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국음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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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베르 [trouvère]
(1). 트루베르는 트루바두르(troubadour)와 같은 의미이다. 단지 전자는 남프랑스어(프로방스어)이고 후자는 북프랑스어이다. 남쪽 트루바두르의 영향을 받아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 말에 걸쳐 북프랑스 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음악가들을 뜻한다. 트루베르의 등장에 영향을 준 것으로는 트루바두르들의 방랑생활 등을 들 수 있지만, 더 결정적인 사건은 기욤 다키테인(Guillaume d'Aquitaine) 9세의 손녀인 엘리에노르 다퀴테인(Eleanor d'Aquitaine, 1120경-1180)이 1137년에 루이 7세(Louis VII, 1137-1180 제위)와 결혼을 한 것이다. 즉, 그녀는 베르나르 드 방타도른(Bernart de Ventadorn)을 포함한 많은 예인들을 동반하여, 북프랑스 지역의 궁정에 새로운 노래들을 전파시키는 결과도 낳는다. 그녀는 루이 7세와의 파혼 후 노르만디 지역에서 한 공작과의 재혼(1152)했다. 새로운 남편은 2년 뒤 영국의 왕 헨리 2세(Henry II, 1154-1189 제위)가 되면서 영국에까지 트루베르의 전하게 된다(영어 가사의 단성 노래는 별로 없다). ‘사자왕’으로 유명한 그의 아들 리처드 1세도 트루베르이다(두 개의 시와 하나의 선율이 남아 있다). 그리고 루이 7세와의 사이에서 난 딸들 가운데 특히 마리(Marie de France)가 12세기 후반에 프랑스 동북부 지역인 샹파뉴(Champagne)의 궁정으로 시집가면서는 이곳이 트루베르의 중심적 활동지역으로 부상된다.
북프랑스 지역에서는 트루베르의 출현 이전에도 이미 영웅적 서사시인 ‘샹송 드 제스트’(Chanson de geste: 덕행의 노래)가 존재했다. 1000 - 20000행의 길이가 매우 긴 시들로서 불규칙한 연들(laisses)로 나뉘어 있어 낭송적인 양식이나 짧은 선율적 패턴의 반복으로 불려지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선율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후 트루베르들이 서술적 가사를 선호한 것은 그런 전통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트루베르의 언어는 근대 프랑스어의 뿌리인 오일어(langue d'oil: 랑그 도일)로서 2130개의 시를 남겼고, 선율은 이것의 2/3 정도에 해당하는 1420개가 20여개의 필사본(Chansonnier)에 보존되어 있다. 그런데 선율이 중복되는 경우도 많다. 트루바두르 선율이 콘트라팍툼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동일한 유형의 노래도 많으나, 트루베르의 선율들이 결코 모방에 그친 것은 아니다. 13세기 후반에 다성부의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트루베르의 전성시대는 막을 내린다.
(2). 시기별 분류
최초의 트루베르는 1160-90년경에 샹파뉴 궁정에서 활약한 크레티앙 드 트르와(Chrétien de Troyes)로 알려져 있다. 이후 13세기 전반까지는 귀족과 기사 계층 또는 성직자 출신의 트루베르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티보 드 나바르((Thibaut de Navarre, 1201-1253)는 마리의 손자로서 1234년에 나바르(Navarre)의 왕이 되는 인물이다. 예외적인 인물로는 종글뢰에서 시인음악가로 승격한 콜랭 뮈제(Colin Muset, 1200-1250경 활동) 등을 들 수 있다. 13세기 후반에는 트루베르의 신분이 대체로 귀족에서 중산계층으로 옮겨가며, 길드(puys)도 형성된다.
다음은 대표적 트루베르들을 발전시기에 따라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크레티앙 드 트르와 뿐만 아니라, 코농 드 베튀느과 가스 브륄레도 상파뉴 궁정을 중심으로 활동한 트루베르이다. 블론델 드 네슬은 리처드 1세의 왕자 시절에 그와 십자군 전쟁에 같이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욤 리 비니에르는 드물게 사제의 신분이다. 제앙 브르텔은 상대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노래를 남겼는데, 이외에 대화체의 노래를 위해 다른 트루베르들과 합작한 것이 89개 더 있다. 아당 드 라 알은 단독으로 세속노래모음집을 처음으로 갖는 인물로서 위에 제시된 단성 노래 외에 다성부의 노래도 다수 작곡했다. 그 밖에도 예외적인 인물로서 제아노 드 레퀴렐(Jehannot de l'Escurel[Jehan de Lescure], 1304년 사망)을 들 수 있다. 그는 노트르담 성당의 성직자로서 다수의 단성노래(롱도, 발라드 비를레)와 다성부 노래(롱도) 1곡을 남겼는데, 음란죄로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유형과 형식
트루베르의 단성 노래는 트루바두르의 것들과 동일한 유형으로서 이름만 바뀐 것들이 대부분이고, 여기에 몇몇 새로운 유형이 첨가된다. 따라서 형식도 대체로 트루바두르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특히 서술적인 노래가 애호되며, 반복적인 후렴구의 선호는 트루바두르의 노래보다 형식상의 균형과 명료함을 보여준다. 13세기에는 민속음악적으로 시와 선율이 더 단순해지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다성부 노래로 발전되는 정형(프.Formes fixes)의 유형(롱도, 발라드, 비를레)도 새롭게 등장한다.
트루베르 노래들은, 트루바두르의 경우처럼, 교회선법에 국한되지는 않아 보인다. 즉, 종지음이 선법적인 D, F, G음 외에 C음 등으로 끝나는 것도 비중 있게 나타난다(그러나 같은 노래가 다른 종지음을 갖는 경우도 흔하기는 하다). 그 외에 예외적으로 B음으로 끝나는 예도 있는데, 이 곡에서는 중간 진행에서도 예외적으로 B음 위의 3화음이 몇 차례에 걸쳐 선율로 펼쳐진다.
①트루바두르의 노래와 동일한 유형
이 유형에 해당되는 노래는 캉소에 대한 샹송(chanson), 파스토렐라에 대한 파스투렐르(pastourelle), 조 파르티에 대한 죄 파르티(jeu-parti), 알바에 대한 오브(aube), 데스코르에 대한 레(lai), 에스탕피다에 대한 에스탕피(estampie)가 있다(형식은 트루바두르 한목 참조).
트루베르는 특히 파스투렐르를 선호했는데, 그 가운데 독특한 예로는 전원적 이야기를 목가극(牧歌劇)으로 꾸며 중간 중간에 단성 노래들을 삽입시킨 아당 드 라 알의 《로뱅과 마리온의 놀이》(Le jeu de Robin et de Marion)을 들 수 있다.
죄 파르티와 레에서의 전형적 논쟁 내용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것이며, 레의 경우에는 데스코르처럼 연인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것이 많다. 레는 12세기경에 영국으로부터 도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샹파뉴의 마리 등이 쓴 초기의 레는, 샹송 드 제스트처럼, 운율적인 서사시(프.lai breton, 영.Narrative Lai)였으나, 차차 서정적인 노래(프.lai lyrique, 영.Lyric Lai)로 전환되면서 주제도 바뀐 것으로 본다(시행의 길이는 자유롭다). 레는 현재 4개가 보존되어 있는 정도에 불과하며 이 중 2개만이 선율을 갖추고 있다. 다음의 예는 그 하나인 <그렇다면 무엇을 노래할 수 있을까>(Puis qu'en chantant)란 ‘레’인데, 데스코르의 전형적 형식(세쿠엔치아와 유사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즉, AABBCCC로 되어 있으며, 이 형식에 13연이 장절적으로 반복된다. 다음은 그 시작부분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노래할 수 있을까>(무명씨) 리듬은 원래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당시의 모드리듬을 적용시킨 것이다.
위의 예를 보면, 각 A와 B부분이 다시 세부적으로도 aa‘와 bb’로 나뉘는 것을 알 수 있다.
②독자적 유형
트루베르 노래의 독자적 유형에는 후렴구-샹송(프.chanson avec refrains, 영.Refrain-chanson), 종교적 샹송, 샹송 드 트왈르(chanson de toile), 롱도(rondeau), 비를레(virelai), 발라드(ballade) 등이 있다.
후렴구-샹송은 중간중간에 후렴구가 삽입된 노래를 의미하는데, 이 후렴구가 기존의 다른 노래의 후렴구를 차용한 경우도 있다. 종교적 샹송은 가사의 내용이 종교적인 것을 말하는데, 고티에 드 코앵시(Gautier de Coincy, 1177경-1236)가 쓴 기적극(Miracle: Miracles de Notre Dame)의 중간중간에 삽입된 노래들이 초기의 예에 속한다(콘트라팍툼들도 포함되어 있다).
샹송 드 트왈르는 ‘물레’ 짜는 노래로서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며 부르는 노래이다. 시작 부분에 흔히 실 짜는 여인이 묘사되어 있다. 여자의 불평과 사랑에 대한 실망 등이 다루어지기도 하며, 종말이 비극적인 것도 있다. 이와 같은 내용과 시적 구조는 레와 유사하나, 후렴구가 삽입되어 있다(래스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긴 노랫말을 위한 선율은 단순한 장절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롱도는 도시민들의 원무(Round Dance)였던 카롤(carole)이나 롱드(ronde)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춤곡들은 문학자료들을 통해 춤의 선도자가 독창으로 노래를 부르고 참여자들이 후렴구를 같이 부르는 식으로 진행되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으나, 가사나 음악이 실제로 기록되어 있는 경우는 없다.
롱도는 트루베르의 활동이 쇠퇴해가는 13세기 말에 형식이 고정되는데, 시는 8행의 단일한 연으로 되며 선율과 시의 관계는 ABaAabAB로 표시될 수 있다. 이 형식은 두 개의 악구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사와 음악이 모두 반복되는 후렴구는 대문자로, 음악은 같되 가사가 다른 것은 같은 소문자로 표기한 것이다. 다음은 그 한 예로서, 아당 드 라 알과 동시대의 트루베르였던 기욤 다미앙(Guillaume d'Amiens, 13세기 말 활동)의 롱도이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게 주의해 주오>(기욤 다미앙)
아무도 나를 보지 않게 주의해 주오
만약 누가 나를 본다면, 나에게 알려 주오.
저 숲 속에 모든 것이 있소.
아무도 나를 보지 않게 주의해 주오
시골 처녀가 황소들을 돌보지요.
아름다운 갈색 피부의 그대여, 나는 당신 것이오.
아무도 나를 보지 않게 주의해 주오.
만약 누가 나를 본다면, 나에게 알려 주오.
조금은 노골적으로 들리는 이 사랑 노래의 선율은 롱도가 춤음악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뒷받침해준다. 즉, 선율 A와 B가 매우 유사하여, 전체가 하나의 단순한 악구의 반복과 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13세기 전반에는 위의 형식에서 첫머리의 후렴구(AB)가 생략된 형태의 롱도가 이미 나타난 바 있는데, 롱도의 가사와 선율은 트루베르 노래의 필사본 대신 로망스(프.romance)와 같은 문학에 삽입되어 있다. 롱도는 14세기와 그 이후까지 크게 유행하는 3대 샹송 중의 하나가 된다.
비를레도 14세기와 그 이후까지 유행하는 3대 샹송 중의 하나인데, 그 명칭은 14세기에야 통용된다. 어원은 ‘돌다’, ‘비틀다’란 뜻의 '비레'(프.virer)로서, 춤곡으로 출발했던 것임을 암시한다. 형식은 AbbaA로 고정되나, 13세기에는 첫머리의 후렴구(A)가 없거나 발라드와 유사한 형식을 보이기도 한다. 가사는, 롱도와는 달리, 여러 연으로 되어 있고 따라서 그 형식이 반복된다. 다음은 <그녀는 너무도 완고하여라>(Or la truix)라는 비를레이다. 리듬은 해석에 의한 것이지만, 고정형식의 샹송들은 대체로 3박자의 모드리듬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그녀는 너무도 완고하여라>(무명씨)
위의 비를레는 b부분뿐만 아니라 a부분도 세부적으로 후반이 전반을 약간 변형하며 반복하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