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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라토 [evirato, castr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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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라토(. evirato, 일반적으로 카스트라토: .castrato, "거세하다castrare의 명사형")

 

<설명 1>

 

변성기 이전에 거세하여 소년의 목소리를 지닌 성년의 남자 가수. 소프라노 또는 앨토 음역의 소리를 낸다. 이들의 목소리는 성대의 순()이 자라지 않아서 소년 목소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가슴과 허파는 성장하여 어른의 힘을 지니기 때문에 맑고 힘있는 목소리를 낸다. 카스트라토는 고대부터 이태리 지역에 퍼져 있었다. 16세기에 교회가 여성들이 노래하는 것을 금하자, 이들이 여성을 대신하여 교회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카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카스트라토로 만드는 일을 금했지만 1588년의 교황 교회 성가대는 카스트라토 단원을 포함하고 있었다. 카스트라토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는 17세기 중엽부터 18세기말까지이다. 그들은 오페라 극장의 영웅이었다. 그들은 오페라에서 주로 여성의 역을 담당했지만 점차적으로 남성의 역까지 맡게 된다. 그들의 목소리를 위해 만들어진 이 시대의 오페라 아리아들은 이들의 성악적 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길게 늘려진 콜로라투라 아리아들은 거의 이들을 위한 것들이다. 이들은 성악적인 면에서 벨칸토(Belcanto) 발성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나폴리의 오페라 세리아는 이들과 관련이 깊다. 이 오페라 장르는 카스트라토들에게 남성의 역을 맡겼다. 이 일에 대표적이라 할 수 있었던 작곡가는 헨델이었다. 또한 그보다 훨씬 이후에 작곡된, 글룩의 오르페오 역, 그리고 모차르트의 이도메네오의 이다만테 역 역시 카스트라토를 위한 것이었다. 오늘날 이런 역들을 오늘날 연주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카스트라토들 중에는 파리넬리(Farinelli), 카파렐리(Caffarelli), 콘티(Gioacchino Conti, Gizziello라고 불림), 텐두치(Tenducci, 주로 Senesino라고 불림)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19세기 초에 활동한 가수들로는 크레쉔티니(Crescentini), 볼루티(Volluti)가 있다. 20세기초까지도 교황교회(Sistina 성당)에 카스트라토가 있었다.

 

<설명 2>

 

어린 시절 거세하여 변성기를 겪지 않아 성인이 되어서도 높고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남자 가수. 남자의 신체적 장점에 소년의 맑은 목소리의 결합은 많은 성악적 표현력을 가지고 있어서, 카스트라토는 기교 중심의 성악이 크게 발달한 17-18세기에 널리 퍼졌다. 유명한 카스트라토들은 오늘날 세계적 대중가요 스타에 비교할 수 있는 인기를 누렸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이태리 오페라(오페라 세리아)에서는 카스트라토의 역할이 매우 두드러졌다. 당시에 큰 성공을 거둔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오르페오>(만투바 1607)의 주인공 역도 카스트라토에 의해 연주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교황청 교회와 로마의 다른 교회에서는 카스트라토가 16세기부터 중요한 음악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카톨릭 교회는 1587년 카스트라토를 금했다. 오늘날 연주 음반이 남아있는 최후의 카스트라토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 1858-1922) 역시 교회(Sistina 성당)의 가수였다. 바그너는 <파르치팔>에서 특별한 역(Klingsor)을 카스트라토(?)인 무스타파(D. Mustafa)가 노래해주기를 원했다. 19세기의 오페라 창작에서 카스트라토에 대한 관심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19세기까지도 카스트라토의 인기는 부분적으로 지속되었으며, 벨루티(Giovanni Battista Velluti, 1780-1861)는 그 마지막 스타로 여겨진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인권에 대한 인식 강화, 음악적 표현력이 가수에 집중되지 않게 됨, 음악양식(취향)의 변화, 여자 성악가의 표현력 증대 등이 거론된다. 오늘날 카스트라토는 완전히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과거 카스트라토가 연주했던 음악은 특별한 발성 훈련을 거친 남자가수들(카운터 테너)에 의해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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