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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Georges Bizet, 1838~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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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즈 비제(Georges Bizet, 1838~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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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출신의 작곡가 조르즈 비제는 성악 교사인 아버지(Adolphe Armand Bizet)와 피아니스트인 어머니(Aimée Marie Louise Léopoldine Joséphine Delsarte)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부모에게 음악을 배우면서 매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이미 10세가 채 안된 1848년에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마르몽텔(Antoine Fr. Marmontel)에게 피아노를, 브느와(François Benoist)에게 오르간을, 알레비(Fromental Halévy)에게 작곡을 배웠다. 비제는 음악원 입학 전부터 사사한 마르몽텔과 평생에 걸쳐 서신 왕래를 해왔는데, 그의 추천으로 1849년부터 지메르만(Pierre Zimmermann)에게 처음으로 개인 작곡수업을 받았었다. 그리고 1852년에 지메르만의 사위가 되었던 구노를 비제는 알게 되면서 지메르만이 병중일 때는 대신 그에게도 작곡을 배웠는데,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1853년에 지메르만이 사망하자 비제는 알레비를 사사하면서 1856년에 칸타타 『다윗』(David, 1856)으로 로마 대상 작곡 콩쿠르에 1등 없는 2등에 입상하였고, 다음 해인 1857년에는 칸타타 『클로비스와 클로틸드』(Clovis et Clotilde, 1857)로 마침내 로마 대상을 획득하였다. 또한 그는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경제적인 지원으로 주최된 단막극 오페레타 『미라클 박사』(Le Docteur Miracle, 1856)로 응모하여 스승인 알레비의 또 다른 제자인 르코크(Charles Lecocq)의 작품과 함께 당선되어, 1857년 4월 9일에 부프-파리젠느(Bouffes-Parisiens)의 오펜바흐 극장에서 공연하는 등, 작곡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프랑스 음악계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던 알레비는 구노 못지않게 작곡가 비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1857년의 로마 대상 수상자로 로마에서 1860년 여름에 귀국할 때 까지 거의 3년간 유학할 수 있었는데,  이 시기에 2막의 오페라 부파 『돈 프로코피오』(Don Procopio, 1858~59)와 교향곡적 송가 『바스코 데 가마』(Vasco de Gama, 1859~60) 등을 작곡하였다. 1860년 여름에 친구인 기로(Ernest Guiraud)와 북부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중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받고 유학도중에 파리로 돌아왔지만, 결국 1861년 9월 8일에 어머니는 사망하였다. 
그 후 비제는 빠리에서의 음악활동을 결심하고 오페라 작곡에 주력하였고, 알레비와 구노뿐만 아니라, 특히 오펜바흐에게도 관심을 기우렸다. 먼저 단막 오페라 코미크 『태수의 구즐라』(La Guzla de l'émir, 1862)를 완성하였지만, 이 작품은 오늘날까지 초연 여부도 불확실하고 행방불명된 것으로 여기고 있다. 
1863년에 리리크 극장의 지배인 카르바요(Léon Carvalho)의 의뢰로 작곡되고 그 해에 초연된 3막 오페라 『진주 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1863)로 비제는 처음으로 오페라 작곡가로서 그의 입지를 확립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실론 섬을 배경으로 한 지방색이 풍부한 삼각관계의 비극으로 관습적인 번호 형식의 오페라이고 구노나 마이어베어(Giacomo Meyerbeer)의 영향도 보인다. 그러나 또한 이후 『카르멘』에서 절정에 달하는 관현악법이나 주요 모티브의 활용 및 언어의 묘미를 살린 레치타티보, 특히 대화의 취급 등에서는 극음악 작곡가로서의 비제의 재능을 이미 여기서 엿볼 수 있다.
그 뒤 야심작인 5막의 그랑 오페라 『이반 4세』(Ivan IV, 1862~65)가 여러 번의 수정작업 끝에 완성되었으나 극장 측의 문제로 결국 연주되지 않았고, 『아름다운 퍼드의 처녀』(La Jolie Fille de Perth, 1866~67)는 완성된 1867년에 초연되었으나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 뿐만 아니라 1872년에 초연된 『자밀레』(Djamileh, 1871)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을 쓰기는 했으나 『진주 잡이』의 경우만큼 좋은 평을 얻지도 못했다. 이 시기에 예술적 작업에 대한 계속적인 타격과 그로 인한 경제적인 불안 및 자신에 대한 회의로 술을 가까이 하게 되면서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69년 2월에는 로마 체재 동안의 회상을 담은 교향곡 『로마』(Roma, 1860~68, 개작 1871, 1880) 중 제2악장을 제외한 세 악장이 당시 커다란 주목을 끌었던 파들루(Jules-Étienne Pasdeloup)가 이끄는 연주회에서 연주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스승인 알레비의 딸 즈느비에브(Geneviève)와 결혼도 하였다.
한편 1872년 중반 무렵에 그해 3월초 리리크 극장에서 보드빌 극장(Théâtre du Baudevill)으로 옮긴 지배인 카르바요의 제의에 따라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아를르의 여인』(L'Arlésienne, 1872)의 극음악으로 27곡을 썼다. 도데의 극 자체에 대한 비평은 신랄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제의 음악은 호평으로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로, 극 공연이 끝남과 동시에 음악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나온 음악 비평가 베버(Johannès Weber)의 제안에 따라 27곡 중 4곡을 선별하여 관현악 모음곡이 만들어졌다. 이 『아를르 여인 모음곡』(L'Arlésienne suite, 1872)은 파들루의 연주회를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도 계속 연주되어 큰 성공을 이루었다(비제가 사망한 후인 1880년경에도 친구인 기로에 의해 편곡된 제2의 모음곡이 연주되었다). 이 무렵에 작곡된 그 외의 작품으로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어린이의 놀이』(Jeux d'enfants, 1871)와 이 작품에서 발췌하여 편곡한 『작은 관현악 모음곡』(Petite Suite d'orchestre, 1871) 등이 있다. 특히 『작은 관현악 모음곡』은 1873년 3월에 콜론느(Edouard Colonne, 1838~1910)가 이끄는 연주회에서 연주되어 작곡가 비제의 명성을 더욱 굳히게 해주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비제는 오페라『카르멘』(Carmen, 1873~74)을 작업하기 시작하여 병마에 시달리면서 다음 해인 1874년에 완성하였고, 1875년 3월 3일에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초연은 청중의 반응도 비평도 썩 좋지 않았고, 그 후로 3개월 뒤인 6월 3일에 비제가 37세의 나이로 요절할 때까지 35 회나 공연되었지만 비제가 바란 만큼의 큰 성공은 아니었다. 비제는 죽기 전에 그 해 가을에 비엔나에서의 공연을 위해 원래 대사가 있는 오페라 코미크 스타일의 오페라에서 대사 부분을 레치타티보로 처리하도록 조언을 받았지만, 그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친구인 기로가 대신 레치타티보로 고치는 수정작업을 하였다. 1875년 7월 23일에 빈 궁정 가극장에서 초연된 레치타티보가 붙은 오페라가 성공하면서 인정받기 시작하였다. 
비제는 그의 최후의 오페라『카르멘』을 포함하여 대략 30 여개에 달하는 극작품의 작곡을 시도하였지만, 이 중 완성된 것은 19 개 정도이다. 그러나 모두가 지방색이 풍부한 정열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 중에서도 그러한 경향이 가장 현저한 『카르멘』에서 비제는 1845년에 발표된, 원작가인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가 두 번이나 스페인을 여행하고 쓴 소설의 이색적인 소재를 독창적 대담성을 가지고 처리하여 관습적인 번호 오페라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등장인물의 정확한 표현과 빈틈없는 무대구성으로 극적 생동감을 불러일으켰다. 노래나 음악은 극의 내용에 극히 잘 융합되어 있는데, 특히 노래에 오페라 코미크의 특색인 샹송이나 쿠플레를 도입하고 언어의 어감과 리듬을 절묘하게 살리면서도 독일과 이탈리아 오페라의 장점을 적당히 접목시켜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통일시켰다. 또한 남부 유럽의 이국적 정취가 풍부한 이 작품에서 스페인 음악이 근소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국적 조성과 전조 및 모티브의 활용,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색채적인 관현악법이 잘 조화되어 훌륭한 효과를 보인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이러한 독자적인 작곡기법으로 이뤄낸 박진감 있는 리얼리즘은 특히 후에 이탈리아의 베리스모(Verismo)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비제가 37세의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카르멘』은 그때까지의 그의 작품의 집대성일 뿐만 아니라, 전통의 발판 위에 구노 등 선배 작곡가들의 시도를 더욱 발전시켜 프랑스 안팎의 오페라계에도 혁명적 선풍을 이끌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진가를 높이 인정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비제는 오페라사에서 독일의 바그너와 이탈리아의 베르디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19세기 중반까지의 프랑스는 특히 오페라의 전성기로서 오페라 이외의 작곡으로는 큰 수입을 얻을 수 없었기에, 탁월한 피아노 연주 실력자였던 비제도 피아노 작품보다는 오페라에 더욱 심혈을 기우렸다는 것은 당연한 일로 보이는데, 실제 이런 내용을 그의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비제는 극음악 이외에 칸타타,가곡 등의 성악 및 관현악,피아노곡 등의 기악 작품과 다수의 편곡 작품들을 남겼는데, 1855년 17세 때 작곡한 『교향곡 C장조』는 이미 그의 독자성을 드러내어 관현악 작곡가로서도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

1. 성악 작품
1) 칸타타
*『L'Ange et Tobie』(ca. 1855~57) *『Le Chevalier enchanté』(ca. 1855~57) *『David』(1856) *『Clovis et Clotilde』(1857)

2) 합창
*『Le Golfe de Baïa』(1856) *『La Chanson du rouet』(1857) *『Vasco de Gama』(1859~60) *『Hymne de la paix』(1867) 

3) 가곡
*『La Foi, l'espérance et la charité』(ca. 1854) *『옛 노래』(Vieille Chanson, 1865) *『4월의 노래』(Chanson d'avril, 1866?) *『조용한 바다』(Douce Mer, 1866) *『사랑의 노래』(Chant d'amour, ca. 1869) *『타란텔라』(Tarantella, ca. 1869) *『Vous ne priez pas』(ca. 1873)

2. 무대 작품
*『미라클 박사』(Le Docteur Miracle, 1856) *『돈 프로코피오』(Don Procopio, 1858~59) *『태수의 구즐라』(La Guzla de l'émir, 1862) *『이반 4세』(Ivan IV, 1862~65) *『진주 잡이』(Les Pêcheurs de perles, 1863) *『아름다운 퍼드의 처녀』(La Jolie Fille de Perth, 1866~67) *『자밀레』(Djamileh, 1871) *『아를르의 여인』(L'Arlésienne, 1872) *『카르멘』(Carmen, 1873~74)

3. 기악 작품
1) 관현악
*『교향곡 C장조』(1855) *『로마 교향곡 C장조』(1860~68) *『작은 관현악 모음곡』(Petite Suite d'orchestre, 1871)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L'Arlésinne suite 제1번, 1872) * 서곡 『조국』(Patrie, 1873)

2) 피아노 음악
*『Grande Valse de concert, op.1』(1854) *『라인의 노래』(Chants du Rhin, 1865) *『바다경치』(Marine, 1868?) *『반음계적 변주곡』(Variations chromatiques, 1868) *『어린이의 놀이』(Jeux d'enfants, 네 손용, 1871) 등.


참고문헌

세광출판사 사전편찬위원회, 『음악대사전』, 세광출판사 1983.
Groth, Renate, "Georges Bizet," Metzler Komponisten Lexikon, Stuttgart 1992.
Macdonald, Hugh, "Georges Bizet," The New Grove Dictionary of Music and Musicians, Vol. 3, London 2001.
Schwandt, Christoph, Georges Bizet: mit Selbstzeugnissen und Bilddokumenten dargestellt,  Reinbek 1991.
_________, "Georges Bizet," Harenberg Konzertführer, Dortmund 1998.
Wright, Lesley A., "Georges Bizet," Die Musik in Geschichte und Gegenwart, Personenteil 2, Kassel 1999.
Zöchling, Dieter 외 9인 공저, "Georges Bizet," Harenberg Opernführer, Dortmund 1997.

등록일자: 2005-02-21
고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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