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한국음악연구소
등록일자 : 초기자료
노래, 중세의
(1). 여기에서 다루는 중세의 노래는 교회에서 부르는 성가를 제외한, 단성부의 세속음악이다. 그러나 자국어로 된 종교적인 노래와 예배에 부수적으로 쓰이는 노래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중세 노래의 역사는 9세기 후반 또는 10세기의 가장 오래된 사본의 자료 중에 발견되는 세속적인 가사로부터 14세기 독일어 통용지역의 규모가 큰 노래 사본들에 이르기까지 5세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자료들은 결코 충분하지 못하다. 전해져 오는 가사는 많으나 선율이 기조된 것은 적다. 또한 그 악보조차도 후에 -1세기 이상 뒤늦게- 기록된 것들도 많은 형편이다.
기록된 최초의 세속 노래는 10세기경 떠돌이 하급 성직자(Goliad)나 학생들이 불렀던 풍자적이고 반체제적 내용의 라틴어 가사를 가졌다. 그러나 보다 본격적인 발전은 11세기경부터 기사 또는 귀족 등 사회적 신분을 갖춘 시인음악가들이 출현하여 자국어로 시를 짓고 또 작곡을 하게 되면서 이루어진다. 그 시인음악가들은 남프랑스에서는 ‘트루바두르’(troubadour)로, 북프랑스에서는 ‘트루베르’(trouvère)로, 독일 지역에서는 ‘민네징거’(Minnesinger)로 각각 불렸다. 중세의 세속노래는 이 가운데 11세기 말경 트루바두르에 의해 시작된다. 온화한 기후, 평화와 번영, 라틴 문화의 잔존,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타 문화와의 접촉 등을 그 요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 세기 정도 후에는 북쪽으로 전파되어 트루베르와 민네징거가 등장한다. 트루베르의 노래는 영국에까지 전파되며, 독일에서는 중세 말인 14세기에 민네징거의 뒤를 이어 중산계급의 수공예업자들로 구성된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 시인음악가는 자신의 노래를 직접 노래로 들려주는 경우도 있었겠지만, 주로 그 노래를 부르고 악기로 반주를 하던 사람들은 천민 계급의 직업적 예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명칭은 지역에 따라 종글뢰(프.Jongleur: 마술사), 메느스트렐(프.Ménestrel: 기능인), 가우클러(도.Gaukler, 유랑 광대), 슈필로이테(도.Spielleute, 유랑 예인) 등으로 다양하다.
민네징어들과 슈필로이테들(앞쪽 구석의 두 사람). 중앙의 피들 연주자는 하인리히 폰 마이쎈(Heinrich von Meißen, 1250-1318, 별칭: Frauenlob"여인들의 칭송을 받는 자“)
위의 그림은, 그런 추정과는 달리, 민네징거들이 궁정에서 예인들(앞 양쪽에서 묘기를 부리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악기들을 직접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특정 악기는 모든 계급에서 사용을 하기도 했다).
시인음악가들의 세속노래들은 동시대의 종교적 노래와는 대조되는 것이었으나, 형식적・양식적으로는 유사한 것도 있다. 이 노래들의 기여는 무엇보다도 ‘우아한 사랑’ 노래(fin' amor)의 창조에 있다. 여성숭배적인 사랑 노래, 즉, 흔히 성모 마리아의 찬양이 현실의 여성에 대한 사랑으로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하는 격조 있는 노래들을 말하는데, 19세기부터는 ‘궁정의 사랑’(Courtly Love)이란 말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 밖의 가사 주제는 도덕과 정치, 십자군과 영웅의 무훈뿐만 아니라 교훈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선율은 특히 트루바두르 노래의 경우에는 그레고리오 성가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독특한 점은 교회선법과 함께, 이끔음 등을 갖춘 장・단조적인 것도 많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트루베르와 특히 민네징거의 노래에서는 상대적으로 도약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3화음적 윤곽을 그리는 선율들도 눈에 띈다. 리듬은 아직 이 노래들에서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특히 트루베르의 선율 가운데는 14세기에 리듬이 표기된 것도 있어 이 노래들에도 장단 리듬을 소급하여 적용해야 된다는 주장도 있다.
라틴어 서정시의 기원은 찬미가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최초의 시인이라 일컬어지는 6세기의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530경-609)는 교회의 찬미가뿐만 아니라 라틴어로 된 시도 남긴 바 있다. 또한 생 마르티알의 필사본을 포함한 아퀴테인 지역의 필사본에는 ‘베르수스’(라.versus)라는 비전례적 라틴어 노래도 포함되어 있다. 고정선율이 없고 흔히 세쿠엔치아 형식(또는 장절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2세기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콘둑투스(conductus)도 베르수스와 매우 유사한 형태로서, 정규 전례의식에 쓰이지는 않았지만, 사제들이 예배에서 이동할 때 또는 전례극에서 배우(사제)들이 입장·퇴장할 때 사용되었던 것이다.
반면, 최초의 중세 세속노래는 10세기경부터 등장하는 학생들이나 골리아드의 라틴어 단성노래로 볼 수 있다(자국어로 된 것도 상당수 있다). 가사는 흔히 단순한 운율의 13음절로 된 4줄의 연을 단위로 하며, 전례 시(운율적인 세쿠엔치아 가사 등)의 발전과 병행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악보로 기록된 선율은 매우 적다.
이와 같은 라틴어 단성 노래는 영국으로까지 전파된다. 캔터베리 수도원의 11세기 필사본(현재는 케임브리지 대학에 소장)에는 ‘케임브리지 노래’(Cambridge Songs)라고 불리는 47개의 종교적・세속적 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대륙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다(샤를르마뉴에 대한 노래도 있다). 시의 내용은 서사적인 것을 비롯하여 관능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형식은 대부분이 세쿠엔치아와 유사하다. 선율은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오 아름다운 비너스의 자태여>(O admirable Veneris idolum)와 ‘순례자의 노래’로 알려진 <고귀한 로마>(O Roma nobilis)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모두 대륙의 『바티칸 필사본』(Vatican, lat.3327)에도 포함되어 있고 선율도 기록되어 있다. 이 곡들의 특징은 장절 형식으로 진행되다가 끝부분에 한해서 세쿠엔치아나 베르수스에서와 같은 이중 시행 구조가 나타나는 것이다(5행과 6행). 다음의 예에서, 리듬은 편집자의 해석에 따라 붙어진 것으로서, 물론 노랫말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자유로운 리듬으로 불려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라틴어 단성노래 <오 아름다운 비너스의 자태여>O admirabile veneris idolum
위의 노래는 6도의 음역 안에서 음절적으로 진행하고 악구들의 끝도 서로 매우 유사하게 진행하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대륙에서 13세기 경까지 명맥이 유지된 라틴어 단성 세속노래 중 일부는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란 이름의 노래집에 현재 남아 있다(1847년에 처음으로 출판됨). 이 제목은 ‘베네딕트 ․ 보이에른(Benediktbeuern)의 노래’란 뜻으로서 그 필사본(Codex latinus 4660, 1220-1230경)이 보존되었던 남독일의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필사본에는 200개 이상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으며, 진지한 내용의 시들과 6개의 종교적 희곡도 수록되어 있다. 48개 정도는 라틴어 대신 독일어로 되어 있다. 시 가운데 다수는 역시 이중 시행 구조로 끝나나, 선율에 대해서는 다만 몇 개의 시에 네우마로 선율이 불확실하게 첨가되어 있는 정도여서 잘 알 수가 없다. 단, 다른 필사본에도 수록되어 정확한 음고를 재생해 낼 수 있는 것들도 있기는 하다.
카르미나 부라나의 한 페이지. 초기 단계의 네우마로 기록되어 있어 선율의 해독이 거의 불가능한다.
카르미나 부라나에 실린 노래들은 영국으로 전파되었다. 왜냐하면, 12세기말-13세기 초의 영국 노래집(Younger Cambridge Songbook)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