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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발바스트르 [Balbastre, Claude Bénigne]
33회
발바스트르(Claude Bénigne Balbastre, 1727 디종- 1799 빠리) 

음악가인 아버지로부터 오르갠과 클라비어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장 필립 라모의 동생이었던 끌로드 라모(Caude Rameau)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끌로드 라모는 아버지가 맡고 있었던 디종의 대성당의 후임 오르가니스트였다. 그런데 발바스트르가 바로 그의 후임자가 된다(1743). 그가 디종을 떠나기 전인 1748년에 첫 오르갠을 위한 첫 작품을 작곡한다. 1750년에 그는 빠리로 옮겨가 장 필립 라모의 제자가 된다. 그는 스승의 오페라 피그말리옹(Pygmalion)의 서곡을 건반악기 용으로 편곡한다. 1755년에는 빠리의 정기 음악회인 콩세를 스피리튀엘(concert spirituell)에서 오르갠 콘체르토를 무대 위에 올린 후, 이 음악회에 관여하게 된다. 1756년 생 로슈(Saint-Roch)의 오르가니스트가 되고, 빵테몽 수도원(Abbaye royale de Pnth mont)의 클라비어와 오르갠 교사가 된다. 그의 전성기는 콩세르 스필리튀엘 음악회에서 연주된 오르갠 콘체르토들이 성공하는 1757-60년 사이였다. 1760년에는 노트르 담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된다. 그는 탁월한 오르가니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오르갠 기술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오르갠 제작이나 옛 오르갠의 수리에 많이 관여하였다. 그의 딸들 역시 탁월한 오르가니스트였다(Anne-Louise와 Antoine-Claude). 발바스트르는 프랑스 혁명 직전에 베르샤이유의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된다. 그는 혁명 이후 자신의 궁정 관련 전력을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혁명 정권을 위해 노력한다. 

그가 남긴 오르갠 콘체르토는 14곡에 달한다. 그리고 많은 오르갠 즉흥곡들이 남아 있다. 그는 당시의 이태리와 프랑스의 오르갠 전통을 이어받아 작곡하였다. 음악형식 명칭이 있는 곡들은 이태리 풍이었는데, 클라브생 소품(Piéces de Clavecin)이나 4성부 소나타(Sonates en quatour) 등이 그러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묘사적 음악 부분에서는 라모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는 건반악기로 인물들(라 마르몽텔, 드 라 카즈, 라 세귀르), 자연, 전쟁 등을 묘사하였다. 그가 작곡한 소나타와 모음곡들은 그 형식이 서로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당시의 건반악기 음악의 대체적 흐름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줄 때였다. 발바스트르가 모데라토의 제1악장을 빠른 음악으로 바꾸거나, 다악장의 음악에서 통일된 조성을 유지하게 하는 것 등이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를 지나 하이든에게로 이어진다. 그의 모든 소나타들은 나폴리 식의 삼악장(빠르게-느리게-빠르게)로 되어 있다. 그는 처음에 프랑스 클라브생 전통대로 많은 장식음을 사용했으나 점차적으로 사용을 자제한다. 이는 바로크 풍의 음악에서 고전 풍으로 이행한 역사를 보여준다. 그의 음악에는 이러한 과도기의 음악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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