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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Debussy, Achille-Cla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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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Achille-Claude Debussy, *1862 생 제르맹 알 레, †1918 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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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곡가. 드뷔시는 1873-84년 빠리 음악원에서 라비냑, 뒤랑, 마르몽텔로부터 피아노를, 그리고 기로로부터 작곡을 배움. 1884년에 그는 그의 칸타타 "탕자"로 로마대상을 수상, 3년간의 로마체류 후에 빠리로 돌아와 평생을 거주. 런던, 토리노, 러시아, 네델란드, 로마 등지로 여행. 암으로 사망.

드뷔시는 작곡가로 뿐만 아니라 지휘자, 피아니스트, 편곡자, 그리고 다른 작곡가 작품들의 교정자로도 활동. 이 외에도 1902년부터는 수많은 작은 글들과 비평문을 씀. 

드뷔시의 작품은 19세기 음악과 현대음악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의 창작활동은 작품스타일에 따라 보통 4 시기로 나눈다: 초기작품시기(1889년까지), 인상주의 작품시기(1903년까지), 중간창작시기(1904-1912년), 후기작품시기(1912년부터).

그의 초기작품들은 한편으로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예술(샤브리에르, 들리브, 포레, 구노, 마쎄느, 랄로)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쇼팽과 슈만 음악의 영향을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그의 화성사용에서는 바그너의 영향(적어도 1889년까지)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초기 작품으로는 「잊어버린 노래」(1888), 2개의 「아라베스크」(1888), 『보들레르 가곡들』(1887-89), 『베르가마스크 모음곡』(1890) 등이 있다. 

프랑스 예술미학(문학의 상징주의, 회화의 인상주의, 서정오페라, 발레)의 영향과 러시아 음악 또는 이색적인 예술(세계박람회, 1889)의 접촉을 통해 드뷔시는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으로부터 멀어짐과 동시에 인상주의적 음악양식의 창조자가 된다. 이 양식의 특징은 비격정적이고, 문학적 사고의 상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다. 이는 음악에서 밝고 투명한 음색, 새로우면서도 조성적인 화성(음향이나 음색의 강조로서 쓰이는 비화성음, 병행화성), 그리고 리듬, 셈여림관계, 템포 등에 나타나는 세밀한 가공 등으로 잘 표현된다. 교회선법, 5음음계, 온음음계도 새로운 효과를 위해 자주 사용된다. 이러한 양식에 의한 대표적 작품으로는 코믹 오페라인 「펠리아스와 멜리상드」(1892-1902), 「목신의 오후 프렐류드」(1892-94), 「현악사중주 g단조(1893)」, 「피아노를 위해(1896)」, 「빌리티스의 노래」(1897), 「에스탐피」(1903) 등이 있다.

이에 비해 1903년경부터는 분명한 대비가 다시 나타난다. 즉, 음향과 곡의 윤곽이 보다 분명해지고 선적이며 도안적인 요소가 강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양식은 세부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위한 「바다」(1903-05)나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마쥬」(1906-12), 그리고 피아노를 위한 「어린이의 자리」(1906-08)와 가곡들(예, 『3개의 프랑스 샹송』)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피아노를 위한 「이마쥬 II」와 많은 양의 피아노 프렐류드도 이 부류에 속한다. 이 시기의 예외적인 작품으로는 옛 아카펠라 다성부합창방식을 따르는『3개의 오르레앙 샹송』(1908)과 「생 세바스티앙의 순교(1911)」를 들 수 있다. 

드뷔시의 후기 작품들은 보다 더 구조적으로 착상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3개의 실내악소나타를 들 수 있다: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1915), 「플루트과 하프,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1915),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1916/17). 발레인 「놀이」(1911)와 『3개의 말라르메 가곡』(1913)에서는 이 시기 양식의 대표인 인위적인 정교성이 최고도에 달한다. 흉내내며 비꼬는 듯한 유모어도 몇개의 프렐류드와 「어린이발레」에서 빈번히 나타난다. 

나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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