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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金仁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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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金仁湜, 호: 秋江, 1885 평양-1962)

양악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양악가"가 된 사람들 중 하나. 음악적으로 활동한 사항을 보면 음악교사, 작곡가(창가), 채보가(「靈山會想」), 찬송가 작사가, 성가대 지휘자 등으로 활약했다. 그가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중학생 때부터였다(평양 숭실중학교 1903년경). 중학생이라고 하지만 이미 그는 18세나 된 "늙은" 학생이었고, 또한 결혼도 한 상태에 있었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풍금과 피아노를 배우며 서양음악을 배우는 입장이었다. 바이올린과 트럼펫도 연주할 수 있다고 전해오지만 어느 정도의 연주였는지 알 수 없다. 그는 1905년 9월에 숭실 전문학교에 입학한 후 1906년 6월까지 공부한 후 여러 학교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한다. 그의 직업은 평생동안 음악교사였다. 그가 거친 학교들이 대단히 많다. 평양에서는 숭실중학과 기성사범학교에서 가르친 후 1607년에 서울로 활동지를 옮긴다. 기독청년학관(YMCA, 여기에서 그는 소년 홍난파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진명여학교, 오성학교, 보성학교, 조양구락부 조선정악 전습소, 경신학교,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그는 음악교사로서 활약하였다. 그가 가장 오래 근무한 곳은 배재고등학교로서 40년대 초까지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에 올라온 후 YMCA를 중심으로 남성들로만 구성된 "京城讚揚會"를 조직하여 지휘하기도 했다(1914년 이후, 언제까지 계속된 지는 알 수 없음). 그 후 그는 새문안 교회, 종로교회, 정동제일교회의 지휘자로 활동한다. 그는 평생 한 손으로만 지휘했는데, 이는 그의 제한된 지휘 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敎科適用 普通唱歌集』(1912), 『朝鮮舊樂 靈山會上』(1914)을 편찬하기도 했다. 1931년에 발행된 『신정 찬송가』의 편집위원 중 한 사람이기도 했다.   

참고문헌:

박은경: 한국 최초의 작곡가 김인식 연구 ↗음악과 민족 제9호, 2000, 1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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