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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즈 [Varèse, Edgard]
2회
바레즈(Edgard Varèse, *1883. 12. 22. 빠리, †1965. 11. 6.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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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1

어린 시절을 대도시 빠리와 보다 시골적인 뷰르고뉴에서 보냈다. 1893년 아버지와 함께 토리노로 이사하여 엔지니어 공부를 준비했으나, 1903년 이를 중단하고 빠리로 와서 스콜라 칸토룸, 콘서바토리움 등에서 다양한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당시에 그는 미래주의, 입체주의 등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경향에 큰 영향을 받았다. 

1907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부조니를 접하게 되면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굳혀갔다. 특히 그는 부조니의 음악관에 깊이 동감하였으며(『음예술의 새로운 미학에 관한 설계』 트리스트, 1907), 이에 따른 새로운 음악세계로의 동경은 이후 그의 작품활동의 큰 틀을 이룬다. 부조니 외에 그는 드뷔시. 로망 롤랑, 호프만슈탈, 칼 무크 등과 친분을 가졌다.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그는 베를린에서 다양한 초기 작품들을 썼으나 전해지는 것은 없다. 프랑스 군대에서 병역을 마치고 1915년 12월에 뉴욕으로 활동의 장을 옮기고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갔다. 

바레즈는 단체 조직이나 지휘 등 작곡 외의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1921년에는 살체도(C. Salzedo)와 함께 '국제 작곡가 조합'(International Composers' Guild)을, 1928년에는 카웰(H, Cowell), 카베츠(C. Chávez)와 함께 '미국 작곡가협회'(Pan American Association of Composers)를, 1941년에는 '뉴욕합창단'(New York Chorus)을 창설했다. 이후 몇 년간 빠리로 돌아와 있었으며, 이 때 그의 작품이 유럽에서도 소개되었다. 미국의 몇 대학교에서 강연 내지 강의할 기회를 이용하여 그는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론적으로도 체계화하고자 했다. 1950년에는 다름슈타트 음악 강좌에 강사로 초청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후 바레즈는 「아메리카」(Amériques, 1918/20)를 첫 작품으로 내놓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음향뭉치를 자유자재로 조합시켜 전통적 화성이 아닌 다양한 음향대조에 의한 작품구성을 선보였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타악기 음향의 증대와 현악기의 계속적인 글리산도에 따른 소음효과가 전면에 등장한다(☜). 그는 이러한 음악 특징을 보다 강화시켜「이온화」(Inonisation,1930/31)에서 타악기와 싸이렌 음향만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서양음악사에서 최초의 순수 타악기 음악으로 평가받는다.  

바레즈는 새로운 음악을 위해 새로운 음향을 전자장치를 통해서도 얻으려고 했다. 그는 1905년에 이미 싸이렌 소리를 실험을 하였으며 실제로 작품에 이용하였다.1) 10여년의 휴식기를 거친 후 작곡된 「사막」(Déserts, 1948/54)에는 →셰퍼의 연구소에서 녹음된 음향을 연주에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1958년 뷰르셀의 만국박람회에서 연주된 「전자 시(詩)」(Le Poème électronique, 1957/58)는 순수 전자음악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또 문학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먼저 그의 작품제목들은 매우 프로그램적이다, 그리고 여러 작품들은 문학적인 대본을 바탕으로 작곡되었다: Offrandes(1921), Ecuatorial (1933 /34), Nocturnal/Nuits (1954/65).

전통적 음향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 바레즈는 새로운 악기를 염원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세 가지의 처방을 갖는다. ① 타악기 음향의 중용, ② 글리산도 또는 싸이렌 소리, ③ 전자장치를 통한 음향의 조합 내지 창조.

특히 전통적 음조직을 거부하는 타악기 음향의 중용과 끊임없이 나타나는 자유로운 음향의 선(線)적 구성은 이후 그의 음악의 중심적 특징을 이룬다. 

1) 힌데미트 역시 싸이렌 음향을 작품(실내악 제1번)에 이용하였다. 그러나 싸이렌 소리는 이 작품에서 효과음향으로 나타난다. 이에 반해 바레즈의 작품에서 싸이렌 소리는 작품을 구성하는 중심적 음향재료로 사용되었다.

주대창


설명2

(1). 생애
바레즈는 1883년 빠리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7살까지 프랑스 북부 부르고뉴지역에서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1892년 가족과 함께 토리노로 이사를 한 바레즈는 공학도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 몰래 음악공부를 시작했다. 1894년 처음으로 작곡시도했다(오페라 "마르탱의 발자취 Martin Pas"-악보는 현존하지 않음).
21세가 되던 1904년부터 빠리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음악수업과 활동을 했다. 그는 스콜라 칸토룸(Schola Cantorum)에서 댕디(Vincent d'Indy, 1851-1931)와 루셀(Abert Roussel, 1869-1937)로부터 그리고 빠리 콘서바토리에서는 비도르(Charles-Marie Widor, 1844-1937)로부터 다양한 음악수업을 받았다. 1905년부터 그는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여 오늘날 남아있지는 않지만 많은 작품을 썼다. 또 이때 그는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사이렌 연구에 몰두했다. 
1907년 여배우 빙(Susanne Bing)과 결혼하였고 빠리에서의 성공이 회의적이었던 그는 베를린으로 이주함. 이 곳에서 그는 부조니(Ferruccio Busoni, 1866-1924),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ahl, 1874-1929),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 롤랑(Romain Rolland)과 같은 예술인들과 교류하게 되고 그들에게 정신적,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바레즈는 특히 부조니의 음악관에 깊이 영향을 받아서 그의 작품 활동의 큰 틀을 이루는 새로운 음악세계로의 동경과 추구를 이 시기에 확립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1909년 교향시 [부르고뉴](Bourgogne, 1910년 베를린 초연)를 완성했다. 그는 이때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로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1913년 이혼과 함께 빠리로 돌아온 바레즈는 서서히 빠리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고 1914년에는 프라하에서 체코필하모니 객원지휘를 했다. 
1915년 12월 바레즈는 뉴욕으로 이주하여 경제적 어려움과 교통사고 등으로 힘든 생활을 했다. 그는 미국에서 단체 조직이나 지휘 등 작곡 외의 활동도 열심히 하여 1919년에는 옛 음악을 주로 연주하는 “신 심포니 오케스트라 New Symphony Orchestra"를 설립하였고 1921년에는 ”국제 작곡가 길드 International Composer' Guild, I.C.G."를 만들어 활발히 현대음악회를 주최했다. 또한 1928년에는 미국 현대음악을 위한 단체인 “미국 작곡가 협회 Pan America Association of Composers, P.A.A.C."를 카웰(Henry Cowell, 1897-1965)과 카베즈(Carlo Chávez)와 함께 만들고 1941년에는 ”뉴욕합창단 New York Chorus"을 창설했다. 1917년 그는 미국인 번역가 노턴(Louise Norton)과 결혼했다. 1928년부터 5년간 그는 빠리에 머물면서 작품을 유럽에 소개했다.  
1934년 바레즈는 다시 미국으로 이주하여 1965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을 하는데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에 뉴욕에서 중요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관악기와 타악기를 위한 곡인 [초굴절](Hyperprism, 1923), 7개의 관악기와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곡인 [팔물 '八物'](Octandre, 1924), 타악기를 동반한 소규모 관현악곡인 [합 '合'] Intégrales, 1925), 관현악곡인 [비법](Arcana, 1927), 41개 타악기와 2개의 사이렌 곡인 [이온화](Ionisation, 1931), 플루트 독주곡 [밀도 21.5](Density 21.5, 1936)" 등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들은 바레즈가 음향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작곡가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도록 했다. 1919년부터 바레즈는 전자악기의 가능성을 연구했다. 미국으로 처음 이주했을 때 내놓은 첫 작품인 [아메리카](Amerique,1918/1920)에서 그는 음향뭉치를 자유자재로 조합시켜 전통적인 화성이 아닌 다양한 음향대조에 의한 작품 구성을 선보였다. 이 곡에서 무엇보다도 타악기 음향의 증대와 현악기의 계속적인 글리산도에 따른 소음효과가 전면에 등장했다. 그는 이런 음악적 특징을 강화시켜 [이온화]에서는 타악기와 사이렌 음향만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서양음악사에서 최초의 순수 타악기 음악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2개의 세계대전 사이에 그는 유럽과 미국에서 교수와 작가로도 명성을 얻게 되고 1939년에는 남 캘리포니아대학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1948년에는 컬럼비아대학(Columbia University)에서, 1962년에는 예일대학( Yale University)에서 강의를 하였고 1950년에는 다름슈타트 국제현대음악제(Internationale Ferienkurse für Neue Musik in Darmstadt)에 강사로 초청되어 젊은 작곡가들(노노, 슈네벨, 마데르나, 메츠거 등)에게 강한 영향을 주었다. 
1954년 바레즈는 [사막](Déserts, 1949-1954)를 완성하게 되는데 이 곡은 그의 작품의 절정을 이루는 곡으로 14개의 관악기, 피아노, 타악기 등 46개의 악기 그리고 3개의 ”조직된 소리 organized sound'를 테이프에 녹음하여 삽입하여 만들어진 곡이었다. 그는 이 곡을 위해 필라델피아의 공장 소음을 녹음하여 사용하였는데 쉐퍼(Pierre Schaeffer, 1910-1984)는"사막“에 삽입될 소리의 변조 작업을 빠리에서 도와 주었다. 이곡은 빠리에서 초연됐고 스테레오로 프랑스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서 생중계되었다.
바레즈는 1965년 11월 6일 뉴욕에서 혈전증으로 사망했다.

(2). 미학관과 예술
바레즈는 음악적 “현대”를 연 중요한 작곡가 중의 한사람이었다. 또한 그의 낭만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성격을 띤 초기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음악세계를 발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작곡가였다. 즉 그는 과거와는 타협하지 않고 과거의 다양한 유럽의 전통들로부터 벗어나기를 갈망했다. 
그의 음악적 사고의 뿌리는 프랑스에서 시작하는데 특히 발레리 (P. Valéry)를 수장으로 하던 당시의 프랑스 문학은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발레리의 사상은 모든 예술의 물리적 부분(physikalischer Teil)과 연관되어있는데 이 물리적 부분은 근대적 학문과 권력에서 시도하는 것들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그에 의하면 재료도, 공간도, 시간도 모두 원래 그들이 존재했던 그대로의 것은 없다는 것이었고 이 커다란 변화는 예술의 총체적 기법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으며 예술의 개념을 놀랍게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바레즈는 이 사상을 기술적으로 또 음악적으로 자신의 음악에 적용시키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다.
이외에도 바레즈의 음악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드뷔시와 부조니의 영향이 중요하다. 그는 1906년 출판된 부조니의 [음예술의 새로운 미학에 대한 설계]에 강한 영향을 받아 음악작품은 지적능력(Intelligenz)과 예술의지(Kunstwollen)의 유기체적인 합성품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유기체적이라는 뜻은 작품이 음악외적인 사실이나 음악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정해져있는 형식에 기초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는 창작자의 사명은 법칙을 만드는 것이지 법칙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법칙을 따르는 사람은 창작자이기를 포기한 사람이라고 생각함. 결국 그는 ‘음예술의 해방(Die Befreiung der Tonkunst)'을 그의 작곡의 근원이자 힘으로 여겼다. 그는 세기 전환기에 음악이 형식, 5도권의 반복, 악기편성, 이차원적임 등의 구속에서 해방되도록 했으며 그는 이런 해방된 음악을 더 이상 음악이라고 하지 않고 ’음예술‘이라고 함. 또한 ’음예술의 해방‘은 음악 청취의 근본적 현상이 물리적 본성에 기초한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사상은 악기의 의미 변형과 확장(전자 음향의 도입 포함), 소음의 해방 (음과 소리의 일치), 음계의 와해, 형식의 변형, 새로운 음색창출 등 다양한 결과를 초래함. 바레즈가 소리에 대한 생각을 바꿨다는 것을 외적으로 보여주는 표시는 타악기와 관악기를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1924년 런던에서 타악기와 관악기로만 이루어진 [초굴절]이 연주됐을 때 현악기는 더 이상 오케스트라의 왕이 아님이 분명해졌다. 피아노 역시 그에게는 문제가 많은 악기였고 그는 피아노에게 타악기적인 성격을 부여하여 “이온화”에서는 연주자들이 피아노 건반을 팔꿈치 아래 부분으로 마치 타악기를 때리듯 눌러대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음뭉치(cluster)는 이제 더 이상 음정들의 화음적 상관관계를 갖지 못하고 타악기적으로 변했다. 전자음악의 전 단계로서 새로운 음향적 시도는 이렇게 기존 악기들의 비정상적인 연주방법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관악기가 마치 타악기처럼 사용되고 타악기가 선율악기처럼 사용된  [초굴절]이 연주된 4분 동안 청중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으며, 이 곡은 과거의 영향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새로운 것이었다. 이런 식의 악기의 기능변화와 타악기, 선율악기의 동등한 취급은 그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징이며 그가 후대에 미친 큰 영향이기도하다. 특히 사이렌의 도입은 여러 의미에서 바레즈의 음악관을 반영해 준다.  바레즈는 22세 때 헬름홀츠의 책을 접하면서 사이렌에 대한 실험을 하고 이를 통해 음악에 대한 그의 중요한 생각을 발전시켜나가는데, 그것은 음악이 음표의 정렬이 아니고 공간에서 진동하는 재료라는 것이다. 그는 작은 사이렌으로 매우 아름다운 포물선 모양의 소리를 개별적으로 또는 쌍으로 만들어내며 청각적인 소리 현상을 시각적인, 즉 공간적인 현상으로 연결시켰다. 그는 사이렌을 [아메리카], [초굴절], [이온화] 등에 사용하여 음 높이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악기로 부각시켰다. 그는 서양음악이 단계별 음계를 사용하여 음정이라는 걸림돌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를 지양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소리곡선을 작곡하기 위해서 사이렌을 사용했다. 이는 후에 전기 음향적 수단으로 만들어지는 소리곡선으로 발전했다.
음악이 끊이지 않고 흐르듯 진행되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평균율로 조율된 경직된 음체계를 거부하게 만듬. 이것은 당시의 현대 작곡가들이 추구하던 재료의 확장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의 재료확장을 유발했다. 결국 그는 음높이와 소리의 구별을 없애고 흐르는 듯 연속되는 변화만이 존재하여 음높이, 협화, 불협화의 개념의 상실을 가져왔지만, 새로운 소리의 합성은 도리어 여러 소리들의 합성으로 만들어지는 음향적 효과를 이용하는 새로운 소리의 영역을 개척했다.
새로운 음색을 위해서 음악적 재료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새로운 악기와 소음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나타남. 그러나 바레즈는 단순히 재료의 확장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의 본질로 회기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미래주의자들과는 구별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그가 소음을 소리의 세계에 포함시킨 것도 관중에게 충격을 주기위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한 기능 중 하나를 형상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음은 그에게 근본적으로 진동하는 소리 재료로서만 의미가 있었음. 전통적 음향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는 바레즈는 새로운 악기를 소망했으며 타악기음향의 중시, 사이렌의 이용, 소음의 이용을 거쳐 결국 전자장치를 이용한 음향의 조합과 창조에 이르게 됨. 쉐퍼의 연구소에서 녹음된 음향을 연주에 함께 사용한 [사막]과 [전자 시](Poéme életronique, 1957-1958)는 순수 전자음악 작품이다.
바레즈 작품들은 소나타, 변주, 푸가나 이와 비슷한 전통적 음악 형식에 기초하지 않았다. 그는 음악형식을 하나의 사건 또는 어떤 과정의 결과로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 대한 동기는 자연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흘러내리는 물소리와 화산 폭발소리의 대위법, 대서양의 물결과 움직임, 나무꼭대기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의 춤추는 모습 등이 그것이다.
바레즈는 특별히 많은 양의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20세기 후반의 작곡가들에게 훌륭한 교과서로 평가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이미 소리의 세계에 대한 연구로 가는 길을 준비함. 이 뿐 아니라 타악기 작곡기법의 중요한 발전이 그로 인해 이루어졌으며 전자음악의 탄생을 예비하는 소리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정착시켰다. 
바레즈는 자신이 속한 시대의 청중들에게 논란을 일으켰던 그의 작품들 때문에 아방가르드적이라 평가되기도 하고 스캔들도 일으켰지만 그의 만년에는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고 젊은 작곡가들 특히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 1928-)과 불레즈(Pierre Boulez, 1925-) 등에게 영향을 끼쳤다.

(3). 작품목록

1)잃어버렸거나 파기된 초기 작품들

[마르탱의 발자취] Martin Pas (약 1894): Jules Veme의 소설을 자신이 오페라 대본으로 고쳐서 작곡한 오페라
[대양예찬] Apotheose de l'océan (약 1905): 교향시
[오케스트라반주 가곡] Chansons avec ochestre (약 1905): 오케스트라반주 가곡
[샘가에서 나눈 대화] Colleque au bord d'une fontain (약 1905)
[정원에서] Dans le parc (약 1905)
[별의 아들] Le fils des étoiles (약 1905): Sar Péladan의 소설을 자신이 오페라 대본으로 고쳐서 작곡한 오페라
[황혼의 시] Poéme des brunes (약 1905)
[3개의 소품] Trois pièces (약 1905):관현악곡
[소년의 노래] La Chanson des jeunes hommes (약 1905): 관현악곡
[추억 Souveni] (약 1905): Leon Deubel에 시에 의한 곡
[오후의 전주곡] Prelude à la fin d'un jour (약 1905): 대규모 관현악곡
[산문적 리듬에 의한 소품] Deux pièces en prose rythmee (약 1905): Leon Deubel에 시에 의한 곡
[신고전(로마네스크)랩소디] Rhapsodie romane (약 1906) : 관현악곡
[부르고뉴] Bourgogne (1907-1909): 대규모 관현악곡
[대식가] Gargantua (1909): 관현악곡(미완성)
[더 많은 빛] Mehr Licht (약 1911): 관현악곡

2)잃어버렸거나 미완성으로 남은 구상들

[오이디프스와 스핑크스] Ödipus und die Sphinx (1908-1914) : Huho von Hofmannsthal의 대본에 의한 오페라
[북녘의 서사시] Les Cycles de Nord (1912): 오페라
[침착한 로비넷 이야기] Dans du Robinet froid (1917-1919)
[천문학(별들의 이야기)] L'Astronomie (1927-1935)
[공간] Espace (1929-1947)
[금속] Metal (1936)
[삼물 (三物)] Trinum (1954): 관현악곡

3)출판되었거나 악보가 남아있는 곡들

[슬픔 속의 깊은 잠] Un grand sommeil noir (1906): Paul Verlaine의 시에 의한 피아노반주 가곡 (출판: Salabert, Paris-New York 1976)
[아메리카] Amérique (1918-1922): 대규모 관현악곡 (출판: Colfranc, New York 1973)
[봉헌] Offrandes (1921): Vincente Huidobro와 Jose Juan Tablada의 시에 의한 소프라노와 실내관현악단을 위한 곡 (출판: Franco Colombo, New York 1960)
[초굴절] Hyperprism (1922): 타악기를 동반한 소규모 관현악곡 (출판: Colfranc, New York 1966)
[팔물(八物)] Octandre (1923): 플루트(또는 피콜로),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 트럼본,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곡 (출판: Ricordi, New York 1956)
[합(合)] Intégrales (1924): 타악기를 동반한 소규모 관현악곡 (출판:Colfranc, New York 1956)
[비법] Arcana (1925-1927): 대규모 관현악곡 (출판: Colfranc, New York 1964)
[이온화] Ionisation (1930-1931): 13명의 타악기 주자를 위한 곡 (출판: Colfranc, New York 1967)
[적도] Ecuatorial (1933-1934): Maya Quiché의 마야의 신성한 책에 기초한 베이스 독창, 4개의 트럼펫, 4개의 트럼본, 피아노, 오르간, 2개의 Theremin(또는 Ondes Martenot)악기 그리고 6개의 타악기를 위한 곡 (출판: Ricordi, New York 1961)
[밀도 21.5] Density 21.5 (1936): 플루트 독주곡 (출판: Colfranc, New York 1966)
[공간을 위한 연습곡] Étude pour Espace (1947): 작고가에 의해서 여러 나라말로 편집된 시의 단편들에 기초한 합창, 2개의 클라리넷, 6개의 타악기를 위한 곡 (미 출판)
[버쥐를 위한 춤곡] Dance for Burgess (1949): 관현악곡 (워싱턴의 국회도서관에 필사본의 복사악보 보관)
[사막]Déserts (1949-1954): 14개의 관악기, 피아노, 타악기 등 46개의 악기 그리고 3개의 조직된 소리 (organized sound)를 테이프에 녹음하여 삽입하여 만든 곡, 1953-54, 1960, 1961에 만들어진 4개 형태의 변조가 존재함 (출판: Colfranc, New York 1959)
[분곡(分穀, 밭이랑)의 행렬] La Procession in Vergès,'organized sound'의 녹음 (1955): 1955년 초연된 Thomas Bouchard의 영화 Around and About Joan Miró에서 반복적으로 사용
[전자 시] Poème électronique (1957-1958): 3개의 채널 녹음기에 '조직된 소리 organized sound'를 녹음한 것을 20종류의 다양한 크기로 조합하여 425개의 스피커로 트는 곡
[야행(夜行)] Nocturnal (1960-1961): Anaïs Nin의 글 The House od Incest와 의미없는 말소리들을 기초로 한 소프라노 독창, 베이스합창 그리고 관현악 편성의 곡, 미완성이었으나 바레즈의 초안에 따라 그의 제자 Chou Wen-Chung이 완성함 (출판:Colfranc, New York 1973)

등록일자: 2005-12-12
권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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