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인명
루치아노 베리오 [Berio, Luciano]
7,709회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2003)

977803507_1520391176.4536.jpg


이탈리아 출신의 루치아노 베리오는 음렬주의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1950년대 초부터 작곡가로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유럽 음악계를 주도하였던 작곡가 및 연주가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활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이미 초기의 음렬주의적인 시도에서 뿐만 아니라, 1960~70년대를 거치면서 더욱 더 계속적으로 독자성을 유지하며 음악계의 주류적 양상과는 구별되는 상당히 개인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베리오의 음악에 나타난 가장 독자적인 특징은 특히 인성(人聲)에 관한 새로운 시도로,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음성학적 · 극적인 요소가 보이며 70년대부터는 음악극을 통해 이러한 특징을 더욱 구체화 하였다.

1. 오넬리아 시기(1925~1944)
베리오는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Liguria) 연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 오넬리아(Oneglia)의 전통 있는 음악적 가문의 출신이었다. 그의 조부(Adolfo Berio, 1847~1942)와 부친(Enesto Berio, 1883~1966)은 둘 다 그 지역에서 활동한 오르간 연주자 겸 작곡가였는데,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음악활동을 했던 이 두 사람의 영향이 베리오의 성장과정에서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를 예찬했지만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를 경시했던 조부가 창작과정에서 영감이나 상상력보다는 실제적인 면을 중시여기며 나름대로 독창적인 폴카,왈츠,미사 등을 작곡했던 반면, 밀라노에서 정규 음악교육을 받고 어릴 적부터 음악가로서 활동을 시작한 부친은 교향시,오르간 음악,미사뿐만 아니라 수많은 성악 작품들을 작곡했던 야망 있는 음악가였다. 베리오가 부친의 작품들이 풍부한 감정표현에서는 뛰어났지만, 그의 음악적 야망으로 조부가 보여준 음악적 독창성에는 미치지 못하였다고 아쉬움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가히 그의 음악적 경향을 짐작케 한다.
오넬리아에서의 유년기 동안 베리오의 주된 음악적 경험은 오페라와 실내음악에 있었다. 음악회를 접하기 힘든 오넬리아에서 외부 음악세계를 유일하게 경험하게 해주는 라디오와 그의 부친에게 배우는 학생들을 통해 베리오는 오페라와 아리아들을 항상 접할 수 있었고, 부친에 의해 자주 집에서 열리는 실내악 연주회를 통해 바이올린도 배우고 많은 실내음악도 접할 수 있었다. 실제 그는 9세 때부터 이 실내악 연주회에 피아니스트로 참여하였고, 1937년 12세 때는 자신의 첫 작품『목가』(Pastorale for piano)를 직접 연주하였다. 오페라와 실내악에 대한 유년시절의 이러한 경험은 이후로도 그가 특별히 인성과 모든 범주의 실내악에 관심을 두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베리오는 음악 이외에 문학에도 특별한 흥미를 보였는데, 이미 언급한 그의 첫 작품『목가』를 롤랑(Romain Rolland, 1866~1944)의 대하소설『장 크리스토프』(Jean Christophe)에 큰 감명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그의 문학적 관심은 입센(Henrik Ibsen, 1928~1906)을 통해 본격적으로 나타나면서 이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로 옮겨가고, 마침내 1945년에 문학과 음악을 직접 접목하는 시도가 릴케의 시『수태고지‘受胎告知’』(Annunciation)를 텍스트로 하는 소프라노와 관현악을 위한 칸타타를 작곡하면서 더욱 구체화 되었다.


2. 밀라노 음악원 시기(1945~1951)
1944년 입대한 군에서 조작미숙으로 발사된 총탄에 의해 오른손 부상을 입은 베리오는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의 길을 가고자 전쟁이 끝나는 1945년부터 1950년까지 밀라노 음악원에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는다. 1900년대 이후 다양한 작품들의 새로운 작곡기법의 학습과 함께 파리베니(Giulio Cesare Paribeni, 1881~1964)의 대위법 수업에 이어 1948년부터는 게디니(Giorgio Ghedini, 1892~1965)의 작곡수업에 참가하였다.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1882~1971)의 음악어법에서 출발하여 특유의 투명하고 차가운 색채의 관현악법을 가미하여 독자적인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있던 게디니의 특성을 베리오는 빠르게 받아들였고, 이러한 작곡기법의 훈련뿐만 아니라 지울리니(Carlo Maria Giulini, 1914~)의 지휘법 수업도 이수하였다. 그리고 그는 음악원에서 유년시절부터 익숙한 성악반주도 하였는데, 1950년에 첫 아내이자 그의 인성작품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버버리언(Cathy Berberian, 1925~1983)을 만나 결혼하였다.

3. 달라피콜라와 〈다름슈타트 하계 음악제〉를 통한 음렬기법의 시도
베리오는 1952년에 쿠제비츠키 재단(Koussevitzky Foundation)의 장학금으로 미국의 탱글우드(Tanglewood)에서 열리는 달라피콜라(Luigi Dallapiccola, 1904~1975)의 강습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음렬기법을 수용하였던 최초의 이탈리아 작곡가 달라피콜라를 만난 계기로 쓴 작품들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2 개의 소곡』(Due Pezzi, 1951),『피아노를 위한 5 개의 변주곡』(Cinque variazioni, 1952~53),『여성인성 · 클라리넷 · 첼로 · 하프를 위한 실내악』(Chamber Music, 1953),『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Variazioni, 1953~54) 등이다. 그러나 1951~54년에 쓴 이 작품들에서 베리오는 음렬을 다루는 방식에서 반드시 자신의 필연적인 창작 요구에 의해서만 엄격한 음렬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버버리안을 위해 작곡한『실내악』(1953)에서 음렬은 조성이나 3화음을 회피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기보다 서정적인 선율을 만들고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5 개의 변주곡』(1952~53)에서는 동일하게 하강하는 반음계적 스케일을 각기 다른 음역에서 신중한 리듬적 처리로 배치하여 선율이 마치 음렬기법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어 달라피콜라의 주요 선율구성 방법이 더욱 변형된 형태에서 나타난다.
1954년부터 1960년까지 베리오는 당시 음렬음악에 관한 보다 풍부한 지식과 발전된 형태를 추구할 수 있는 장소였던 〈다름슈타트 하계 음악제〉에 참가하여 불레즈(Pierre Boulez, 1925~ ),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 ) 등의 대표적인 동시대 작곡가들과 활발한 만남을 이루게 된다.

4. 마데르나와 〈포놀로지아 전자음악 스튜디오〉: 전자음악과 인성의 새로운 가능성  
한편 1953~1960년에 그는 밀라노 라디오 방송국(RAI)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1955년에 여기서 유럽의 대표적인 전자음악 작곡가며 그의 음악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인물, 마데르나(Bruno Maderna, 1920~1973)를 만나 함께 〈포놀로지아 전자음악 스튜디오〉(Studio di Fonologia Musicale)를 개관하였다. 베리오와 마데르나는 공동감독으로 취임하여 우선 각자의 전자음악을 제작, 1956년 5월 밀라노 방송국에서 첫 전자음악 연주회를 개최하였고(베리오의 『Mutazioni』와 마데르나의 『Notturno』), 푸쉐르(Henri Pousseur, 1929~ )와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등의 작곡가들을 스튜디오로 초청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의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중 하나가 1956년부터 60년까지 〈음악과의 만남〉(Incontri Musicali)이라는 제목아래 현대음악 시리즈를 기획하고 같은 명칭 하에 현대음악 전문지를 발행한 것이다.
〈포놀로지아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베리오에게 또한 인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는데, 전자음악 작업을 통해 단순한 노래의 의미보다 더 넓은 의미의 인성에 대한 다양한 실험으로 발전하였다. 이것은 전자음악에서 소리의 원천에 관계없이 음향학적 현상에 의해 소리를 사용하는, 인성과 악기 사운드를 다르게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원리에 착안한 것이다. 이러한 베리오의 인성에 대한 실험은 1957년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와 함께 『테마』(Thema for two-track tape with recorded voice of Cathy Berberian, 1957)를 작업하면서 음성학적으로 더욱 구체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주재료인 말(word)로 시든 음악이든 알아들을 수 없도록 시와 음악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던 『테마』에서의 음성학적 실험은 이제 전자음악이 아닌 『여성인성 · 하프 · 두 명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서클』(Circles, 1960)로 이어졌다. 베리오는 이 작품에서 단순히 앙상블 반주 위에 덧붙여진 성악곡이 아닌 텍스트의 음성적 특징과 음악적 짜임새 사이를 강하게 연결하는 기능으로 인성을 사용하였는데, 인성은 사용된 악기들의 음역과 유사하게 반응하도록 작곡되어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하는 부분부터 대략적 음고를 거쳐 말소리로 연결되도록 고안되었다. 
위의 두 작품을 통해 경험한 시적 의성어에 관한 음성학적 작업과 버버리언의 재능은 마침내 그의 『세쿠엔차 III』(Sequenza III for Voice, 1965~66)에서 보다 실험적이며 독창적인 시도를 가능케 하였다. 베리오는 이 작품에서 인성을 노래하는 ‘악기’로서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폭넓게 인식되는 ‘목소리’로서 다루고자 하여, 기침이나 웃음소리가 콜로라투라적 비르투오조나 일반적 노래 형태로 전환되는 아이디어를 의도하였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반적인 어휘에서 별도로 쓰인 마르쿠스 쿠터(Markus Kutter)의 텍스트가 사용되었는데, 텍스트는 그러나 원문의 완전한 형태가 단어 · 단어조각 · 음절 그리고 언어의 최소단위인 음소 등으로 분류되어 다양한 수 단위의 단어, 음절과 음소로 조합되었다. 즉 텍스트의 각각의 요소들은 이러한 조합들을 거쳐 기존의 언어적 의미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단어와 음절 형태로 나타나지 않고 원문과는 다른 음악적 상황에서 재배치되어 나타났다. 그뿐만 아니라 베리오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음악화 하기 위하여 성악적 행위 이외에 악보의 서문에서 44 종류의 음악외적 제스처에 관해 상세히 지시하였는데, 이것은 무대 작품에서와 같은 극적인 요소를 순수 음악 작품에 첨가하는 새로운 시도였다.   
『세쿠엔차 III』에서의 이러한 실험성을 기점으로 베리오의 인성을 다루는 방식은 이후 암살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1929~1968) 목사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메조 소프라노와 다섯 악기를 위한 『오 킹』(O King, 1967),『신포니아』(Sinfonia, 1968~69) 등을 통해 계속적으로 다양하게 변화되어 나타난다.

5. 기교에 대한 새로운 시도와 인용기법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에 베리오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작곡하였다. 『에피파니』(Epifanie, 1959~61, 개작 1965), 시리즈『콰데르니 I~III』(Quaderni I, 1959/ II, 1961/ III, 1961~62)의 대편성 작품과 『템피 콘체르타티』(Tempi Concertati, 1958~59),『디페랑스』(Différences, 1958~59),『서클』(1960) 같은 소편성 작품이 만들어졌고, 그리고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계속되는 독주곡 시리즈가 작곡되기 시작하였다. 이미 유년시절부터 친숙한 성악과 소편성 음악을 1950년대에 베리오는 많이 작곡하였는데, 특히 50년대 중반 다름슈타트에서 알게 된 플루트 주자인 세베리노 가첼로니(Severino Gazzelloni, 1919~1992)를 위해 작곡한 플루트를 위한 『세쿠엔차 I』(1958)로 베리오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다지게 하는 『세쿠엔차』시리즈가 시작되었다. 독주 악기를 위한 이 시리즈는 매번 특정 연주자를 염두에 두고 그들과 서로 논의해 가며 작곡되었는데, 베리오는 여기서 연주자의 기술적 · 지적 능력을 최대한 확장하려는 시도로서 과거의 단순히 비르투오소적인 차원과는 다소 구별되는 20세기적인 것에서 기교성을 화성, 리듬, 텍스처, 음색, 음역, 음과 소음, 다이내믹 등 작곡법상의 매개변수들을 다루는 방식에 의해 구체화 시켰다. 악기의 기교적 가능성에 대한 베리오의 관점은 각 악기의 제작 원리에 근거하여 음악사적으로 발전되어 온 악기의 일반론에 근거한 것으로, 이 시리즈에서 그는 일반적인 악기 연주법과 함께 각 악기의 특수주법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악기 자체에 이물질을 첨가하여 악기 고유의 소리를 변질시키지는 않았다.
1950년대부터의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베리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는 1960년에는 탱글우드로, 1961년과 62년에는 다팅톤(Dartington) 하기 강습 등에 초청되면서 잦은 연주여행과 작곡교수로서의 바쁜 일정으로 인하여 1961년에 〈포놀로지아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사임하였다. 그리고 그는 1962년에 미요(Darius Milhaud, 1892~1974)를 대신해 캘리포니아 옥클랜드의 밀즈 대학(Mills College)에서 봄학기 동안 작곡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밀즈 대학의 교수직을 얻어 1963년부터 약 2년간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그는 그사이 버버리안과 원만하지 못한 결혼생활로 이혼하였고, 이곳에서 심리학자인 수잔 오야마(Susan Oyama)를 만나 1965년에 그녀와 재혼하였다. 1965년 가을부터 6년간 베리오는 또한 줄리아드 음악학교에서 작곡교수로 재직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줄리아드 앙상블을 조직하여 현대음악의 연주에도 관심을 가졌다.
미국에서의 거주 기간 동안에 베리오는 새로운 결혼생활과 두 자녀의 탄생, 그리고 작곡교수로 대학에 재직하며 동시에 작곡가로서 잦은 연주여행을 계속하는 등, 삶에 있어서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시기에 독주곡 시리즈『세쿠엔차 II~VII』(II, 1963/ III~IV, 1965~66/ V, 1966/ VI, 1967/ VII, 1969), 『민요』(Folk Songs, 1964), 시리즈『슈맹』(Chemins I, 1964/ II, 1967/ III, 1968), 『라보린투스 II』(Laborintus II, 1965), 『신포니아』(1968~69), 『오페라』(1969~70) 등의 독창적인 많은 작품들을 다양한 작곡 기법들에서 작곡하였는데, 특히 〈인용기법〉-영국의 음악학자 오스몬드-스미스(David Osmond-Smith)의 표현에서 “Commentary Technique”(Berio, Oxford University Press, Oxford, 1991, p. 42)-을 가장 주도적으로 사용하였다. 이 기법은 베리오의 『서클』(1960)에 사용된 하프 주법에 관심을 가졌던 하인리히 슈트로벨(Heinrich Strobel, 1898~1970)이 〈도나우에슁엔 음악제〉(Donaueschingen Festivals)에서 초연될 하프 협주곡을 베리오에게 위촉하면서 시작되었다. 베리오는 플루트 세쿠엔차의 아이디어를 하프 세쿠엔차에서 다른 방향으로 응용했었던 것에 착안하여 하프 세쿠엔차의 아이디어를 하프 협주곡에 적용하게 되는데, 단순히 몇 개의 성부가 추가되기도 하고 화성적 울림이 오케스트라에 의해 확장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세쿠엔차 시리즈의 독주 부분을 응용하여 협주곡으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슈맹』시리즈와 『코랄』(Chorale, 1975)이다.
1964,67,68년에 걸쳐 자신의 작품으로 시도되었던 이러한 〈인용기법〉은 그뿐만 아니라 1968년에 『신포니아』에서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및 여러 대가들의 작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확대되어 나타났다. 이 작품은 1968년에 4악장으로 작곡되어 초연되었으나, 1969년에 1악장부터 4악장까지의 요소들이 통합되어 작곡된 새로운 악장이 추가되면서 총 5악장으로 최종 완성되었다. 베리오는 『신포니아』에서 〈인용기법〉외에도 그동안 실험하였던 다양한 기법들을 통합적으로 재시도하였는데, 다양한 각도의 실험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질감을 어느 정도의 조성적 감각과 원리에 근거한 작곡기법으로 극복하여 실험성과 대중적 친밀감을 동시에 이루어내었다.

6. 〈파리 음향 연구소〉와 〈템포 레알레〉에서의 전자음악에 대한 새로운 시도
1960년대 후반부터 실내악과 관현악 작품들을 통해 더욱 유명해지면서 작곡가 겸 지휘자로서의 잦은 여행은 베리오에게 결국 1971년에 줄리아드 음악학교를 사임하고 이탈리아에 정착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5년에 그는 시에나(Siena) 근교 마을 라디콘돌리(Radicondoli)에 새로 마련한 집으로 이주하였고, 이 무렵에 그의 세 번째 부인인 이스라엘인 음악학자 탈리아 페커(Talia Pecker)를 만나 1977년에 결혼하였다.
한편 1974년에 베리오는 불레즈의 요청으로 〈파리 음향 연구소〉(IRCAM)의 전자음악 부서에서 감독으로 1980년까지 일하면서 다시 전자음악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기존의 시스템으로 새로운 전자음악을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였는데, 물리학자 쥬세페 디 지운뇨(Giuseppe di Giugno)를 초청하여 실시간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거나 변형해낼 수 있는 ‘4X 디지털 시스템’을 1976년에 개발해내었다. 이것은 1970년 〈파리 음향 연구소〉가 설립된 이후의 첫 성과로, 이로 인해 연구소는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음악적 이벤트들을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 있었다. 비록 베리오가 1980년에 독주 클라리넷을 위한 『세쿠엔차 IX』같은 작품에서 ‘4X 시스템’의 가능성을 실험했고 진정한 예술작품으로의 성과는 불레즈의 『반응』�(Répons, 1980~81)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고는 하나, 1970년대 이후 세계 전자음악계를 주도해 간 〈파리 음향 연구소〉의 선두에 불레즈와 함께 베리오가 있었다는 것은 음악사적으로 결코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80년에 베리오는 〈파리 음향 연구소〉를 사임하고 파리에서 연구한 전자음악의 가능성들을 고국의 이탈리아에서 지속적으로 구체화하며 발전시키기 위해, 플로렌스 시와 협상하여 1987년에 빌라 스트로찌(Villa Strozzi)를 근거로 그의 독자적인 연구소 〈템포 레알레〉(Tempo Reale)를 설립하였다. 베리오의 첫 작업은 초청된 연구팀과 함께 해낸 '트레일즈'(TRAILS)의 개발이었는데, ‘트레일즈’는 '실시간 오디오 상호작용 배치 시스템'(Tempo Real Audio Interactive Location System)의 약자로서 이 시스템의 조작자와 연주자 간의 상호 반응과 연주회장에서 네트웍(network)을 통해 사운드를 임의의 공간에 배치시키거나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 이 시스템의 기능을 의미한다.
이 새로운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첫 작품이 『오파님』(Ofanim for female voice, two children's choirs, two instrumental groups, and TRALIS sound location system, 1988)으로, 바퀴(Wheel)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트레일즈’ 시스템을 통해 서로 대조적인 성격의 에스겔서와 아가서 텍스트의 계시적 환상과 감각적 이미지를  청각적 공간으로 만들어낸다. ‘트레일즈’를 통한 이러한 실험들이 이후 음악극『오우티스』(Outis, 1995~96) 등에서 계속되었다.

7. 민속음악적 요소 사용의 변화
1970~80년대 베리오가 〈파리 음향 연구소〉와〈템포 레알레〉연구소에서 시스템 개발에 의한 새로운 음악적 가능성을 그의 몇 작품들에서 모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레즈 경우처럼 컴퓨터 테크놀로지에 의한 새로운 이슈를 제시할 만큼의 결정적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동안 베리오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특징은 이와는 거리가 있는 민속음악에서 유래된 것이었다. 일찍이 밀라노 음악원 시절부터 있었던 민속음악에 대한 관심이 『3 개의 속요』(Tre canzoni popolari, 1946~47) ·『2개의 시칠리아 노래』(Due canti siciliani, 1948) ·『민요』(1964)에서 이미 나타났다. 그리고 1968년부터는 시칠리아에서의 자료 수집과 연구를 근거로 더욱 본격화 되어 『이것의 의미는』(Questo vuol dire che, varius, 1968~69)에서는 서유럽 민요의 비음창법(nasal folk-singing)에 의한 다양한 예들이 녹음된 테이프와 이탈리아,크로아티아,불가리아,브리타니 등의 민요가 직접 재료로 사용되었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민속음악적 요소를 다루는 그의 방식이 변화기 시작하여 『에 보』(E vó, 1972), 『합창』(Coro for 40 voices and instruments, 1975~77) 등에서는 직접적인 민요의 인용이 사라지고 민요 선율의 기법적 특징들이 작품의 선율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응용되었다.

8. 음악극 
1970년대 후반부터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대규모적 작품 경향에서 『합창』(1975~77)을 완성한 이후 베리오는 음악극『실화』(La vera storia, 1977~81)를 작곡하였다. 음악극에 대한 그의 관심은 특별히 입센의 희곡에 심취했었던 성장기를 거쳐, 성악가-배우로서 탁월한 재능을 지닌 버버리안과의 만남을 계기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서클』(1960)이나 『디페랑스』(1958~59)등의 순수 기악곡에서부터 이미 보여주었다. 특히 『서클』은 음악형식의 순환적 성격을 무대 위 성악가의 움직임으로까지 확대한 것으로 그의 최초의 중요한 음악극적 작품으로 인정받는다(성악가는 대칭적 구조의 5 개 악장을 노래 할 때 무대 위에서 돌아다니도록 구성되었다). 이후 오페라적 성격이 엿보이는 『파사지오』(Passaggio, 1961~62)와 아마추어 가수 · 팝 연주자 · 배우 등을 위한 『라보린투스 II』(Laborintus II, 1965) 등을 통해 대규모적 극작품 생산의 토대가 만들어졌고, 1970년에 작곡된 『오페라』는 70년대 이후의 대규모 음악극의 시작인 동시에 이전에 사용된 그의 대부분의 기법들을 총망라한 듯하다. 
베리오의 두 번째 대규모 음악극『귀 기우리는 왕』(Un re in ascolt, 1979~84)은 전체적으로 죽기 전 새로운 극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려고 애쓰는 늙은 가극단장에 관한 이야기로 구성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전 『실화』와 비교하여 칼비노(Italo Calbino, 1923~1985)의 텍스트 외에 보다 많이 다른 몇 작가의 작품을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베리오의 개인적인 시각에서 혼합시키는 방식을 취하였지만, 음악의 기법이나 대본의 언어적 측면에서 많은 유사성을 보인다.
『귀 기우리는 왕』의 성공 이후 세 번째 작품에 작업할 동업자를 10여년에 걸쳐 물색하던 중에 베리오는 고전학자이며 번역가인 다리오 델 코르노(Dario del Corno)를 만나 『오우티스』(1995~96)를 완성하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신포니아』 이후 추구해 온 여러 개의 이질적인 것들을 동시적으로 함께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과 음악, 그리고 시각적 상징 간의 계속적인 대위법적 방식을 통해 이루어내었다.
그리고 1999년에 그의 네 번째 대규모 음악극『지방뉴스』(Cronaca del luogo, 1998~99)가 세 번째 부인인 탈리아 페커-베리오의 대본에 근거하여 완성되었고 같은 해에 잘츠부르크에서 초연되었다. 베리오는 2003년 5월 27일에 로마에서 사망하였다.


대표적인 작품

1. 인성을 위한 작품
1) 인성과 관현악을 위한 작품
*『마니피카트』(Magnificat, 1949) *『에피파니』(Epifanie, 1959~61, 개작 1965, 1991~92) *『신포니아』(Sinfonia, 1968~69) *『라보린투스 II』(Laborintus II, 1965) *『시간』(Ora, 1971) *『합창』(Coro, 1975~76, 개작 1977) *『고요한』(Calmo, 1989) *『소파』(Shofar, 1995)

2) 그 외의 인성을 위한 작품
*『3 개의 속요』(Tre canzoni popolari, 1946~47)/『4 개의 속요』로 개작(1946~47, 개작 1973) *『2 개의 시칠리아 노래』(Due canti siciliani, 1948) *『실내악』(Chamber Music, 1953) *『서클』(Circles, 1960) *『민요』�(Folk Song, 1964) *『오 킹』(O King, 1967~68) *『이것의 의미는』(Questo vuol dire che, 1968~69) *『에 보』(E vo', 1972) *『런던의 함성』(Cries of London, 1975) *『조용한』(Calmo, 1974) *『아 론네』(A -ronne, 1975) *『오파님』(Ofanim, 1988) *『가장 새로운 신약 칸티쿰』(Canticum novissimi testamenti, 1989) *『소리는 없다』(There is No Tune, 1994) *『두 번…』(Twice upon…, 1994)

2. 무대 작품
*『삶의 세 가지 방편』(Tre modi per supportare la vita, 1952~55) *『알레-홉』(Allez-Hop!, 1952~59) *『파사지오』(Passaggio, 1961~62) *『오페라』(Opera, 1969~70) *『아름다운 추억의 날들』(Per la dolce memoria di quel giomo, 1974) *『선』(Linea, 1973) *『실화』(La vera storia, 1977~81) *『귀 기우리는 왕』(Un re in ascolto, 1979~84) *『오우티스』(Outis, 1995~96) *『지방뉴스』(Cronacn del luogo, 1998~99)

3. 기악 작품
1) 관현악 
*『변주곡』(Variazioni, 1953~54) *『노운즈』(Nones, 1954) *『알레루야』(Allelujah I, 1957~58) *『디베르티멘토』(Divertimento, 1958) *『템피 콘체르타티』(Tempi concertati, 1958~59) *『콰데르니 I~III』(Quaderni I, 1959/ II, 1961/ III, 1961~62) *『슈맹 I』(Chemins I on Sequenza II, 1964) *『슈맹 III』(Chemins III on Chemins II, 1968) *『슈맹 IIb』(1969~70, Chemins II의 개작) *『움직임』(Bewegung, 1971) *『협주곡』(Concerto, 1972~73) *『인상』(Eindrücke, 1973~74) *『찾는 곡선 위의 지점…』(Points on the Curve to Find…, 1974) *『슈맹 IV』(Chemins IV on Sequenza VII, 1975) *『코랄』(Chorale on Sequenza VIII, 1975) *『스노비데니아로의 귀향』(ritorno degli snovidenia, 1976~77) *『진혼곡』(Requies, 1983~85) *『형성』(Formazioni, 1985~87, 개작 1988) *『콘티누오』(Continuo, 1989) *『슈맹 V』(Chemins V on Sequenza XI, 1992) *『나침반』(Compass, 1994) *『야상곡』(Notturno, 1995) *『소-환』(Re-Call, 1995) *『콜-오드』(Kol-Od, Chemins VI on Sequenza X, 1995~96) *『에크프라시스』(Ekphrasis, Continuo II, 1996) *『독주』(Récit, Chemins VII on Sequenza IXb, 1996) *『교환』(Alternatim, 1996~97)

2) 실내악
*『현악4중주』(1955~56) *『소야곡 I』(Serenata I, 1957) *『디페랑스』(Differences, 1958~59, 개작 1967) *『신크로니에』(Sincronie, 1964~64) *『슈맹 II』(Chemins II on Sequenza VI, 1967) *『기억』(Memory, 1970, 개작 1973/ 개작『이고르 스트라빈스키를 위한 카논풍의 자장가』(Autre fois: berceuse canonique pour Igor Stravinsky, 1971) *『경쾌한 음악』(Musica leggera, 1974) *『34 2중주』(34 duetti, 1979~83) *『화음』(Accordo, 1980~81) *『소리』(Voci, 1984) *『부름』(Call, 1985) *『열띤 지구』(Terre chaleureuse, 1985) *『자연 그대로의』(Naturale, 1985~86) *『반복』(Ricorrenze, 1985~87) *『야상곡』(Notturno, 1993) *『해설』(Glosse, 1997)

3) 세쿠엔차 시리즈 및 그 외의 독주곡
*『Sequenza I』(플루트, 1958) *『Sequenza II』(하프, 1963) *『Sequenza III』(인성, 1965~66) *『Sequenza IV』(피아노, 1965~66) *『Sequenza V』(트롬본, 1966) *『Sequenza VI』(비올라, 1967) *『Sequenza VII』(오보에, 1969) *『Sequenza VIII』(바이올린, 1976~77) *『Sequenza IX』(클라리넷, 1980)/ 편곡『Sequenza IXb』(a 색스폰, 1981) *『Sequenza X』(트럼펫과 피아노, 1984) *『Sequenza XI』(기타, 1987~88) *『Sequenza XII』(bn. 1995) *『Sequenza XIII』(아코디언, 1995~96)
*『5 개의 변주곡』(Cinque variazioni, 1952~53, 개작 1966) *『땅』(Rounds, 1964~65) *『바써클라비어』(Wasserklavier, 1965) *『제스티』�(Gesti, 1966) *『에르덴클라비어』(Erdenklavier, 1969) *『파-시』(Fa-Si, 1975) *『말들은 사라졌다』(Les mots sonts allés, 1978) *『노래』(Lied, 1983) *『루프트클라비어』(Luftklavier, 1985) *『콤마』(Comma, 1987) *『포이어클라비어』(Feuerklavier, 1989) *『싸이』(Psy, 1989) *『잎』(Leaf, 1990) *『브린』(Brin, 1990)

4. 전자음악 작품
*『미뮈지끄 제1번』(Mimusique no. 1, 1953) *『도시의 초상』(Ritratto di citta, 1954) *『무타치오니』(Mutazioni, 1955) *『전망』(Perspectives, 1957) *『테마』(Thema, 1958) *『모멘티』(Momenti, 1960) *『얼굴』(Visage, 1961) *『아 론네』(A-ronne, 1974) *『나란한 노래』(Chants paralles, 1974~75) *『상상의 일기』(Diario immaginario, 1975) *『2중주』(Duo, 1982)

그 외에 브람스(J. Brahms) · 말러(G. Mahler) 등 다른 작곡가의 작품들을 편곡한 곡들과 다수의 논문을 남기고 있다.


참고문헌

오희숙, 『20세기 음악 1 역사 · 미학』, 심설당 2004.
이신우, 「루치아노 베리오」, 『20세기 작곡가 연구 III』, 음악세계 2003.

Albèra, Philippe(Britta Schilling 역), "Luciano Berio," Metzler Komponisten Lexikon,  Stuttgart 1992.
Borio, Gianmario/ Noller, Joachim, "Luciano Berio,"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Personenteil 2, Kassel 1999.
Osmond-Smith, David, "Luciano Berio,"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3, London 2001.
Persché, Gerhard, "Luciano Berio," Harenberg Kammermusikführer, Dortmund 1998.
___________, "Luciano Berio," Harenberg Konzertführer, Dortmund 1998.


등록일자: 2005-02-07
고은미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