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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Schein, Johann Her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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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인, 요한 헤르만(Schein, Johann Hermann, 1586-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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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곡가. 목사인 부친 사망 이후 1593년 드레스덴으로 이주하여, 13세인 1599년 드레스덴 의 작센 선제후의 궁정예배당에서 소년성가대원의 소프라노로 노래했다. 1603년 포르타 신학교 (Schulpforta)와 1607년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수학했다. 1613년 바이젠펠스 귀족의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H. 쉿츠를 알게 되었다. 23세에 라이프치히에서 그의 최초의 작품인 5성부『비너스의 화환』(Venus-Kräntzlein)를 썼으며, 바소콘티누오를 가진 다성부 협주곡 1권 『새로운 작품』(Opella nova)를 1618년 출판. 1615년 라이프치히에서 출간된 『시온의 침발룸』 (Cymbalum Sionium)은 그의 최초의 종교곡이며, 30개의 모테트의 가사는 성경에서 가져왔으며, 라틴어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 당시 그는 바이마르 궁정의 지휘자로 봉직하고 있었다. 1616년 이후 라이프찌히의 토마스 학교의 칸토르로 평생 재직했다. 17세기의 이른바 3S - 쉿츠(1585-1672), 샤이트 (1587-1654), 샤인- 중 한 명이다. 그는 부르고뉴 악파의 각 성부가 동등한 무게를 지닌 성악적 다성음악의 전통을 이태리적 콘체르타토 기법과 마드리갈 양식에 접목시켰다. 샤인은 이태리 마드리갈을 교회음악에도 도입하여 『이스라엘의 샘』(Israelsbrünnlein)을 작곡했다. 그의 최후의 『종교곡 칸티오날』(Cantional 1627년)은 루터교 찬송가를 편곡하여 소프라노에 주선율을 두고 4성부 화성을 넣는 방식을 선보였다. 그는 기악곡에 많은 작품들을 남겨 놓지 않았으나, 1617년에 출간한 『음악의 잔치』(Banchetto musicale)에는 -자신이 비록 모음곡이라고 명명하진 않았지만- 다양한 모음곡 형태를 보여주고 있어 모음곡에 관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이 작품집에는 파바느(pavane), 가야르드(galliard), 쿠랑트(courante), 알르망드(allemande)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는 종교 성악곡, 세속 성악곡, 모테트 교회협주곡, 교회성가곡, 마드리갈, 모음곡과 장례식용이나 결혼식에 필요한 행사용 음악들도 다수 작곡했다.

등록일자: 2005-02-01
이화병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샤인, 요한 헤르만(Schein, Johann Hermann, 1586-1630) 
 
- 1586년 독일 작센(Sachsen)주의 그륀하인(Grünhain)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출생.  
- 1599년 드레스덴(Dresden) 궁정합창단의 소년단원으로 들어가 음악교육을 받음.  
- 1603-1607년 변성기가 지나면서 선제후 크리스티안 2세의 지원으로 소속학교인 포르타(Schulpforta)의 신학생이 되어 인문교육을 받음. 
- 1608-1612년 작센의 궁정성가대의 장학금을 받고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함. 학업을 하며 병행했던 예술분야가 생에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됨. 
- 1613년 포르타학교를 같이 다녔던 볼퍼스도르프(Wolffersdorf)의 요청으로 바이센펠스(Weissenfels)의 볼퍼스도르프가(家)의 음악교육자로서 활동함. 또한 작곡가 쉬츠(H. Schütz)를 만남. 
- 1615년 볼퍼스도르프의 소개로 바이마르(Weimar)의 궁정 음악장이 됨. 
- 1616년 바이마르의 음악장 자리는 곧 사임하고 칼비시우스(S. Calvisius)의 후임으로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Thomaskirche)의 칸토르가 되어 인문학과 음악교육을 맡음. 같은 해 작센의 선제후의 비서관 회셀(Hösel)의 딸인 지도니아(Sidonia)와 결혼. 
- 1617년부터 토마스 교회뿐 아니라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Nikolaikirche)의 칸토르로 활동함. 
- 1625년 첫 번째 부인 지도니아가 1624년 세상을 떠난 후 화가 폰 데어 페레 (J. v. der Perre)의 딸 엘리자베스(Elisabeth)와 재혼함. 
- 1630년 통풍, 결핵 등의 증세가 약 1626년부터 나타나 서서히 기력을 잃게 되어 44세의 나이로 라이프치히에서 사망.  
  
  샤인은 독일인이었지만 당시 새로운 이탈리아의 작곡방식들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반영한 다양한 모습을 가진 작곡가였다. 특별한 것은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을 본 고장에서 배우기 위하여 이탈리아에 다녀오거나 그 곳에서 음악활동을 한 작곡가들과 비교할 때, 샤인은 이탈리아의 새로운 음악어법을 받아 작곡을 하였지만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은 없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전해져 오는 악보들만으로 음악을 접하고 연구하여 자신의 곡을 만들었다. 작곡가인 샤인에게 또한 뛰어났던 것은 시적인 능력으로 그의 작품의 가사들 중 성경에서나 기존 노래집에서 차용해오는 것이 아닌 것들은 거의 모두 직접 쓴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마드리갈과 노래가사들은 초기 바로크 시대 독일의 시문학분야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교회음악뿐 아니라 세속음악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낸 부지런한 작곡가로 평가되는 샤인의 작품들은 결혼식이나 장례 등 특정한 목적을 위한 곡들로 우선 만들어져서 나중에 개작하는 과정을 거치고 또 추가로 작곡한 곡들을 덧붙여, 같은 양식의 다수의 작품들을 하나의 모음집으로 묶어 출판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외에 모음집에 함께 인쇄되지 않은 개별 작품들과 작곡되지 않은 시들을 남기고 있다. 
  샤인의 작품들은 교회성악음악과 세속성악음악, 행사를 위한 곡들, 기악곡들로 구분된다. 교회성악음악은 17C초 기독교 독일에 퍼져있던 형식과 장르를 대변하고 있는데 단순한 또는 수준 있는 칸티오날 형식, 다중합창 모테트, 종교 마드리갈 등의 옛 양식과 계속저음을 포함한 크고 작은 편성의 협주곡형식이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고 있다. 우선 모음집형태로 출판된 그의 교회성악음악작품집은 연대순으로 ≪시온의 심벌즈≫(Cymbalum Sionium, 1615), ≪오펠라 노바≫(Opella nova, 1618, 1626), ≪이스라엘의 분수≫(Israelsbrünnlein, 1623), ≪칸티오날≫(Cantional, 1627)이 있다. 당시 그의 음악이 인정을 받고 있었다는 것은 많은 세속음악과 교회음악의 모음집 출판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1617년부터 샤인은 자신의 작품들을 매년 거의 직접 출판했다.
  1615년의 ≪시온의 심벌즈≫은 그가 대학시절 학업과 병행하며 작곡한 ≪비너스 화환≫(Venus Kränzchen, 1609)을 잇는 첫 모음집으로 동시에 작곡가로의 전문성을 외부로 나타낸 첫 번째 작품집이다. 출판시기는 볼퍼스도르프를 통하여 바이마르의 에른스트(J. Ernst) 공작의 궁정 음악장으로 있을 때였지만 당시 빌헬름(Ch. Wilhelm) 후작 등의 귀족들과 샤인에게 영향을 준 프레토리우스(M. Praetorius)를 비롯한 궁정악단의 음악을 듣기도 하였던 샤인은 이 곡을 후작 빌헬름에게 헌정하였다. ≪시온의 심벌즈≫은 전통적인 5성부 내지 6성부의 모테트에서 벗어난 5성부에서 12성부까지 확대된 30곡의 성악곡과 마지막에 기악 칸초나를 덧붙여 31곡을 수록하여 출판하였다. 라틴어와 독일어가사가 절반씩이며 성탄절을 비롯하여 부활절 등 교회의 축제기념, 결혼식, 예배, 장례, 궁정선거 등 1609년부터 1615년까지의 이러한 행사 등에 함께 한 샤인의 음악활동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후기 네덜란드 악파나 프레토리우스에게서의 영향 등을 볼 수 있는 다양한 곡들을 모은 작품집이다. 대위법과 다중합창형식을 여러 가지로 다르게 시도하고 마지막 시편작곡에 있어서 편성을 각 절마다 다르게 한다든지 하는 독특함도 보이고 있다. 
  성악콘체르토 모음집인 ≪오펠라 노바≫는 1618년과 1626년에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출판되었다. 이 장르의 초기 대가로 알려진 이탈리아 작곡가 비아다나(L. Viadana)의 영향을 받아 같은 형식을 작곡했다고 제1집의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모음집은 계속저음 부분을 포함한 성악콘체르토 형식의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다. 이를 통해 샤인은 독일에서 이와 같은 형태를 시도한 선구자 중의 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 30곡이 수록되어 있는 1618년의 ≪오펠라 노바≫ 제1집에서 샤인이 선택한 편성은 두 가지로, 소프라노 두 성부와 저음악기, 이 두 성부에 테너 한 성부를 더하고 저음악기를 포함하는 성부구성이다. 소프라노 두 성부를 위한 곡인 경우 저음악기가 고정선율을 제공하고 테너 성부가 더해진 편성에서는 테너가 장식 없는 코랄선율을 노래하게 한다. 두 편성방법에서 모두 저음악기의 역할은 성악성부의 전개를 따라가지 않고 기악적인 뒷받침을 해주는 데 여기에 오르간이나 쳄발로와 같이 화음을 풍부하게 넣어줄 수 있는 악기들로 이러한 기악뒷받침을 더욱 강화해 준다. 1626년의 ≪오펠라 노바≫ 제2집에서는 독일어와 라틴어의 잠언과 시편구절들, 또 동시대의 독일시 작곡 등 32곡을 포함하고 있고 편성과 형식의 변형들이 나타난다. 새로운 것은 무엇보다도 필수 기악성부인 저음성부가 파곳이나 트럼본 등의 확실한 악기로 결정되어있는 것이다. 같은 두 성부를 위성부로 하여 6성부까지의 편성이나, 성악 한 성부와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기, 플루트, 파곳의 목관, 트럼펫 등의 금관 등이 각기 다른 결합을 가지면서 편성되는 조금 더 큰 기악앙상블이 포함되어있다. 곡의 서두 부분의 신포니아, 리토르넬로 등의 기악부분을 쓰고 있는 곡들도 다수 포함되어있다. 
  ≪오펠라 노바≫ 제1집 다음에 출판한 ≪이스라엘의 분수≫(Israelsbrünnlein, 1623)는 ≪시온의 심벌즈≫에 이은 두 번째이자 이 장르에서는 마지막이 된 종교적인 ‘마드리갈 모테트’ 모음집이다. 이탈리아 마드리갈 표현방식을 독일의 모테트 형식과 정교하게 결합시킨 것으로 샤인의 그림음악적인 가사표현의 절정을 보여주는 26곡의 모음집이다. ‘이스라엘의 분수’라는 제목은 샤인이 지었으며 가사들은 23곡을 구약성서에서 한 곡을 신약성서에서 나머지 두 곡을 자신의 시에서 가지고 왔고, 편성은 6성부인 마지막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5성부와 계속저음부가 편성되어 있다. 저음부는 거의 ‘밧소 세구엔테’(Basso seguente)의 형태이다.  
  ≪이스라엘의 분수≫이후 가장 방대한 수의 교회음악곡을 포함하고 있는 모음집 ≪칸티오날≫(Cantional)은 ≪칸티오날 또는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 노래집≫(Cantional, Oder Gangbuch Augspurgischer Confession)이라는 이중제목으로 1627년에 제1집이 출판되었고, 샤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토마스교회의 칸토르 자리를 이어받은 미하엘(T. Michael)에 의해 1645년에 제2집이 출판되었다. 제1집은 286곡과 샤인의 것이 아닌 12편을 포함한 228편의 가사로 구성되어 있고, 제2집은 실제로 작곡되지 않은 가사만이 있는 한 곡을 포함해서 27곡이 함께 인쇄되었지만 그 중 샤인의 것은 22곡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곡은 출판을 했던 미하엘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칸티오날≫은 샤인의 총 308곡이 수록되어 있는 방대한 마지막 종교출판물로 기록된다. 제1집은 반주 없는 전통적인 4성부의 찬송가 악보가 대부분이고 부분적으로 5성부와 저음악기를 통한 반주가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반면 제2집은 모두 5성부의 반주 없는 찬송가 또는 성가곡 악보집이다. 샤인은 여기에서 처음으로 베이스성부에 계속저음 숫자표시를 써 넣고 있는데 가장 낮은 성부가 기악적인 반주의 역할, 또한 독주로 연주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샤인은 자신도 45세를 넘기지 못했고, 또한 결코 다복하다고 할 수 없는 가족사를 가졌다. 첫 번째 결혼에서 세 딸과 아내, 두 번째 결혼에서 다섯 아이 중 적어도 넷을 잃었는데, 이러한 가족의 슬픔을 표현하는 비가(悲歌)들을 이 ≪칸티오날≫에 포함하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교회성악음악과는 그 숫자에서 대조를 이루지만 샤인의 첫 작품집은 종교성악작품이 아닌 학생시절 작곡한 세속성악음악인 위에 언급한 ≪비너스 화환≫(1609)이었다. 1616년부터 직무를 맡았던 토마스 성당의 칸토르는 그 이후에 이로부터 약 1세기 후에 임무를 맡아 하게 되는 J. S. 바흐에게도 이어졌듯이 샤인에게 단지 교회음악만을 작곡하게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교회음악과 세속음악을 번갈아 가며 출판했는데 ≪비너스 화환≫에 이어지는 세속성악모음집은 ≪숲의 노래≫(Musica boscareccia, 1621, 1626, 1628), ≪목동의 즐거움≫(Diletti pastorali, 1624), ≪학생 만찬≫(Studenten-Schmauß, 1626)이 있다. 
  ≪비너스 화환≫은 4성부의 이중 형식인 8성부의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5성부인 17곡의 사랑노래와 인트라다(Intrada), 갈리아르다(Galliarda), 칸초네(Canzone)의 기악곡 8곡을 포함한 모음집인데 젊은 샤인이 이탈리아의 작곡가들이나 특히 독일의 하슬러(H. L. Hassler)를 모범으로 하여 작곡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곡들은 대부분 짧은 반복형의 노래로 호모포니 중심인 단순한 형식의 곡들이다. 또한 가사들 다수를 자신이 직접 쓸 정도로 시에 재능이 있었다. 그는 당시 유행했던 이합체(離合體, 도.Akrostichon) 시도 상당수 썼는데, 이는 행이나 각 절의 첫 글자를 합하여 일정한 단어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비너스 화환≫에 수록된 노래≪지금 내가 비교하자면≫(Itzund ich mich vergleiche)이라는 노래는 모두 7절로 되어 있는데, 각 절의 첫 글자를 모으면 IVSTINA(오늘날 표기: Justina)라는 여자이름이 된다. 그는 이런 말놀이에 능했다.  
1626년에 출판된 노래모음집 ≪학생 만찬≫은 ≪비너스 화환≫과 유사하게 짧고 호모포니적인 다섯 곡의 음주가(飮酒歌)들을 모은 것으로 역시 5성부이고 저음악기가 포함된 편성이다. 
  ≪비너스 화환≫과 ≪학생만찬≫의 단순한 노래와는 달리 이어지는 ≪숲의 노래≫는 콘체르토 형식이다. 샤인은 당시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음악인 ‘빌라넬라’(Villanella)를 모음집 자체의 부제로 넣고 있는데, 그는 여기에서 이탈리아 나폴리의 단순한 민속 다성노래 형식에서, 같은 두 성악성부와 저음부를 가진 3성부를 유지하며 계속저음부를 첨가하여 확대 변화시켰다. 이렇게 하여 콘체르토 성격을 가진 빌라넬라 곡들을 쓴 것이다. 샤인은 가사를 가지고 있는 저음성부가 기악적으로 연주될 수도 있다고 확실하게 언급하고 있다. 음악은 자주 사용했던 칸초네 형식이며 콜로라투라를 두드러지게 사용하는 것이 눈에 띈다. 1621년에 첫 출판된 이 모음집이 상당한 호응을 받아 샤인은 1626년 같은 편성의 다른 16곡, 1628년에도 같은 편성의 18곡을 가지고 추가로 출판하였다. 더욱이 제1집의 경우 샤인의 사후인 1644년에 종교적인 제목으로 대체되어 출판되기도 하였다. 
  ≪숲의 노래≫(1621)의 제1집이 나온 후에 이어서 출판된 ≪목동의 즐거움≫은 5성부의 세속 마드리갈곡집이다. 이 모음집을 구성하고 있는 15곡은 샤인이 모두 행사를 위해서 쓴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5성부에 계속되는 밧소 세구엔테의 저음부는 종교 마드리갈곡집인 ≪이스라엘의 분수≫와 비견할 만한 것이다. 이 외에 샤인은 라이프치히에서 처음부터 귀족계층의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모음집에 넣지 않은 결혼과 장례의 성악음악들을 작곡하였는데 이 부분의 110곡의 성악곡들은 부분적으로 단편만이 남아있거나 미완성의 형태, 또 소실된 곡들도 많다. 장례식을 위해서는 칸티오날 형태(찬송가 편곡)의 곡을 쓰거나 4성부에서 6성부까지의 독일 종교 마드리갈을 작곡하였고 결혼식을 위해서는 ≪숲의 음악≫이나 ≪목동의 즐거움≫ 형식의 곡을 즐겨 작곡하였다. 
  샤인의 유일한 기악곡집인 ≪음악의 잔치≫(Banchetto musicale)는 1617년에 출판되었다. 이미 바이센펠스와 바이마르에서 작곡한 것으로 보이고, 토마스교회의 칸토르가 되어 떠나면서 소속되어있던 바이마르 궁정의 에른스트 공작에게 헌정되었다. ≪음악의 잔치≫에 수록된 기악곡은 모두 모음곡(Suite)으로 공통적으로 파반느, 가야르드, 쿠랑트, 알르망드와 뒤따르는 트리플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세 곡은 5성부, 뒤의 두 곡은 4성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성부들 간의 두드러지는 대비보다는 같은 음악적 동기를 변화시켜가며 대위법적인 성부진행을 보이는 거의 칸티오날식의 진행을 보이는 기악곡들이다. 샤인은 이탈리아의 음악이 아니라 영국음악이나 독일음악을 기악곡의 모범으로 삼았고 이 모음곡들은 이미 언급한 ≪비너스 화환≫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8곡의 기악곡을 포함하여 당대의 의미 있는 기악작품들일 뿐 아니라 새로운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샤인은 쉬츠, 샤이트(S. Scheidt)와 함께 17C 전반 독일의 음악계를 이끈 당대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불렸고, 독일 세속음악의 기초를 마련한 사람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그의 이른 죽음 이후에도 그의 작품들은 1651년까지 계속 인쇄되었을 뿐 아니라 연주되었다. 
 
참고문헌
 
Möller, E. “Neue Forschungsergebnisse zum Schaffen des Leipziger Thomaskantors Johann Hermann Schein (1586-1631).” Wissenschaftliche Zeitschrift der Pädagogischen Hochschule Zwickau, 2(1991), pp. 169-182.
Prüfer, Arthur. Johann Hermann Schein. Kassel, 1989(aus der Originalausgabe vom Jahr 1895).
Rauhe, H. Dichtung und Musik im weltlichen Vokalwerk Johann Hermann Scheins. Hamburg, 1959.
Seedorf, Thomas. “Johann Hermann Schein.” Metzler Komponisten Lexikon, Stuttgart, 1992. 
Werbeck, Walter/Theis, Claudia. “Johann Hermann Schein.”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Personenteil 14, Kassel, 2005.

등록일자: 2010.1.14 
[한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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