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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볼페,슈테판 [Wolpe, Stefan]
587회
슈테판 볼페 (Stefan Wolpe 1902 베를린에서 출생 - 1972 뉴욕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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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음악사에서 독일계 유태인 작곡가로 명망을 누리는 슈테판 볼페는 베를린에서 음악적인 그리고 문화적인 영향을 받았다. 파울 주앙(Paul Juoan)의 제자로 베를린 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였으나 스승의 보수적인 수업은 볼페의 음악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였으므로 1년만에 공부를 포기하였다. 그 대신에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활발했던 당시의 여러 운동에 관심을 가지는데 특히 다다이즘에 가담하여 점점 정치적인 성향을 가지게 되었으며 1925년에는 독일 공산당에 입당하기에 이르렀다. 1928년에 "제우스와 엘리다 (Zeus und Elida)"라는 시대극에서 히틀러의 정신병을 주제로 다가올 나찌의 위험을 예언한 바 있다. 그리고 1931년에는 공산당의 연극단체인 "부대31"을 위해 작곡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음악에 기여하였다. 그러나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 유대인이며 공산주의자에다 예술적으로도 아방가르드인 볼페는 독일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고 비엔나로 떠나 안톤 베베른에게서 12음기법을 배우게 된다. 6개월이 채 못 되는 기간의 수업이었으나 볼페에게는 이전의 산만하던 음악언어에서 해방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다. 베베른의 영향을 받아 쓴 12음 작품으로 "대형 오케스트라를 위한 5개의 소품 (Fuenf Stuecke fuer Grosses Orchester)"과 "Four Studies on basic rows (1934년에 작곡)"을 들 수 있다. 

1934년에 볼페는 일자리를 찾아 이스라엘로 망명하여 작곡선생으로 명성을 얻게되나 그의 음악이 이스라엘의 청중에게는 생소한 것에다 정치성을 띄어 호응을 받지 못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동구권의 유대인들이 사회의 기반을 다지고 있었으므로 1933년 이후 나찌에 쫓겨 이스라엘로 망명한 서구권의 유대인은 적응하기가 힘들었던 실정이었다. 특히 볼페는 보수적인 음악관을 가진 대부분의 음악원 선생들과 마찰이 심했으며 그의 곡 "두개의 피아노를 위한 행진과 변주 (Marsch und Variationen fuer zwei Klaviere)"이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요셉 탈 (Joseph Tal)과 볼페의 두 번째 부인 Irma Schoenberg (루마니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에 의해 1937년에 초연 되었으나 청중들에게 이해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나게 되자 이스라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1938년 미국으로 또 다시 망명의 길을 떠나게 된 볼페에게 이스라엘의 경험이 완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에서 처음으로 히브리어를 배우게 되었으며 오리엔트 유대인의 노래와 아랍인의 즉흥적 예술과 그 기법과 접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요에 감동을 받아 볼페의 음악언어는 이색적이며 풍요로와 졌다. 합창곡 "Four Pieces for mixed choir"나 "Yigdal"은 이러한 경험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뉴욕에서 볼페는 당시 눈부신 활약을 하던 챨리 파커(Charli Parker)등의 재즈 음악가와 추상적 표현주의 화가들(Franz Kline, Willem de Kooning)의 영향을 받는 등 1920년대 베를린 시절의 활기를 되찾는 듯 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아방가르드 작곡가는 활동범위가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무조 음악은 인기가 없어 작품을 위탁 받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1958년 동시대 작곡가를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던 지휘자 레온하르트 번슈타인 (Leonhard Bernstein)이 뉴욕 필하모니를 위해 위탁하여 탄생하게 된 볼페의 첫 심포니는 예외에 속한다. 1952년 존 케이지(John Cage)의 추천으로 Black Mountain College에서 교수직을 가지게 된 후 교직은 볼페에게 중요한 생활의 기반과 예술활동의 뒷받침이 되었다. 이미 이스라엘 망명시기부터 바하의 푸가 (특히 Kunst der Fuge)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던 볼페는 베베른에게서의 수업을 응용하여 새로운 대위법적 형식을 발전시켰는데 "기본음렬에 관한 4개의 연구(Vier Studien ueber Grundreihen)"와 "Music for Any Instruments"에서 잘 나타난다. 미국생활이 깊어지면서 볼페는 12음기법대신 음정관계를 이용하여 시간-음-공간의 멀티차원의 구조를 발전시키고자 실험하였는데 "Displaced Spaces", "Shocks", "Diversity of Actions", "Tempo"등의 피아노 곡들을 들 수 있다.

전후 1950년대 독일의 다름슈타트에서 젊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의 모임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을 때 볼페는 오랫동안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독일로 돌아가 제자를 키우며 끊어진 뿌리를 다시 이으려 시도하였지만 그의 음악이 그 당시 베베른을 이상으로 삼았던 아방가르드의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것이어서 외면을 당하였다. 그러던 중 1964년 파킨슨 병이 발병하여 볼페는 작곡활동을 아주 제한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외적조건으로 인하여 그의 작품은 점점 간결해졌다. "From Here on Farther"와 "Chamber Pieces No.1 and 2"가 후기의 새로운 음악스타일을 대표하는 작품에 속한다. 중한 병에도 불구하고 1972년 사망하기까지 예술활동을 포기하지 않았음은 주지할 사실이다.

망명한 작곡가로서 유럽에서는 잊혀져왔고 전쟁 후의 일방적인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에 의해 소외당한 볼페의 음악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야 음악계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1997년 홀란드에서 볼페의 오페라 "아름다운 이야기 (Schoene Geschichten)"와 "제우스와 엘리다"가 작곡된 지 거의 70년만에 성공적으로 초연 되었다. 

볼페는 엄청난 수용력으로 20세기의 거의 모든 주요한 음악적 예술적 흐름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소화시켜 자신의 고유하며 동시에 다양한 음악스타일을 창조한 깨어 있는 동시대 음악인이었다. 


 [이경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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