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 음악
오르간, 즉 건반을 통해 파이프에 바람을 통해 울리는 악기를 위해 쓰여진 음악을 의미한다. 이는 건반으로 현을 뜯거나 두드리는 악기와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중세후기에 파이프를 이용한 건반음악과 현을 이용한 건반음악들이 기능, 장르, 작곡기법에 따라 약간의 차이들을 보이지만, 18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구분은 뚜렷하지 않았다. 넓은 의미에서 결국 18세기까지의 오르간 음악의 역사는 피아노 음악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유럽에서 오르간은 이미 캐롤링 시대(9세기)에 교회에서 사용된다. 14세기에는 건반의 등장과 함께 다성부 연주가 가능하게 된다. 이 다성부 연주는 오르간 제조기술의 향상과 함께 악기의 음향적 질을 높이게 된다. 중요한 모음집으로는 "북스하임 오르간책"(1460-70)이 있다. 오르간 음악은 슐릭(A. Schlick), 호프하이머(P. Hofheimer)와 같은 독일 작곡가들과 카베존(A. de Cabezon)과 같은 스페인 작곡가에 의해 계속해서 발전된다. 15-16세기의 중요한 오르간 음악 장르로는 즉흥연주로부터 출발한 자유로운 프렐류드(Praeamblum)와 성악곡을 오르간을 위해 편곡시킨 것들, 그리고 코랄편곡(오르간 코랄, 오르간 미사)들이 있다. 코랄편곡들은 단성부 합창단에 의해 불려지는 코랄의 절들과 다성부적인 오르간에 의해 행해지는 교대연주에서 발생한 것이다.
약 1600년부터 오르간음악은 작곡기법적으로 다른 건반음악과 구별된다. 동시에 나라마다 예전적인 오르간 음악들이 등장해 17세기에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와 함께 교회에 대형 오르간이 설치되면서 예배적이거나 적어도 교회적인 음악으로서의 오르간 음악이 점점 더 정착되고 강조된다. 이태리 작곡가(A. G. Gabrieli, M. Merulo, L. Lossi, G. Frescobaldi)들은 당시의 오르간이 지닌 가능성들을 충분히 살려, 토카타, 리체르카르, 칸쪼나, 카프리치오 등과 같은 성악음악에서 출발한 기악형식들을 발전시켰다. 비엔나 (J.J. Froberger), 프라하, 아우그스부르크 등을 중심지로 하는 남부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오르간 음악은 이태리의 영향을 보여준다. 프랑스 오르간 음악(F. Couperin, L.-N. Clerambault)의 특징은 오르간미사, 찬미가, 마그니피카트 등의 편곡, 자유롭게 작곡된 봉헌송 등에서 볼 수 있듯이 화려한 음색의 선택에 있다. 독일 중부지역에서는 (J. Krieger., J. Pachelbel) 코랄편곡과 변주곡, 푸가토가 선호되었다. 독일 북부의 오르가니스트(F, Tunder, D. Buxtehude, V. Lübeck, N. Brunns)들은 여러 건반과 페달을 이용해 레기스터(스탑) 그룹들 사이의 다양한 음색교체를 만들어냈다. 이들에게서는 새로운 형식들도 나타났는데, 장식된 오르간코랄, 코랄판타지, 또는 푸가가 첨가된 대규모의 오르간 토카타들이 그러한 것들이다. 다양한 양식, 장르, 형식은 요한 세바스챤 바하의 오르간 음악에서 종합되어 절정을 이룬다.
1740년경에는 시대적 양식변화와 함께 오르간음악의 비중이 약화된다. 대신 강약을 조절할 수 있는 함머클라비어(피아노)가 건반음악을 주도하게 된다. 1830년경에야 복고주의 영향하에 다시금 몇 개의 중요한 오르간 작품들이 쓰여졌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는 바하의 전통을 따랐고. 리스트는 기교를 강조하였다. 프랑크는 심포니적이며 오케스트라적인 오르간 음악을 작곡하였고, 이러한 것은 길망(A. Guilmant), 비도르(Ch.-M. Widor), 비에른(L. Vierne), 뒤프레(Dupre) 등과 같은 20세기의 작곡가들에 의해 지속되었다. 고도로 음색·음향적인 메시앙의 작품들에서 프랑스 오르간음악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레거의 작품에서는 바하적 폴리포니와 바그너적 화성이 묶여진다. 오르간 운동(1918년) 이후의 작곡가들은 오르간 음악을 교회 예전과 연결시키려고 노력한다. 이에 반해 힌데미트나 쇤베르크는 교회와 상관없는 예술작품들을 작곡하기도 한다. 1960년대부터 아방가르드들(예, 리게티)은 오르간만의 특별한 음향들을 발견하여 작품에 이용한다.
나진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