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하이머(Paul Hofhaimer)
1459년 1월 25일 라트슈타트(타우어른 지방)에서 출생, 1537년 잘츠부르크에서 사망.
오스트리아의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호프하이머는 오르가니스트 집안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에게서 첫 수업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라피치다(E. Lapicida)의 제자였던 것으로 보이며, 잠시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그라츠 궁정에서 활동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480년에는 인스부르크에서 지그문트(Sigmund) 대공의 궁정오르가니스트가 되었으며, 1490년부터는 막시밀리안이 그곳의 통치를 넘겨받자 그에게 봉사하였다. 궁정악단의 여행을 통해 그는 중요한 인물들을 만났는데, 예로서 1486년에 프랑크푸르트에서 슐릭(A. Schlick)을 만났고 1494년에는 안트베르펜에서 선제후 프리드리히를 만나 그를 작센으로 동행한 것을 들 수 있다. 이후에도 그는 선제후를 반복적으로 방문하였다(1498, 1516). 세기전환기에는 황제의 궁정악단과의 관계가 느슨하여져, 1502-06년에는 파싸우의 대주교에게서 봉사하였다. 1508년에는 뮌헨의 궁정악단에도 잠시 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508-18년에 그는 고정된 자리 없이 아우구스부르크에서 머물며 황제 막시밀리안 1세를 섬겼으며, 1519-21년에는 다시 파싸우에서, 그리고 늦어도 1524년부터는 살츠부르크의 대성당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였다. 호프하이머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위대한 오르간연주자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그의 역사적인 위대성은 무엇보다 “장식적인 오르간기법”을 발전시킨 중요한 작곡자들을 길러낸 교육자로서의 활동에 기인한다. 그의 대표적인 제자들에는 부흐너(Buchner), 코터(Kotter), 브루만(Brumann), 쉐힝어(Schechinger), 그레핑어(Grefinger), 오이아르트(Oyart) 등이 속한다. 이 외에도 베니스 산 마르코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멤모(D. Memmo)도 들 수 있다. 호프하이머는 개개성부들의 장식들을 통해 멜리스마적인 효과들을 일으키는 성악과 기악작품들을 주로 작곡하였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오르간이나 류트를 위한 여러 태블러추어(예, 지혀나 슐릭, 코터의 태블러추어)와 노래책들(예, 외글린의 노래책) 그리고 수서본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등록일자: 2005-11-04
나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