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운영(羅運榮, 1922-1993)
나운영은 당시의 한국적 환경에서는 이른 나이에 음악과 접한다, 그는 5세 때에(1927) 부친에게 양금 교습을 받았다. 그러니까 시작은 국악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곧 양악에 심취한다. 그는 베토벤 음악 등 많은 서양음악을 들으면서 예비 음악가가 되어갔다. 그는 17세의 어린 나이로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신춘 현상에서 가곡 『가려나』(김안서 작시)로 작곡 부분에 당선되었다. 이 때 심사를 맡은 사람이 홍난파였다. 1940년에 일본 동경제국 고등음악학교 본과에 입학하여 작곡을 공부했다. 1942년에 본과를 졸업한 후, 연이어 같은 학교의 연구과에 입학하였다. 그의 스승은 모로이 자부로(諸井三郞)였다. 그의 스승은 무조건 서양음악을 추종할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민족적 음악을 세울 것을 강조하였다. 나운영의 민족적 음악론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영향을 받은바 크다.
나운영은 한국에 돌아와 1945년 중앙중학교 교사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에 성악가 유경손과 결혼하였다. 이 부부는 같은 해에 중앙여자 전문학교 전임교수로 취임하였다. 그는 1946년에 민족음악문화 연구회를 창립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또한 1948년에 서울 성남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임명되어 30년간 활동하였다. 1952년에는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전임강사, 1954년에는 덕성여자대학 교수로, 1962-76년까지 연세대학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교수하였다. 1972-93년 한국찬송가 위원회 음악분과 위원 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제주도 민요의 수집을 위해 1973년에는 한국 민속음악 박물관을 제주도에 창설하였다. 1974년에는 미국 포틀랜드(Portland) 대학교에서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에 한국 찬송가학회 회장으로 1977년에는 한국 찬송가 통일 위원회 음악전문위원으로 일하였다. 1980년-93년 운경교회(현 호산나교회) 장로로 임직하였다. 1981-82에는 세종대학교 교수 겸 음악학과장으로 82년-85년에는 전남대학교 강사, 교수, 예술학과장으로 85-93년에는 목원대학교 음악학부장으로 있다가 퇴직하였다. 그는 1993년 서거 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나운영은 당대의 작곡가로서는 작품량이 상당히 많은 편이고, 실험정신도 대단히 강한 편이다. 그는 13편의 교향곡을 썼다. 1번 『Korean War}(1958), 2번 『1961』(1962), 3번(1963), 4번(1964), 5번(1965, 12음기법으로 시도된 작품, 66년에 수정됨), 6번 『탐라』(1966), 7번 『The Bible』(1968), 8번 『1967』(1968), 11번 심포닉 밴드를 위한 작품(1969), 10번 『The Creation』(1972), 12번 『남과 북』(1974), 13번 『아리랑』(1974). 그리고 14번으로 기획된 것은 미완성으로 남는다. 나운영의 교향곡은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기간에 작곡되었으며, 민족적인 표제, 성서적인 표제, 연도의 표제 등이 달려 있다. 음악기법적으로는 한국 전통음악으로부터 끌어온 음악어법과 현대적인 기법 등이 혼재되어 있다. 그는 또한 3개의 피아노 협주곡(Piano Concerto No.1, 2, 3.) 2개의 바이올린 협주곡(Violin Concerto No. 1, 2), 6개의 첼로 협주곡(Cello Concerto No.1, 전6곡)을 썼다. 3개의 오페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에밀레종』, 『바보온달』을 썼으나 무대에 올려진 일은 없었다. 실내악곡 피아노 독주6, 바이올린 산조1, 첼로 독주곡2 등을 썼다. 그는 가곡 『가려나』와 『달밤』과 같은 초기의 대중적 가곡을 쓰기도 하였으나 이미 1950년에『접동새』와 같은, 서양식 가곡을 전통음악적으로 소화해낸 예술가곡을 쓰기도 했다. 이 가곡은 계면조 성격의 선율을 중심으로 서양적 삼화음을 크게 억제하고, 4도, 5도, 2도 등의 음정을 자주 드러낸다. 반주도 나름의 독자적 선율을 갖기도 하며, 간혹 많게 간혹 적게 붙여지는 첨가적 음정들로 꾸며져 있다. 그의 가곡들 중에는 아직 적절한 해석을 기다리고 있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있다. 한국어와 음악의 적절한 결합을 중요시하면서도 음악적인 독창성을 잃지 않는 그의 가곡은 한국 가곡에서 흔치 않게 보는 깊이를 가졌다. 또한 그의 교회음악 중 『부활절 칸타타』(1956)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판소리 음악을 교회합창음악에 접목시킨 이 곡은 예수의 수난을 그리는 가사의 내용과 ″서러운″한국적 소리가 잘 어울린다. 화성 역시 조성적인 면을 벗어날 뿐만 아니라, 완전5도에 단2도가 첨가되는 파격성을 보여준다. 그는 또한 200여곡의 동요를 작곡하였다. 그가 남긴 작품 중에 가장 많은 수량을 남긴 것은 찬송가로서 총 1105여곡에 달한다. 이는 1979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죽은 해인 1993년까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는 그가 찬불가를 썼다는 비난을 받은 후, 이를 회개하는 의미로 쓴 것들이다. 그는 이 찬송가들을 통해 한국화성이라는 것을 확립하는데, 여기에는 화성적인 문제도 들어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이 대위법적 것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가 한국적인 것에 몰두하고 현대적인 것을 이차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을 대략 1970년대 중반쯤이다. 이 때에 그는 ″선토착화 후현대화″( 先土着化 後現代化)라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구호화했다.
나운영은 초기에 서양의 전통적 삼화음 음악을 작곡하였는데, 생의 말기까지 이런 음악을 써왔다. 특히 동요나 찬송가 분야에서 이런 음악이 많이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음악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런 음악을 썼던 것은 주문자나 연주할 사람을 위한 양보였다. 그의 중심 생각은 우선 서양음악에 ″토착적″ 내용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고, 그 다음으로는 이런 음악이 어느 정도 현대성을 갖추게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운영의 삼화음 음악에는 특이한 점들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단순한 삼화음으로 꾸며진 {시편 23편}은 ″물구나무 삼화음″으로 되어 있다. 이는 화음의 바탕음이 맨 밑에 있는 음이 아니라, 맨 위의 선율에서 사용하는 음이다(참조: 홍정수, 나운영의 교회음악이 가진 기법적 특징들). 이러한 면들은 조성적 음악의 사용에서도 그냥 관습적인 길을 가지 않았던 그의 생각이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의 음악에는 20세기 서양음악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복조성(예: Violin concerto Nr.1. 1965), 드뷔시적인 4도와 5도 병행 그리고 온음음계 사용(예: 2번 심포니), 12음기법(예: 피아노 트리오 1955) 스크리야빈 식의 음악과 색깔의 결합(예: 7번 심포니), 우연음악(예: 7번 심포니), 클러스터(예: 10번 심포니)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법들은 그의 음악에서 중심적 무게를 지녔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기법들은 그에게서 음악작품 한 곡의 전체를 관통하는 일은 드물고, 부분적인 현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현상이란 여러 악장 중 한 악장 정도를 그렇게 작곡한다든지, 아니면 한 악장 중에서도 어느 부분만 그렇게 작곡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예외는 있다. 즉 {피아노 트리오}(1955)는 전 악장이 12음기법으로 착상되었다. 그런데 이 곡은 원래 서양에서 착상된 방식의 12음기법의 지향점과는 내용적으로 차이가 난다. 전곡을 관통하는 옥타브 중복,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4도병행 선율, 곡의 마지막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 강조되는 조성적 부분(솔라도미) 등이 그러한 요소들이다. 이렇게 오음음계의 일부 음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현대적 서양 기법 가운데에서도 ″한국적인 것″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이 ″한국적인 것″은 ″현대적인 것″과 상호 충돌관계에 있는데도 이를 모두 수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운영은 서양의 새로운 기법을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러한 변형적 수용은 다른 모든 기법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나운영에게서 이런 당대의 서양음악적 기법들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수용되고 체화(體化)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나운영은 20세기 서양음악의 모더니즘적 정신, 즉 ″새로운 것″ 자체를 가장 높은 가치로 삼는 일과 무관하다. 그는 20세기 서양음악 기법들을 자신의 음악과 적응되는 지를 살피기 위해 20세기 서양음악 기법들을 사용했다고 판단된다. 즉 그는 기법들의 융화(또는 조화)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 관점의 차이가 나운영을 한국의 작곡가이게 한다.
그에게 더 체화된 음악은 ″토착적″인 성격의 것이다. 토착적인 음악은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 장단, 악기의 음색, 각 장르들의 형식들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본래의 것 그대로 그의 나타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는 한국의 전통음악의 요소들을 변형시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선율에 쓰이는 어떤 전통음악적 음계의 음들 중 일부를 탈락시키거나 변형시킨다. 그럼에도 그의 선율에는 전통적 한국음악의 요소들이 비교적 많이 남아있어서 전통음악과의 관련성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리듬 부분에서도 전통적 장단의 어느 부분을 빼거나 더하는 방식으로 변형시킨다. 선율과 리듬이 비교적 전통음악적 원형과의 관계를 보일 때에는 화성 부분이 ″현대적″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자주 있다. 즉 더 긴장도가 높은 음정을 첨가시킨다. 그의 한국화성에는 5도와 4도의 음정이 -단독으로 또는 함께-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중간 중간에 3도, 2도 등이 나타난다. 이 때에 소프라노와 앨토가 상행하면 테너와 베이스는 하행하는, 소프라노와 앨토가 하행하면 테너와 베이스는 상행한다. 이런 구조는 선율이 화성과 각 성부의 진행까지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런 진행은 기본적인 틀이고, 이 틀은 작곡하는 과정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형된다. 나운영의 한국화성에는 3도(그리고 삼화음)가 쓰이지만, 곡의 무게가 실리는 주요 부분인 시작과 종지 부분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서는 주로 5도가 사용된다. 이는 그가 서양의 초기적 화성음악으로 되돌아가고자 한 때문이 아니라, 서양의 삼화음을 극복하고자 한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었다.
전통적 음악적 성격이 강한 음악에서는 국악의 시김새적 요소들을 어김없이 발견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미끌어지는 소리(글리싼도, 긴 음에 짧은 장식적 음(들)이 붙는 것, 조성적 음악에서는 정해진 음계음을 벗어나는 것 등이다.
나운영의 음악을 음향적으로 성격지어 보자면 드뷔시와 바르톡의 사이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자주 들리는 5도와 4도의 병행선율, 그리고 온음음계적 병행선율 등에서 드뷔시와 가까운 거리를 느끼게 한다. 한편으로 강한 민속적 리듬과 긴장도 높은 첨가음들이 결합된 화성은 바르톡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나운영은 드뷔시도 바르톡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음악적 원재료를 한국의 전통음악에서 가져 오기 때문이다.
나운영은 많은 저서도 남겼다. 이 책들은 그가 강단에서 가르치면서 오랜 세월을 두고 쓰고 수정한 것들이다. 『대학음악통론』(1979), 『대위법』(1981), 『합창편곡법』(1972), 『작곡법』(1963), 『연주법원론』(1982), 『화성학』(1979), 『악식론』(1978), 『관현악법』(1981), 『음악분석법』(1982), 『현대화성론』(1982) 등이 그것이다. 또한 『주제와 변주』(1964), 『독백과 대화』(1970), 『스타일과 아이디어』(197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1985)와 같은 수필집도 냈다.
참고문헌:
가. 나운영 전집 1-5 운경음악출판사(현재까지 출판된 것)
1.나운영 가곡집(운경음악출판사, 1995)
2.나운영 성가곡집(운경음악출판사,1996)
3.나운영 칸타타집(운경음악출판사,1998)
4.나운영 동요곡집(1) (운경음악출판사,1999)
5.나운영 동요곡집(2) (운경음악출판사,2000)
가곡집
아흔아홉양(한국 현대음악학회, 1952)
다윗의 노래(한국 현대음악학회, 1954)
나운영 가곡선(한국 음악문화사, 1967)
성가곡집
골고다의 언덕길(악원사 1969)
한국 성가곡집 (악원사, 1971)
성가합창곡집 제1집(교회음악사, 1976)
나운영 데스칸트 100곡집(에덴문화사, 1976)
성가합창곡집 제2집(교회음악사, 1979)
칸타타 <나의 주 나의 하나님>(한국 기독교교육연구원, 1980)
한국찬송가 100곡선 제1집(기독교음악사, 1984)
한국찬송가 100곡선 제2집(교회음악사, 1986)
크리스마스 칸타타(기독교음악사, 1989)
부활절 칸타타(교회음악사, 1991)
한국찬송가 100곡선 제3집(호산나음악사, 1991)
동요곡집
나운영 유경손 동요 135곡집(보육사, 1980)
동요 100곡선(세광음악출판사, 1991)
기타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연세대학교 80주년 기념논문집 인문학편 1965
피아노협주곡 제3번(예당출판사, 1993)
8명의 연주자를 위한 시나위(예당출판사, 1993)
심포니
Symphony No.3. Yonsei University Press 1972
Symphony No.9 Yonsei University Press 1971
Symphony No.10 Yonsei University Press 1975
논문
{음악과 민족}의 나운영 특집:
제9호(1995) 조선우, 「나운영의 삶과 작품」/ 이충자, 나운영 가곡 작품의 유형별 분석/ 이문승, 나운영의 음악기법 연구- 교회음악을 중심으로/ 안일웅, 나운영의 실내음악 작품 분석.
제10호(1996): 홍정수, 나운영의 음악관- 그의 민족음악론을 중심으로/ 홍정수, 나운영의 교회음악이 가진 기법적 특징들.
제11호(1996): 이건용, 나운영의 화성이론에 관한 연구- 그의 이론서를 중심으로.
홍정수: 양악작곡과 시김새 ↗이강숙회갑기념문집 {음악이 있는 마을} 민음사 1996. 9. 20. 817-846쪽.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나운영(羅運榮, 1922-1993)
- 1922년 3월 1일 서울에서 출생.
- 1927년 5세 때 부친에게 양금 교습 받음.
- 1939년 17세 때 동아일보 주최 신춘현상에서 가곡 ≪가려나≫(김안서 작시)가 당선됨.
- 1940년에 일본 동경 제국고등음악학교 본과에 입학하여 작곡 공부.
- 1942년에 같은 학교의 연구과 진학(사사: 모로이 자부로 ). 민족적 음악을 하라는 스승의 영향을 받게 됨.
- 1945년 중앙여자 전문학교(중앙대학교의 전신) 전임교수로 취임.
- 1948년 서울 성남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임명되어 그 후 30년간 활동함.
- 1952년 이화여자대학교 예술대학 음악과 전임강사 활동함.
- 1954년 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역임.
- 1962-1976년 연세대학교 교수 역임.
- 1973년 한국 민속음악 박물관을 제주도에 창설.
- 1981-1982년 세종대학교 교수 역임.
- 1982-1985년 전남대학교 교수 역임.
- 1985-1993년 목원대학교 교수 역임.
- 1993년 10월 21일 향년 71세의 나이로 사망.
나운영은 가곡, 칸타타, 실내악, 심포니, 오페라, 찬송가, 동요 등의 장르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는 ‘병행화음의 작곡가’였다. 병행화음은 그의 다양한 작곡방식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이는 서양음악과는 다른 음악을 추구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
나운영의 이전 세대나 동세대 작곡가들은 대체적으로 단순한 장단조 위주의 작곡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그런 음악과는 다른 방향을 생각했는데, 그것은 ″민족음악″과 ″현대음악″이라는 개념으로 모색되었다. 그와 동년배의 작곡가 중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으로는 김순남과 윤이상이 있었다. 이들과 나운영은 민족성을 강조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것을 어느 정도 현대적으로 다루느냐 하는 부분에서는 서로 달랐다. 김순남은 이북으로 간 후 현대성 추구를 포기했고, 윤이상은 유럽으로 이주하여 그 곳 아방가르드 음악에서 통할 수 있는, 현대성 위주의 음악을 작곡했다. 나운영은 한국에 남아 두 사람 사이의 중간적 입장의 현대성을 지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현대적인, 즉 19세기가 아닌 20세기적인 음악을 생각했지만, 당대 서양의 아방가르드와는 다른 입장을 지켰다. 1955년 이후 한 때 그는 당대 서양의 첨단음악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나,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그 관심을 약화시킨다. 그 때 그가 만든 구호가 ″선토착화 후 현대화″(先土着化 後現代化 )였다. 그는 한국의 음악환경에 ‘들어있는’ 작곡가였다.
그는 ″민족음악″과 ″현대음악″을 한꺼번에 자신의 작품에 성취하려는 와중에서 여러 가지 양식들을 혼합했다.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의 음악을 망라하는 그의 혼합주의는 새로운 한국음악을 가능하게 했다. 그의 음악을 설명하려고 하면, 많은 서양음악의 용어들이 필요한 것 이외에도, 한국음악과 그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는 용어들도 동시에 필요하다. 음악이 혼합된 상태가 많기 때문에 용어도 혼합적으로 사용되어야 설명이 가능한데, 적절한 용어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가 구사한 음악의 방향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① 보편적 삼화음을 사용하는 조성음악
② 삼화음을 기피하거나 달리 사용하는 조성적 성향의 음악
③ 12음기법음악과 음향음악
그 중 ②번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②번 음악을 어느 정도 이론으로 만든 것이 그의 ″한국화성학″이다. 하지만 이 화성학이 그의 음악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나운영은 작곡 초기 서양의 전통적 삼화음을 바탕으로 작곡하였는데, 이는 생의 말까지 그의 작곡 방식의 일부로 남았다. 특히 동요, 찬송가, 가곡 분야에서 이런 음악이 많다. 사실 나운영의 이름을 사회적으로 알린 음악들은-그가 심혈을 기울여 작곡한 예술성 높은 작품들 때문이 아니라-이러한 곡들의 덕이었다. 하지만 그는-음악학교 졸업 이후-이런 음악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런 음악을 썼던 것은 주문자, 연주자, 청중을 위한 양보였다. 기악곡 중 조성적 성격이 전곡에 걸쳐 뚜렷한 것으로는 첼로소나타 제1번 ≪Classic≫(1946), 제주 민요를 테마로 사용하는 제6번 심포니 ≪탐라≫(1966) 등이 있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12음기법의 음악이라고 말한 작품에서도 조성적 음악이 함께 사용된다(예: ≪제5번 심포니≫[1965]). 이는 그의 혼합주의적 작곡경향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삼화음을 사용하되 기능적이 아닌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도 있다. ″물구나무 삼화음″이 그것인데, 이런 음악에서는 화음의 바탕음은 맨 밑에 있는 음이 아니라, 맨 위의-선율에서 사용하는-음이다. 이는 선율과 병행하는 화성진행에 관한 그의 관심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물구나무 삼화음은 비음계음이 없는 삼화음으로 꾸며진 경우(≪시편 23편≫[1953]), 비음계음으로 삼화음들이 조절되는 경우(≪8번 심포니≫[1968], 3악장 7음음계 테마 부분)가 있다.
나운영의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민족음악’이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자신의 음악이(또는 한국인이 작곡한 음악이) ″민족적″ 내용을 갖추어야 한다는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정서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의 재료나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서도 민족적이어야 했다. 그가 목표로 삼은 민족음악은-민족적 음악재료에 기능적 화성을 붙이는-19세기적 방식이 아니라,-새로운 화성(또는 음향)이 성취되는-현대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이런 지향점을 가진 그의 음악을 여기에서는 ‘민족현대 특징’이라 부른다.
그가 민족음악과 현대음악을 묶어 생각한 것은 20세 때(동경 음악학교 2학년)부터였다. 이 시기의 작품 무용모음곡 ≪Exotic for Children≫(피아노 음악, 작품1번, 1942년)에서 그런 생각이 드러난다. 제1번곡 <프롤로그>는 단조의 조성음악이지만, 그 다음 곡부터는 장단조의 틀을 벗어난다. 제2번곡 <차르메라>(Charmera 또는 Charumera)는 새야화현과 4도병행 선율이 지배하는데, 이는 후에 오는 나운영 음악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종지화음은 제3음 없이 제1음에서 제5음까지를 모두 울린다. 제3번곡 <아랍춤>은 왼손이 주로 4도 음정의, 동적인 리듬을 곡의 끝까지 일관되게 연주하고, 오른손은 아랍적 음계의 선율과 장식음을 단선율로 연주한다. 종지는 새야화현을 울린 후 전음계의 일곱 음 모두를 동시에 울린다. 제4번곡 <멜로디>는 프랑스 음악의 장르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새야화현, 4도병행 선율, 병행적 삼화음, 감3화음, 증3화음을 뒤섞어 사용한다. 제5번곡은 <코샤크춤>으로 완전5도와 완전4도로 조립된 동적인 왼손이-간혹 싱코 리듬으로 바뀌며-바탕을 만들고, 그 위에 변형되는 음계의 선율이 울린다. 화성 역시 선율의 상황에 맞추어 변형된다. 이 모음곡은 나운영이 기능화성적 틀을 주로 민속적 춤곡을 통해 극복하려 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일정한 리듬틀들은 바르톡의 음악과, 선율병행은 드뷔시의 음악과 가깝다.
그의 20세(1942) 때 피아노음악인 ≪Fantasy & Dance≫(1955년 ≪Piano Rhapsody≫ 제1악장으로 사용됨)는 완연하게 드뷔시적이다. 이 곡은 처음 세 마디에서 장3도 화음이 연속적으로 진행된다. 병행선율은 2도와 6도 간격으로도 진행한다(마디4-5). 왼손의 화성은 전통적 기능화성과 무관하다. 아직 3도(또는 3도를 쌓는 일)가 많은 편이지만 삼화음의 바탕음이 베이스에 오는 일이 없다. 오른손의 선율은 때로 2성부로, 때로 3성부로 구성되는 느슨함을 보인다. 화성적 시스템이 될 만한 것이 없다. 4/4박자의 규칙성이 느껴지지 않게 선율은 자유롭게 ‘흐른다’.
나운영의 ″민족현대 특징″의 음악은 20세 때 작곡한 위의 두 작품에 그 흔적을 남겼는데, 그 중요한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① 병행: 선율이 여러 가지 음정으로 -가장 많게는 4도와 5도로- 병행한다.
② 민족(또는 민속)리듬: 한국전통음악의 리듬 또는 그것을 생각나게 하는 리듬을 사용한다.
③ 음계(5음음계, 7음음계 등등)의 구성음을 조립하여 화성을 만든다. 음계의 구성음들이 자유롭게 조립되어 화음으로 울린다.
④ 삼화음(또는 삼화음의 제3음)은 기피되거나, 약화되거나, 비기능적 방식으로 사용된다.
이 네 가지 특징은 나운영 음악에서 분리되어 나타날 수도 있지만, 같이 나타나는 일이 많은,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남는다.
나운영은 1950년대 중반부터 무조성음악(12음기법음악)이나 그 이후에 나타난 서양의 현대음악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드뷔시, 바르톡, 또는 스트라빈스키 정도의 음악은 1950년대 들어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유럽의 분위기가 그에게도 전달된 것이다. 1955년 그는 최초의 12음기법음악을 작곡했다. 그 이후 그의 심포니에도 12음기법적 음악이 나타난다(심포니 제5번과 제8번). 하지만 그것은 음렬 안에 5음음계를 숨겨두는 방식의 음악이었다. 그러니까 그의 12음기법적 음악은 쇤베르크에게서처럼 전체음악을 총괄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음계도 포괄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복수의 음계가 공존하는 상태가 된다. 쇤베르크에게서 12음기법이 기존 음악을 완벽하게 극복하고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나운영에게서는 여러 기법들을 혼합하는 것이 된다.
제7번 심포니(1968)에서는 -여러 종류의 음계들과 함께- 우연음악, 음색작곡(쇤베르크에 기댄 개념), 색채음악(스크리아빈에 기댄 개념) 등을, 제10번 심포니 ≪천지창조≫(1975)는 클러스터(Cluster), 색채음악, 우연음악 등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런 기법들은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표제적 내용과 묶이어 사용된다. 이 두 작품은 작품으로서의 가치보다는 그가 얼마나 다양한 현대음악을 공부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면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나운영은 바로 이 심포니를 작곡하던 시기에 이런 종류의 현대음악과 거리를 두고, ″선토착화 후 현대화″라는 구호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이것은 민족적인 음악을 먼저 이룬 후 현대화를 해야 옳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로써 그는 음악학교시절의 목표였던-드뷔시나 바르톡에 심취하던 때의-민족현대 특징의 음악으로 회귀한다. 한국 전통음악을 공부하여 4도와 5도 병행을 여러 음계에 적용시키고, 민속적 리듬을 자신의 음악에 적용한다.
그의 작곡은 민족현대특징 음악을 할 때 가장 의욕적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무조성 이후의 음악은 그의 작곡성향과 잘 화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작품들은 수도 적고, 그 기법이 가진 가능성의 일부만 사용했다. 그가 12음기법음악이 조성적 음계와 혼합된 상태로 작곡한 것은 그 기법에 절대적 우위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12음기법은 경우에 따라 오히려 조성(또는 조성적 경향)을 더 두드러지게 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그의 음악적 사고가 현대성을 절대화하는 당대 서양의 작곡미학과 다른 것이었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대성보다는 민족성에 더 우위를 두었고, 친근성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친근성, 민족성, 현대성을 동시에 취하려고 했던 한국의 작곡가였다.
나운영의 기악곡들은 같은 장르의 잘 알려진 서양 작곡가들의 곡에 비해 짧은 편이다. 모음곡들에 들어 있는 각 곡들도 한 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경우도 많고, 어떤 경우는 단 2마디로 이루어진 곡도 있다(예: ≪피아노를 위한 12개의 프렐류드≫ 중 2번곡 판타지1(1973)). 짧은 기악곡들의 경우 기법적 측면의 핵심만 드러내는 일이 많다. 이는 군더더기와 반복을 싫어하는 그의 음악적 성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성악곡에서도 일정한 가사가 반복되는 일이 드물다. 그의 심포니들은 대체적으로 짧다. 30분 또는 40여분 안팎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모두 13편의 심포니를 썼다.
심포니 장르는 그의 작곡실험장이었다. 많은 종류의 작곡기법이 사용되었다. 그의 심포니들은 표제를 달아 줄거리를 설명하는 경향이 우세하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1958)이라는 제목의 제1번은 각 악장들이 <여명>, <수난>, <통곡>, <환희>라는 표제를 갖고 있다. 제2번은 419혁명을, 제8번은 부정선거를 내용적으로 다룬다. 각 악장에 장르명칭이 붙은 경우도 일정한 줄거리적 경향을 보인다. 즉 ″어둠에서 빛으로″라는 베토벤 식 구호에 맞는 전개과정을 보인다. 예를 들어 제4번(1964)은 1악장 Chaconne, 2악장 Elegy, 3악장 March라는 장르명칭을 달고 있는데, 3악장의 행진곡 리듬이 제1번 종악장의 리듬과 유사하다. 제5번 제5악장은 활달한 종악장인데, 4, 2, 1악장의 테마를 역행으로 만들어 사용하여 어둠이 뒤집혀 빛을 보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운영은 12음기법을 제5번과 제8번에서 어둠을 뜻하는 부분에서 사용한다. 표제음악적 성향을 추측하기 어려운 것은 제3번, 제9번인데 모두 단일악장의 것이고, 일정한 형식적 실험을 보인 작품들이다. 심포니를 대략적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① 민족현대 특징의 심포니
제1번 ≪한국전쟁≫, 전4악장 / 제2번 ≪1961년≫, 전3악장 / 제4번, 각 악장에 장르명칭 표제, 전3악장 / 제6번 ≪탐라≫, 단일악장 / 제9번, 산조형식, 단일악장 / 제11번, 각 악장에 장르명칭 표제, 전3악장 / 제12번 ≪남과 북≫, 단일악장 / 제13번 ≪아리랑≫, 전3악장.
② 민족현대 특징이 포기되지 않은 채 더 현대적인 특징이 가미된 것.
제3번, 단일악장, 부분적으로 12음계와 클러스터 사용, 악곡의 절반이 거꾸로 뒤집혀 연주됨. / 제5번, 각 악장에 장르명칭 표제, 전5악장, 부분적으로 12음기법 사용. / 제8번 ≪1967년≫, 각 악장에 장르명칭의 표제, 전4악장, 부분적으로 12음기법 사용.
③ 무조성 이후 특징의 음악
제7번 ≪성경≫, 전7악장 / 제10번 ≪천지창조≫, 전7악장
②는 ①의 내용이 현대적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①과 ②는-산조형식을 따르는 제9번을 제외하고는-모두 소나타악장형식을 가졌지만, 그 중 제4, 5, 6 번의 경우 소나타악장형식의 일부를 다른 악장에 옮긴 것을 볼 수 있다. 나운영은 제7번 같이 형식성 판별이 어려운 경우에도 4, 5악장을 발전부로 보고, 소나타악장형식으로 해석한다. 이렇듯 그는 심포니를 거의 소나타형식과 연결시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의 소나타악장형식은 전개부의 비중이 작고, 모티브 작업이 약하다. 그 대신 ‘부분 대 부분’이 대립시키는 성격이 강하다. 특히 각 부분들은 일정한 음계를 설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작곡되는데, 음계들의 대립적 성격이 음악을 꾸려가게 한다.
①의 예로 제1번 심포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음악이 시작하면 현악기들은 ppp로 c장조 5음음계의 구성음들을 분산적으로 연주하여 음향적(또는 화성적) 바탕을 만든다. 그 위에 제1바이올린은 하강하는 음형으로, 제2바이올린은 그것을 거울진행(투영)하는 방식으로 연주한다(비올라도 마찬가지). 첼로는 4/4의 박자기호와 상관없이 4분음표 세 개를 한데 묶은 3박자로 각각 완전5도로 묶인 화현(C’-G, G-d, c-g)으로 오스티나토적으로 반복한다. 베이스 역시 한 음이 3박자를 이루는 긴 음표로 5도+4도로 5도윤곽(c, g, c)이라는 말로 설명되는데, 본래의 음계음을 양, 반음계 내린 경우를 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음이나 온음 올릴 수도 있다. 번짐이라는 용어는 이웃음으로 변하는 관계를 설명하기에 용이하다).
바이올린, 비올라, 호른은 첼로와 베이스의 오스티나토적 음형과 상관없이 번진다. 즉 마디6에서 제1테마를 마감하는 A, E 음이 반음씩 내려지는데, 이는 지나치게 명확한 5음음계가 될 수 있는 선율에 변화를 주는 것과 관련 있다. 이를 통해 C-G의 5도윤곽(첼로/베이스) 위에 A♭장조(또는 c단조)가 겹쳐지는 이중조성(복조) 현상을 보인다. 긴장도가 한층 더 높여지는, 그 다음 마디8 F#, E♭, C, A, G 의 번짐도 제1테마를 비음계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마디9에서 F#은 F로 번지기하고, 마디10에서 다시 F#이 된다. 이 첫 부분이 끝나는 마디11에서는 3음만 빠진 7음음계의 모든 음이 짧게 울리며 마감한다. 이 음악의 두드러진 특징은 병행(특히 4도병행)이고, 그 반대로 진행하는 거울진행(투영)도 자주 나타난다.
3화음적 성격을 가진 제2테마는 마디45에서 민족적인 제1테마와 비교된다. 제1악장은 소나타악장형식으로, 제2악장은 제1악장의 제1테마를 변주하여 사용하고, 자신이 작곡하여 전쟁 중에 널리 불린 <통일행진곡>(″압박과 설움에서″)의 후렴부분을 인용한다. 제3악장은 짧은 서주 후에 선율이 주도하는 가곡형식이고, 제4악장은 장고장단과 함께 반음계적으로 번져 만들어진 5음음계 선율을 등장시키고, 제1악장 제1테마가 변주된 5음음계의 짤막한 행진곡이 울린다.
②의 예로 제3번 심포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3번(1963)은 단일악장으로 되어 있고, 표제가 없다. 이전의 심포니와 달라진 점이 있는데, 기존의 민족현대 특징의 음악이 포기되지 않는 상태에서 첨단적 음악이 가미된 것이다. 이 곡에 사용된 3음음계, 5음음계, 7음음계, 9음음계는 작곡가 스스로 한국적 성격의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7음음계와 9음음계는 일정한 음들을 비음계적으로 변화시키는 번짐에 의해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6음음계는 드뷔시 식의 온음음계이다. 9음음계까지의 음악은 민족현대 특징의 심포니와 가깝다. 하지만 여기에 12음계와 클러스터 음악이 덧붙여진다. 12음계 음악에서도 5음음계적 제1테마가 같이 울리고, 클러스터는 피아노에서만 사용된다. 이것은 나운영적인 혼합이다. 3, 5, 6, 7, 9, 12음계와 클러스터는 곡을 상승시키는 요소인데, 많은 구성음을 가지는 음계일수록 긴장도 높은 음악으로 사용된다.
이 곡의 또 다른 실험적인 요소는 중간에서 음표 하나하나가 완벽하게 거꾸로 연주된다는 점이다. 이런 면은 서양에서 있었던 작곡적 실험을 스스로 해본 성격의 것이다. 이렇게 거꾸로 하는 연주를 그는 ″우연음악″이라고 불렀다. 거꾸로 연주하되-음악이 거꾸로 연주되지 않고-부분들의 순서만 바꾼 것도 제12번 심포니에서 나타난다(ABA 형식에서 첫 번째 A는 abc로, 두 번째 A는 cba로 배열된다).
③의 예로 제7번 심포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7번 심포니 ≪성경≫은 악보상으로 6페이지 분량이다. 7악장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각 악장을 연주할 때 주어지는 조명색깔이 있다. 1악장 <예언>(색깔 없이 밝게), 2악장 <그리스도의 탄생>(오렌지색), 3악장 <그리스도의 고난>(구름, 흑청색), 4악장 <그리스도의 부활>(백색), 5악장 <그리스도의 승천>(청자, 가지색), 제6악장 <그리스도의 강림>(청색), 제7악장 <그리스도의 재림>(황색)으로 되어 있다. 이는 스크리아빈 식의 색채음악을 의도한 것이다. 홀수 악장은 화현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반면 짝수 악장은 화현+단선율로 되어 있다. 화현을 그린 악보는 매 마디마다 온음표가 하나씩 차지하고 있으나 그것을 연주하는 템포, 박자, 리듬은 자유롭게 선택될 수 있고, 음높이도 4옥타브 이내에서 마음대로 이동하여 연주할 수 있는데, 고음악기는 최저음을, 저음악기는 최고음을 내는 것이 좋다고 작곡가는 말한다. 반복 횟수조차 연주자의 자유이다. 우연음악의 일종이다.
매 마디마다 연주하는 악기들이 달라지는 음색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쇤베르크 식의 음색선율을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용된 화현은 쇤베르크에 비해 긴장도가 심하지 않다. 제1악장은 완전5도 c’-g’에 갖가지 음높이의 단2도를 첨가한다. 제2악장은 단3도 b’-d’’에 갖가지 위치의 장2도를 첨가한다. 뒷부분은 d단조의 선율 하나만 그려져 있으나 남성과 여성이 각각 ″아″와 ″흠″의 발음으로 연주하는 카논이다(트라이앵글을 같이 치도록 되어 있으나 어떻게 칠 것인지 지시되어 있지 않은데, 이 부분은 연주자들의 자유에 맡겨진 것으로 보인다). 제3악장은 증4도 c’-f#에 갖가지 위치의 증5도가 첨가되어 있다. 제4악장은 완전4도 f#’-b’에 갖가지 위치의 장3도(감4도) 음정이 첨가되어 있다. 뒤를 따르는-간혹 두 음이 동시에 울리는-e단조의 단선율 노래는 남녀가 함께 ″아″의 발음으로 노래한다(팀파니와 심벌즈가 같이 연주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것 역시 자유스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제5악장은 단2도 c♭’’-d’’에 갖가지 위치의 완전5도 음정이 첨가된다. 제6악장은 장2도 c’’-d’’에 갖가지 위치의 단3도 음정이 첨가된다. 그 뒤에 나오는 반음계적 단선율은 포르타멘토가 많이 붙어 있으며, 남녀가 ″아″의 발음으로 연주한다. 제7악장은 장3도 c’-e’에 갖가지 위치의 단3도가 붙는다.
3개의 피아노협주곡(Piano Concerto, No.1, 2, 3), 2개의 바이올린협주곡(Violin Concerto, No.1, 2), 6개의 첼로협주곡(Cello Concerto, No.1, 전6곡)은 대체적으로 ①의 심포니 방식의 음악을 보여준다.
그의 ≪바이올린 산조≫(1955)는 빠르기에 의한 형식을 갖는 음악으로, 종지 부분이 계면조를 생각나게 한다. 4도와 5도병행의 선율이 지배적이고, 화성은 도처에 첨가음을 동반한다. ≪8인의 주자를 위한 시나위≫(1965)는 각 성부들이 다른 성부와 상관없이 진행하는 시나위의 성격을 이용한 음악이다. 다섯 개의 선율악기들은 같은 테마를 서로 다른 조성과 음계(4, 5, 6, 7, 12음계)로 카논을 이루며, 비브라폰은 12음기법적 화성을, 타악기는 장단을 연주한다. 테마의 첫 부분은 큰 소리로, 여타의 4개 부분은 여리게 연주된다.
나운영의 작곡활동은 가곡에서 출발했다. 그는 60여곡의 가곡을 작곡했다. 초기의 가곡들은 홍난파나 현제명의 것들처럼 쉽게 불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반면 그의 예술적 성향의 가곡들은 친근하게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독특한 작곡방식을 실험한 것이었다. 그의 ‘예술적’ 가곡에는 한국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혼합되어 있다. 어떤 것은 더 한국적으로, 어떤 것은 서양의 19C 음악을 벗어나는 시도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가곡들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즉 쉽게 부르고 들을 수 있는 ″서정가곡″, 예술적 성격이 강한 ″가곡″, 교회용 ″성가 독창곡″이 그것이다.
그의 ″서정가곡″에는 ≪아 가을인가≫(1936), ≪가려나≫(1939), ≪기다림≫(1958) 등과 같은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의 ″가곡″은 ≪박쥐≫(1946)로부터 출발한다. 이 작품은 음산한 시적 내용을 증3화음, 병행화음 등으로 그려내며, 간간히 낭송적이다. ≪박쥐≫에서는 낭송적 측면이 지나가듯이 가볍게 부각된다. 그러나 ≪아흔 아홉 양≫(1949)에서는 분명한 레치타티보가 사용된다. 이 곡은 가사의 내용전개에 맞춰 아리아 부분도 갖는다. ≪초혼≫(1964)에서는 매우 뚜렷하게 ‘낭송’과 ‘노래’의 성격이 나뉘면서 곡이 구성된다. 낭송은 한국어의 띄어쓰기에 유의하거나, 줄줄이 주워섬기는 방식을 사용한다. ‘낭송’과 ‘노래’ 성격은 나운영 가곡의 형식 구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 두 요소는 한 가곡에 공존하면서 형식적 극점(極點)을 이룬다. 그리고 그 성격이 판이함으로 인해 대조적 성격이 부각된다. 따라서 작곡가는 이 두 부분에 맞는 가사분배를 위해 시의 성격에 주목한다.
전통음악적(또는 판소리적) 시김새를 사용한 ≪접동새≫(1950)는 ‘비조성적 화성’과 ‘조성적 화성’이 대립구도를 이룬다. 이렇게 화성적인 다름을 통해 곡을 구성하는 경우는 ‘낭송’과 ‘노래’의 특징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사용된다. 조금 특이한 예를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은 ≪시편23편≫이다. 이 곡은 ‘물구나무 삼화음’과 ‘바로선 화음’의 대립구도로 되어 있다. 이러한 대립은 삼화음이 비조성적 화성(또는 물구나무 삼화음)의 풀림으로 착상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삼화음은 짧지만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이런 면에서 필자는 나운영의 음악에 삼화음으로 대표되는 친근성이 포기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운영의 가곡에는 포르타멘토(portamento)의 사용이 자주 눈에 띈다. 이는 그의 기악곡과 합창곡에서도 중요한 기법이다. 이는 전통음악의 미끄러지는 시김새와 관련이 깊다. 큰 규모의 가곡에서는 포르타멘토가 없는 것을 찾기 어렵다. 예외적으로 조성적인 가곡 ≪달밤≫(1946)의 포르타멘토는 전통음악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의 교회칸타타에는 ≪부활절 칸타타≫(시: 김병기, 1956), ≪크리스마스 칸타타≫(시: 박화목, 1956), ≪나의 주 나의 하나님≫(오소운, 1979, 가면극으로 착상되어, 음악이 안 붙여진 대본부분도 있다), ≪하나 되게 하소서≫(시: 김경수, 1992)가 있다. 세속 칸타타로는 ≪3.1의 횃불≫이 있다. ≪부활절 칸타타≫는 나운영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판소리 음악을 합창음악에 접목시킨 이 곡은 예수의 수난을 그리는 가사의 내용과 ″서러운″ 한국적 소리가 잘 어울린다. 화성 역시 다양한 실험적 측면을 보여준다. 5음음계 화음(1번곡), 오스티나토 베이스(2번곡), 판소리적 독창곡(3번곡), 판소리 풍의 독창과 합창(4번곡), 재즈풍 리듬의 합창(5번곡) 등이 특징이다. ≪크리스마스 칸타타≫는 나운영의 오스티나토 베이스, 병행과 투영기법, 종소리 묘사, 말발굽소리 묘사, 시조 가락 분위기를 의도한 독창 등이 목가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그의 주요 작곡 기법이 소박하게 부각된다.
그의 미사 1번, 2번, 3번은 나운영 화성학을 소박한 방식으로 펼쳐 보이는 짧은 합창곡들의 묶음이다.
나운영은 1105여곡에 달하는 찬송가를 남겼다. 그의 본격적 찬송가 작곡 시기는 1979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죽은 해인 1993년까지인데, 이는 사실상 찬송가 작곡만의 시대였다. 그는 찬송가들을 통해 자신의 한국화성학을 실제 작품에서 많이 실험한다. 물론 그의 한국화성학의 내용은 그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있기는 하지만 아직 시스템이 되지 못하던 때의 것이다. 그의 한국화성학에는 5도와 4도의 음정이 병행한다. 소프라노와 알토가 상행하면 테너와 베이스는 하행하는, 소프라노와 알토가 하행하면 테너와 베이스는 상행한다. 이런 구조는 선율이 화성과 개개 성부의 진행까지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이 틀은 기본적인 것이고 실제 사용에서는 다양하게 변형된다.
나운영은 3개의 오페라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대본: 김문응, 1962), ≪에밀레종≫(대본: 김문응, 1972), ≪바보온달≫(주태익, 1976)을 썼으나, 모두 총보가 아닌, 피아노보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밀레종≫은 전통음악의 장단에서 많이 보는 여러 형태의 3박자 리듬이 오페라 전체를 주도하고, 두 마디 단위의 낭송이 많아 비교적 쉽게 만들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병행하고, 첨가음이 붙고, 선율이 도약하고, 음계가 변형되는 나운영적 특징이 까다롭지 않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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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자: 2010.1.8
[홍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