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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 [Rameau, Jean-Philipp]
29회
라모(Jean-Philipp Rameau 세례일: 1683.9.25.디종-1764.9.12.빠리) <이미지1> 프랑스의 작곡가 겸 음악이론가. 디종의 노트르담 성당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 장 라모(Jean R.)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세가 되어서야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이전의 그는 음악공부를 했으나 직업적 음악가가 될 생각은 없었다. 1701년 이태리로 가서 프랑스의 오페라단체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자신의 뜻을 펼치려고 했으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자 프랑스로 돌아왔다. 1702년 아비뇽 대성당과 클레르몽 페랑(Clermont-Ferrand)에서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709년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디종에서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715년 그는 또 다시 크레르몽 페랑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유명한 『화성론』(Traité de l’harmonie)을 썼다. 그의 첫 이론서였던 이 책은 화성학 이론을 새롭게 정리한 기념비적인 것이다. 1722년 그는 빠리로 완전히 이주했다. 1732년에는 빠리의 상트 크루와 드 라 브레토네리(Ste-Croix-de-la-Bretonnerie)에서, 1736년에는 제수이트 학교에서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1937년에는 조그마한 사설 작곡학교를 연다. 라모는 빠리에서 후원자 푸프리니에르(Le Riche de la Pouplinière)를 만나 그의 집에서 30년간을 거주한다(1722-1752). 이 후원자의 부인은 라모의 작곡 제자였다. 재력이 막강한 이 후원자는 자신의 집에서 음악회를 자주 열었던 사람이었고, 자신의 음악회를 주관하는 책임자로 라모를 임명했다. 라모는 이 후원자를 통해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라모는 당대의 대문호였던 볼테르를 만났고, 볼테르는 그의 첫 오페라인 『삼손』의 대본을 썼다. 이 오페라는 성경의 내용을 선호하지 않았던 극장장의 반대로 인해 공연되지 못했다. 이 오페라의 악보는 오늘날 일부분만이 전해온다(이 오페라는 후에 『조로아스터』로 개작되어 1749년에 초연된다). 그 이후에 발표된 오페라와 오페라발레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다른 장르의 음악들은 프랑스의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명성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1745년 루이15세는 그에게 \"궁정음악작곡가\"(Compositeur de musique de la Chambre)라는 칭호를 내렸다. 라모는 부퐁 논쟁이 있었을 때 프랑스 오페라파의 대표자로서 이태리 오페라 부파에 대해 대항했다. 라모의 대표적 장르는 무대음악이었고, 그 중에서도 서정비극(Tragédies lyriques)이었는데, 그는 이 장르를 륄리로부터 계승하여 절정에 도달하게 한다. 특히 이폴리트와 아리시(Hippolyte et Aricie,1733)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도 륄리의 오페라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오페라에 대해 이태리의 영향이 심하다는 비난했다. 레치타티보와 합창에서 낭송적인 측면을 활성화시킨 것, 아리아의 선호, 다양한 리듬과 악기음색 등이 륄리의 모델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를 옹호하는 그룹도 있어서 두 그룹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이 논쟁 가운데 그의 명성은 더해갔다. 이 서정 비극 장르는 옛 신화를 소재로 하고 발레와 합창을 포함시켰다. 그는 음악의 성격을 더 다양하게 구사하고, 표현력이 강한 선율, 풍요한 화성, 더 다양한 종류의 악기(클라리넷과 호른)들을 오케스트라에 포함시켰다. 서정코메디(comédie lyriques) 장르에서는 『플라테』(Platée, 1745), 오페라 발레(Opéra-ballets) 장르에서는 『우아한 인도인』(Les Indes galantes, 1735) 등을 남겼다. 라모의 쳄발로(프.클라브상) 음악 역시 중요하다. 쳄발로 음악은 모음곡으로 묶여 발표되었는데, 각 곡에 일정한 제목이나 무용의 명칭이 붙는, 짧은 음악들이었다. 그의 쳄발로곡집에는 세권의 『클라브상 소품』(Pièces de clavecin 1권:1706, 2권:1724, 3권:1728), 『콘체르토적 클라브상 소품』(Pièces de clavecin en concerts, 1741, 트리오와 쳄발로의 협주적 음악)이 있다. 그의 쳄발로 곡들은 가벼운 대위법적 음악, 류트 음악에 흡사한 느슨한 성부구조, 아르페지오 방식의 화성구조, 두터운 화성적 음악으로 점차 발전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음악 중 비교적 적게 알려진 것은 성악곡들이다. 4개의 모테트(1713-25)는 륄리 등의 프랑스 작곡가의 전통을 잇는 반면, 실내칸타타(1718-28)는 이태리의 전통을 더 따르는 것이다. 라모는 작곡법에서 -16세기의 대위법 그리고 17세기의 계속저음 이후에 나타난- 획기적 이론을 창출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다. 라모의 화성론은 화현의 자리바꿈(전위)를 인정한다. 즉, 한 음이 옥타브의 이동을 해도 동일한 음으로 취급됨으로써 바탕음이라는 개념을 가능하게 하였다(바탕음 C:C-E-G = E-G-C’). 따라서 이제 독립된 한 음이 고유의 음악적 추진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한 화음이 자신의 음악적 가치를 확보하게 되어 화성에 의한 음악의 진행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실제에서 무엇보다도 불협화음의 기능을 다르게 해석하게 하였다. 불협화음은 짜를리노에서처럼 더 이상 음악적 멋을 더하는 부수적인 양념이 아니다. 화현은 불협화음에 의해 구별되게 묶여지고 기능적인 추진력을 부여 받는다. 따라서 선율이라는 것도 단순한 음 또는 음정의 나열이 아니라, 화성의 연결이며 이를 통해 음악적 의미가 전달된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위의 글에서 보듯이, 선율도 결국 ‘화성’에서 나온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론적으로나 작곡에서 선율보다 화성에 더 우선권을 주었다. 라모는 자신의 화성이론이 짜를리노(Gioseffo Zarlino)와 데카르트(René Descartes)의 사고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발표된 소베르(Joseph Sauveur, Principes d’acoustique et de musique, 1700/01)나 메르센느(Marin Mersene, Harmonie universelle, 1636/37)의 배음이론을 자신의 『화성론』이 출간된 후에야 알았다. 그는 이 배음이론에 힘입어 자신의 화성에 관한 이론을 실제의 소리와 관련시켜 입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순수 물리학적인 논증과 음악적인 논증을 혼동하였고, 나아가 배음렬의 첫 다섯 음(C\" C’ G’ C E 곧 C E G)을 모든 화음의 모델로 삼음으로써 배음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단조화음을 풀 수 없는 문제로 남게 하였다. 등록일자: 2005.2.8 홍정수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라모, 장 필립(Rameau, Jean-Philippe, 1683-1764) - 1683년 프랑스 디종(Dijon)에서 출생. 유년기와 청년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음. - 성당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 장 라모(Jean R.)로부터 음악을 배웠고 12세경부터는 디종의 예수회 학교에서 극음악과 오페라에 대한 관심을 키움. - 1702-1722년까지 클레르몽 성당(Clermont Cathedral), 파리의 예수회 및 속량회(贖良會, Mercedarians), 디종, 리옹(Lion) 등지에서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함. - 1722년 40세에 파리로 완전히 이주. 클레르몽에서부터 집필해온 첫 번째 이론서『화성론』(Traité de l’harmonie, 파리, 1722)이 출판됨. - 1726년 42세에 가수 겸 클라브생 연주자였던 19세의 마리 루이스 망고(M. L. Mangot)와 결혼함. - 1733년 50세에 첫 번째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Hippolyte et Aricie)가 출판, 초연됨. - 1730년대 이후 라 푸플리니에르(Le Riche de La Pouplinière)의 후원을 받으며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겸 지휘자로 활동함. - 1745년 루이 15세로부터 ‘궁정음악작곡가’(compositeur de la musique de la chambre du roy)의 영예를 받았고, 그 후 프랑스 왕정을 위해 많은 극음악들을 작곡하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로 활약함. - 1750년대 이후 작곡 활동은 급격히 줄어듦. 부퐁 논쟁(Querelle des Bouffons, 1752-1754) 및 백과사전(Encyclopédie)의 음악 관련 항목들을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륄리(J.-B. Lully)를 지지하는 음악가들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그 이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루소(J. J. Rousseau)는 물론, 이전의 라모 지지자들이었던 디드로(D. Diderot), 달랑베르(J. d’Alembert) 등 당대의 지성인들과도 사이가 벌어짐. 20여 년에 걸쳐 그를 후원했던 라 푸플리니에르와의 관계도 1753년 끝을 맺게 되었으나 교육자로서, 특히 이론가로서의 저술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펴나감. - 1764년 9월 12일 파리에서 사망. 장 필립 라모는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음악이론가이다. 작곡가로서의 라모는 건반악기를 위한 많은 작품들과 몇몇 성악곡들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18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였다. 또한 음악이론가로서의 라모는 조성음악 이론의 중요한 개념들과 기초를 확립하였다. 라모가 작곡가로서의 경력이 시작된 작품은 건반악기를 위한 ≪클라브생 모음집 제1권≫(Premier livre de pieces de clavecin, 1706)이다. 이 모음집은 주로 전통적인 춤곡 악장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후에 출판된 ≪클라브생 작품집≫(Pieces de clavessin, 1724), ≪클라브생을 위한 새로운 모음곡들≫(Nouvel les suites de pieces de clavecin, 1729-1730경)에는 전통적인 양식과 더불어 새로운 경향이 나타난다. 이 작품집들의 앞부분에 나오는 모음곡은 대부분 미뉴에트, 알르망드, 쿠랑트 등 춤곡 제목들로 구성된 한편, 뒷부분에 나오는 모음곡은 <한숨>(Les soupirs), <즐거움>(La joyeuse), <외눈박이 거인>(Les cyclopes, 1724), <이명동음>(L’enharmonique, 1729-1730)과 같은 제목의 악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제목이 붙은 곡들은 18세기 초ㆍ중반 활약했던 또 한명의 중요한 프랑스 작곡가인 쿠프랭(F. Couperin.)의 하프시코드 모음집에 나타나는 오르드르(ordres)와 유사한 면이 있다. 라모의 곡들 중 <새들의 지저귐>(Le rappel des oiseaux)이나 <회오리바람>은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여 표현하려 했던 18세기 프랑스의 음악적 경향을 보여주며, 미국 인디언들의 춤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야만인>은 당대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였다. ≪연주회용 클라브생 작품집≫(Pieces de clavecin en concerts, 1741)에 실린 모음곡들에서는 춤곡 악장들 대신 위와 같이 제목이 붙은 악장들이 더 많이 나타나고 악장 수 역시 3-5개 정도로 줄어든다. 심지어 지인(知人)들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이기도 하여 <라 푸플리니에르>라는 제목을 가진 악장도 있다. 앞의 작품집들과 구별되는 이 작품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클라브생 뿐 아니라, 바이올린이나 플루트, 7현악기인 바세 드 비올(basse de viole)과의 합주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성부는 단연 클라브생이다. 즉 이 곡들은 ‘반주가 붙은, 건반악기용 음악’인 것이다. 서문에서도 이 곡들은 조금만 편곡하면 클라브생 한 악기만으로도 연주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라모는 클라브생을 위해 작곡된 작품들을 오페라로 가져와 사용하기도 했고, 오페라에 나오는 오케스트라 부분들을 건반악기용으로 편곡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그의 오페라 발레 ≪우아한 인도인≫(Les Indes galantes, 1735)의 발췌곡들을 클라브생용으로 편곡한 것(1735)이 그 예이다. 라모의 클라브생 곡들에는 빠르고 도약이 많은 음형들, 또 기교적으로 어려운 패시지들이 많이 들어있고 후기 작품들에서는 실험적인 화성 진행도 종종 나타난다. 오페라를 제외한 라모의 성악곡들은 그 수가 많지 않고, 혁신적이라고 보기도 어려우며, 음악적인 깊이에 있어서도 중요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의 장르와 양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18세기 프랑스 음악 역사의 중요한 면모를 알 수 있다. 우선, 그가 작곡한 세속 성악곡들 중 대부분이 프랑스 칸타타(Cantate francaise)에 속한다. 프랑스 칸타타는 17세기 이탈리아 칸타타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초반 모랭(J.-B. Morin), 베르니에(N. Bernie), 캉프라(A. Campra) 등의 프랑스 작곡가들이 이탈리아 풍의 양식과 프랑스 고유의 음악적 특징을 결합시켜 작곡한 실내 칸타타의 한 장르이다. 라모 역시 이러한 맥을 이어 ≪테티≫(Thétis, 1715-1722경), ≪초조≫(L’Impatience, 1715-1722경), ≪아킬롱과 오리티≫(Aquilion et Orithie, 1715-1719경), ≪오르페≫(Orphée, 1721), ≪충실한 양치기≫(Le berger fidéle, 1728), ≪배반당한 연인들≫(Le samants trahis, 1721경) 등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드러내는 프랑스 칸타타들을 작곡했다. 최근에는 ≪성 루이 축일을 위한 칸타타≫(Cantate pour le jour de la Saint Louis, 1730경) 역시 라모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칸타타 작품들을 통해 라모는 성악 작곡법 뿐 아니라 후기 작품에서 고유의 것으로 발전하게 되는 특징적인 관현악법을 실험할 수 있었다. 한편, 라모는 17세기중반 이후 많은 프랑스의 작곡가들이 작곡한 그랑 모테트(grands motets)도 4편 작곡하였다. 그랑 모테트는 시편(psalm)이나 찬미가(hymn)에 붙여진, 장중한 합창, 중창, 독창, 그리고 때로는 서곡까지 포함하는 대규모의 성악곡 장르다. ≪그 얼마나 좋은가≫(Quam dilecta, 시편 84), ≪다시 돌아오실 때≫(In convertendo, 시편 126) 외에도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Deus noster refusium, 시편 46)의 일부가 현존하며, 『화성론』에 실린 ≪어려움을 견뎌내었네≫(Laboravi clamans, 시편 69장 제4절)의 5중창 역시 원래는 그랑 모테트의 일부였다. 이외에도 한 편의 프티 모테트(petits motets), 즉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3성부 이하의 성악곡과 오르간 콘티누오를 위한 모테트도 작곡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그랑 모테트는 장르 자체가 성서에 음악을 붙인 것이기는 하나, 이미 17세기후반부터 많이 세속화되어 교회에서의 의전적 기능은 더 이상 갖지 않게 되었다. 라모가 1751년 개작한 모테트 ≪다시 돌아오실 때≫ 역시 교회를 위해 작곡된 것이 아니라, 1725년부터 대혁명 이전까지 살롱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던 프랑스의 음악회 시리즈 ‘콩세르 스피리튀엘’(Concert Spirituel)을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라모가 작곡가로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오페라 작품들을 통해서였다. 50세 되던 해에 초연된 첫 번째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1733)는 보통 ‘파리 오페라’(the Paris Opéra)로 불리는 ‘왕립 음악 아카데미’(Académie Royale de Musique)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와 왕비 페드라, 그리고 그녀의 의붓아들이자 왕자인 이폴리트와 그가 사랑한 여인 아리시에 관한 고대 그리스 신화에 바탕을 둔 펠르그랭(S.-J. Pellegrin)의 대본에 기초한 것이다.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륄리 이후 가장 독창적인 프랑스 오페라라고 칭송한 반면,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작품의 화성이 불협화적이고 길고 복잡하며 이탈리아 풍이어서 륄리로 대표되는 프랑스 전통 양식의 음악을 망쳐놓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라모를 옹호하는 라모주의자(ramistes 혹은 ramoneurs)와 륄리를 옹호하는 륄리주의자들(lullistes) 간의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장르의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 작품은 륄리 이후 프랑스의 오페라 전통을 이룬 ‘서정비극’(tragédies lyriques 혹은 tragédies en musique)에 속한다. 즉, 주로 고대 신화나 전설을 소재로 하며, 대개 5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레치타티보와 에어(air)의 대조가 확연하지 않은 대신, 막 사이에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s)들이 들어가 있는 프랑스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모의 음악적 표현, 특히 화성적 어휘는 이전 세대의 프랑스 작곡가들에 비해 훨씬 다양했고 실험적이었다. ≪이폴리트와 아리시≫ 이후 라모는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경력을 화려하게 펼쳐나갔고, 이즈음부터 시작된 당대의 유력한 예술 후원가 라 푸플리니에르와의 인연도 여기에 크게 작용했다. <이미지2> 이 외에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쌍둥이 형제 신의 이야기를 다룬 ≪카스토르와 폴뤽스≫(Castor et Pollux, 1737), 트로이를 세웠다는 신화적 조상의 이야기 ≪다르뉘스≫(Dardanus, 1739),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적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조로아스트르≫(Zoroastre, 1749), 그리고 중도에 작곡을 그만둔 ≪삼손≫(Samson), 악보가 남아있지 않은 ≪리뉘스≫(Linus), 라모가 미처 출판과 초연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 마지막 오페라 ≪북풍의 신들≫(Les Boréades) 등이 서정비극에 속한다. 특히 ≪카스토르와 폴뤽스≫와 ≪다르다뉘스≫, ≪조로아스트르≫는 각각 1754년, 1744년, 1756년에 대대적인 개작 작업을 거쳐 거의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라모의 작품들에서도 ≪이폴리트와 아리시≫, 1754년판 ≪카스토르와 폴뤽스≫ 그리고 ≪북풍의 신들≫은 가장 성공적으로 음악과 극을 결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모는 엄숙하고 진지한 서정비극 뿐 아니라 훨씬 밝고 가벼운 오페라 발레(opéra-ballet)도 작곡했다. 서정비극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줄거리에 바탕을 둔 반면, 3-4개의 막으로 구성된 오페라 발레는 각 막마다 그 자체로서 완결된 줄거리를 갖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야기 구조에 따른 드라마보다는 볼거리, 무엇보다도 발레에 치중하게 된다. 라모의 오페라 발레로는 ≪우아한 인도인≫(1735), ≪에베의 축제≫(Les fêtes d’Hébé, 1739), ≪폴림니의 축제≫(Les fêtes de Polymnie, 1745), ≪영광의 전당≫(Le temple de la Gloire, 1745), ≪찬미가와 사랑의 축제≫(Les fêtes de l’Hymen et de l’Amour, 1747) 등이 있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오페라 발레는 이국적인 장소에 펼쳐지는 종교ㆍ주술 의식 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라모는 오페라 발레 외에도 여러 편의 단막 발레 음악을 작곡했는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지는 조각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피그말리옹≫(Pigmalion, 1748)이다. 조각가의 여러 가지 감정들은 음악과 극의 결합으로 다양하게 표현되었고, 사랑의 여신 비너스의 도움을 받아 조각상이 인간으로 살아나 마침내 자유롭게 움직이고 춤추는 장면은 발레로 표현하기에 이상적인 장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745년 라모는 ‘궁정음악 작곡가’가 되면서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음악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공고히 하였으며, 이때 이후 라모가 쓴 극음악들 대부분이 궁정 극장 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오페라 발레 장르에 속하는 ≪영광의 전당≫, 오페라 발레와는 달리 전체가 이어지는 하나의 줄거리를 가진 희극 발레(comédie-ballet) ≪나바르의 여왕≫(La Princesse de Navarre, 1745), 그리고 프랑스 황태자와 스페인 공주의 결혼 축하 행사를 위해 작곡된 서정적 희극(comédie lyrique) ≪플라테≫(Platée, 1745)가 그 예이다. 1740년대 후반 이후 작곡된 작품들 중 ≪차이스≫(Zaïs, 1748), ≪나이스≫(Naïs, 1749) 등은 주로 변장한 신과 인간의 사랑을 다룬 영웅적 전원극(pastorale-héroique) 장르에 속하며, 서정비극에 비해 극적이지 않고 보다 가벼우며, 디베르티스망을 강조한다. 1752년부터 1754년 사이, 프랑스의 거의 모든 지성인들은 이탈리아의 오페라 부파(opera buffa)와 프랑스의 서정비극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냐의 문제를 둘러싼 부퐁 논쟁에 휩쓸리게 된다. 물론 음악이나 오페라의 문제는 표면적인 동기였을 뿐, 논쟁의 핵심에는 보다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륄리주의자들이 이탈리아 풍이며 지나치게 개혁적이라고 비판했던 라모의 오페라는 이제 보수적이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골레지(G. B. Pergolesi)의 ≪하녀 마나님≫(La serva padrona, 1733)의 자연스럽고 단순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너무 복잡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1750년대 이후 노쇠한 라모는 작곡가로서의 활동보다는 이론가로서의 저술활동에 주력하게 된다. 라모 극음악의 전반적인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자면, 대체적으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복잡하고 유연한 리듬과 대담한 음정의 진행을 많이 사용했으며, 불협화화음 및 전타음을 많이 사용하거나 전조하는 실험적인 화성진행을 보이면서도 선율은 3화음적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화성 진행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의 극음악에 나타난 성악 작법을 보면, 륄리를 포함한 여러 프랑스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레치타티보와 에어 간의 구분이 이탈리아 작곡가들보다 덜 확연하며, 후기 작품으로 갈수록 길고 어려운 기교를 필요로 하는 독창 아리아 ‘아리에트’(ariette)를 더 많이 포함시키는 경향이 보인다. 주로 각 막의 시작에 나오는 애절한 독창 아리아(monologues)는 느리고 힘차게 진행하는 선율이 특징적이다. 프랑스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오페라 세리아보다 원래 중창과 합창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지만 라모의 오페라에서는 그 비중이 더욱 크다. 그의 초기 작품에서는 서로 다른 내용을 가진 가사를 노래하는 2중창을 대위법을 사용하여 표현해내는 흥미로운 표현기법을 사용했지만 비판을 받았고, 후기 극음악에서는 이런 식의 2중창을 찾아보기 어렵다. 라모의 극음악에서 합창은 종종 디베르티스망을 장식하거나 드라마를 전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편 기악 작법의 측면을 보면, 묘사를 중시하는 프랑스 고유의 특징이 나타나는 동시에, 노래를 반주하는 부분과 서곡, 극 중간에 삽입되는 순전히 악기로만 연주되는 부분에서도 매우 독창적인 관현악법을 적용하거나, 그 이전까지 오페라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피치카토나 글리산도 등의 기법을 도입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라 푸플리니에르의 저택에서 독일과 보헤미아의 연주자들을 만난 라모는 프랑스에서는 최초로 오케스트라에 호른과 클라리넷을 사용하기도 했다. 라모는 작곡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기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음악이론가로서 활약했다. 그의 첫 번째 이론서 『화성론』(1722)은 프랑스 뿐 아니라 서유럽 전체에 널리 알려졌다. 이 저술에서 라모는 화음의 ‘자리바꿈’(전위, 프: renversement) 개념을 이론적으로 확립하였다. 이전까지 각각 다른 ‘음정’들의 조합으로 여겨졌던 C-E-G, E-G-C, G-C-E의 세 음향은 사실 하나의 ‘화음’이 다르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위의 개념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근음의 중요성이다. 위의 세 음향 경우로 다시 돌아가면, 실제로 소리 나는 베이스는 C에서 E로, 또 E에서 G로 움직이지만 화음과 근음의 개념을 적용하여 듣는다면 이 세 음향의 근음은 계속 C에 머무른다. 화음의 근음들을 연결한 이러한 개념적인 상상의 베이스를 라모는 ‘기초저음’(basse-fondamentale)이라 일컬었다. 이제 조성음악의 화성은 단순한 연결이나 연속이 아니라 고유의 추진력을 갖는 진행으로서 설명될 수 있었다. 1730년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드높인 이후 1740년대까지 라모는 이론보다 작곡활동에 더욱 주력했으나 이 시기 유일하게 출판된 이론서 『화성의 생성』(Génération harmonique, 1737)에서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변화를 보인다. 『화성론』(1722)의 출판 이후 배음열의 물리적 존재를 깨달은 라모는 이제 화음의 기초가 진동체(corps sonore)라는 음향학적 현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근음은 단순히 가장 아래성부의 음이 아니라 화음의 제3음, 제5음을 발생시키는 배음열의 기음(基音), 즉 생성원(générateur)이라는 것이다. 이로써 라모는 음악이론을 당대 다른 과학 분야와 대등한 분야로 올려놓고자 했으며 이 저서를 ‘왕립 과학 아카데미’(the Académie Royale des Sciences)에 헌정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라모의 이론은 그의 오페라 작품들만큼이나 자주 논쟁에 휘말렸다. 이전까지의 계속저음식 사고를 부인하는 혁신적인 기초저음 이론은 당대 대부분의 음악이론가들에게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조율 체계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였으며, 노년기에는 한때 라모를 지지했던 디드로, 달랑베르 등의 백과사전파 사상가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데카르트(R. Descartes)와 뉴턴(I. Newton) 등 17세기 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아 합리적 원리에 바탕을 둔 음악을 경험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던 라모의 시도들은 후대 조성음악이론의 내용과 체계에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또한 프랑스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의 라모에게는 새로운 음악의 창작 뿐 아니라 당대의 음악에 대한 이론의 정립과 사상적 통찰 역시 똑같은 중요성을 띠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Bouissou, Sylvie. gen. ed. Jean-Philippe Rameau: Opera Omnia. Billaudot, Paris; Bärenreiter, Kassel, 1996. Jacobi, Erwin R. ed. Jean-Philippe Rameau: The Complete Theoretical Writings. 6 vols., American Institute of Musicology, Rome, 1967–1972. Anthony, James R. French Baroque Music from Beaujoyeulx to Rameau. 2nd ed., Norton, New York, 1978. Burkholder, J. Peter, Grout, Donald Jay. and Palisca, Claude V. A History of Western Music. 7th ed., W. W. Norton & Company, New York, 2006. Christensen, Thomas. Rameau and Musical Thought in the Enlightenment.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1993. Dill, Charles. “Rameau’s Imaginary Monsters.” Journal of the American Musicological Society 55/3, 2002, pp. 433-476. Foster, Dona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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