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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트 [motet, motetus,·motellus,·motecta, Motette, mote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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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트
(영•불. Motet, 라. motetus•motellus•motetus•motecta, 도. Motette, 이. motetto)

1. 변화 많은 의미:  모테트에 관해 비교적 많이 통용되는 정의를 내려본다면, 미사를 제외한 다성부로 꾸며진 성악적 교회음악 정도이다.  주로 다성부 합창음악이지만 독창곡도 있으며, 반주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형식 또한 역사적으로 각양 각색이다.  음악의 길이는 칸타타에 비해 짧고, 오늘날 한국의 교회에서 성가대에 의해 불리우는 합창곡 정도의 길이가 단연 많다(5분 내외). 그러나 바하의 것은 칸타타만큼 길다. 

1220년대부터 있어온 이 용어는 많은 변화를 거쳤다.  음악사적으로 초기 다성음악의 가장 두드러진 장르이며,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음악발전의 실험장이었다. 15세기 이후에는 대개 모테트가 라틴어 가사를 가진 무반주 성악곡이었고, 예배를 위해, 특히 저녁 기도회를 위해 만들어졌다.  한편으로 지엽적인 발전상황도 보였는데, 세속화된 모테트(13세기•17세기 말), 오케스트라 반주와 자국어 가사를 붙인 모테트(17세기 독일과 프랑스, 영국은 자국어 가사의 음악을 앤덤이라 부름)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테트의 시대구분을 다음과 같이 할 수 있다.  ① 1220-1450, ② 1450-1600, ③ 1600-1750, ④ 1750-1910, ⑤ 현대.

2. 어원: '말'을 뜻하는 프랑스어 mot에서 유래.

II. 역사
1. 1220-1450: 1200년경 프랑스에서는 다성부 성가 중의 멜리스마적인 부분을 다듬어 음악을 만들었다. 이러한 다성부 성가에서 상대적으로 느리게 진행되는 아래 성부를  다성음악의 기본이 된다는 의미로서 테노르(Tenor, 지탱성부)라 이름했고, 그 위에 제2성부(Organum duplum)를 얹었다. 이때  멜리스마적인 부분의 선율성이 증대되고, 테노르 부분도 멜리스마적인 윗 성부에 어느 정도 상응하게  빠르기와 선율성이 조정되었는데, 이 부분을 클라우술라(라. clausula)라고 불렀다. 이 부분이 확대되어 곡 전체의 틀이 되었고, 자유로운 각 성부에 독립적인 가사를 부여하게 되었다. 노트르담 시대까지도 멜리스마에서 유래한 상성부에 테노르 성부와 관련된 라틴어 가사가 붙었으나  곧 불어의 세속적 가사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불어 가사가 붙여진 제2성부를 모테투스(motetus)라고 칭했다. 이 모테투스 성부를 가진 새로운 쟝르의 음악을 모테트라고 했다.  따라서 모테트는 두 개의 가사가 다른 성부에서 동시에 불리는 음악이었다. 

라틴어와 불어 가사가 사용된 경우에, 라틴어 가사를 가진 테노르는 -가사 전달의 의미가 거의 퇴색했으므로- 노래 불려지지 않게 되고, 대개 악기로 연주된다.  테노르에는 mot(말)라는 단어와 원가사의 첫머리가 기록된다.  초기에는 리듬적으로 유사하게 움직였던 상성부들이 점차 더 강한 독립성을 보인다. 내용적으로도 자유롭게 되어 차츰 세속적인, 심지어는 연애에 관한 가사까지 붙여진다. 음악도 잘 알려진 세속음악의 후렴을 취하게 되어, 예배음악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다. 13세기에 가장 보편적인 모테트 형식은 3성부의 2중 모테트였다(이중이란 것은 상성부가 둘이라는 의미). 기악적 테노르의 비중은 점점 약화된다.  따라서 상성부들이 중요성을 갖게 된다.  기악으로 반주되는 독창 모테트(2성부)와 이중창 모테트(3성부)가 나타난다.  두 개의 상성부는 원래 리듬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지녔으나, 최상성부가 작은 음표들을 사용하여 더 비중이 큰 성부가 된다(Petrus de Cruce). 프랑스에서는 상성부들이 서로 달라지는 경향을, 영국에서는 서로 비슷해지려는 경향을 보인다.

14세기 프랑스에서는 동질서 리듬이 형성된다.  이로 인해 모든 성부들이 리듬적 도식에 묶인다.  비트리(Philipp de Vitry), 특히 마쇼(Giullaume de Machaut)가 동질서 리듬을 철저히 사용하여 매우 인위적인 작품을 만든다.  마쇼의 모테트 형식은 15세기까지 규범적인 것으로 남는다.  그러나 상성부에 한해서는 엄격한 리듬을 포기하고, 하성부에만 옛 작곡방식을 적용한다.  15세기 초에는 동질서 리듬적 모테트가 큰 축일에만 사용된다. 이제 매우 단순한 모테트가 유행하는데, 이 새로운 유형은 대위적•리듬적 조직보다는 듣기 좋은 소리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새 형식은 여러가지 가사를 갖는 일이 없고, 주로 예배적인, 한 개의 가사를 가지며, 마치 기악으로 반주되는 독창노래나 이중창 노래처럼 불린다.  뒤파이의 모테트 <구세주의 어머니 찬가>(Alma redemtoris mater)에서는 엄격하게 호모포니적인 부분, 그리고 형식적으로 독립적인, 가사가 없는 부분이 있다.

2. 1450-1600: 15세기에는 모테트의 중요성이 미사에 비해 뒤진다.  따라서 모테트는 미사의 형식을 수용한다.  15세기 중엽에 모테트는 순수 전례적(典禮的) 음악이 된다.  가장 많이 작곡되는 가사는 네 개의 마리아 안티폰•솔로몬의 아가서•대중적 교회 찬송 등이다.  이 때의 작곡가들은 모든 성부들이 같은 비중을 갖도록 노력한다.  오케겜은 전체 성부가 나오는 부분과 성부의 일부가 나오는 부분으로 곡을 나누는데, 이것이 후에 오는 작곡가들에게도 원칙으로 받아들여진다. 오케겜은 각 성부에 한 선율형태를 고정시켜 사용하지 않고 모든 성부를 동등하게 구성했다. 오케겜 이후의 시대에는 디스칸투스 모테트가 쇠한다.  흥하는 것은 폴리포니적 곡이었고, 곡 전체를 일정한 선율형태를 통해 통일적으로 구성하였다. 15세기 말에는 4성부가 보편적 기준이 된다.  모든 성부의 동등성은 모방기법의 철저한 사용으로 획득된다.

 팔레스트리나와 랏소가 활약한 16세기는매우 통일적인 모테트를 보여준다.  테마적 재료는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따온다.  가사는 의미대로 분할되고, 분할된 각 부분들에는 모방적으로 음악이 붙여진다.  이러한 발전은 매우 균형적인 음악을 가져오는데, 이를 팔레스트리나 양식이라 칭한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은 카톨릭 교회에 의해 전례음악의 모범으로 공인된다. 죠스깽과 팔레스트리나 시대의 중요 모테트 작곡가들로서는 공베르(Nicolas Gombert), 클레멘스 논 파파(Clemens non Papa), 데 케를레(Jacobus de Kerle), 데 몬테(Philipp de Monte) 등이 있다.

네덜란드의 작곡가 랏소는 1200여곡의 모테트를 작곡했는데, 외적 형식과 내적 표현력에서 놀라운 다양성을 보여준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이 전체적 균형을 위해 세부적인 면이 억제되었으나, 랏소의 음악은 세부적인 면이 묘사음악적 방식에 의해 두드러진다.  그리고 어려운 성악적 테크닉을 요구한다.  빠른 패씨지, 심한 도약, 콜로라투라 등이 성악교육을 목적으로 쓰여졌다.  많은 그의 모테트들은 호모포니적인 구성을 갖고 있다.  그의 화성은 매우 대담한 진행을 보여주기도 한다.  랏소의 모테트에 나오는 모티브적 재료의 많은 부분은 그레고리오 성가로부터 오지 않았다.  이 점이 항상 성가와 관련된 모티브 재료를 사용한 팔레스트리나 •모랄레스(Cristobal Morales)•데 빅토리아(Luis de Victoria)와 다르다.

이중합창 모테트는 베니스에서 빌라르트(Adrian Willaert)에  의해 시작된다.  이중합창적 요소는 죠스깽에 의해 (부분적으로 합창성부들을 분할•대립시킴으로써) 이미 사용되었다.  빌라르트는 네덜란드 사람으로서 40이 되어서야 베니스에 정착했는데, 그 이전에 그는 주로 죠스깽 방식의 모테트를 작곡했었다.  그는 베니스의 <성 마가 교회>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교창송(antiphonale)으로 불리우는 시편과 마그니피카트를 다성부적으로 작곡한다. 그의 이중합창곡은 서로 바라보는 두 합창단에 의해 부리우는데, 주로 번갈아가며 불리우고, 절정에서는 두 4성부 합창단이 연합하여 8성부의 음량으로 노래한다.  이중합창이 아닌 단일 합창단을 위한 4성부의 모테트에서 빌라르트는 느린 멜로디 흐름과 어두운 화성을 보여준다.  빌라르트의 작품에는 벌써부터 후에 보이는 베니스 악파의 특징들, 즉 합창과 독창자에 의한 낭송과 폭넓은 화성의 사용이 나타난다. 빌라르트의 후계자는 치프리아노 데 로레(Ciprino de Rore)인데, 그는 훌륭한 마드리갈 작곡가였다. 이 두 사람은 모테트에서 빌라르트가 보여준 방향을 계속 발전시켰다.

베니스 악파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안드레아 가브리엘리(Andrea Gabrieli)와 그의 조카 지오반니 가브리엘리(Giovanni Gabrieli)이다.  그중에도 지오반니의 비중이 더욱 크다.  그의 음악은 이중합창의 기법을 화려하게 전개시키고, 새로운 전조 연결, 반음계 처리, 음향적 구성등을 통해 새로운 효과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대위법에도 능숙한 면모를 과시한다.  그의 대위법은 네덜란드 악파나 팔레스트리나의 것과 다르고, 랏소의 가사 표출적인 것과도 다른, 음향적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는 성격의 것이다.  이 음향적 사고(思考)는 악기를 많이 도입시킨다. 연주그룹의 분할을 통한 음향적 사고는 바로크 시대에 콘체르토의 전통과 연결된다. 그의 <교회 콘체르토 >(Concerti ecclesiastici)와 <거룩한 심포니>(Sacrae symphoniae)에는 많은 악기들이 사용된다.  이러한 전통을 그로부터 직접 이어받은 사람이 독일인 제자 쉿츠이다. 

15세기 이후의 독일 모테트는 네덜란드와 이태리 모테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중요한 작곡가로는 하인리히 핑크(Heinrich Finck), 헤르만 핑크(Hermann Finck), 아담 폰 풀다(Adam von Fulda), 슈톨쳐(Thomas Stoltzer), 센플(Ludwig Senfl)  등이 있다.

독일의 모테트는 종교개혁 이후에 중요성을 띠기 시작하는데, 찬송가 모테트(Liedmotette)와 성구(聖句) 모테트(Spruchmotette)가 대부분이다.  찬송가 모테트는 네덜란드 악파의 모테트와 비슷하게 고정선율을 사용하는데, 이의 선율은 그레고리오 성가가 아닌 독일 신교 찬송가에서 따온다.  찬송가 모테트의 전성기는 1570년부터 1630까지이다.  대표적 작곡가로는 렉흐너(Leonhard Lechner), 엑하르트(Johannes Eccard)를 들 수 있다. 성구 모테트는 고유미사의 가사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성격의 모테트이다. 그러나 가사 내용은 미사처럼 전례와 상관있는 것이 아니고, 주일날 성경봉독에 사용되는 성구에서 따온다.  성구 모테트는 독일어 가사를 갖는다.  중요 작곡가로는 렉흐너, 엑카르트, 데만치우스(Christoph Demantius), 하쓸러(Hans Leo Hassler) 그리고 후에 오는 쉿츠 등이다.

가브리엘리 계열의 이중합창과 폴리포니에 능한 독일의 작곡가로서는 카톨릭 지역인 남부독일에서 활약한 갈루스(Jacobus Gallus)가 있다.

3.1600-1750: 15세기부터 발전되기 시작한 무반주 모테트 양식은 16세기에 그 절정에 달하여, 모든 성부들이 동등하여지고, 같은 방법으로 선율형태를 모방한다.  무반주적 연주는 많은 가수들을 동원할 수 있는 큰 교회에서만 가능하였고, 작은 교회에서는 실현하기 매우 어려웠다. 작은 교회에서는 중요한 성부만 노래되고 덜 중요한 성부는 악기로 연주되었다. 독일에서는 이렇게 악기와 목소리로 혼합된 연주를 더 선호한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가능한 한 여러가지 악기들의 사용을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모테트에 악기가 들어옴으로 인해 성격이 변하게 된다. 중심 성부와 반주성부가 구분되었다. 중심 성부는 가사를 말하는 노래 성부이다.

다성부 음악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더 작은 교회들에서는 모테트를 독창으로, 한 성부만 부르는 관행이 있었다.  이때에 모든 여타의 성부들은 오르간에 의해 연주되었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폴리포니적 성격이 감소된 베니스 악파의 음악에서 쉽게 실현될 수 있었다.  그래서 비아다나(Ludovico da Viadana)는 축소된 성부를 가진 음악을 발표한다.  그가 1602년에 발표한 교회 콘체르토들은 1성부에서 4성부까지의 성악이 오르간으로 반주되는데, 그 곡들에는 선율을 이끄는 성부들만이 기록되어 있고, 화성적 반주는 계속저음 악기에 맡겨져 있다.  단성부 음악에서는 벌써 매우 현대적인 콜로라투라 방식이 보인다.  이는 가브리엘리가 작품의 첫 머리에 사용한 콜로라투라 방식과 흡사하다. 이 단성부는 플로렌스의 모노디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  이중합창 모테트를 위해 오르간 연주를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음악은 비아다나 이전에도 방키에리(Adriano Banchieri)에게서 보인다.

비아다나의 모테트는 큰 환영을 받았으며, 다음에 오는 모테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악기로 반주하는 노래는 크게 유행하였고, 이를 위한 명칭도 여러가지가 있었다. 즉, <교회 콘체르토>(이. Concerti ecclesiastici, 도. Geistliche Konzerte), <독창 콘체르토>(Concerti a voce sola), <콘체르토적 모테트>(Motetti concertati) 등이다. 이들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교회 콘체르토는 기악 반주의 독창 모테트로, 콘체르토적 모테트는 기악 반주의 합창곡으로 볼 수 있다.

이태리에서는 가브리엘리 이외에도 동시대에 중요한 콘체르토적 모테트 작곡가로서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가 있다.  그의 <마리아의 저녁기도회>와 마그니피카트 모테트들은 그 이전의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들에 비해 뚜렷하게 독립적인 기악 부분을 보여준다.  독립된 기악곡을 가진 <마리아의 저녁기도회>는 한 곡에 합창•아리아•레치타티보의 요소들이 혼합되어 모테트를 벗어난 칸타타의 성격이 드러나지만, 엄격하게 전례적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모테트로 파악된다.  1610년의 마그니피카트 두곡은 옛 성악 폴리포니의 영향이 크고, 1641년의 8성부 마그니피카트는 호모포니적이다.

몬테베르디의 동시대인으로서, 콘체르토적 모테트를 썼던 사람으로는 갈리아노(Marco da Galiano), 그란디(Alessandro Grandi), 메룰라(Tarquino Merula), 카발리(Francesco Cavalli), 레그렌체(Giovanni Legrenzi), 치아니(Pietro A. Ziani), 롯티(Antonio Lotti), 칼타라(Antonio Caldara)등이 있다.  17세기 중엽의 모테트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의 영향을 받아, 더 결속된 형식을 보여주어, 칸타타와 흡사해진다(카리씨미•마조끼).

한편 로마에서는 옛 무반주 모테트 형식을 고수하여 팔레스트리나적인 엄격한 대위음악을 계승한다. 다른 장르에서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들도 모테트는 대위법적으로 작곡한다.  나니노(Gioranni Maria Nanino), 아네리오(Felice Anerio), 지오베넬리(Ruggiero Giovanelli), 인제네리(Marc Antonio Ingegneri), 마렌치오(Luca Morenzio) 등이 이러한 작곡가들에 속한다.  그러나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고수하는 작곡가 들은 베니스 식의 새로운 음악에 대해 거부적이지만은 않았다. 예를 들어 로마의 베드로 성당의 후임 음악가였던 지오바넬리는 이중합창 음악을 썼다. 그러나 모테트 곡에서는 대부분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지킨다.  큰 음악형식을 좋아하는 베네볼리(Orazio Benevoli)도, 오라토리오와 칸타타로 유병한 카리씨미도, 심지어는 18세기 오페라 작곡가 스카를랏티(Alessandro Scarlatti)•두란테(Francesco Durante)•욤멜리(Niccolo Jommelli)도 팔레스트리나 양식의 모테트를 작곡한다. 그래서 모테트는 무반주의 모방적 대위법 음악이라는 전통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알게 한다.

기악적 참여가 더욱 두드러지는 콘체르토 모테트는 칸타타로 성장•발전한다.  그리고 기악반주의 모테트는 오페라적 성격을 보인다. 그래서 레치타티보와 아리아가 전례적 가사를 가진 모테트에까지 들어온다.  이는 미사도 마찬가지 현상을 보였다. 그래도 옛 무반주 모테트를 고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푹스(Jeseph Fux)와 같은 사람이 그러한 작곡가이다. 그는 팔레스트리나의 음악에 바탕을 둔 이러한 모테트를 지향하였고, 이를 위한 대위법 교과서를 만들었다.

신교적인 독일 북부지방 역시 이태리와 비슷한 발전형태를 보인다.  단지 신교의 찬송가를 고정선율로 사용하는 점이 다르다. 이중합창은 슈뢰터(Leonhart Schröter),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등에 의해 작곡된다.  특히 프레토리우스는 거대한 작품을 남겼는데, 그는 신교 찬송가의 고정선율과 이 고정선율로부터 유출해낸 대립적 성부들을 보여준다.  그는 ① 모든 성부가 고정선율과 흡사한 옛 모테트 양식,  ② 고정선율에  가사의 의미에 따라 자유롭게 대선율이 붙는 마드리갈적 기법, ③ 고정선율에 대립한 모든 성부가 같은 모티브로 대선율을 이루는 방식, ④ 이중합창곡(성악과 기악 대립•독창과 합창의 대립•계속저음과 기악적 리토르넬로 삽입)등의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다.

한편으로 샤인(Johann Hermann Schein)은 큰 형식보다는 작은 형식을 취한다.  그는 마드리갈의 표현방식을 모방형식에 접합시키려고 한다.

쉿츠는 랏소 방식의 마드리갈 형식으로 쓴 모테트 모음집 <거룩한 노래> (Cantiones sacrae, 1625)를 펴냈는데, 이는 계속저음이 붙었다고 하나 순수 무반주 성악곡이라고 볼 수 있다. 가사를 음악화시키는 묘사음악적 성격이 강하여 보편적 모테트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가 1648년에 펴낸 <교회 합창음악> (Geistliche Chormusik)은 옛 모테트 방식을 보여주는데, 묘사적 방법을 절제하여, 표현적 방식과 전통적 모테트 기법 사이의 균형을 이룬다. 그는 이러한 무반주 모테트 이외에, 교회 콘체르토도 작곡하는데, 이 작품들은 주로 독창자 모테트와 콘체르토적 합창 모테트로서 많은 악기에 의해 반주된다.  그의 <작은 교회 콘체르토> 모음집은 비아다나의 영향이 크지만, 플로렌스의 모노디 작곡가들과 몬테베르디의 영향도 보여 준다.  쉿츠 모테트의 특징은 숙고된 독일어에 대한 화성 처리, 그리고 많지 않지만 효과적인 반음계 사용 등이다.

쉿츠는 후기에 스승 가브리엘리로부터 배운 이중합창을 고도로 발전시킨다.  중요 작품들은 <거룩한 심포니>에 발표되었는데, 웅장한 합창들의 대조가 섬세한 독창부분에 의해 더욱 두드러진다.  또한 가사의 적절한 구분과 풍부한 형식들도 보여준다.  그는 교회 찬송가를 덜 사용했으며, 그보다는 자유로운 창작을 선호했다.

 쉿츠 이후에 독일 신교 지역에서는 모테트 작곡이 쇠퇴한다.  그 대신 주로 칸타타와 오라토리오가 작곡된다.  바하 시대의 교회음악가들은 새로운 모테트를 작곡하기 보다는 옛 모테트를 집대성한 보덴샤츠(Erhard Bodenschatz)의 모음집(Florilegium Portense)을 사용했는데, 그 책 안에는 하쓸러, 갈루스, 칼비시우스, 안드레아 가브리엘리, 지오반니 가브리엘리, 마렌치오, 인제네리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었다.  바하 역시 이 책을 사용하였고 새로운 모테트를 작곡할 필요를 많이 느끼지 않았다.  그는 주로 칸타타를 작곡해야 했다. 그가 모테트를 작곡한 것은 장례식에 필요해서 주문된 것들이다.  바하의 여섯 모테트들은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오소서, 예수여, 오소서>(Komm, Jesu, Komm)는 찬송가 가사를 바탕으로 한 마드리갈적 음악이며, <두려워 말라>(Fürchte dich nicht)는 찬송가를 고정선율로 사용한 큰 합창푸가이고, <그 영(靈)이 우리의 약함을 돕나니>(Der Geist hilft unser Schwachheit auf)는 기악 반주가 붙은 통일성이 큰 이중합창이며, <새 노래로 주를 찬양하라>(Singet dem Herrn ein neues Lied)는 '합창 심포니'라 할만한 구조를 4개 악장을 통해 보여준다.  가장 잘 알려진 모테트로서는 <예수 나의 기쁨>(Jesu meine Freude)을 들 수 있는데, 이 곡은 이중합창을 사용하지 않은 5성부 단일 합창단을 위한 음악이다. 찬송가와 성서 가사를 상호 교환•연결하여, 가사들이 서로를 설명하도록 되어 있어서, 마치 설교를 음악화한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의 모테트는 다양한 기법들을 보여준다. 즉 단순한 4부 찬송가, 찬송가를 기초로한 판타지, 트리오 소나타적인 반주, 찬송가 편곡 등을 보여주며, 가장 핵심적인 것은 푸가인데, 이 푸가가 곡을 절정으로 끌어올리면, 장엄한 호모포니가 끝을 맺는다.

4. 1750-1910: 바하 이후의 독일에서는 특색있는 모테트 작품이 보이지 않는다. 노래를 다성부화 시킨 단순한 곡들이 있을 뿐이다.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은 미사처럼 오케스트라 반주의 노래들이 있는데, 이전 같으면 이러한 곡들은 모테트라 불리울 수 있는 것들이다. 모차르트의 교회음악 소품들은(리타니아•봉헌음악)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모테트 작곡가로서는 리스트, 세자르 프랑크, 생상스, 멘델스죤, 브람스, 레거, 폴크만(Robert Volkmann) 등이 있다.

5. 현대: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전례와 관계없는 모테트들이 보인다.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16성부 합창 <당신의 잃어버린 아들 야곱>(Jakob, dein verlomer Shon), 쇤베르크의 <지상에 평화를>(Friede auf Erden), 베베른의 카논적 합창 <조각배로 달아나다>(Entflieht auf leichten Kähnen)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모테트 작곡가들로서는 다비드(Johann Nepomuk David), 페핑(Ernst Pepping), 디스틀러(Hugo Distler), 크셰넥(Ernst Krenek) 등이 있다. 펜데레츠키의 <스타바트 마터>(후에 <누가 수난곡>에 삽입)가 모테트로 분류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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