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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파로디, 패러디 [Parodie, parody]
16회
파로디, 패러디(도. Parodie, 영. parody) 기법의 발생과 변천

   우리가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간혹, 그 음악이 비록 처음 듣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전부터 알고 있는 듯한 선율을 접할 때가 있다. 이렇게 새로 듣는 작품에서 귀에 익은 선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그 곡의 작곡자가 다른 사람의 작품 또는 자신이 이전에 작곡한 작품에서의 선율을 새로운 작품에 차용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미 작곡되었던 작품에서 선율 또는 가사를 빌어 자신의 새로운 작품을 위해 다시 사용하는 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파로디(Parodie) 기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존의 선율에 새롭게 가사만 바꾸어 붙이는 것은 파로디라고 하기보다는 콘트라팍툼(contrafactum)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5세기말부터 문학과 음악에서 파로디라는 용어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지만, 15-16세기, 즉 르네쌍스 시대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파로디 기법은 이 시대 음악적 양식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는 파로디 기법이 타인 또는 자기 작품에서의 고정선율이나 형식 등을 그대로 빌어서 작곡하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특히 당시의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전례적 성가 대신에 세속선율을 고정선율로 사용하는 것이 널리 행해졌다. 따라서 폴리포니에 의한 미사곡을 작곡하는 경우 세속적인 성격의 모테트, 샹송 또는 마드리갈 등과 같은 음악에서 소재를 차용하여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여기서 차용되는 소재는 2성 이상으로 이루어지며, 단선율만을 차용하는 경우는 고정선율미사라는 개념으로 구분되어진다. 이 파로디 기법은 1545년경부터 1563년경까지 트레첸토 공의회에 의해서 금지되기도 하였다. 

   파로디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첫 작품에서의 예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14세기 중엽에 활동한 것으로 보이는 베상숑이라는 작곡가의 미사곡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미사곡의 선율을 그대로 옮기거나 새롭게 개작하여 사용하였다. 하지만 학자들은 베상숑의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파로디 기법은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우연이라고 보고 있으며, 실제로 파로디 기법에 의한 작품은 15세기 중엽에 와서야 비로소 미사곡들에서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특히 16세기로 넘어 오며 파로디 기법이 사용되는 미사곡들은 그 소재를 이전처럼 주로 모테트에서 차용하는 것보다는 세속음악인 샹송에서 더욱 많이 차용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발라드나 드물게는 마드리갈 등과 같은 세속음악이 전혀 수정되지 않은 채 또는 가사만 바꾸거나 일부분만을 개작하여 미사곡의 일부분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파로디 기법이 주가 되어 작곡된 미사곡을 "파로디 미사"라고 하며, 팔레스트리나, 랏수스 등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미사곡의 대부분이 이 종류에 속한다. 파로디 미사의 한 예로서 팔레스트리나는 Dies sanctificatus라는 미사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작품은 그가 이전에 작곡한 같은 제목의 모테트를 기본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였던 헨델이나 요한 세바스티안 바하의 작품에서도 그 많은 예를 보이고 있다.

   폴리포니 음악의 대가로 평가받았던 요하네스 오케겜은 고정선율의 취급에 있어서 다양한 면을 보였는데, 특히 그는 자신이 작곡한 음악에서 한 성부 이상의 고정선율을 차용하여 새로운 미사곡을 작곡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죠스깽 데 프레의 미사곡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이들은 이 파로디 기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가사만을 바꾸기도 했을 뿐 아니라 성부를 새로 더하기도 하였거나 생략하기도 하고 선율을 장식하기도 하는 등 다양하게 자신들의 음악에 폭을 넓히고 있었다.

   이렇게 15-16세기에 중요하게 쓰여졌던 파로디 기법은 17세기에 들어 또 다른 작곡 기법들이 등장하면서 그 중요성을 조금씩 잃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는 주로 미사곡에서만 나타났던 이 기법은 이제 가곡의 작곡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나아가 코랄을 기악곡으로 편곡하면서도 사용되게 되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하였듯이 바하 역시 파로디 기법을 많이 사용했던 작곡가이었다. 바하는 라이프찌히에서 궁정악장으로 일하던 27년 동안 수많은 교회칸타타와 오라토리오를 작곡하였다. 경우에 따라서 그는 매주 새로운 작품을 작곡하여 연주해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하는 자신이 작곡한 기존의 작품에서의 소재를 새로운 작품을 위하여 파로디하기도 하였다. 바하의 작품에서는 특히 자신이 작곡한 세속칸타타에서 교회칸타타에의 파로디, 교회음악에서 교회음악으로의 파로디 등 다양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서의 파로디 기법은 거의 대부분이 가사만을 바꾸면서 사용되었다. 바하의 &lt;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gt;의 전 64곡 가운데 십여 곡이 세속칸타타로부터 인용한 것이며, <b단조미사>에서도 자신의 칸타타로부터 인용한 것이 많이 발견된다. 이와 같이 바하가 자신의 작품, 특히 종교곡에서의 소재를 새로 작곡하는 칸타타나 오라토리오를 위해서 파로디한 반면에 헨델은 종교적인 성격에 크게 얽매이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나 자신의 작품 등에서 찾은 소재를 새롭게 작곡되는 작품에 파로디 하였다.

   이러한 파로디 기법은 18세기 이후에는 오페라의 작곡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등장인물간의 대화나 아리아 또는 오케스트라에서의 선율 등에서 당시의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던 노래들이나 독특한 선율 등이 차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오페라의 작곡가들이 이전에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작곡되었던 작품을 자신의 음악적 어법으로 새롭게 작곡하였던 것도 파로디 기법의 사용이라고 볼 수 있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수많은 작곡가들이 아직도 파로디 기법을 사용하여 창작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파로디 기법을 통해 사회의 현실을 풍자하거나 우화 시키면서 음악에 나타내기도 하였으며, 민속적인 음악에서의 선율이나 리듬을 차용하여 사용하거나 새롭게 해석하여 자신들의 음악에 한 부분으로 싣고 있다. 예를 들어 벨라 바르톡의 음악에서 찾을 수 있는 무수한 민속적 선율이나 파울 힌데미트 또는 이골 스트라빈스키가 제수알도 등과 같은 옛음악가들의 작품을 재해석하여 자신들의 작품에 인용하는 것 등을 볼 수 있다.

   앞에서 간단히 살펴 본 바와 같이 파로디 기법은 음악의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빈번하게 사용되어진 기법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 기법은 매 시대마다 약간씩은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루어졌다. 르네쌍스와 바로크 시대에는 종교의식의 필요에 따라 다작을 위한 방편으로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면, 18세기 이후부터는 풍자나 우화의 표현을 위한 방법으로 그리고 근대 이후부터는 작곡자의 경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파로디 기법에 대한 연구는 미미한 상태로 머물고 있다. 이제 '인용'과 '콜라쥬'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와 그리고 표절에 대한 논쟁이 현대음악에서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측면에서, 파로디 기법에 대한 개념과 그 경계선이 어디인가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논쟁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차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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