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인명
펜데레츠키, 크리스토프 [Penderecki, Krzysztof]
554회
주대창
저자: 주대창
등록일자: 2007-04-25

펜데레츠키, 크리스토프 [Penderecki, Krzysztof]



977803507_1519281615.3117.bmp

-어린 시절 가족음악회-아버지가 취미로 바이올린과 피아노을 연주함. 피아노 학습, 별 진척 없었음.
-중고등학교 시절에 바이올린을 배움.
-크라카우(Krakau) 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과 작곡 공부, 옛 교회음악에 관심을 가짐.
-작곡에 관하여 크라카우 음악대학의 말라브스키(Artur Malawski)의 영향을 많이 받음. 
-폴란드 작곡가협회 주최의 작곡 콩쿠르에 입상(1959).
-도나우에슁엔 음악제(Donaueschinger Musiktage) 초대(1960)
-카토비츠(Kattowitz) 작곡 콩쿠르 입상(1961)

폴랜드의 작곡가 펜데레츠키의 작품 활동 경력은 20세기 후반의 다른 작곡가들에 비하여 몇 가지 특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는 상대적으로 독학에 의한 공부를 많이 하였으며, 작곡 콩쿠르라는 경쟁 체제에서 두각을 나타냄으로써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한 작곡가 밑에서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히 일찍 작곡 공부를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콩쿠르를 통해 명성을 획득하는 것은 연주가들의 등용 과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나, 예술성의 추구에서 상대적으로 더 강한 개성을 내보이는 창작계에서는 일반화되기 어려운 면을 가지고 있다. 이전의 20세기 대 작곡가들이 작곡 콩쿠르를 통해서 성공의 길로 접어든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펜데레츠키의 경우에는, 사회의 일반 음악수용의 청중과 대부분 거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현대 예술음악의 창작자가 대중적 명성을 획득하는 데 작곡 전문가 집단(심사위원)의 결정이 주효했던 셈이다. 
경제력에서 우위에 있는 서유럽 및 북미 출신이 아니면서도 큰 어려움 없이 전업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 역시 눈에 띈다. 많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대학의 교수요원으로 일하거나 여러 후원단체의 협조를 받아 생계를 유지하여야 했으며, 이런 상황은 부유한 나라의 작곡가들이 상대적으로 성공하기 좋은 여건을 형성시켜 왔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성공한 또는 성공을 꿈꾸는 현대 작곡가들이 자주 서유럽으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그러나 펜데레츠키는 폴란드 작곡가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폴란드뿐만 아니라 서유럽 및 북미 그리고 그 외의 지역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그에게 작품을 위촉하고 그의 작품을 연주해준 많은 기관이나 단체들은 폴란드 밖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서유럽이나 북미로 유학 가서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거나, 아예 그곳으로 이주하여 활동하는 경우에 속하지 않는다. 이것은 그의 문화적 및 지역적 출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성공을 위한 모든 여건이 서유럽 및 북미의 대세에 휩싸이지 않으면서도 그것과의 관계를 ‘적당히’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은 결과적으로 그의 창작활동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셈이다. 
작곡가로서의 그의 명성은 학문적 재평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연주회장의 또는 녹음물의 청취 결과에 의지한 측면이 강하다. 많은 현대 음악가들의 작품 중에는 청중에 다가가 공감을 얻고 그것을 통하여 그 창작자가 대 작곡가의 명성을 얻기보다, 해당 음악에 대한 음악사적 의의 또는 그 미학적 배경을 내세워 작품의 당위성을 굳힌 경우가 많았다. 음악작품의 실제 음향에 환호하고 찬사를 보내고 그것이 작품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어떤 음악작품의 존재 그 자체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잦았으며, 특히 음악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결과에 의해 연주되고, 듣고, 수용되어야 하는 현실이 많았다. 펜데레츠키는 실제 들음으로써 공감하는 현대음악을 생산했다는 점에서 19세기 이후 단절된 연주회 문화의 맥을 창작 쪽에서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펜데레츠키의 본격적인 작품 활동은 1958년 크라카우 음악대학을 졸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작곡 스승이었던 말라브스키의 죽음을 애도하는 2악장의 레퀴엠인 Epitafium Artur Malawski in memoriam을 현악 오케스트라와 팀파니 편성으로 썼고, 이것을 그의 졸업 작품으로 내었다. 이 작품은 같은 해에 크라카우 필하모니에 의해 초연되었는데, 뛰어난 음향 처리에 의한 극적 효과로 큰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그는 졸업과 동시에 같은 학교에서 강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음악대학을 갓 졸업한 그는 이듬해까지 세 개의 작품을 연달아 쓰게 되었다. 혼성합창과 현악기 및 타악기를 위한 《다윗의 시편들에서 Aus den Psalmen Davids》(1958),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방사들 Emanationen》(1958/59), 소프라노 및 낭송성부(Sprechstimme) 및 열 개의 악기를 위한 《Strophen》(1959)이 그것들이다. 그는 이 작품들을 폴란드 작곡가협회가 주최하는 작곡 콩쿠르에 익명으로 출품시켰고, 3개의 상위 상을 모두 석권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일약 폴란드의 작곡가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2개월간의 이탈리아 여행의 혜택이 주어졌다. 이 여행에서 그는 쇤베르크의 딸(Nuria)과 결혼한 노노(Luigi Nono)를 사귀게 되었다. 
이후 그는 작곡가로서의 도전과 창조 정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실험적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였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품들 Miniature》(1959), 《아나클라시스 Anaklasis》(1959/60), 《시간과 침묵의 차원들 Dimensionen der Zeit und Stille》(1959/60), 《애가 Threnody》(1960), 《현악사중주》(1960) 등 이미 그의 초창기 작품들에는 전통적 서양음악에서 쉽게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 음향이 들어 있다. 이 시기에 그는 다른 도시의 극장(연극)을 위한 음악과 단편영화를 위한 음악도 썼는데, 이를 통하여 여러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의 이름이 폴란드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펜데레츠키의 작품이 서유럽을 거쳐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데에는 1956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바르샤바 가을 음악제(Warschauer Herbst)였다. 2차대전 후 정치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폴란드는 문화적 부흥을 기치로 수도 바르샤바에서 국제적인 현대음악 발표회를 정기적으로 열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19세기 말 및 20세기 초반의 음악적 흐름이 이어졌다. 그만큼 서유럽의 음악 전통이 폴란드에서도 강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에서의 소위 아방가르드(Avantgarde) -보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신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대표되는 서유럽의 실험적 음악은 아직 폴란드의 창작 세계에서 낯설었다. 하지만 1959년 작곡 콩크르에서 입상한 작품들 중의 하나인 펜데레츠키의 Strophen이 바르샤바 가을 음악제에서 발표(초연)되면서 ‘새로움’에 대한 감탄이 일어났고, 더불어 그의 뛰어난 ‘실험적’ 창조성이 서유럽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 음악제에는 현대음악에 관심 있는 서유럽 사람들이 줄곧 참관하고 있었는데, 2차대전 후 특히 실험적 현대음악을 이끌고 있었던 독일 음악계의 인사들이 관심을 보였다. 펜데레츠키의 작품이 발표되던 1959년의 가을에는 독일 첼레(Celle)의 음악출판업자 뫼크(Hermann Moek)가 바르샤바에 왔고, 펜데레츠키의 Strophen에 감명을 받은 그는 방송된 녹음물을 독일의 쥬드베스트방송사(Südwestfunk) 음악부장인 스트로벨(Heinrich Strobel)에게 소개했다. 이 방송사는 1920년대부터 개최되고 있는 도나우에슁엔 현대음악제(Donaueschinger Musiktage)를 주관하고 있었으며, 스트로벨은 유명한 또는 촉망받는 작곡가들에게 이 음악제를 위한 작곡을 위촉하고 있었다. 그는 펜데레츠키에게 1960년의 음악제를 위한 작품을 의뢰하게 되었다.
도나우에슁엔 음악제를 위해 쓰여진 작품이 바로 《아나클라시스》이다. 이 작품은 그곳에서 대단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펜데레츠키의 작품이 서유럽에서 널리 알려지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애가》 -《원제는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Threnody. To the Victims of Hiroshima for 52 Strings)- 역시 그를 국제적 작곡가로 만드는 데 한 몫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그는 1961년 카토비츠(Kattowitz) 작곡 콩쿠르에 내어서 3위에 입상하였다. 이 작품의 녹음물이 파리에서 소개되었고, 이 작품으로 그는 유네스코(UNESCO) 상을 받았다. 이 해에 그의 작품들은 곳곳의 국제적 현대음악제에서 연주되었다. 플루트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Fonogrammi가 베니스 비엔날레(Biennale)에, 재작업된 《시간과 침묵의 차원들》가 비엔나 현대음악제에, 이전에 작곡된 《방사들》이 다름슈타트 국제 현대음악제에, 《애가》가 스톡홀름 현대음악제에서 연주되었다. 
이 시기에 펜데레츠키는 전자적 음향 처리 방식에 의한 작곡에도 관심을 가졌다. 전자음악에서와 같은 연속적 음뭉치의 활용은 《시간과 침묵의 차원들》 등 그의 초기 작품에서 이미 특징적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1961년 이러한 음향 처리에 의한 작품 Psalmus를 폴란드 방송국(바르샤바, 1957년 설립)의 스튜디오(Studio Eksperymentalen)에서 작업하여 발표하였다. 이듬해에는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캐논 Kanon》에서 테이프가 함께 활용되도록 하였다. 무대 위에서 연주되는 음향을 마이크로폰으로 받아 무대 뒤의 스피커에서 약간의 시간적 차이를 두고 울리게 하는 방식이다. 악기가 연주하는 음향 자체가 복잡한 소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받아 함께 섞어 내보내기 때문에 전체 음향은 매우 동적이고 복잡하게 된다. 그리고 렘베르크(Lemberg)의 집단 학살을 추모하는 라디오 음악 《죽음의 다리 Bridge of Death》(1963)를 전자음악으로 작곡하였다. 
그가 전자적 음생산을 작곡에 활용한 것은 전자음악 자체에 어떤 음악적 의미를 두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에 적절한 방식의 음향 생산을 활용하려는 의도로 이해된다. 그가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내용이 전통적 아름다운 소리로 묘사하는 것보다 전자적 음향으로 표출하는 것이 더 나은지 일종의 실험을 해 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히로시마의 희생자들을 위한 《애가》를 전자음악 버전으로 만들어 보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개막식에 쓰인 Ekechejria 역시 전자음악 방식으로 작곡된 것이다. -이 대회의 축하음악으로 윤이상은 오페라 《심청》(1972)을 작곡하였다.- 이 경우는 무대 위에서 감상용으로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전자음악의 형태로 작곡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오늘날도 큰 행사의 개막 축하 음악은 전자음향의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펜데레츠키에게 있어서 전자음악은 어디까지나 실험적인 또는 부수적인 작업에 속했다. 이후 그는 비록 전자음악에서와 같은 음향이라고 할지라도 전통적 악기 연주를 통해 얻고자 하였고, 이것은 그의 작품 세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형성하다.

폴란드의 현대음악 작곡 콩쿠르를 통해 알려진 젊은 작곡가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그의 음악에 대한 독일 음악계의 관심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초창기의 많은 작품들이 독일의 현대 음악제 내지 방송국들의 위촉 작품으로 쓰여 졌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해당 연주단체(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었고, 또한 방송이나 녹음(녹화)물을 통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대부분의 현대 음악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제대로 연주해 줄 음악가 및 단체를 구하기 어려운 점을 상기하면, 펜데레츠키는 이 점에서 큰 행운을 누렸던 것이다. 
그는 현대 음악의 어느 한 조류에 휩쓸리거나 매진하지 않고 모든 음악적 요소들을 주체적 방식으로 결합시키려고 했다. 그에게 있어서 스승 또는 선배 작곡가의 방식을 쫓는다거나 작곡계의 서열을 가리는 사고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명한 외국 음악대학에 가서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성공해 보고자 한 욕구가 없지 않았을 것이나 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재 주어진 여건 아래에서 필요에 따라 전통적 작곡기법이나 혁신적 방식을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는 음향적 필요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적 동기(의미)의 형성에서 필요한 경우 음렬기법도 사용하였다. 《누가 수난곡》에는 심지어 바흐(J.S. Bach) 또는 바흐의 작품을 염두에 둔 음렬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1950년대 초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당시로서는 대표적 ‘새’ 음악인 전자음악에 그도 한 때 관심을 가졌지만 그러한 방식에만 전적으로 의지하는 작품 활동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정통적 음악이었다. 작품 탄생이후 계속적인 찬사와 음악학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그의 대표작 《누가 수난곡》(1965/66)과 관련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음악과 관련하여 나는 모든 획일적 분파(원리주의 Orthodoxie)에 반대합니다. 나는 전통의 적(敵)이 아니며, 또한 아방가르드의 무비판적 추종자도 아닙니다. 나는 어떤 이론적인 것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창조 행위는 어떤 단순한 구도로 축소되어 표현될 수 없습니다. 나는 《누가 수난곡》을 전통적 또는 혁신적이라고 이야기할 처지에 있지 않으며, 그렇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나에게 있어서 그 작품은 정통적(authentisch)입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족합니다.”(Musica sacra, 1967)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 자신의 음악적 언어였다. 어떻게 그것을 표현하고 또 전달할 것인지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그래서 그의 창작에서는 현대음악의 어떤 특정 기법이나 경향을 전제할 필요가 없었다. 본래적 의미의 작곡 행위로서 작품을 형성시키고 표현할 사고(아이디어)가 먼저 전제되고, 이를 바탕으로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작곡기법이 고려되며, 이를 위해 필요한 연주기법이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음악이 청취자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이러한 수단과 목적의 결합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음악 세계를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가 서양의 음악 전통에 매우 충실한 작곡가이며, 서양의 음악 유산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작품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아무리 규모가 작은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음악적 진지함을 담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중세 이후 서양의 교회음악 그리고 이후 예술음악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던 ‘수공예적’ 작품성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조스깽이나 듀파이 그리고 랏소 및 팔레스트리나를 이어 바흐 및 베토벤 등에게서 관찰할 수 있는 의지적 창조성을 그의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곡가에 의하여 매우 적극적으로 가공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음악을 설정하고, 그것의 미세한 부분까지 끝까지 집착하여 해결하는 방식은 그러나 19세기에 팽배했던 천재적 음악가 상(像)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천재성’을 내세우는 작곡가라기보다 누구나 수용 가능한 입장에서 면밀하게 음향을 조직하는 ‘장인성’에 충실한 작곡가이다. 그의 음악의 청취 인상 역시 세상만사를 노래하듯이 아름답게 소화해 내는 모차르트의 것보다, 무엇인가를 설득시키고 외치는 베토벤의 것에 가깝다. 

그의 기악 작품은 순수 음향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위 절대음악 부류와 음악외적 메시지를 함께 전달하는 소위 표제음악 부류로 나뉘는데, 그가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고 또 그의 음악의 주된 특징을 형성하고 있는 것들은 후자의 부류에 속한다. 그만큼 그는 음향으로 청중에게 구체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 하지만 표제교향곡이나 교향시처럼 어떤 줄거리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아니며, 성격소곡에서와 같이 주로 음악외적 이미지를 작품 전체에 채색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대학의 졸업작품인 기악적 레퀴엠과, 작곡가로서의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콩쿠르 출품 작품들, 그리고 국제적 명성을 얻게 한 《아나클라시스》 및 《애가》 등은 제목이 주는 메시지에 음향적 이미지가 매우 충실한 작품들이다. 
성악 작품들 역시 넓게 보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그는 성악작품에서 가사를 언어적 내용 전달을 위해서만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내용을 음악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목소리에 음향적 의미 구성이라는 임무를 더 강하게 부여하였다. 심지어 가사를 표현한다는 의미보다 목소리로 음향을 형성한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징은 무엇보다도 《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1962/63)를 비롯하여 초창기에 작곡한 교회음악 부류의 작품들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보수적 성격을 갖고 있는 교회 성악음악에서 현대음악의 새로운 음향 추구가 접목되었다는 점에서 펜데레츠키의 작품은 교회음악사에서도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주요 참고자료
악보: Polskie Wydawnictwo Muzyczne(Krakau), Moeck(Celle), Schott(Mainz)
작품목록: Schott 출판사, Mainz 1991.
펜데레츠키 홈페이지 http://www.penderecki.de

참고문헌
Behrendt, A.: “Der unterbrochene Gedanke? Krzysztof Pendereckis Klarinettquartett und seine Kammermusik nach 1980”, in: Jeder nach seiner Fasson, hrsg. von U. Liedtke, Saarbrücken 1997.
Berchthold, Adolf: “Krzysztof Penderecki”, in: Musica sacra, Köln 1967.
Borris, Siegfried: “Pendereckis Stellung im Synkretismus der 60er Jahre”, in: Musik und Bildung, 12/1975.
Burde, H.: “Alban Bergs 'Lulu'-K. Pendereckis Lukas-Passion”, in: NZfM, 4/1968.
Dahlhaus, Carl: Schönberg und andere, Mainz 1978.
Demmler, Martin: Komponisten des 20. Jahrhunderts, Stuttgart 1999.
Dibelius, Ulrich: Moderne Musik II. 1965-1985. München 1988.
Fuhrmann, P.: Untersuchung zur Klangdifferenzierung im modernen Orchester, Regensburg 1966.
Gojowy, Detlef: “Avantgarde in Polen”, in: Musik und Bildung, 12/1975.
Gramann, Heinz: “Die Äathetisierung des Schreckens in der europäischen Musik des 20. Jahrhunderts”, in: Orpheus-Schriftenreihe zu Grundfragen der Musik, hrsg. von M. Vogel, Bd. 38, Bonn 1984.
Gruhn, Wilfried: “Avantgarde-auf der Suche nach einer neuen Form”, in: Musik und Bildung, 1/1969. 
Gruhn, Wilfried: “Strukturen und Klangmodelle in Pendereckis 'Threnos'”, in: Melos, 10/1971.
Haffner, Ingrid und Herbert: Zwischen Töne. Fragen an Musiker zum Musikgeschehen der Gegenwart, Hofheim 1995.
Häusler, J.: “K. Penderecki 'Anaklasis'”, Musik und Bildung, 7/8/1969.
Jahnke, Sabine: “Musikdramatischer Exorzismus in Pendereckis Oper 'Die Teufel von Loudun'”, in: Musik und Bildung, 12/1975.
Kaack, Brunhilde: “Pendereckis Zwölftonreihe: Versuch einer Interpretation des Eröffnungschores der Lukaspassion”,  in: Musica, 1/1975.
Kolman, Peter: “Der Weg zur Flächenkomposition”, in: Melos, 1/1970.
Lück, H.: “Cluster und Klerus oder der unaufhaltsame Abstieg des Krzysztof Penderecki”, in: Neue Musikzeitung 18, 1969, Nr. 3.
Müller, Karl-Josef: “Krzysztof Penderecki 'Anaklasis'”, in: Perspektiven Neuer Musik, hrsg. von. D. Zimmerschied, Mainz 1974. 
Müller, Karl-Josef: “Traditionelles bei Penderecki”, in: Musik und Bildung, 5/1975. 
Müller, Karl-Josef: “Pendereckis Musik im mobilen Netz trigonometrischer Punkte”, in: Musik und Bildung, 12/1975. 
Reinecke, Hans-Peter(Hrsg.): Das musikalisch Neue und die Neue Musik, Mainz 1969.
Schwinger, Wolfram: Penderecki. Begegnungen, Lebensdaten, Werkkommentare, Stuttgart 1979.
Schwinger, Wolfram: “Pendereckis Violinkonzert”, in: Das Orchester, 5/1979.
Schwinger, Wolfram: “Dämonen, Engel und Gespenster: der Opern Komponist Krzysztof Penderecki”, in: Oper Heute, x/1987.
Stilz, E.: “Pendereckis Lukas-Passion. Versuch einer Gegenüberstellung mit Teilen der Matthäus-Passion von Bach”, in: Musik und Bildung, 7/8/1972.
Stephan, Rudolf(Hrsg.): Die Musik der sechziger Jahre, Mainz 1972.
Stroh, W.M.: “Penderecki und das Hören erfolgreicher Musik”, in: Melos, 11/1970.
Thomas, Adrian: “Penderecki”, in: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2nd ed. London 2001.
Trapp, Klaus: “Krzysztof Penderecki: Anaklasis für Streicher und Schlahzeuggruppen(1959/60)”, in: Werkanalyse in Beispielen, hrsg. von S. Helms und H. Hopf, Regensburg 1986.
Vogt, Hans: Neue Musik seit 1945, Stuttgart 1982.
Wilson, Peter: “Geräusche in der Musik-zwischen Illustration und Abstraktion”, in: Musikforschung, 2/1985.
Winkler, G. E.: “Krzysztof Penderecki, I. Sinfonie. Versuch über ein musikalisches Ur-Material: Einzelton und Repetition”, in: Melos 1987. H. 4.
Zielinski, T.A.: “Der einsame Weg des Krzysztof Penderecki”, in: Melos, 10/1962.  “Neue Klangästhetik”, in: Melos, 7/8/1966.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