티니의 실내악(기악 트리오)은 이른바 갈랑(galant) 양식의 음악으로 분류된다. 장식성이 많은 선율과 변화많은 리듬, 두 상성부가 대등한 연주를 하는 부분과 화성적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흔히 2 또는 3악장에 미뉴엣(종악장)이 따른다. 이런 음악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2악장 구조의 6개의 『밤의 소나타』(Sonata notturna)들이다. 『4성부 콘체르티노』(Concertino a 4)는 대위법적 성격의 곡이다. 삼마르티니의 콘체르토들은 그의 초기 작품에 속하고 후기 바로크적인 특징을 반영한다.
삼마르티니의 교회음악은 전해진 것이 많지 않다. 최소 35개의 칸타타 중 8개만 현재 전해온다. 칸타타의 레치타티보 중에는 감화음, 반음계, 불협화음 등을 사용하는 경향도 보이는 반면, 다 카포 아리아 사정성이 풍부한 선율로 되어 있다.
삼마르티니가 “심포니의 창조자”라고 주장되는 경우가 있다. 위의 서술 내용은 이런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보는 삼마르티니가 반영되어 있다. 이 주장이 맞다고 하면 이른바 “심포니의 아버지”로 알려진 하이든의 입장이 더 약화된다. 이 논의에는 국가적 자존심도 섞여있다. 하이든을 주장하는 사람은 독일계 음악학자들이고, 삼마르티니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태리 음악학자들이다(예: Fausto Torrefranca 등). 두 주장 다 자신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하이든도 살아 생전에 ‘당신의 음악에는 삼마르티니가 들립니다’ 또는 ‘당신은 삼마르티니의 후계자입니다’와 유사한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듣고 하이든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응수했다고 한다[Stefan Kunze 146]
심포니의 형성에 -예를 들어 만하임 악파 등의 전고전주의자들의 음악보다- 이태리 오페라 심포니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 독일학자들도 이견을 다는 사람이 지금은 거의 없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삼마르티니가 심포니의 창조자라고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은 아직 있다. 스테판 쿤체도 그러한 의견을 가진 사람인데, 그 이유는 삼마르티니의 소나타 형식이 소나타 형식으로 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전개부(발전부)의 비중이 너무 약하여 이를 발전부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Stefan Kunze, 143-154]. 이런 의견은 하이든이 정립한 심포니의 입장에서 삼마르티니를 보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편 삼마르티니는 오페라와 상관없는 독립적인 기악곡으로 심포니를 썼다는 면에서 보면 “심포니의 창조자”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 물론 이 “심포니”는 하이든의 완숙기 심포니와는 거리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고문헌
Bathia Churgin/Newell Jenkins: Giovanni Battista Sammartini 항목, [MGG](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Bd. 11, S. 1336) Sammartini (Familie), 또는 Digitale Bibliothek Band 60: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S. 65614, Bärenreiter-Verlag, 1986.
Bathia Churgin: Giovanni Battista Sammartini 항목,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Second Edition 권22, London 2002.
Stefan Kunze: Die Symphonie im 18. Jahrhundert, Handbuch der musikalischen Gattungen, Band 1(편찬: Siegfried Mauser), Laaber 1993. 146쪽.
등록일자: 2005-10-27
홍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