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브아(Dubois, François Clément Théodore, 1837.8.24. Rosnay/Marne - 1924.6.11. Paris)
프랑스의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합창지휘자. 빠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마르몽텔(A. Fr. Marmontel)에게 피아노를 토마(A.Thomas)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1861년 칸타타 아탈라(Atala)로 로마 대상을 받았다. 로마에 머물면서 리스트를 만났고, 그로부터 격려를 받았다.
1869년 빠리 마들레느(Madeleine) 교회에서 합창지휘를 하다가 1877-96년 생상의 후계자로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871년 빠리음악원에서 화성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조금 이후에는 마스네와 함께 작곡 교수가 되었다. 1880년에는 포레와 함께 바그너의 『마이스터징거』를 관람하기 위해 뮌헨을 여행하였다. 1896-1905년에는 토마의 후계자로 음악원 원장으로 일했다. 그의 주요 장르는 교회음악, 그 중에서도 주로 오라토리오였다. 그밖에도 오케스트라 모음곡, 피아노 협주곡, 교향시, 가곡, 오르간 음악, 미사, 모테트 등이 있다.
그의 음악은 친근한 선율에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작곡가로서는 대단히 보수적인 화성을 보여준다. 그는 프랑스의 전통적 음악을 따르는 편이었는데, 포레와 같은 작곡가에 비해서도 더욱 보수적이라 할만하다. 그의 음악은 음악사적 업적을 이룬 작곡가에 비해 접근하기 쉽고 평이하다.
주요작품은 다음과 같다
오라토리오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Les sept paroles du Christ 1867),
『실락원』(Le paradis perdu 1878. 빠리 시 음악상을 받음),
『바다의 노트르담』(Notre-Dame de la mer, 1897),
『클로비스의 세례』(La Baptème de Clovis 1899)
오페라 코미크:
La Guzla de l'Emir(1873),
Le pain bis(별칭 "La Lilloise", 1879),
Xavière (Paris 1895),
Aben Hamet(1884),
Frithjof (1892),
발레
La farandole (1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