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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 [Händel,Georg Friedrich||H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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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Georg Friedrich Händel,1685-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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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 2월 23일 독일의 할레에서 태어난 헨델은 같은 해에 태어난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더불어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대표하는 음악가이다.

헨델은 그의 고향에서 기초적인 음악교육을 받은 후 1703년 함부르크로 이주하였다. 함부르크에서 그는 1710년까지 머물며 1704년에 자신의 첫 번째 오페라 『알미라』(Almira, 헨델작품번호 1, 이하 HWV로 표기)와 1705년에 두 번째 오페라 『네로』(Nero, HWV 2)를 발표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음악은 간접적인 경험에 의한 음악이었으며, 그가 이탈리아로 여행을 하며 본격적인 음악생활을 시작하였다.

1706년부터 1710년까지 헨델은 이탈리아에 머무르며 아르칸젤로 코렐리나 알렛산드로와 도메니코 스카를랏티 등의 음악가와 교제를 하였으며, 이러한 이탈리아 음악가들로부터 이탈리아의 기악음악을 배우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이탈리아어로 된 수많은 칸타타를 작곡하여 발표하는 한편 몇 편의 오페라도 선보이게 되었다.

1710년 헨델은 영국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영국으로 건너 간 이듬해인 1711년 2월 그는 오페라 『리날도』(Rinaldo, HWV 7a)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주로 이탈리아풍의 오페라들을 작곡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의 오페라들은 주로 런던의 퀸스 극장(Queen’s Theatre)과 킹스 극장(King’s Theatre)에서 공연되었으며, 대부분의 공연에 많은 관객이 모였고 성악가들도 헨델의 작품에 출연하기를 원했다. 헨델은 자신의 오페라를 마치 아리아들로 연결된 고리처럼 작곡하였으며, 아리아는 가수의 역량이 잘 발휘될 수 있도록 배역을 맡은 모든 성악가들에게 맞추어 작곡하였다. 따라서 그의 오페라에서 나타나는 아리아들은 이전의 다른 음악가들의 오페라에서와는 다르게 훨씬 선율적일 뿐만 아니라 『리날도』에서와 같이 소프라노에 주어진 콜로라츄라 효과도 찾을 수 있다. 그 밖에도 그는 민요적인 선율을 현악기만에 의한 유니즌으로 연주하게 한다든지, 아리아에 춤곡의 리듬을 가미하여 작곡함으로서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헨델은 1730년대 후반까지 『줄리오 체사레』(Giulio Cesare, HWV 17, 1724년 2월), 프랑스풍의 음악적 어법을 찾을 수 있는 『알치나』(Alcina, HWV 34, 1735년 4월) 그리고 『세르세』(Serse, HWV 40, 1738년 3월) 등의 오페라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1730년대에 이르면서 헨델의 오페라는 더 이상 인기를 얻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오페라 대신에 오라토리오라는 새로운 장르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유사하지만 대부분 종교적 소재를 가지며 무대에서 상연되지 않고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것을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헨델은 1738년에 작곡한 오라토리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Israel in Egypt, HWV 54)을 시작으로 자신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일련의 오라토리오들을 발표하였다. 그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이탈리아어를 사용한 것과는 다르게 오라토리오에서는 영어 대본을 채택하였으며, 대상되는 청중도 중산층을 생각하고 작곡하였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가운데 현재까지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는 1741년 8월부터 9월에 걸쳐 작곡된 『메시아』(The Messiah, HWV 56)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1742년 4월 더블린에서 초연되었으며, 헨델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음악회에서 이 『메시아』가 연주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자신의 작품을 스스로 지휘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마지막 작품이었지만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741년 『메시아』의 작곡이 끝난 후인 10월에 헨델은 새로운 오라토리오 『삼손』(Samson, HWV 57)을 작곡하였으며, 1746년 7월부터 8월에 걸쳐 오라토리오 『쥬다스 막카베우스』(Judas Maccabaeus, HWV 63)를, 1747년 7월부터 8월에 걸쳐 오라토리오『죠슈아』(Joshua, HWV 64)를 작곡하였다. 이 세 작품들은 모두 런던의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753년부터 헨델은 시력을 급격하게 잃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창작활동도 거의 중단되다시피 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단지 몇 개의 기악작품을 위시하여 성악작품으로는 단 하나의 오라토리오를 남기고 있다. 그것은 1757년에 작곡한 『시간과 정의의 승리』(The Triumph of Time and Truth, HWV 71)이며, 이 작품 역시 코벤트 가든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이와 같이 수많은 작품을 통해 바로크 시대의 음악을 바흐와 더불어 이끌었던 헨델은 1759년 4월 14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4월 20일에 그의 시신은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되었다.

헨델은 자신의 음악을 통하여 많은 음악적 공헌을 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합창의 확대 사용 및 발전에 있다. 그는 자신의 오페라에서 아리아가 나올 자리에 합창음악을 이용함으로서 합창이 아리아와 대등한 위치를 얻게 하였다. 그밖에 그는 바로크 말기의 음악을 보급하는데 힘썼으며, 그의 음악에서는 이미 낭만주의 시대의 음악적 요소까지도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러한 그의 음악적 면모는 바흐의 음악과 더불어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나아가 후대의 모든 음악가들의 음악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등록일자: 2005.7.1
차호성



작곡(가)사전 한독음악학회

헨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Händel, Georg Friedrich, 1685-1759) 

- 1685년 독일 할레(Halle) 외과 의사 겸 이발사인 게오르그 헨델(Georg H.)과 타우스트(D. Taust) 사이에서 출생.
- 1685-1703년 할레 시절 9세에 오르가니스트 차코프(F. W. Zachow)에게 음악교육을  받음. 
- 1702년 할레 대학 등록 직후 할레의 돔 교회(Domkirche) 오르가니스트로 고용됨.
- 1703-1706년 함부르크 시절 겐제막트 오페라 극장(Gänsemarkt-Oper)에 고용됨(제2바이올린 주자, 그 후 쳄발로 주자). 
- 1705년 1월 8일 첫 오페라 ≪알미라≫(Almira)를 발표함. 
- 1706-1710년까지 이탈리아에 체류하면서 오페라 ≪플로린다≫(Florinda), ≪다프네≫(Daphne, 1708)를 발표함.
- 1710-1713년까지의 하노버(Hanover) 시절 하노버 선제후의 쳄발로 주자로 채용되어 곧 악사장(Kapellmeister)으로 승진함.
- 1711년 2월 24일 런던을 방문하여 ≪리날도≫(Rinaldo)를 초연함.
- 1713-1719년 런던 정착 초기에 ≪수상음악≫(Water Music, 1717)을 발표하고, 영어 작품인 오페라 ≪아치스와 갈라테아≫(Acis and Galatea), 오라토리오 ≪에스더≫(The story of Esther)를 발표함.
- 1720-1728년까지 ‘왕립음악협회’(The Royal Academy of Music) 활동을 하면서 협회의 첫 시즌을 위해 ≪라다미스토≫(Radamisto)를 발표하여 대성공을 거둠. 그 외 ≪오토네≫(Ottone)를 비롯하여 30여 개의 후속 오페라를 작곡함. 
- 1720년 악보 출판 독점권을 획득함.   
- 1727년 영국 국적을 취득함.
- 1728년 왕립음악협회가 문을 닫게 됨.
- 1732년 ≪에스더≫ 두 번째 버전 발표함. 경쟁 단체인 ‘The Opera of the Nobility’ 및 그 작곡가 포르포라(N. A. Porpora)와의 갈등 빚음.
- 1734-1741년까지 오페라의 거듭된 실패(1733년 협회 문 닫음)로 인한 재정난과 건강 악화로 고통의 시절을 보냄.
- 1741년부터 오라토리오를 창작하기 시작함.
- 1742년 더블린에서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를 초연함.
- 1749년 ≪왕궁의 불꽃놀이≫(Music for the Royal Fireworks)를 발표함.
- 1752년 ≪입다≫(Jephtha, 1752)를 발표함.
- 1759년 평생 미혼으로 살다가 영국 런던에서 사망.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안장됨.
 
  1685년에 태어나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세 명의 음악가(바흐, 스카를라티, 헨델) 중에서 헨델은 가장 국제적이며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1713년 영국으로 이주하여 1727년 영국인으로 귀화하였고, 런던을 활동 무대로 하여 이탈리아 오페라로써 명성을 떨치다가 영국 오라토리오의 창시자로서 생을 마감하였다. 다혈질로 불릴 만한 그의 기질을 보여주는 여러 일화들이 버니(C. Burney)의 ≪비망록≫(Memoirs)과 마테존(J. Mattheson)의 ≪개선문의 기초≫(Grundlage einer Ehrenpforte, 1740) 등에 전하여 온다. 헨델은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남기고 있는데, 중심을 이루는 분야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다.  
  헨델은 당시 유럽 주요 국가의 음악 스타일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였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타일은 헨델이 차코프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함부르크의 겐제막트 오페라(당시 독일 유일의 오페라 극장)에서 카이저(R. Keiser)와 작업을 함께 하는 동안 습득하였다. 헨델의 첫 오페라 ≪알미라≫(Almira, 1705)는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헨델에 끼친 카이저의 영향은 지대하다(이하 Anthony Hicks, 748). 헨델의 작품 속에는 종종 카이저의 선율이 등장하며, 헨델은 카이저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 나라의 음악 양식을 받아들여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으로 삼았다.
  헨델 음악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이탈리아 음악이다. 이탈리아 음악의 흔적은, 초기 오페라 ≪아그리피나≫(Agrippina, 1709)로부터 후기 오페라 ≪세르세≫(Serse, 1738)에 이르기까지 헨델 음악 전반에 두루 나타난다. 이탈리아 체류가 이에 큰 역할을 하였는데, 헨델은 기악과 합창에 관해 스카를라티(A. Scarlatti), 코렐리(A. Corelli) 등의 음악으로부터, 오페라에 관해서는 빈치(L. Vinci), 레오(L. Leo) 등의 나폴리 악파 음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영국에 이주한 후에도 헨델은 이탈리아 오페라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여, 페르골레지(G. B. Pergolesi)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오페라(즉, 오페라 부파)의 요소들을 자신의 음악 속에 받아들였다. 
  영국 음악 양식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헨델은 영국으로 이주한 후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였지만, 그는 이미 1710년대 후반부터 영국 음악을 익히고 있었다. ≪아치스와 갈라테아≫(Acis and Galatea, 1718), ≪에스더≫(The story of Esther, 1718), ≪대관식 앤덤≫(Coronation anthems, 1727) 등이 그 예이다. 특히 헨델은 퍼셀(H. Purcell)의 오페라와 영국식 종교합창곡인 앤덤(Anthem)을 참고로 하였다.
1730년대 이래 그의 오페라는 부진한 흥행 성적을 올리고 있었다. 중산층은 신분귀족 계급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탈리아 가수와 음악이 바로 이 신분귀족 계급에 의해 비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인기를 누렸던 페푸쉬(J. Ch. Pepusch)의 ≪거지 오페라≫(Beggar’s Opera)는 바로 신분제 귀족에 대한 시민계층의 야유와 조롱의 한 표현이었다. 재정난, 경쟁 오페라단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곤경에 빠진 상황에서 헨델은 아일랜드로부터 초청을 받는다. 이를 위해 작곡된 ≪메시아≫는 더블린과 런던 등지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위기에 몰렸던 헨델은 이를 기회로 다시금 반석 위에 올라서게 되었고, 그 후 그는 오라토리오에 주력한다.
  헨델은, 작곡기법에 있어, 주어진 양식이나 종래의 관습을 고수하기보다는 자신의 창작 의도에 따라 그것들을 재구성하는 편이었다. ‘창의적 일탈’은 ≪이중협주곡≫(Concerto a due cori), ≪오르간협주곡≫(Orgel concertos), ≪하프시코드협주곡≫(Harpsichord concerto) 등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은 영국식 오라토리오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Marx, 579). 그러므로 헨델의 음악적 도전은, 영국 중산층을 고객으로 상대해야 했던 1740년 이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창의적 일탈이라는 연장선상에서 헨델의 악기 편성을 살펴본다면, 그 저변에는 표현력 극대화의 의도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줄리어스 시저≫(Giulio Cesare, 1724)에서는 독특한 편성(호른 4개, 테오르보[Theorbo] 1개, 비올라 다 감바 1개)을 사용하여 낯설고 이국적인 정경을 묘사한다. ≪세멜레≫(Semele, 1744)에서의 잠에 빠져드는 장면을, 아리아나 레치타티브에 의해서가 아니라, 콘티누오(continuo)만을 동반한 에어(air)로써 표현하는 점, ≪아치스와 갈라테아≫에서는 최소한의 관현악법을 사용하는 점, ≪사울≫(Saul, 1739)에서 요란한 악기들(종, 트럼본, 양철북, 오르간 등)을 투입한 점 등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될 수 있다(Dean, 105). 이러한 독특한 악기 편성은, 음색(Marx, 580)이 헨델 음악에서 중요 특성 중의 하나임을 알려준다. 
  극적 긴장감 조성이나 파국으로 치닫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들로 보이는 수법들도 발견되는데, 곡 분위기나 템포의 급전, 조성의 변화, 아리아들의 배열 조정, 다이나믹 누적 등의 방법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메네오≫(Imeneo, 1740)는 오페라 전체가 하나의 조(key)를 중심으로 통일되어 있고, ≪아드메토≫(Admeto, 1727)에서는 특정 등장인물(클레오파트라와 안티고네)에게 특정 조가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효과 지향성 작곡이 가장 빛을 발하는 영역은 합창에서이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경탄할 만한 효과를 보여주는 예로서는, ≪사울≫의 ‘Envy! eldest-born of hell!’을 생각할 수 있다. ≪이집트의 이스라엘인≫(1739), ≪솔로몬≫(Solomon, 1748)에 등장하는 거대한 합창도 좋은 예이다. 언어의 의미와 그 효과를 음으로써 극대화하는 기술은, 카이저와 스테파니(A. Steffani)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Marsh, 654).
  양식적 정형성으로부터의 일탈은 긴장감 강화와도 관련이 있다. 다카포 아리아(da capo aria)의 틀을 변형시킨다든지, 리토르넬로(ritornello)의 길이나 구성 내지 반복 지점을 변경함으로써, 나아가 이 같은 변격을 극적 순간이나 인물과 결부시킴으로써 ‘닫힌 틀’은 긴장감이 감도는 드라마로 변모하게 된다. 속도(tempo), 박자, 리듬 등의 변화로써 발생하는 효과는 때로 상상 이상이어서, 예컨대 ≪라다미스토≫(Radamisto, 1720)의 <그렇다면 나는 해야만 한다>(Deggio dunque) 같은 경우 이 곡이 다카포 아리아인지 아닌지 청각만으로는 파악해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또 다른 축으로는 즉흥성(Dean, 104) 또는 현장성을 지적할 수 있다. 대표적 예로서 오르간협주곡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오라토리오 공연 시 막간을 메울 목적으로 마련되었는데, 악보에 ‘ad lib’ 표시들이 많은(Dean, 109) 것으로 보아 그들이 즉흥 연주로서의 성격이 강한 곡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완성도가 ≪합주협주곡, 제6번≫(Concerto Grosso, Op.6, 1739)에 비해 떨어진다(Dean, 109)는 점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나아가 ≪메시아≫(Messiah, 1732)에 21일, ≪리날도≫(Rinaldo, 1711)에는 14일이 소요되었던 것처럼 작곡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점, 유사한 속성의 소재(motif)들이 여러 기악곡에 나타나지만 그 전개 모습은 서로 완연히 다르다는 점, 그 어떤 곡에 관해서도 최종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또한 즉흥적 착상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 모두는, 헨델의 청중 지향성(Marx, 579)을 드러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헨델은 자신의 기존 작품뿐만 아니라 타인-예컨대 바흐(Bach), 스테파니, 투리니(F. Turini), 레오, 카리시미(G. Carissimi), 페르골레지, 그라운(C. H. Graun), 무파트(G. Muffat), 칼다라(A. Caldara) 등-의 작품도 자신의 새 창작에 끼워 넣어 사용하곤 했다. 차용(borrowing) 내지 패러디의 문제는 헨델 음악에 있어 흥미로운 측면 중의 한 가지다. 이 같은 전용의 문제가 당시 미적 견지에서는 문제시되지 않는 관행이었으므로 현재의 잣대로써 비판할 수는 없다는 견해들이 있다(Marsh, 654-655; Dean, 105; Marx, 581- 584). 
  바흐를 ‘사색가’(a thinker)라고 한다면, 헨델은 ‘활동가’(a man of action)라고 비유해 볼 수 있다(이하 Marsh, 655). 바흐의 작품이 심오한 사유와 판단의 연쇄체인 까닭에 사변적인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반면, 헨델의 음악은 그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음으로써 그려낸 것이기에 모든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될 수가 있다(Marsh, 655). 작곡 기법상 바흐는 선율적, 헨델은 화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Müller-Blattau, 1273).
  
참고문헌

Dean, Winton. “Handel, George Frideric.”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8권, Macmillan, London, 1995, pp. 83-140.
Hicks, Anthony. “Handel, George Frideric.”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10권, Macmillan, London, 2001, pp. 747-813.
Marsh, Julian. “Handel, George Frideric.” A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in three volumes, 1권, Macmillan, London, 1880, pp. 647-657.
Marx, Hans Joachim. “Händel, Georg Friedrich.”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Personenteil 8권, Bärenreiter, Kassel, 2002, pp. 509-638.
Müller-Blattau, Joseph. “Händel, Georg Friedrich.”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5권, Bärenreiter, Kassel, 1956, pp. 1229-1286.

 
등록일자: 2010.1.25.
[송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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