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린카(Mikhail Ivanovich Glinka 1803.5.20. 노바스바스코예‘Novospasskoe’-1857.2. 15. 베를린)
대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경제적으로 언제나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으나 건강은 별로 좋지 않았다. 10세 때부터 음악에 흥미를 가졌으며, 그의 삼촌의 집에는 러시아의 대부호만이 가질 수 있는 사설 관현악단이 있었다. 그는 1818년 성 페테르스부르크의 귀족 학교에 다녔으며, 기숙학교에 입학하여 J. 필드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졸업 후인 1822년에 작곡을 시작하여 아마추어로서의 피아니스트 및 가수로 활동하였다. 1824년부터 1828년까지 통신부에서 일했으며, 1825년에는 피아노 변주곡을 출판하였다. 전 생애를 통해 이탈리아, 비엔나, 베를린, 빠리, 스페인 등을 여행하였다.
일반적으로 글린카��는 러시아 음악사에서 민족주의 음악의 시조로 간주된다. 그의 이전에도 민족적인 소재와 민요들을 사용한 경우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러시아 민족주의 음악은 글린카��의 첫 번째 오페라 『이반 수사닌』(Ivan Susanin, 성 페터스부르크 1836)부터라고 여겨진다.
젊은 글린카��는 19세기 초 각광받았던 유럽 오페라 작곡가들, 즉 부와엘디외, 메윌, 케루비니, 로시니, 도니체티 등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이들 오페라로부터 독립적인 피아노곡을 편곡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독일 고전주의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졌다. 글린카��는 자신의 첫 번째 외국여행(1830-1833)에서 유럽음악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더했으며, 베를린에서는 덴(Siegfried Dehn)에게서 체계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낯선 길을 걸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결코 이탈리아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그를 점점 러시아적으로 표현하게 만들었다.
성 페터스부르크에 다시 돌아온 그는 오페라 『이반 수사닌』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이 오페라는 황제 후보자인 로마노프(Michail Romanov)를 구하기 위해 폴란드 군대를 위기에 처하도록 이끌고, 죽음을 자처한 농부 이반 수사닌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랑스 혁명오페라 및 공포오페라, 이탈리아의 벨칸토 오페라가 당시에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반 수사닌』은 러시아 음악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게 해주었다. 이 오페라는 말하는 대화가 없는 첫 번째 러시아 오페라이며, 비극적인 결말의 애국적인 소재는 처음으로 민족의 견지에서 바라본 것이었다. 글린카�� 이전에 지역적인 색채로서 자주 인용되었던 러시아 민요는 그에게는 이제 더 이상 그림 같은 추가물이 아니라 - 특히 합창장면에서 - 민속음악적인 인토네이션에 따른 선율, 박자, 화성의 중심소재였다.
글린카��의 두 번째 오페라 『루스란과 루드밀라』(1842)는 동명의 푸쉬킨의 동화에 기초하며, 또 다른 새로운 음악적 방향을 제시한다. 『이반 수사닌』이 정치적인 갈등과 함께 민족적 역사극을 이루었다고 한다면, 『루스란과 루드밀라』는 선사시대의 신화적 인물과 환상적 줄거리(극적인 논리정연성이 없음)와 함께하는 민족적인 영웅 서사시이다. 순수음악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물론 글린카��는 이 작품에서 위대한 개혁가이다. 특히 난쟁이를 라이트모티브로 나타내는 완전한 온음음계를 여기서 처음으로 사용하며, 슬라브적 태양신 렐(Lel')(제1막 3번)의 결혼합창(운율에 따른 5/4박자를 강요함)은 무소르크스키와 림스키코르사코프 합창곡들에서부터 스트라빈스키의 『불새』에 이르기까지의 불규칙한 박자의 새로운 전통을 시작하게 한다. 또한 코카서스 민요이면서 페터스부르크 악파의 양식적 특징인 넓은 의미의 동양적 색채를 수용한다.
언급한 2개의 오페라는 다음 작곡가 세대들에게 모델이 되었다. 즉 『이반 수사닌』은 무쏘르크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와 『호반치시나』 그리고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황제의 신부』를 비롯한 여러 오페라의 모델이 되었으며, 『루스란과 루드밀라』는 역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환상적 동화오페라(예: 『사드코』)에 영향을 주었다. 역사적인 극과 서사시의 종합은 보로딘의 『이고르 후작』과 림스키코르사코프의 『보이지 않은 도시 키테츠에 관한 동화』에서 찾을 수 있다.
글린카의 기악음악 역시 러시아 민요와 관련된 특징에 있어서 오는 세대에 길안내 역할을 하였는데, 동기적 작업에 주력하는 베토벤의 후계자들과는 달리 선율적이면서 끊임없는 색깔을 부여한다. 결혼노래에 대한 변주 연곡인 『카마린스카야』(Kamarinskaja, 1848)는 전체 러시아적 음악이 존재한다고 할 만하다.
등록일자: 2005-02-17
김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