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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메시앙 [Messiaen, Olivier]
2회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 아비뇽-1992 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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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음악 교육가였던 메시앙은 20세기 작곡가 중 특이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는 음악적으로 매우 혁신적인 음악가이었던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매우 전통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다. 메시앙의 음악세계는 이성적인 작곡양식과 종교적 신비주의에 기초한다. 평생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던 메시앙의 예술에는 신앙심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이에 따라 종교적인 주제에 의한 작품을 많이 썼다(오르간 음악, 합창곡). 또한 메시앙의 작품에는 다양한 이국주의적 요인이 나타난다. 그는 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8세 때부터 작곡을 시작하였다. 10세 때에 그는 벌써 드뷔시의 「펠리아스와 멜리상드」를 알고 있었다. 이 작품은 오래 동안 그의 작곡에 영향을 미친다. 1919년부터 1930년까지 빠리 음악원에서 마르셀 뒤프레와 파울 뒤카에게 작곡을 배웠다.  더불어 그는 연주, 반주, 이론 등의 철저하고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1931년 그는 빠리 상 트리니테(Ste Trinité)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된다. 이 때에 나온 작품이 주의 탄생」(La nativité du Seigneur, 1936)이다. 또한 다른 모든 큰 오르간 작품들은 이 때에 쓰여졌다.  1936년 졸리베(Jolivet), 보드리어(Baudrier), 다니엘 레쥐르(Daniel-Lesur)와 함께 "젊은 프랑스"(Jeune France)를 형성하여 프랑스 작곡계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는다. 이 그룹은 당시에 유행하던 신고전주의로부터 거리를 유지했다. 2차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징집된 그는 1940년 독일의 전쟁포로가 되었는데, 이 때 참담한 시간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그 유명한「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전쟁 전에 음악계의 국외자로 머물러 있다가 전쟁 종결 후 빠리 음악원 임명되어 활발한 작품활동 뿐만 아니라, 슈톡하우젠, 불레즈, 제나키스 등 많은 제자를 배출해 냈다. 그의 음악원 재직기간은 1942년부터 1978년인데,  중간중간에 교수직을 쉬는 경우도 있었다.

메시앙의 음악은 정교한 리듬기법과, 12음기법을 한 단계 더 세분화시켜 50년대 음렬음악에 영향을 미친 모드기법이 새소리와 같은 자연적 음향의 사용, 큰 특징들이다. 메시앙은 음악을 일차적으로 리듬적 측면에서 관찰하였다. 그는 그레고리오 성가, 모차르트,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 등의 음악을 리듬적 관점에서 공부하였다. 그는 또한 인도와 그리스 음악의 리듬에 관한 공부도 하여 그 기법을 자신의 음악에 응용하였다.  <거꾸로 진행시킬 수 없는 리듬>, <비대칭적 리듬>, <계속저음적 리듬>, <음가의 축소와 확대> 등, 그의 음악은 다양한 리듬의 실험을 보여준다. 또한 그의 논리적 작곡 양식은 <모드>기법에서 나타난다(피아노 독주곡「4개의 리듬 연습곡」). 특히 첫 곡「음가와 강세의 모드」는 20세기 음악 발전의 기념비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새소리에 관한 그의 관심은 매우 각별하였다. 그는 새의 소리를 채보한 수천 건의 악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음악 곳곳에는 새소리가 울린다. 특히 그의 작품 『새의 카탈로그』(Catalogue d'Oiseaux 1956-58)은 새소리들을 대량으로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한편으로 메시앙은 종교적 주제에 의한 작품을 많이 썼으며, 특히 다양한 오르간곡을 작곡하여 20세기 오르간 음악에 큰 공헌을 하였다. 메시앙 음악의 신비스런 울림은 중세음악의 사용과 자연에서 얻은 소리(예: 새소리) 등의 복합적 사용으로 나타난다. 이런 음악은 제목부터가 조금 특이한 편이다. 피아노곡「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20개의 시선」(Vingt regards sur l'Enfant Jésus, 1944),「새의 깨어남」(Réveil des oiseaux, 1953). 그이 종교적 음악들은 교회의 전례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며 일종의 개인적 신앙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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