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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 가브리엘 [Faure, Gabriel]
1,055회
저자: 한국음악연구소
등록일자: 2006-10-27

포레, 가브리엘 [Faure, Gabr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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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곡가. 1854년 교회음악을 가르치는 니더마이어 음악학교(École Niedermeyer)에 입학하여 1861년 이후 그곳에서 생상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1866-70년 초반에는 프랑스의  여러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다. 그는 1876년에 작곡한 바이올린 소나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877년 뒤브아(Th. Dubois)의 후계자로 마드레인(Madeleine)에서 악대장이 되었고 동시에 니더마이어 음악학교에서 가르쳤다. 1877년 말 그는 생상과 함께 바이마르로 가서 생상의 『삼손과 데릴라』를 무대에 올렸다. 그는 바그너의 오페라를 듣기 위해 1878년 쾰른으로, 1879년에는 뮌헨으로 갔다. 1879년 이후 그는 작곡에 전력하였다. 

초기의 주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발라드 (1881), 
3개의 즉흥곡(Impromptus 1882—83), 
6개의 뱃노래(Barcarolles, 1882—95), 7개의 녹턴(Nocturnes, 1883—97), 
g단조 피아노5중주곡 (1886), 
레퀴엠(Requiem, 1887—88, 부모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한).

1891년 베니스에서 그는 베를레느(Verlaine) 시를 사용하는 연가곡의 작곡을 시작했다. 1892년 프로방스 음악원(Conservatoire de province)의 감독이 되었고, 1896년  마스네(J.E. Fr. Massenet)의 후계자로 빠리 음악원의 작곡 교수가 되었다. 그에게서 배운 작곡가들 중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슈미트Fl. Schmitt, 오베르L. Aubert, 에네스코G. Enesco, 나디아 불랑제N. Boulanger, Roger-Ducasse, 라미로P. Ladmirault, 뷜러모E. Vuillermoz, 카젤라A. Casella, 라벨M. Ravel). 
포레는 무대음악인 『칼리굴라』(Caligula 1888), 『쉬록』(Shylock 1889), 『펠레아스와 멜리상드』(Pelléas et Mélisande 1898)를 작곡했고, 1900년 서정비극의 오페라 『프로메테우스』(Prométhée)를 무대에 올렸다. 1905—20년 그는 뒤브아의 후계자로 빠리 음악원 원장이 되었다. 1909년 예술 아카데미(Académie des Beaux-Arts)의 회원이 되었다. 1903—13년 피가로 신문에 음악평론을 썼다. 그후 연가곡 『이브의 노래』(Chanson d'Ève 작곡(1906-1910). 오페라 『페네로페』(Pénélopé1907-913, 초연 몬테 카를로 1913, 같은 해에 샹젤리제 극장의 개관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짐)를 작곡했다.  1903년 청각장애가 시작된 후 공적인 활동을 자제했다. 

포레는 프랑스 음악에서 현대적 흐름을 이끌어온 드뷔시와 라벨의 스승 세대에 해당하는 나이였다. 그는 프랑스 낭만주의 음악에 맨 끝 부분에 위치하면서 프랑스 음악에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부여한 작곡가였다. 그리고 당대의 흐름으로부터도 독자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의 음악은 오케스트라의 음향을 통한 다양한 음색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극적인 효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단순한 음악을 일구어내었다. 그의 음악 중 성공적인 것들은 특이한 화성구조를 보이며, 선율적으로 자유롭게 흐르는 성부들을 보인다. 그의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음악은 실내악과 잘 맞았기에 그는 이 분야에서 성공적이었다. 
포레가 작곡을 시작할 때에는 구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특히 선율적인 면에서 그러했다. 그의 로망스 식의 음악, 즉 선율과 반주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작곡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런 방식을 기악과 성악을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그의 100곡이 넘는 가곡(“멜로디”)은 프랑스어 시 낭송에 맞춘 것으로서 그의 대표적 장르로 평가 받는다.
그의 피아노 음악은 멘델스죤, 슈만, 쇼팽의 영향을 받으면서 테마작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의 가사 없는 『로망스 1번』에서는 대립테마도 사용된다. 음악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테마작업은 고전음악에서처럼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성향이 없다(예: 제1번 바이올린 소나타) 또한 두 개의 피아노사중주는 두 개의 테마를 사용하지만 여러 부분들을 이어 만든 성격을 보여준다. 포레는 성악곡에서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좌우균형적인 박절구조를 피하고 자유로운 구조로 나아갔다. 그 예로  가곡집 『좋은 노래』La Bonne Chanson(op. 61, 1892—93)를 들 수 있다. 여기에 수록된 가곡들에서는 피아노 성부까지도 주로 테마적 재료를 가공한다. 물론 어떤 곡들에서는 선율과 반주가 분리되는 기존의 경향을 유지하는 것들도 있다. 『좋은 노래』는 피아노반주 가곡의 역사에서 비중있는 연가곡집에 속한다. 
포레와 바그너의 관계는 메싸제(A. Messager)와 같이 작곡한 네손을 위한 피아노곡 『바이로이트의 추억』(Souvenirs de Bayreuth)에서도 중요하다. 이 곡에서는 당시 살롱음악에서 애호된 카드리유(Quadrille) 음악, 그리고 바그너의 『니벨룽겐 반지』의 모티브도 재치있게 사용되었다. 『테마와 변주』(Thèmes et variations (1897)와 제7번 『녹턴』(1897)는 심포니적 성향을 보여주지만 단순히 화성을 나열하거나 음향효과만을 노리지는 않고, 기존의 전조 없이 전음계적인 선율과 리듬적으로 색다른 성격의 음악을 계속한다. 이러한 경향은 제13번 『녹턴』과 마지막 현악사중주(op. 121, 1923—24)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포레의 작품 중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것이 그의 『레퀴엠』이다. 이 음악은 기악적 표현과 성악적 표현을 절제하고, 대위법이나 화성학도 대위법적 기교나 불협화적 긴장도 높은 화성을 제한하면서 자신만의 교회음악적 표현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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