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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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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훈(朴在勳, 호: 一麥, 1922∼ 강원도 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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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합창지휘자. 박재훈의 작곡 분야는 거의가 교회음악이다. 그는 한국 교회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인물이다. 박재훈은  1922년 강원도 김화군 김성면에서 박창숙의 4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기독교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네 아들 중 하나였는데,  네 형제 모두 후에 목사가 되었다.
박재훈은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문요한(John Z. Moore: 1874-1963)이 세운 평양의 「요한 학교」에 입학하여 1943년 3회로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제국 고등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학생 시절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을 당했으나 훈련소에서 도망쳐 귀국했다. 귀국 후 평남 강서군 문동 국민학교의 교사(1942-45)로 교편을 잡으면서, 평양에 살던 이유선으로부터 작곡법을 배웠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애창하는 「어서 돌아오오」1943)는 이 무렵 작곡된 곡이다. 1946년 4월에는 서울로 월남하여 용산에 있는 금양 국민학교 교사(1946-47)로 재직하면서 해방 이후 작곡해온 동요들을 모아 『일맥(一麥)동요집』을 출판하였고, 그의 동요 20여곡이 음악교과서에 실려 많이 불리게 되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산골짝의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송이」 등. 그 후 그는 대광 고등학교의 음악 교사로 자리를 옮긴다. 한편으로 그는 새로 설립된  중앙신학교(야간)를 다녀 1회로  졸업하였다(1949).  6•25 전쟁 때에는 해군 정훈음악대에 복무(1950-52)하면서 피난 시절 부산에서 한국교회음악협회를 창립하는 일원이 되기도 한다(1952). 전쟁 후에는 기독교 방송 음악 과장을 지내기도 했다(1956-58). 그리고 영락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일했다(1953-59).
그는 37세의 나이로 미국에 유학하여 웨스트민스터 합창 대학에서 공부(1959-60)한 후 크리스천 신학교(인디애나폴리스)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1960-63). 귀국하여 다시 영락교회의 지휘자가 되었고(1963-73), 한국 찬송가 위원회 간사와 음악전문위원(개편찬송가편집)을 지냈다(1963-66). 그리고 교회음악학교를 설립하고 싶어했던 그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울 기독교 음악원」을 창설하여 운영하기도 하였다(1965-69). 1963년에서 1965년까지는 『교회와 음악』이라는 전문 교회음악잡지를 자신이 운영하던 교회음악사에서 격월간으로 펴냈다. 그리고 서양 교회음악 합창곡들을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지휘자 장수철이 타계한 후 그의 후임자가 되어 선명회 합창단을 이끌고 북미 지역을 순회 연주하기도 했다(1964-66). 1966년 순회 연주 도중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아주사 패시픽 대학으로부터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작곡과 합창지휘를 가르쳤다(1967-73). 1967년 「서울코랄」을 창단하여 정기적 연주회를 열고 두 개의 음반을 낸다(『만세반석 열리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1971년에는 오페라 『에스더』를 작곡한다. 197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할리우드 한인장로교회의 음악책임자가 되었다(1973-77).  동시에 그는 로스앤젤러스 서울 코랄을 만들어 합창지휘활동을 계속했다(1974-77). 1977년 그는 다시 캐나다로 자리를 옮긴다. 거기에서는 토론토 한인 연합교회 성가대를 지휘했다(1977-84). 1979년 토론토 한인 합창단을 창단하여 지휘하였다. 1982년 회갑을 넘긴 그는 목사 안수를 받았다(미주 한인 장로회). 1984년 영락교회의 주문에 의해 {성 마가 수난음악}을 작곡하여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첫 연주회를 열었다. 1984년 토론토에 큰빛장로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사가 되었고 1990년 목사직에서 은퇴했다. 그는 담임목사 직을 그만 둔 후 그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남아 그가 원로목사로 추대되는 1994년까지 일했다.
박재훈의 가장 큰 활동 영역은 성가대 지휘자와 합창단 지휘자였다. 그 다음으로 목회자와 교육자(초등학교 교사, 대학 교수)였다. 하지만 교육자는 그가 스스로 포기한 분야였다는 점에서 그의 독특한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는 우선적으로 교회음악가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거의 교회음악에 국한되는 것은 그 증표인 것이다. 후대는 그를 합창 지휘자, 목회자, 교육자로 기억하지 않고 교회음악 작곡가로 기억할 것이다. 

그는 목회를 하면서도 그리고 은퇴 후에도  대단히 부지런한 작곡가였다. 작품의 크기도 한국교회에서는 드물게 보는 대작들이 많다. 오라토리오 『성 마가 수난 음악』(1983)과 『뿌리, 온 땅에 편만하리』(1995), 그리고 내용상으로 보아 교회음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오페라 『에스더』와 『유관순』(2000) 등이 그러하다. 박재훈이 한국 교회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는 단순히 그의 음악을 한국교회가 애창한다는 데에 있지 않다. 물론 그는 한국교회가 가장 많이 부르는 찬송가들의 작곡가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지내온 것」,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어서 돌아오오],「산마다 불이 탄다」 등이 그것들이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1947년 이후 6회에 걸쳐 발간한 『찬미』 시리즈이다. 이 악보 모음집은 거의 자신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일부는 장수철의 곡도 들어 있다. 그 이전에는 한국 작곡가들이 교회음악을 작곡하여 교회로 하여금 부르게 하겠다는 의욕을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있다고 하면 어린이 찬송가 정도였다. 하지만 박재훈은 『찬미』 시리즈 물을 통하여 그러한 의욕을 과감하게 드러낸다. 그는 찬송가와 성가곡들을 작곡하여 세상에 내어놓았는데, 이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 교회음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것은 사재를 털어서 만든 출판물이었다. 

박재훈의 음악은 실험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는 친근하고 잘 불릴 수 있는 서양식 음악으로 자신의 작곡작업을 시작했다. 초기 음악들은 성악적 선율에 보편적 화성을 붙인 서양식 삼화음 위주의 부담 없는 찬송가, 독창곡, 합창곡(찬송가 편곡 포함)을 썼다. 그는 선율의 아름다운 구성에 관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주는 저 산밑의 백합』(여성2부 합창곡, 1948)이 그런 곡이다. 그는 멜로디 성부가 아닌 성부들도 상당히 성악적으로 다듬었다. 그러다가 1964년을 기점으로 그의 음악은 새로운 경향을 띠는데, 그것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이다. 예를 들어 독창곡집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1972)에 실린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1964)과 독창곡집의 제목과 같은 곡이 완연하게 한국 전통음악과의 관련성울 보여준다. 그러나 전통음악적 성격을 가진 그의 작품은 서양음악의 보편적 3화성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통적 리듬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 병행4도의 연속이 나오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한 한국적이라 느껴지는 음계와 장식음들의 사용도 눈에 띈다.  

 작품집, 잡지, 저서, 레코드 목록 
『일맥 동요집』서울 1946. 
『찬미1』 애민문화사 1947. 
『찬미2』 애민문화사 1949. 
『찬미3』(장수철과 공동작업) 전도사 1951. 
『찬미4』(장수철과 공동작업) 전도사 1952. 
『찬미5』 전도사 1953. 
『찬미6』 찬미사 1954. 
『찬송가 합창곡집 3』 (찬송가 편곡집) 찬미사. 연대미상
찬송가 해설서 『찬송가 작가의 면모』 교회음악사 1955. 
『주일학교 음악지도법』 교사양성 총서 장로교 총회 교육부 1956. 
격월간지『교회와 음악』교회음악사 1964-66. 
서울코랄 찬송가 레코드  1집『만세반석 열리니』, 2집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한국 찬송가집 1』 교회음악사 1970(1942-70년에 작곡된 찬송가 47곡 수록). 
오페라 『에스더』 1971.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교회음악사 1972(1964-72년에 작곡된 5개의 독창곡 수록). 
『목마른 사슴같이』 교회음악사 1973(성가 합창곡집 1944-71년까지의 작곡된 합창곡 10곡 수록). 
『고난의 주』교회음악사 1979(김정준 작사의 칸타타. 원래 1954년에 작곡된 것).
오라토리오적 수난곡 『성 마가 수난음악』 영락교회 음악부 1983. 
『십자가를 지신 예수』 아가페 음악선교원 1988( 39개의 찬송가, 7개의 예배용 찬송, 6개의 합창곡, 2개의 이중창, 2개의 독창곡, 1개의 피아노 트리오 수록).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교회음악사 1989( 22개의 합창곡, 5개의 2부 합창 또는 2중창곡, 6개의 예배용 찬송 수록).
『찬양하라 창조의 주 하나님을』 교회음악사 1991(이전에 작곡한 모든 찬송가들과 새로 작곡한 찬송가 106, 독창곡1, 예배용 음악 8, 이전에 작곡한 것을 포함한 어린이 찬송가 23, 이전에 작곡한 동요 24). 
『예수 그리스도 찬미』기독교음악사 1995(이전에 작곡한 성가 독창곡 13, 바이올린 독주곡 1개 수록). 
오라토리오 『뿌리, 온 땅에 편만하리』 영락교회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1995.
『창조주 여호와』 호산나 음악사 1997 (안성진 작사의 찬송가와 동요 모음집) 
『깨어 기도하자 주님 오신다』 기독교음악사 1999(새로 작곡된 86개의 어린이 찬송가와 111개의 찬송가, 1개의 합창곡, 3개의 기악곡 수록).
『유관순』(2000) 
『내 마음 작은 갈릴리』,내게 시를 써준 찬송시인들의 이야기, 도서출판 聖實文化, 2002.

편찬서 

『한-러 찬송가』  교회음악사 1992.
『한영 찬송가』(Korea-English Hymn Book) Korea-English Hymn Book Publication Commission 1983.
『손에 손을』 (Hands in Hands) Korea-English Hymn Book Publication Commission 1983.

참고문헌

김수연. 박재훈의 교회음악에 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1999.박진나. 박재훈 찬송가에 관한 연구.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김숙희. 박재훈의 성가독창곡에 관한 연구.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00.
홍정수.  교회음악가의 교회음악관 -나운영과 박재훈의 경우- 장신논단 제13집 1997. 12. 1. 449-467쪽. 
홍정수. 한국 교회음악사상사. 장로회신학대학교 출판부. 2000.
나진규. 박재훈의 찬송가 ‘눈을 들어 하늘 보라’에 나타난 시적 음악적 표현 어법. 『연세음악연구』 제5집 연세음악연구소, 1997. 207-224.
홍정수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박재훈(朴在勳, 1922-  )

- 1922년 1월 04일 출생(호: 일맥[一麥]).
- 1942-1945년 평남 강서군 문동국민학교의 교사로 교편을 잡음. 이유선(李宥善)으로부터 작곡법을 배움. 
- 1943년 평양의 요한학교 졸업.
- 1946년 4월 월남.
- 1946-1947년 서울 용산에 있는 금양국민학교 교사로 재직.
- 1956-1958년 기독교방송 음악과장. 
- 1953-1959년 / 1963-1973년 영락교회의 성가대 지휘자 역임. 
- 1959-1960년 미국 뉴저지의 웨스트민스터합창대학에서 공부함.
- 1960-1963년 인디애나폴리스의 크리스천신학교에서 교회음악을 공부하여 석사학위 취득. 
- 1965-1969년 ‘서울기독교음악원’을 창설하여 운영함.    
- 1963년 출판사 ‘교회음악사’를 설립하고 『교회와 음악』이라는 교회음악잡지를 격월간으로 펴냄. 
- 1964-1966년 선명회 합창단의 지휘자로 북미지역을 순회연주함. 
- 1967-1973년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작곡과 합창지휘를 가르침. 
- 1977년 캐나다로 이주함.
- 1984년 토론토 큰빛장로교회 담임목사가 됨(은퇴: 1990).

  한국교회가 양악 유입의 통로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자생적 교회음악의 출발은 일반사회의 음악보다 오히려 더 늦다. 일반음악은 1930년대에 이미 홍난파, 채동선, 김동진, 안기영, 현제명과 같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널리 불리는 동요와 가곡을 작곡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반음악을 일으킨 사람들 중 대부분은 개신교 출신이었으나 그들은 교회 안에서 서양(주로 미국)에서 들여온 찬송가와 합창음악을 번역하는 등의 소극적 활동에 머물렀으며 아직 미국식의 교회음악을 모델로 생각하는 단계로, 그리고 그 당시 한국인이 교회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전제가 되는 잘 다듬어진 가사도 없다시피 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재훈의 교회음악작곡은 1940년대에 들어와서야 시작되는데, 이는 한국인에 의한 독자적인 교회음악 작곡의 출발점이 된다.  
  박재훈의 교회음악 작곡은 찬송가 ≪어서 돌아오오≫(1943)부터 시작되었다. 이 곡이 일반화될 수 있도록 출판물로 나온 것은 1947년인데, 한국전쟁 이후-찬송가와 성가대용 편곡으로-교회 안에서 널리 불렸다. 그의 교회음악 작곡활동은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그 해 이후 자신이 작곡한 찬송가와 성가곡들을 6회에 걸쳐 ≪찬미≫라는 악보모음집 시리즈를 통해 발표했는데, 이는 한국인이 작곡한 교회음악 악보모음집을 펴낸 최초의 일이었다. 이 시리즈는 한국전쟁이 한창인 가운데서도 계속 출판되었다. 이는 그의 특별한 집념이 읽히는 부분이다. 그 이후 그는 교회합창음악의 연주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교회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찬송가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널리 불린다(예: ≪지금까지 지내온 것〉, ≪어서 돌아 오오≫,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산마다 불이 탄다≫). 그는 찬송가와 같은 작은 음악 이외에도 ≪성 마가 수난음악≫ 그리고 오페라  ≪에스더≫와  ≪유관순≫과 같은 큰 작품을 남겼다. 
  박재훈은 교회음악(동요를 제외한)만을 창작한 작곡가이다. 그는 교회음악가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교회의 지원 없이 자발적으로 나타난 교회음악가였다. 박재훈은 나이 50대에 한국을 떠나 외국(캐나다와 미국)에 건너가 현재까지 그 곳에 거주하고 있지만, 그 이민 상태가 한국과 한국교회를 떠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타국에서 한 작업도 한국어로 된, 한국교회를 위한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큰 작품들은 모두 이민생활 가운데 작곡된 것이었다.
  박재훈의 음악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1964년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서양식 조성음악 위주의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끔 조성을 회피하는 경우가 전통음악적인 작품 가운데 있으나, 그런 경우는 많지 않으며 음악 중 일부만 그런 방식으로 작곡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적’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박재훈은 합창지휘자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교회에서, 대학에서, 또는 자신이 직접 만든 합창단에서 많은 지휘 경력을 쌓았는데, 이는 그의 작곡활동과 거의 같은 비중을 갖는 것이었다. 그는 쉬츠(H. Schütz)의 ≪마태수난곡≫, 브람스(J. Brahms)의 ≪독일어 레퀴엠≫, 나운영의 ≪부활절 칸타타≫등 한국 청중들에게 낯선 음악도 들려주었다. 또한 그는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의 시기에 상당한 수의 동요를 작곡했고, 그 중 20여곡이 교과서에 실려 널리 불렸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산 높고 물 맑은 우리 마을에≫, ≪산골짝의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졸≫, ≪송이송이 눈꽃송이≫ 등이 그러한 곡들이다. 

  박재훈의 작품들은 여러 모음집에 분산되어 수록되어 있고, 새로운 곡들을 펴낼 때마다 옛 곡도 함께 실어 다시 펴내는 일이 많았다. 한편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작품들은 그 스스로 발행한 작품집에만 수록되어 있다. 그가 자신의 작품들을 스스로 정리하여 출판하는 일이 많았기에 발행연대에 대해서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일맥’一麥’ 동요집≫ 서울, 1946.
  ≪찬미1≫, 애민문화사, 1947. 
  ≪찬미2≫, 애민문화사, 1949.
  ≪찬미3≫, (장수철과 공동작업) 전도사, 1951. 
  ≪찬미4≫, (장수철과 공동작업) 전도사, 1952. 
  ≪찬미5≫, 전도사, 1953. 
  ≪찬미6≫, 찬미사, 1954. 
  ≪고난의 주≫, 김정준 작사의 칸타타. 원래 1954년에 작곡된 것. 1979년 교회음악사에서 재발행.
  ≪찬송가 합창곡집 3≫(찬송가 편곡집), 찬미사, 연대미상.
  ≪한국 찬송가집 1≫, 교회음악사, 1970(1942-70년에 작곡된 찬송가 47곡 수록). 
  ≪에스더≫(오페라, 피아노 반주용), 부제: 죽으면 살리라, 김희보 극본, 박재훈 자필본, 1971.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자필 영인악보), 교회음악사, 1972(1964-72년에 작곡된 5개의 독창곡 수록). 
  ≪목마른 사슴같이≫, 교회음악사, 1973(성가 합창곡집, 1944-71년까지의 작곡된 합창곡 10곡 수록). 
  ≪성 마가 수난음악≫, (피아노 반주용) 영락교회 음악부, 1983. 
  ≪십자가를 지신 예수≫, 아가페 음악선교원, 1988(39개의 찬송가, 7개의 예배용 찬송, 6개의 합창곡, 2개의 이중창, 2개의 독창곡, 1개의 피아노 트리오 수록).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교회음악사, 1989(22개의 합창곡, 5개의 2부 합창 또는 2중창곡, 6개의 예배용 찬송 수록).
  ≪찬양하라 창조의 주 하나님을≫, 교회음악사, 1991(이전에 작곡한 모든 찬송가들과 새로 작곡한 찬송가 106, 독창곡1, 예배용 음악 8, 이전에 작곡한 것을 포함한 어린이 찬송가 23, 이전에 작곡한 동요 24). 
  ≪예수 그리스도 찬미≫, 기독교음악사, 1995(이전에 작곡한 성가 독창곡 13, 바이올린 독주곡 1개 수록). 
  ≪뿌리, 온 땅에 편만하리≫, 영락교회 5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1995.
  ≪창조주 여호와≫, 호산나음악사, 1997(안성진 작사의 찬송가와 동요 모음집). 
  ≪깨어 기도하자 주님 오신다≫, 기독교음악사, 1999(새로 작곡된 86개의 어린이 찬송가와 111개의 찬송가, 1개의 합창곡, 3개의 기악곡 수록).
  ≪유관순≫(피아노 반주용), 윤대성 극본, 박재훈 자필본. 1999.
  
  박재훈의 음악은 실험적인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는 친근하고 잘 불릴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는데, 특히 작은 규모의 곡들이 많았던 초기에는 더욱 그러했다. 이 점에서 그의 음악은 거의 동년배인 나운영의 음악과 차이를 보인다. 나운영은 실험적이고 독특한 면을 추구하여 19세기 서양화성적 틀을 벗어나 새로운 한국 전통음악과 관련된 작곡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했다. 반면에 박재훈은 나운영이 벗어나려고 했던 ‘장단조 화성’에 대체적으로 남아 있었으며, 한국적인 음악의 추구에서도 이 장단조 화성과의 조화 상태를 추구했다. 그는 독특함이나 새로움을 추구보다는 일반인들이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음악에 남기를 원했다.   
  박재훈은 성악적 선율에 보편적 화성을 붙인 서양식 삼화음 위주의 부담 없는 찬송가, 독창곡, 합창곡(찬송가편곡 포함)을 썼다. 그는 18-19세기 서양음악처럼 선율의 아름다운 구성에 관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는 독특한 음악을 보여 주려는 것이 아니라서 어느 입장에서 보면 진부하게 느낄 수 있는 선율들이다. 예를 들어 ≪주는 저 산밑의 백합≫(여성2부 합창곡, 1948)이 그런 곡이다. 이 곡은 ‘아름다운 선율’ 구성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즉 선택한 음계를 이용하여 노래부르기에 까다롭지 않은, 유려한 음악을 구성하려 한 것이다. 그는 멜로디 이외의 성부들도 상당히 성악적으로 다듬었다. 달라진 1964년 이후의 음악에서도 성악적인 성격은 유지된다. 이 시기에 그는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독창곡집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1972)에 실린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1964)과 독창곡집의 제목과 같은 이름의 곡(1972)은 완연하게 한국 전통음악과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전통음악적 성격을 가진 그의 작품들은 서양의 장단조 화성을 완벽하게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곡에서 그는 4도와 5도 음정의 연속, 새야화현을 사용하는 경우들이 있다. 또한 한국적이라 느껴지는 음계, 장단, 시김새도 사용된다.  
  박재훈 본인도 자신의 음악을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으로 구분한다. 서양적인 음악은 초기의 것들에 많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기, 즉 1964년 이후에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1964년 이전의 음악은 모두 서양식의 음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후기의 대작에는 한국적인 음악을 시도한 부분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한편으로 박재훈은 가사처리에 일정한 방식을 사용하였다. 가사를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음악의 모습이 달라졌다. 이런 관점에서 그의 음악이 가진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대략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서양음악의 예를 찬송가를 기준으로 설명하면 대체적으로 다음의 특징을 보인다. 박절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변박이 드물다. 7음계로 선율을 꾸민다. 음절적 성격을 지키지만, 가끔 한 음절이 두 음으로 나뉘기도 한다. 소프라노의 선율이 중심에 놓이고 다른 성부들은 화성을 채우는 기능을 한다. 초기의 음악에 특히 많다. 그의 첫 찬송가이며 오늘날까지도 불리는 ≪어서 돌아 오오≫(1943, 작시: 전영택)는 이런 음악 중 하나이다. 
  처음 두 모티브(a: “어서 돌아”, b: “오오”)의 리듬은 곡 전체를 지배한다. 이 프레이즈에 해당하는 선율은-비화성음을 사용하며-1도 화음의 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곡은 기본 모티브를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서양 찬송가의 성격과 흡사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이 찬송가는-한국에 소개된 단순한-서양 찬송가의 것과 다른 점도 갖고 있다. 우선 서양 찬송가의 그대로 반복하는 단순성을 따르지 않고 변화하면서 음악을 형성한다. 이런 일은 특히 가사를 낭송하는 방식이 한국어에 맞추어지면서 발생한다. 
  곡의 절정으로 설정된 마지막 부분에서 리타르단도와 페르마타를 사용하여 음악적으로 가사적으로 더 강조된다. 
  선율선은 ①한 화성 내에서의 도약, ②각각의 종지를 향한 순차진행, ③짧게 지나가는 거의 장식에 가까운 반음(비음계음) 사용, ④한 음절을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음으로 나누는 것, 이 네 가지 특징이 선율을 유려하다고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음악적 특징은 박재훈의 다른 장르, 즉 합창곡, 독창곡, 오페라의 아리아 등에서도 볼 수 있다. 
  박재훈의 서양식 음악과는 다르게 그가 한국적인 음악을 의도할 때에는 아래의 현상들이 자주 나타난다. 박절적으로 불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자주 있다. 변박이 많다. 5음음계 음악이 많다. 5음음계를 넘어서는 음들을 쓸 경우에는 약박에, 또는 아주 짧게 사용한다. 7음음계의 음들을 다 쓴다 할지라도 4도나 5도 또는 8도 등의 도약을 많이 사용하여 순차적 진행만 사용하는 것을 억제한다(예: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 한국적 장단을 사용한다. 장단을 쓸 경우 화성에 첨가음을 사용한다. 시김새를 사용한다.   
  이런 종류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그의 독창곡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일 것이다. 이 곡의 가사는 시편 제34편을 토대로 했다. 하지만 작곡자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사는 성경원문과 다르게 쉬운 현대어로 고쳐졌을 뿐만 아니라, 내용도 중요한 부분만 발췌한 것이다. 시의 음보(音步)는 비정형적 성격의 것이지만 음악에 의해 정형화된다. 즉 서로 다른 음절그룹들이 음악에 의해 같아진다. 이 곡이 단순한 노래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변박을 자주 쓰는 점이다. 음악의 한국적 성격은 5음음계로 나타내려고 했지만 5음음계를 글자 그대로 고수한 것은 아니고 지나가듯 가볍게 비음계음도 사용한다. 
  할렐루야 가사 부분은 처음부터 도약적인 이 노래의 특징을 계속하면서, 앞부분보다 빨라지고, 부점을 연속적으로 사용하며, 피아노 반주는 첨가음을 더하여 타악기적 성격을 갖고, 전통음악의 장단(세마치)을 연상케 하는 리듬틀을 갖는다. 중간에 일단 마감하는 부분에서 리타르단도로 음악의 속도를 조절한 후, 한 마디의 간주를 지나 더 고조된 할렐루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느려진다, 곡이 빨랐다 느렸다 하는 성격을 가졌다. 선율리듬 자체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약간의 시김새도 사용된다. 
  독창곡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는 밝은 분위기의 것이다. 어두운 분위기의 한국적 음악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난다. 어두운 한국적 음악은 단조의 조성, 삼화음 이외의 4도와 5도병행의 화음, 새야화현 등을 사용한다. 그리고 비탄스러운 단어에 작은 시김새 음을 붙이거나,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지는 시김새를 사용한다. 이런 종류의 음악으로 오페라 ≪에스더≫에 나오는 합창곡 ≪바벨론 강가에 앉아≫, ≪성 마가 수난음악≫의 31번 곡 ≪오호 골고다≫가 있다. ≪오호 골고다≫는 A(처음-마디20)-B(21-42)-C(43-61)-D(62-끝)의 네 부분이 연결된 음악이다. 이렇게 나뉘는 가장 큰 이유는 가사에 있다. 즉 가사의 단락이 음악의 단락을 결정한 것인데, 이는 박재훈 합창곡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AㆍBㆍCㆍD의 각 부분들은 포코 아다지오, 안단테, 안단테 모데라토, 라르고의 연주지시어를 갖고 있다. 음악은 A부터 C까지 e♭단조를 지속한다. 단지 마지막 D부분에서 반음 높아져 e단조로 바뀐다. 표면적으로 보아 각 부분 상호간의 음악적 모티브나 테마들은 서로 관련성이 없다. 하지만 매우 유사한 음악이 계속된다는 느낌을 받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 때문이다. 그것은 선율 구성상에서 지배적인 4도와 2도(반음 또는 온음) 음정 때문이다. 그리고 3화음은 사용되기는 하지만 새야화현이 지배적이다. 비탄스러움을 고조시키기 위해 미끄러지는 시김새도 사용한다.    
  박재훈의 쉬운 음악들은 거의 노래식이다. 이런 음악은 성악적 선율을 중시한다. 쉬운 찬송가처럼 박절적 균형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박절이 깨지는 음악에서도 선율성을 중시하는 음악은 노래식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언어의 낭송에 주력하는 음악이 있다. 시편의 산문적 한국어 번역에 가사를 붙인 음악들이 대부분 이 계열에 속한다. 이런 음악은 변박이 많고 같은 음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한 의미그룹을 한 박으로 모으는 경향도 보인다. 변박에 의한 불규칙한 리듬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언어의 리듬에 아주 근접했다기 보다는 음악적인 리듬이 주도적이라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따라서 잦은 변박에도 불구하고 낭송적 독창곡도 선율적으로 느끼게 한다.     
  박재훈은 ≪찬미≫(1947) 시리즈 출판 이전부터 찬송가들을 작곡해 왔다. 그는 1943년부터, 즉 일제가 패망하기 3년 전, 그리고 그의 나이 21세가 되던 해부터 찬송가 작곡을 했다. ≪한국찬송가집 1≫에 실린 곡들은 모두 47곡이었는데, 당시로서는 대단히 많은 찬송가를 작곡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 다음으로 찬송가를 많이 수록한 모음집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아가페 음악선교원, 1988)로서 모두 39곡이 실려 있다(송영 기도송 등 이른바 ‘예배용 찬송’ 7곡은 회중용이 아니기에 여기서 제외시킴). 안성진 작사의 찬송가와 동요들을 묶은 ≪창조주 여호와≫(호산나음악사, 1997)에는 찬송가 22곡, 어린이찬송가 9곡이 수록되어 있다. 찬송가가 가장 많이 실린 곡집은 현재까지 ≪깨어 기도하자 주님 오신다≫(1999)이다. 이 책에는 86곡의 어린이 찬송가와 111곡의 찬송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박재훈의 찬송가들은 해방 직후에 작곡된 것들이다. 물론 그 이후 작품 중에 ≪지금까지 지내온 것≫과 같은 곡들도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 작곡된 그의 찬송가들은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박재훈은 지금까지 작곡한 자신의 독창곡들을 ≪예수 그리스도 찬미≫(1999)에 모두 집합시켜 놓았다. 이 곡들은 전에 이미 발행했던 곡들과 함께 새로운 것들을 첨가시킨 것이다.

  ① ≪그리스도 예수 찬미≫(빌립보서 2장 5-11절)
  ② ≪내게로 오라, 무거운 짐진 자들아≫(마태복음 11장 28-30절)
  ③ ≪내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시편 34편 1․3․4․5․8절), 1972(출판: 1972)
  ④ ≪내 의의 하나님이여≫(시편 4편 1-4절), 1964(출판: 1972)
  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요한복음 1장 29절, 이사야 53장 4-6절), 1964(출판:1972)
  ⑥ ≪복 있는 사람≫(시편 제1편, 1․2․3․6절), 1968(출판: 1972)
  ⑦ ≪새해 아침의 노래≫(작시: 박재훈, 찬송가 정도의 음악. 4성부 반주는 성악성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고, 피아노를 위한 것)
  ⑧ ≪야훼는 나의 목자≫시편 23편)
  ⑨ ≪어머님의 노래≫(작시: 김정준, 원래 찬송가 식의 4부 음악이었으나 피아노 반주를 붙여 독창곡으로 만든 것) 
  ⑩ ≪어서 돌아오오≫(작시: 전영택, 원래 4성부 찬송가였으나 피아노 반주를 붙여 독창곡을 만든 것. 
  ⑪ ≪의를 위하여≫(마태복음 5장 10절, 요한복음 16장 33절 하반절)
  ⑫ ≪행복하여라≫(마태복음 5장 3-7절), 1972(출판:1972)

  박재훈의 독창곡들은 대체적으로 성경구절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편가와 복음서로부터 채택한 부분이 많다. 가사들은 한국어 성경과 거의 같은 것들이 있는가 하면(① ⑤ ⑥ ⑧ ⑪), 작곡자 자신이 말을 조금 덧붙인 것들도 있다(② ③ ④ ⑫). 박재훈이 독창곡으로 분류해 놓은 것 중에는 원래 찬송가였던 곡들이 3곡 포함되어 있다(⑦ ⑨ ⑩). 이로 보아 박재훈이 독창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선율 성악선율에 피아노 반주가 붙은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선율은 원래의 찬송가와 차이나지 않는다.
  박재훈의 합창음악은 ≪찬미≫ 시리즈에서부터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는 많은 곡들이 찬송가와 다름없는 소품들이 많았다. 5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연대를 알 수 없는 ≪찬송가 합창곡집 3≫은 찬송가 편곡들을 담은 것이다. 
  ≪목마른 사슴같이≫(교회음악사, 1973)는 그가 1944-1971년까지 작곡한 자신의 합창곡들을 묶어 발표한 것이다. 그 내용은 박재훈 합창음악의 대강을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본인 스스로도 후기에서 밝힌 두 가지 음악이 함께 실려 있다. 그 두 가지란 서양식과 한국식을 말한다. 그는 어떤 것이 서양식이고 어떤 것이 한국적인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서양식 음악
① ≪주의 기도≫(1959, 낭송적 4부합창)   
 ② ≪주는 저 산밑의 백합≫(1948, 작시: 전영택, 여성2부 합창) 
 ③ ≪주여 나를 건지소서≫(1948, 작시: 김정준, 4부합창) 
 ④ ≪목마른 사슴같이≫(1970, 작시: 김정준, 독창과 4부합창) 
 ⑤ ≪주는 나의 선한 목자≫(1944, 시23, 2부합창) 
 ⑥ ≪감사함으로 주 이름 찬양하세≫(1948, 작시: 김정준, 2부합창) 

 -한국식 음악 
⑦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을≫(1969, 요1:29, 4부합창)
 ⑧ ≪주여 내가 깊은 곳에서≫(1968, 시130, 4부합창) 
 ⑨ ≪바벨론 강가에서≫(1971, 시137, 원래 오페라 ≪에스더≫에 실린 곡, 4부합창)
 ⑩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하라≫(1968, 시150, 4부합창)  

  합창곡집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교회음악사, 1989)에는 22곡의 합창곡이 실려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 다른 곡집에 실린 것들이다. 10곡은 위에 소개한 ≪목마른 사슴같이≫에 실린 것들이다. 또한 ≪성 마가 수난음악≫의 합창곡 8곡도 실려 있는데, 그 곡들은 다음과 같다; ≪오라 모두 와서 보라≫, ≪감람산으로≫, ≪하늘의 빛, 홀로 서신 예수≫(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사람의 속에는 선한 것 없네≫(테너 독창과 합창), ≪보라 그의 슬픔을, 그의 아픔을≫(소프라노 독창과 합창), ≪우리의 슬픔을 대신 지신 주님≫(합창), ≪오호 골고다≫, ≪내가 믿습니다≫
  
 그 외의 곡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연대미상, 오브리가토 바이올린 성부가 달린 4성부 합창음악), ≪주여 주는 나를 아시나이다≫(1978, 시139, 낭송적 4부합창), ≪야훼의 법을 따라가는 사람들≫(1979, 시편119, 소프라노 독창 오블리가토가 있는 낭송적 4부합창), ≪성령님께 드리는 기도≫(연대미상, 독창 또는 제창+4부 합창), ≪우리 예배를 받아 주소서≫(1986, 작시: 박재훈, 유니즌과 찬송가식 호모포니 4부 합창음악), ≪다 보라 저 빛난 별≫(1983, 성탄절용 2부합창), ≪거문고 타며 노래하리라≫(1983, 시108: 1-5, 2부합창).
  그 외에도 짧은 ‘예배용 찬송’(송영ㆍ응답송ㆍ아멘) 6곡이 실려 있다.
  
  오페라 ≪에스더≫(1971)
  대본: 김희보. 박재훈은 오페라를 교회음악의 일종으로 착상하였다. 작곡가는 이 오페라를 통해 한국의 상황을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에 빗대어 말하고자 했다. 이 오페라의 대본은 오라토리오와 더 가깝다. 합창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오라토리오와 흡사하다. 음악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서양식과 한국식 음악이 뒤섞여 있다. 낭송하는 방식도 위에서 설명한 언어낭송 방식을 대체로 따른다. 합창곡 ≪하늘에 계신 주여 구원하여 주소서≫, ≪우리가 바벨론 강변에 앉아≫, ≪울려라 종이여≫, ≪할렐루야≫가 음악적 뼈대를 이룬다. 이 합창곡들은 모두 한국적이라고 할만하다. 특히 삼연분음표의 잦은 사용이 이 합창곡들 뿐만 아니라, 오페라 전곡의 특징이 되고 있다. 시김새의 사용이 많은데, ≪우리가 바벨론 강변에 앉아≫는 흐느끼는 듯한 장식적 시김새로 일관되어 있다. 오페라의 끝곡인 ≪할렐루야≫(새야화현 테마)는 박재훈 합창곡 중 가장 억센 성격의 것으로서, 테마가 중간에 반음계로 번지는 시김새를 사용하다가 본래의 음들을 다시 찾는다. 독창 성부들은 이태리 오페라식의, 성악적으로 착상된 방식의 것이다. 성부들의 병진행, 첨가음, 미끄러지는 시김새(포르타멘토), 새야화현 등이 많이 들린다.

  오라토리오≪성 마가 수난음악≫(1983)
  박재훈은 ≪성 마가 수난음악≫을 쓰기 전에 칸타타 ≪고난의 주≫(1954, 작시: 김정준)를 작곡한 일이 있다. 이 곡 역시 수난곡 종류의 음악인데, 비중이 큰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성 마가 수난음악≫은 규모와 음악적 내용으로 보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하다.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의 영락교회가 외국으로 10년 전에 떠난 그에게 작곡을 의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흔히 사용되는 개역 성경을 사용하지 않고 공동번역 성서를 사용했는데, 이는 더 알아듣기 쉬운 번역을 택한 것이다. 그는 해당 성경부분 모두를 취하지 않고, 중심적 내용을 발췌하여 작곡했다. 성경부분이 아닌 대본은 -다른 언급이 없기 때문에- 작곡자 스스로 창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곡의 찬송가 형식 음악의 작사자가 김정준(金正俊)라는 기록이 있다(33번 곡). ≪성 마가 수난음악≫은 모두 37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 마가 수난곡≫은 ‘합창’, ‘서창’(레치타티보), ‘중창’, ‘찬미’(찬송가식 호모포니 합창)를 관현악이 반주하는 대규모 음악이다(연주시간: 2시간 정도). 이는 바로크식의 오라토리오 수난곡에 가깝다. 바로크식 수난곡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복음기자(테너)가 있고, 각 역할에 따라 독창, 중창, 합창으로 수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예수(베이스), 베드로(베이스), 유다(테너), 대사제(베이스), 여종(소프라노), 빌라도(테너), 백인대장(베이스)의 음역 배당은 대체적으로 바하 시기의 수난곡의 음역 배당과 유사하다. 그리고 중창(대제사장과 율법학자, 향유를 부은 여자 주위의 사람들, 제자들)이나 합창(군중)도 사용되었다.  
  그리스도 수난의 이야기는 낭송적으로 작곡되었다. 성경에 속하지 않은 대본은 줄거리를 진행하는 음악들 사이사이에 들어 있으며, 해당 장면에 대한 느낌을 발설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창작된 가사이며 음악은 서정성이 두드러지는 선율을 갖고, 약간의 폴리포니를 가진 합창곡과 장절적 찬송가로 되어 있다. 독창은 독립된 아리아를 갖지 않는다. 가끔 창작가사에 아리아적인 유려한 선율을 가진 독창부분들이 짧게 나타나는데, 이는 독립된 곡이 아니라 합창을 이끄는 역할만 한다. 합창에 중심적 비중이 있다. 합창은 대부분 4성부로 되어 있지만, 간혹 어떤 부분에서는 6 또는 7 또는 8성부로 구성되었다.    

참고문헌

김수연. “박재훈의 교회음악에 관한 연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석사논문, 1999.
김숙희. “박재훈의 성가독창곡에 관한 연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석사논문, 2000.
박진나. “박재훈 찬송가에 관한 연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 석사논문, 2000.
전정임. ‘박재훈의 한국적 교회음악’, 『오늘을 사는 한국의 현대음악』(한국음악학학회), 예솔, 2005, pp. 70-107.
홍정수. “교회음악작곡가 박재훈.” 『음악과 민족』제26호, 2003, pp. 65-91.

등록일자: 2009.12.21
[홍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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