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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작품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베토벤
577회
피아노 협주곡 제5번 "황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그의 교향곡 3번 『영웅』이후로 정치성을 띈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이 작곡한 이전의 피아노 협주곡들과는 달리 거대한 구도와 당당한 위용과 거장적 기교로 인간정신의 승리를 이룩한 곡이다.

   이 곡에 붙어있는 "황제"라는 제목은 베토벤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라 후대에 붙여진 것이다. 

   1808년, 나폴레옹의 동생인 제롬 보나빠르뜨가 독일에 있는 카셀의 지배자가 된 후 비엔나에 있는 베토벤에게 일생동안 연금을 지불하겠다는 조건으로 궁정 악장에 초빙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이 사실을 알게된 비엔나의 귀족들은 베토벤을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연금을 모아 베토벤에게 주기로 하였다. 하지만 1809년 5월 나폴레옹의 군대가 비엔나를 침공하자 이 도시에 있던 황족과 귀족들은 모두 비엔나를 떠나 피난하였다. 이때 베토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으며, 바로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작곡된 것이 "고별 소나타"로 잘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26번 op. 81a와 피아노 협주곡 5번이다. 현실적으로는 불안하고 패배감이 팽배한 상황이지만 베토벤은 그 상황을 특히 피아노 협주곡 5번에서 웅대하고 당당한, 그리고 굽힐 줄 모르는 인간성의 승리로 표현하고 있다. 이 곡은 시작부터 이제까지의 전통을 깨고 있는데 솔로 피아노의 웅대한 카덴짜로 시작하는 면이나, 휴식 없이 이어서 연주되는 2악장과 3악장의 관계도 3악장의 주제를 이미 2악장의 마지막에 단편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면에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 이 곡이 취한 조성 내림마장조는 베토벤에게 있어서 찬란한 영웅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교향곡 3번 "영웅"도 내림마장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바흐나 하이든, 모차르트가 취했던 내림마장조의 성격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리고 또한 1악장은 솔로 카덴짜로 시작하는데 이는 교향악 적인 면을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형식은 기존의 비엔나 고전주의의 소나타 기법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소나타 기법은 제시부, 전개부 그리고 재현부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베토벤의 5번 협주곡은 이 전통의 기법을 무시한 채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악장의 길이도 기존의 협주곡들과는 다르게 길게 전개되어 있다. 예를 들어 1악장의 길이는 그의 9번 교향곡『합창』의 그것보다 길게 작곡되었다.

   이 곡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곡의 전개와 분산화음 등의 특징을 넘어 피아노 협주곡 자체가 그 최고의 정점에 다다랐음을 보이고 있다. 베토벤의 이러한 혁신적인 새로운 시도는 후에 낭만주의의 피아노 협주곡들에서 그 영향을 찾을 수 있는데, 특히 슈만(Robert Schumann)의 협주곡이나 리스트(Franz Liszt) 또는 브람스(Johannes Brahms)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베토벤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리스트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베토벤의 5번 협주곡을 모델로 하여 내림마장조의 조성을 택하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구성하였다.

   이 "황제" 협주곡의 초고는 베토벤이 1809년에 완성하였지만, 초연은 2년 후인 1811년 11월 28일 라이프찌히의 게반트하우스에서 이루어졌다. 이 때에 슐쯔(J. Ph. Chr. Schulz)가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으며, 피아노 솔로는 작곡자가 아닌 전문연주자 프리드리히 슈나이더(Friedrich Schneider)가 맡았다.

   이와 같이 볼 때 베토벤은 전통을 토대로 하여 발전시킨 기법들이나 인간적인 사상 그리고 감정을 음악에 자연스럽게 흡수함으로써, 음악을 단순한 감각적 예술이라는 낮은 차원에서 인간성의 표현을 추구하는 수준으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음악사적으로 그의 음악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피아노 음악에 있어서도 그의 작품들은 피아노의 기능적 특성을 최대한 살리며, 거기서 최대한의 표현을 하려고 한 점이나 피아노를 교향악 적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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