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더마이어(도.Biedermeier) 음악
독일어 형용사 bieder는 주로 어떤 종류의 사람을 가리키는데, 좋은 의미로는 "성실하다, 충실하다, 점잖다" 정도의 뜻을 가졌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즉 "단순하다, 소시민적이다, 답답하다, 시골스럽다"는 뜻이 그것이다. 이 말에 독일에서 가장 흔한 이름인 Meier라는 단어가 겹쳐져서 Biedermeier라는 단어가 형성된다. 이 말은 쿠스마울(A. Kussmaul)이 1855년에 쓴 『슈바벤 지방의 교사 고트립 비더마이어의 시』(Gedichte des schwäbischen Schulmeisters Gottlieb Biedermeiers)에서 유래한다. 그의 시는 예술적으로 큰 야심이 없이, 작은 것에 만족하는 소박한 것이었다. 이렇게 예술적 야심없이 소박한 예술을 비더마이어 양식이라고 말한다. 이 양식의 소박성은 미학적 기준보다는 어떤 윤리적 기준을 내세우며 예술성을 제한한다.
지역적으로는 독일에 국한된 예술(문학, 조형예술, 음악)현상이며, 시기적으로는 1815-1848년이다. 하지만 음악사에서 이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구획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비더마이어 양식은 낭만주의시대에 발생했으나 양식적으로 뒤떨어진(즉 고전주의에 의지하는), 소작곡가들의, 소품적 음악으로 지칭하는 학자들이 많다. 여기에 속하는 작곡가들로는 슈포어, 슈나이더, 질허, 크로이쳐, 로르칭, 옷토 니콜라이 등이다. 이들은 낭만적 음악가에 속하지 못한 낭만주의 시대의 작곡가들이다. 『로렐라이』와 같은 소품을 쓴 질허도 있는가 하면, 『황제와 목수』라는 경가극을 쓴 로르칭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큰 작품의 경우에도, 음악기법적으로 낭만주의적 독창성을 탐하지 않는, "쉽게 즐길 수 있는" 성격의 음악도 비더마이어 음악으로 분류된다. 관련된 환경들도 같이 고려하여 달하우스는 비더마이어 음악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비더마이어 음악은 시민적 활동(가정음악, 아마추어 낭성합창단, 노래 아카데미, 음악축제)과 관련되어 작곡된다. (2)낭만주의적 미학에서는 '아류'로 불리는 전통주의가 비더마이어 음악에서는 아직 통한다. (3)낭만주의자들이 베토벤의 후계자로 자신을 생각한 반면 비더마이어 음악가들은 모차르트의 후계자로 자신을 생각했다. (4) 비더마이어 음악은 시민적 협회들이 자신을 음악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의 결과이다.
달하우스의 정리는 비더마이어 음악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많이 포함한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이상적 낭만주의의 요구에 의하지 않고, 청중이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 음악이라 하여-긍정적으로 평가한 시각도 없지 않다. 긍정적 시각은 예를 들어 권오연의 논문 「19세기 비더마이어 음악에 대한 음악사적 재조명」(음악과 민족 제8호, 1944. 222-250)에서 확인된다.
[홍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