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야(Manuel de Falla 1876Cádiz-1946Alta Gracia)
파야는 1876년 11월 23일 카디츠(Cádiz)에서 태어나 1946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Córdoba) 지방 알타 그라시아(Alta Gracia)에서 사망했다. 파야의 작곡과정은 4가지 시기로 설명된다. 첫째, 작곡발전시기(1902년까지), 둘째, 민족주의적 양식의 그 첫 번째 대곡들이 작곡된 시기(약 1902-1920년), 셋째, 신고전주의 양식의 시기(약 1920-1930년), 넷째, 아르헨티나시기(약 1930-1946년)를 말한다.
그는 마드리드 콘서바토리에서 트라고(José Trago)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1898년과 1899년에는 각각 콘서바토리의 상을 수여받았다. 1901년과 1902년 사이에 다양한 장르의 작곡을 시도했으나, 그중에서 단지 『이네스의 사랑』(Los amores de la Inés)만이 연주되었다(1902). 그는 1902년부터 알베니츠(I. Albéniz)와 스페인 민족주의의 창시자 그라나도(E. Granado)에게서, 그리고 특히 그를 “보편적 민족주의”의 방향으로 돌리게 했던 페드렐(F. Pedrell)에게서 공부했다. 이시기의 다른 중요한 사건은 루카스(Louis Lucas)의 책 『새로운 음향학』(L'acoustique nouvelle, Paris, 1854)의 발견이었다. 이 책에서는 배음을 기초로 하는 화성이 구상되어 있는데, 이것은 후에 파야의 작곡기법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파야는 1902년에 2개의 소곡 Tus ojillos negros와 Allegro de concierto를 작곡한 후 1904-1905년에 그의 첫 번째 대규모 오페라 『짧은 인생』(La vida breve, Nizza 1913)을 작곡했는데, 특히 그는 이 작품으로 인해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오페라는 2막 구성으로 페르난데즈 쇼(Fernandez-Shaw)의 대본에 의한 것이며, 민속적 요소, 화려한 악기편성, 강한 통일성, 이탈리아적인 베리스모 양식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그는 1907년부터 파리에 머물게 되면서 다른 수많은 스페인 작곡가들처럼 파리를 제2의 고향으로 삼게 된다. 파리에서 뒤카, 드뷔시, 라벨, 알베니츠 등을 알게 되며, “보편적 민족주의”의 구상에 착수한다. 이러한 그의 기본양식은 피아노를 위한 작품 Piezas espanolas(1902-08)에서 나타나며, 단순성과 확실함, 선의 투명함, 표현성과 지향성, 전체에 귀속되는 세부사항 등이 그 특징이다. 이 시기의 또 다른 중요한 작품들로는 인상주의적이면서 프랑스 음악에 가까운 『세개의 멜로디』(Tres melodías, Théophile Gautier, 1909)와 성악과 피아노를 위한 『여섯개의 노래』<las siete="" canciones="">(1915) 들 수 있다. 이 작품의 텍스트는 옛 스페인 가곡모음집에서 따왔으며, 피아노성부는 성악선율을 기초로 하는데, 페드렐과 특히 루카스에게서 발전된 이론을 사용한다.
그 다음은 파야의 예술적 성숙기로서 『스페인 정원의 밤들』(Noches en los jardines de Espana, 1911-15), 『사랑의 마술사』(El amor brujo, 1915), 『삼각모자』(El Sombrero de tres picos, London, 1919)의 작품들로 절정에 이른다. 『스페인 정원의 밤들』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모음곡으로서 양식적으로는 인상주의를 기초로 하며, 넓은 의미의 스페인 민속음악의 위치를 고수한다. 이 작품은 전체 3부분으로 나뉘고 각 부분은 시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표제음악은 아니다. 형식적으로 피아노협주곡으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의 피아노는 많은 오케스트라 악기들 중에 하나로서 가끔 중요한 역할을 할뿐이다. 시에라(Martínez Sierra)의 텍스트에 기초한 El amor brujo는 춤, 노래, 레치타티보(뒤이어 발레가 옴)가 함께하는 집시곡이다. 이 곡은 안달루시아 집시들의 비극적인 삶에서 나온 환상을 묘사한 것이다. 음악의 기본요소는 리듬이며, 전체 오케스트라가 하나의 큰 리듬악기로 변환된다. 『삼각모자』는 발레곡으로서 전원적이고 유머스러운 안달루시아 음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대본은 알라르콘(Pedro Antonio de Alarcón)의 것이다. 이 작품은 원래 El corregidor y la molinera라는 제목의 판토마임이었으나, 디아길레프(S. Diaghilev)의 충고로 발레로 바뀌었고, 런던에서의 초연의 무대배경과 의상들은 파블로 피카소에 담당했다. 민속음악 요소들의 인용들은 직접적이고 보다 자주 사용되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신고전주의적인 요소들도 나타난다. 스트라빈스키의 영향은 악기편성에서 강하게 나타나며, 또한 이미 스카를라티의 영향도 함께 선보이면서 다음시기를 예고해준다. 이 시기의 마지막 작품인 피아노를 위한 안달루시아 판타지(La fantasía Bética, 1919)는 루빈스타인(Arthur Rubinstein)의 위촉작품이다. 이 작품은 극단적 음향절약기법을 사용한다. 스페인 음악에서 자주 나오는 2개의 교회선법인 프리지아와 에올리아 선법에 기초한다. 그의 음향적 상상력은 피아노에서 출발한다. 파야의 그라나다 생활이 시작되는 이 시기에는 또한 기타를 위한 『드뷔시에 헌정』(Homenaje a Debussy, 1920)가 생성되었다.
1919년부터 1922년까지는 아주 새로운 작품, 즉 신고전주의시기를 여는 작품인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El retablo del maese Pedro, 파리 1823)이 탄생된다. 이 작품은 불멸의 인물 돈키호테를 기초로 하며, 이로써 안달루시아를 벗어나서 카스티야 지방색을 지향한다. 즉 영감적인 요소들은 민속적 종교적 음악, 그레고리오 성가적인 노래들, 거리의 외침, 로만스(민요조 설화시) 등이다. 음향적 재료는 아주 절약적이지만, 그 효과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페드로 주인의 인형극』이후 2년이 지난 1924년에 파야는 성악과 5개의 악기들을 위한 『프시케』(Psyche)를 작곡한다. 이 작품은 분명한 18세기의 신고전주의 양식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은 『클라비쳄발로와 다섯 악기를 위한 콘체르토』(Concerto para clavicembalo y cinco instrumentos, 1923-26)의 작품으로 끝이 난다.
이후에 몇 개의 소규모 작품들인 『코르도바의 소넷트, 마요르카의 발라다』(Soneto a Córdoba, Ballada de mallorca) 또는 Fanfarria sobre el nombre e Arbós(1934) 등이 작곡된다. 이시기에 파야는 스페인을 떠나 아르헨티나에 거주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그의 모음곡인 오케스트라를 위한 Homenajes가 초연된다. 아르헨티나의 시기에 가장 중요한 작품인 『아를란티다』(La Atlántida, 1926-46)는 솔로들, 합창, 오케스트라를 위한 대규모 오라토리오로서 카타로니아 시인 베르다게르(Jacinto Verdaguer)의 텍스트에 기초한 것이다. 이 작품은 벌써 오래전에 작곡을 시작했으나, 결코 완성되지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그의 추종자 알프터(Ernesto Halffter)에게 양도되었다. 이 오라토리오는 대서양의 가라앉은 섬에 대한 신화에 기초한다. 알프터가 이 작품의 제1버전을 완성하여 1961년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되었으며, 제2버전의 최종본은 1976년에 루체른 페스티발에서 연주되었다.
등록일자: 2005-02-07
김정숙</l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